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언론-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인터뷰: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 강우일 주교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한 우리의 싸움은, 단순히 기지 그 자체를 반대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전쟁에 대한 우리의 사고, 평화에 대한 염원을 보다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므로, 기지 건설 반대가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난해 9월 첫 삽을 뜬 강정 평화센터가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라는 이름으로 완성됐다. 축복식을 앞두고 만난 강우일 주교는 평화센터의 의미와 역할을 설명하기에 앞서,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싸움이 어떻게 재정립 되어야 하는지, 강정마을의 싸움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가 ‘평화’를 위한 싸움에 어떻게 동참하고 연대해야 하는지 역설했다.

 

▲ 서울 중곡동 주교회의 사무실에서 만난 강우일 주교. 강 주교는 “평화를 구하는 일은 악을 배제하기 보다는 모두가 함께 찾고 누리는 ‘지향하는 평화’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부터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제기하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온 강우일 주교는 제주 강정마을의 싸움은 온 국민의 몫이어야 하며, 특히 신앙인들에게 그것은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고 간다”는 예수님의 뜻을 실현하고 살아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 싸움 속에서 시작된 평화센터 건립은 그 시작부터 역사적 상처가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벌여 온 전주교구 문정현 신부는 유신정권 당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2006년 재심으로 무죄판결을 받았고, 이에 대한 국가 배상금을 강정주민과 활동가들을 위한 공간 마련을 위해 내놨다. 평화운동을 위한 센터 건립을 위해 땅을 샀지만, 건축 기금이 없었던 문 신부는 강우일 주교를 찾아 도움을 청했고,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강 주교가 뜻을 합쳤다.

제주, 전주, 광주대교구가 교구 차원에서 힘을 보탰고, 수원, 의정부, 인천 등 타 교구 사제, 수도자, 신자 등 6800여 명이 후원을 약속하고 모금에 동참한 결과, 평화센터가 완공됐다.

강우일 주교는 평화센터를 만들게 된 맥락에 대해, “해군기지가 물리적으로 완성된다고 해도, 우리의 평화를 향한 달리기는 더 높은 차원을 향해 도약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면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휴양지로 비춰지는 제주는 사실상 그 역사성과 지역성을 보면, 많은 고통과 피로 젖었던 곳이다. 그렇기에 제주는 평화를 갈망하고 염원하는 이들이 더 많이 찾아와 평화를 위해 고민하고 기도하고 연대하는 평화활동의 전초기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왔다”고 말했다.
 

▲ 지난 7일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서 열린 제2회 강정평화컨퍼런스. 강우일 주교와 고창훈 제주대 교수, 일본 외교안보가 마고사키 우케루 씨가 주제발표를 했다.

 

제주, 전쟁의 무서움 일깨우는 가장 생생한 유적지
국민들 평화 이루는 방법 배우는 곳 되기를…

제주교구장이 된 뒤, 4.3사건의 상처를 깊게 들여다보게 된 강우일 주교는 인터뷰 내내 전쟁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얼마나 많은 파괴와 인간성 상실, 인간 말살을 초래하는지 강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북 대치 상황이 70년간 지속되면서 “전쟁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선택 가능한 일이며, 전쟁 반대는 국가의 기본 틀을 흔드는 일이라는 오해가 자리잡은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강 주교는 “한국은 분단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평화를 위한 활동과 노력을 열심히 하지 못했다”면서, “제주교구로부터 평화를 위한 활동이 시작되면, 다른 지역의 신자들에게도 그런 기운이 전해질 것”이라며 희망어린 믿음을 드러냈다.
 

