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농성 노동자들을 찾아서> 하이디스 노동자들

 

회사의 주인이 두 번 바뀌었다. 세 번째 회사의 주인은 아예 공장 문을 닫아버렸다. 직원들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올해 초 공장 폐쇄를 결정한 하이디스의 이야기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200일을 훌쩍 넘겼다. 아직 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하이디스는 외국 투자 기업으로 LCD를 제조하는 업체다. 회사는 지난 1월 29일, 2월 9일, 2월 25일 3차례에 걸쳐 희망퇴직 시행공고를 냈다. 경영진은 사업 전망이 어둡다는 이유를 내걸었다. 이천 공장을 폐쇄할 계획이었다.

경영진의 의견과 달리 2014년 하이디스는 840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광시야각’ 기술 로열티 덕분인데, 그 수입만 1200억 원 규모였다. 전 세계 LCD 업체의 80%가 사용하고 있는 기술이기에 아직 수천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업계는 판단했다.

결국 377명의 노동자 가운데 3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실직했다. 하이디스 정상화를 위한 이천지역 대책위원회는 지난 7월 기자회견문을 통해 “LCD 제조업체 하이디스가 올해 초 공장 폐쇄를 결정한 것은 특허기술을 자국으로 빼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으로 노동조합과의 협의 없이는 특허기술을 해외로 매각할 수 없다”며 “단체협약의 주체인 노동조합을 없애고 노사협약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정리해고, 공장폐쇄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현대전자의 분리매각

의문을 남기는 상황은 이전에도 있었다. 2008년 하이디스 노동자가 아고라에 올린 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 회사를 매수한 후 중국 비오이 그룹은 투자는커녕 첨단기술에만 눈독을 들이고 우리 노동을 통하여 발생한 이익을 오히려 중국에 투자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하이디스는 현대전자 LCD사업부로 시작했다. 2002년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를 분리 매각하는 과정에서 LDC사업부는 중국의 비오이(BOE)그룹에 매각됐다.

BOE그룹은 인수 직후 양사의 전산망을 통합했다. 기술 공유의 명분으로 기술을 빼앗아 간 것. 이 기술로 BOE는 2003년 6월 중국에서 LCD 생산을 시작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BOE가 하이디스에게서 가져간 기술 자료는 4331건. 이후 2007년 BOE는 대만 ‘이잉크’에 하이디스를 매각했다.

직원들은 “대만 이잉크도 BOE처럼 하이디스를 인수한 후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는 거의 하지 않고 핵심 기술만 가져갔다”고 말한다. 실제 2012~2013년 하이디스의 생산설비 투자액은 같은 기간 매출의 0.4%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부와 채권단이 매각 당시 BOE와 이잉크에 하이디스를 매각하지 않았다면 같은 시기에 국내 기업에 매각된 SK하이닉스처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와 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의 조끼에는 “기술과 자본을 유출한 외국 먹튀 자본을 막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적혀있다.

투쟁을 시작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장 큰 사건은 하이디스테크놀로지 전 지회장 배재형 씨의 죽음일 것이다.

▲ 자살한 배재형 전지회장

그는 지난 5월 11일 강원도 설악산 야영장 인근 야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제가 다 책임지고 이렇게 갑니다. 동지들 끝까지 싸워서 꼭 이겨주세요”, “천사불여일행 노동해방”이라는 유서를 남겼다.

그가 목숨을 끊은 지 50일이 넘어서야 금속노조와 지회는 사측과 합의문을 발표했다. ▲ 유족에게 위로금 지급 및 하이디스 회장 조의 표명 ▲ 정리해고 및 기타 현안 10일 이내 협상 등이 포함됐다. 이후 그의 사망 54일째 민주노동장장(葬)으로 장례를 치렀다.

그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지난 5월 25일에는 유가족과 동료들이 대만을 찾았다. ‘이잉크’사의 모기업 대만 영풍위 그룹을 상대로 농성을 벌이기 위해서다.

그들은 ▲ 배재형 지회장 자살에 대한 책임자 처벌 ▲ 정리해고․공장폐쇄 철회 ▲ 유가족에 대한 대책 마련 등을 위한 영풍위 그룹 허서우촨(何壽川) 회장 면담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영풍위는 현지 언론 등을 통해 “한국 노동자․유족들과 협의하고 있다”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기도 했다.

결국 6월 3일 대만 총통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한국 노동자 2명과 현지 연대단위 시민 33명이 대만경찰에게 연행됐다. 한국 노동자 2명은 강제추방 돼 다음날 한국에 도착했다.

호쇼우추안 영풍위그룹 회장 집 앞에서도 한국과 대만 노동자들이 설치한 농성장이 강제철거 당했다. 철거 과정에서 한국노동자 1명이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원정투쟁단의 일원인 정규전 금속노조 경기지부장과 이상목 하이디스 지회장이 현지에서 단식에 돌입한 일도 있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협상 테이블은 만들어졌다. 하이디스 사측과 전국금속노조 하이디스 지회는 7월 13일과 21일 두 차례 교섭을 갖고 교섭의제와 진행방식을 합의했다. 이후 협상 과정에서 공장폐쇄와 정리해고 철회 등 2개 의제가 최우선으로 다뤄지고 있다.

 

끝나지 않은 싸움

지난 10월 17일은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된지 2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이에 앞선14일 그들은 정리해고 200일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함께하는 하이디스투쟁 현장으로 돌아가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날 이상목 하이디스지회장은 “막상 우리가 해고되어 투쟁하다 보니까 어이없는 해고를 확산하려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알게 됐다. 우리의 복직도 중요하지만, 해고를 일반화하는 정부의 노동개악을 함께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연대의 힘으로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지치지 않고 승리하도록 투쟁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 이상목 지회장(금속노조제공)

 

이날 대회에는 종교계와 먹튀자본에 의해 해고당하고 탄압받는 노동자들, 금속노조 경기지부 소속 확대간부들이 모여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함께한 조계종 노동위원회 도철 스님,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장병기 목사,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서영섭 신부는 “종교계가 제 역할을 했다면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투쟁에 더 연대할 것”이라고 뜻을 더했다.

200일을 훌쩍 넘긴 투쟁.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그들은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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