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간다> 경복궁으로 다녀온 가을 나들이

 

언제부턴가 ‘여가’가 마치 재력 있는 중산층을 위해 한정된 소비 자원처럼 상품화되고 있는데, 틀렸다. 조선의 풍치가 무엇이던가, 수 만 백성을 거느린 임금보다 그저 낚싯대 하나 거머쥔 어부가 행복하다 하였다. 노동자며 부르주아며 계급을 막론하고 되찾아주어야 하는 단 하는 삶의 여유이자 여흥이요, 그 경로는 자연이다. 놀고 쉬는 데에도 어쩌면 생산할 때보다 더 많은 자본이, 돈이 필요한 요즘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꼭 비싸게 여행을 가야 좋은 여흥인가?

 

 

4학기 중간고사 시험이 끝난 월요일 공강, 일주일 동안 고생한 머리를 식혀주기 위해 서울 나들이 코스를 찾았다. “한강을 갈까? 너무 자주 갔어. 그럼 인천 앞바다? 거긴 주말이 좋아. 미술관? 왜 월요일에 휴관인거야!” 페이스북을 뒤적거리다 불현듯 느껴졌다. “서울 사람 다 됐구나.” 언젠가 학교 앞 번화가 거리를 슬리퍼와 운동복 차림으로 나서려는 나에게 그 차림으로 나갈 거냐고 묻는 룸메이트에게 이렇게 답했다. “집 앞인데 뭘.” 학창 시절 꿈과 환상을 심어주었던 ‘세-우올’이 더 이상 개척할 곳을 찾을 수 없는 동네터로 전락해버리다니! 사실 과거에 선망했던 온갖 서울 명소는 대부분 자본이 필요한 이색적인 식당이나 쇼핑몰, 문화 체험이 대부분이었다. 하다못해 한강 공원에 가려고 해도 ‘한강=치맥’으로 공식화되었을 정도니, 시장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젊은 연인들과 여행자는 개탄했고 카페와 영화관에서 벗어나 저렴하면서도 그들의 지친 일상을 제대로 환기시켜줄 ‘세-우올’의 새로운 개척지를 주목했다. 그것은 바로 국립문화재로서의 자연이다.

연세대학교 셔틀버스는 경복궁역 2번 출구 앞까지 왕복 운행된다. 헐떡이며 걷기 대신 여유로운 아침을 원하는 학생들이 남문에서 출발한 셔틀버스에 가득 차지만 강의실이 있는 건물들을 지나고 동문 가까이 가면 신기하게도 모든 좌석이 텅텅 빈다. 동문에서도 내리지 않자 이상하다는 듯 버스 기사님이 어디서 내리느냐 물었다. “경복궁이요!”

 

 

광화문 앞은 대부분 외국인 여행객으로 무리를 이룬다. 그들은 광화문 앞 전통의복을 입고 엄청난 포스로 경복궁을 지키는 근무 중이신 분들에게 우르르 매달려 사진을 찍기 바빴다. 물론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이벤트성 코스프레가 맞지만 짧은 인사도 없이 인형 취급하며 동반 기념사진을 찍혀야 하는 모습이 너무 고달파보이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교대 시간에는 행차마냥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퇴장한다.

이따금씩 버스로 지나칠 땐 왜 전혀 감흥이 없었을까. 언젠가 제대로 돌아보긴 해야지 했는데 몸소 실천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리 알아본 입장료는 3000원으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매표소에서 계산을 하니 만 25세 미만의 성인까지는 무료입장이며 이후의 성인 입장료라 해봤자 천오백 원이 고작이었다.

 

 

경복궁 내부는 거의 웬만한 대학교보다 넓은 느낌이었다. 아니면 여기저기 꼼꼼히 둘러보며 다닌 탓이었을까. “아- 예쁘네”로 1시간 정도면 돌아보고 나올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다시 광화문으로 나오는데 3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그와 같은 긴 여정에 한몫 도운 것은 관람 코스에 맞게 짜여 진 음성 안내기 덕분이었다. 매표소 옆 부스에선 경복궁 소개 및 안내 책자를 500원에 구매하거나, 음성안내기를 3000원에 대여할 수 있다. 음성안내기와 함께 나눠준 휴대용 지도의 각 지점에 음성 안내기의 꼬리 부분을 갖다 대면 그 지점에 대한 해설이 자동으로 안내된다. 정말 신기했다. 우리보다 한층 젊은 세대가 될 중고등학생 아이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모바일 음성해설 안내를 저마다 키고 다녔다.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음성안내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참고로 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권에 한정하여 무료로 해설 가이드를 동반할 수도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다가오는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후 5시까지로 단축 운영된다. 매주 화요일은 휴무이기 때문에 주의해서 계획된 방문이 보다 나은 나들이가 될 수 있다.

