프란츠 카프카 지음/ 정초일 옮김/ 은행나무

 

'변신', '소송', '성' 등으로 20세기 최고의 독일 작가의 반열에 오른 프란츠 카프카. 그가 쓴 가장 중요하고 포괄적인 자전적 기록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1919)가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역자가 다시 한 번 원문과 대조하면서 전반적으로 여러 표현들을 다듬고 바꾸었으며, 미흡하다고 여겨지거나 오해의 소지가 발견된 곳들을 수정하고 보완했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외에도 프라하를 떠나 독일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려는 구상을 밝히는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1914)와 여동생에게 자녀 양육에 관한 의견을 보내는 '누이동생 엘리에게 보내는 편지'(1921)를 부록으로 실어 카프카의 또 다른 생각들을 엿볼 수 있게 했으며, 카프카 본인과 그 가족 친지 및 생가 등의 사진을 본문과 함께 편집함으로써 읽는 재미를 더했다.

1883년 프라하에서 태어나 1924년 만 41세가 조금 못 되는 나이로 삶을 마친 프란츠 카프카는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전문 연구자들의 치열한 탐구의 대상이었고, 상당수 글 쓰는 이들에게는 투철한 작가 정신의 귀감으로서 공감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는 그의 사진과 작품을 통해, 그리고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작품의 분량을 압도하리만큼 많은 연구와 비평을 통해 그를 대한다. 그러나 수수께끼처럼 독자를 사로잡으면서도 암호화되어 있는 듯한 그의 텍스트를 이해하기란 종종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전문 연구자들에게조차 만만한 일이 아니다. 현대인의 존재 상실과 회의, 그리고 불안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알려진 그의 작품들은 독자에 따라서는 읽고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 읽고 있음으로 인한 불안과 상실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수많은 연구 성과들은 그를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카프카와의 소박하고 순수한 만남을 저해하기도 한다. 심지어 카프카가 비평가들의 대대적인 능욕과 박해에 희생되었다는 지적까지 있음을 고려한다면, 카프카 문학의 정신을 감지하고 그 묘미를 맛보는 것은 지난한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카프카의 대표작들이 널리 알려져 있고, 그의 작품이 진실한 문학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변함없이 강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첫 작품을 읽고 나서 또는 그 도중에 발길을 돌리는 독자들이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는 바로 그러한 독자들에게 반드시 권해야만 할 글이며, 아직 카프카를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마음 놓고 필독을 권할 수 있는 글이다. 이 편지는 고유한 용도를 갖는 사적인 서한인 동시에 자전적 에세이로서 그 자체 훌륭한 문학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와 동기들을 숱하게 담고 있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진술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들, 즉 교육, 사업, 유대주의, 작가의 실존, 직업, 성과 결혼 등의 문제를 차례로 짚어가며 체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편지의 이처럼 독특한 지위는 카프카 사후에 전집을 펴낸 막스 브로트의 갈등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1950년대 초에 카프카의 전집을 출판하면서 브로트는 이 편지를 사적인 서한으로 평가했음에도 문학작품으로 분류했던 것이다. 더욱이 카프카의 문학작품들이 자전적 성찰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장 중요한 자전적 진술로 평가되는 이 편지가 그의 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편지는 치밀한 구성과 논리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이고 흥미로우며, 다행히도 그리 까다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함께 탄식하게 할 만큼 감동적인 동시에 무척 소중한 통찰을 선사한다. 그럼으로써 이 편지는 카프카가 골치 아픈 작가라는 적지 않은 독자들의 관념을 불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며, 불가해한 암시와 상징의 고독한 예언자적 이미지를 지녀온 카프카로부터 친숙한 동료나 형제의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