 

▲ 이번 모임에는 일본과 한국 가톨릭교회와 시민사회단체,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우리와 다른 이들 지양하는 것이 아닌,
평화에 대한 항구한 지향을…

평화센터를 통해 가장 먼저 그리고 주요하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강 주교는 “주교 홀로 방향을 정하고 깃발을 꽂아서 될 일은 아니”라면서도, “우선적으로 해군기지 싸움으로 인해 갈라지고 갈등하는 강정 주민들, 지난 8년간 감옥에 갇히고 맞고, 벌금형을 받은 이들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그들 모두의 상처와 아픔이 예수님의 십자가 봉헌과 희생 안에서 치유되기를 바란다”면서, “평화 체험, 활동, 예술적 표현 등 다양한 치유의 작업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강정에서 매일 싸우는 이들의 고뇌는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무게이며, 이를 예수님 안에서 뛰어넘을 수 있는 화해와 치유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시민운동 차원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사기지를 추진하는 군인들, 우리를 막는 경찰들, 해군기지 찬성론자들도 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평화까지 도달해야만, 우리의 싸움과 희생이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들을 제외하고 원수로 만든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싸움이 아닙니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평화, 초월적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강우일 주교에게, 그동안 강정 해군기지 싸움이 제주교구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다.

강 주교는 “정확한 통계를 낸 것이 아니라 정확한 수치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제주교구 사제와 신자들의 의식구조는 많이 변했다”고 답했다. 강 주교는 “사실 처음에는 신부들도 해군기지 문제에 교회가 나선다는 것에 주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면서, “꾸준히 함께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이야기를 나눠 연대감을 형성했고, 그런 사제들이 앞장서 교우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교우들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에는 ‘사회교리학교’가 큰 도움이 됐다며, “물론 여전히 입장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는 많은 교우들이 왜 해군기지 문제에 교회가 나서야 하는지 이해하고, 강정마을과 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 지어졌는데 무엇을 할 것인가?” 묻는 이들에게…

해군기지는 올해 말 완공 예정이다. 규모 또한 엄청나서 해상부와 육상부를 합한 면적이 약 140만 제곱미터. 평화센터 면적의 약 1880배다. 규모, 자본, 힘, 모든 면에서 반대의 외침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 같은 이 싸움을 계속 해야 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계속 그곳에서 버티고 있을 것인가”라고 묻는 이들에게 강우일 주교는 어떻게 답할까.

강우일 주교는 오히려 “해군기지가 거기에 있으므로 더 크게 외쳐야 한다”고 주문한다.

강 주교는 “우리의 싸움은 전쟁이라는 비극을 초래하는 근원적인 악과 싸우는 것”이라며,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더 근원적이고 참된 평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평화를 찾고 지키고 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평화는 전쟁 준비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호소하고, 과거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 갔는지 그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의 평화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더 능동적으로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신앙이며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모든 비극의 씨앗 ‘무관심의 세계화’
평화 결핍이 일상이 된 한국 사회

강우일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경고한 ‘무관심의 세계화’를 언급하면서, 환경문제와 전쟁, 죽음, 가난, 난민 등 모든 문제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다며, “70년간 남북대치 상황이 이어진 한국 역시 평화가 결핍된 상태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일상화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강 주교는 “이런 현상을 깊이 따지고 들면 알 수 있음에도, 모른 척하고 방관하며, 평화를 위해 일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것은 하느님 앞에서 굉장한 범죄를 보고도 침묵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관심이 쌓이면서 비극이 지속되고 또 새로운 비극을 만든다”며, “이에 대한 회개가 필요하다. 평화는 회개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평화센터가 그런 회개의 계기를 마련하고 평화를 위한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우일 주교는 마지막으로 제주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어떤 이유로든 제주를 방문할 때, 제주가 가진 역사와 제주 사람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봐 달라는 것이다. 강 주교는 “남북 대치의 역사는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며, 이를 한 단계 뛰어 넘는 역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자”고 청했다.

“국민의 의식에 따라 국가의 진로가 바뀐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강 주교는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통일 뒤에 북의 동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며, “평화센터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새로운 사고의 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제주 그리고 강정으로 평화를 고민하는 여행을 와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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