광화문을 지나 흥례문, 근정문을 또 지나야 근정전에 도착한다. 수학여행은 성인이 되어서야 다니는 게 맞는 것 같다. 분명 학창시절 때도 친구들과 함께 견학했을 터인데 수업 때 배웠던 역사를 그 때는 견학 현장에 적용하지 못했다. 이제야 스믈스믈 어렴풋이 떠오르는 역사 용어에 여러 문과 궁전에 붙은 이름을 나름대로 해석해보며 경복궁 여기저기를 더듬는다. ‘이 쯤에서 과거장이 열렸겠지? 내가 수능 시험을 치를 때도 낯선 학교와 책걸상이 마냥 불편했는데 땅바닥에 엎드려 지혜를 쥐어짜내야 했다면 오죽 힘들었을까?’ ‘정일품, 정이품…. 각 품마다 신하들 위치가 정해져 있어. 정말 어마어마한 수의 신료들이 여기 모였군.’ ‘계단마다 정말 12간지 동물상이 새겨있네!’ 해설 없이 관람했다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세밀한 부분에 의미를 되새기며 역사를 돌이킬 수 있었다.

근정전은 경복궁 안에서도 가장 큰 건물로,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외국 사절의 접견 등의 국가적 행사를 치르던, 사극 배경의 핵심이 되는 곳이다. 외부에서 보면 2층으로 되어있지만 내부에서 보면 층 구분이 없는 높은 한 층짜리 궁전의 위엄이 느껴진다. 사경전을 지나 강녕전과 교태전에 들어갔다. 강녕전은 신을 벗고 안에 들어갈 수가 있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이는 왕의 침전이자 일상생활을 보는 안식처다.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가장 으뜸의 풍경은 향원전과 경회루였다. 두 곳은 족히 널따란 연못을 두르고 있고 연못에는 큼지막한 잉어들이 헤엄친다. 연못 주위로 갖가지 가을 나무들이 줄 서 있다. 이곳이 단풍나들이로는 명당이다. 간간히 관광객들이 나무 아래로 내려온 낙엽이나 감을 주웠다. 그들 저마다 풍족한 행복을 미소에 머금고 있었다. 경회루를 두른 연못 한편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낚시를 하기 위해 세운 작은 낚시터가 있었다. 경복궁 뒤편으로 청와대가 보였다. 민주국가의 대통령과 전제왕정의 임금이 오버랩 되었다.

 

 

동쪽으로는 경복궁과 이어지나 별개의 관리 구역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경복궁을 돌아보다 잠시 다녀와도 재입장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곳 박물관은 크게 3가지 테마로 한민족생활사, 한국인의 일상, 한국인의 일생을 상시 전시한다. 한민족생활사는 선사시대를 거쳐 삼국의 영역 확장 이래로 근현대사까지의 한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최근 가족사회학 수업을 들은 지식을 배경으로 학문과 역사를 결합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역사는 결국 모든 학문과 담론의 기반이 되게 마련이다. 제2전시관의 한국인의 일상에서는 산업사회 이전 농경사회에서 우리 민족이 살아온 자취를 계절 순에 따라 밟아간다. 제 3전시의 한국인의 일생은 가장 귀여운 기획전이라 생각이 들었는데, 한국인의 출생부터 죽음까지를 전근대사를 배경으로 따라간다. 지금과는 유사하면서도 사뭇 다른 일생의 과정을 유쾌한 포인트에 맞춰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상례식에 도착해있다. 굉장히 짧게 느껴진 한 차례의 관찰이 주는 허탈감을 나가는 출구에 적힌 글귀로써 위로받았다.

 

 

“인간 세상은 세월처럼 빠른데 누가 60세가 많다고 했는가? 인간사는 뜬 구름과 같이 흩어지니 세상의 인연도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네.”

7년 전 숭례문 화재 사건의 충격 이후 경복궁을 비롯한 문화재의 보안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곳곳에는 화재 예방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 있었고, 구석구석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각 출입구마다 경찰이 보안을 서 있다. 경복궁 내에는 빈 터가 굉장히 많다. 처음엔 말을 타거나 무예를 익히던 터인가 생각했는데, 희미하게 남은 옛 흔적을 보니 그 곳들 역시 건물이 세워졌던 곳이 틀림없었다. 몇 개 궁전 역시 역사 속에 특히 일제 때 불타 사라진 것들을 복원시켜 놓은 것들이었고, 그들은 다른 오랜 건물들과는 외양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깊이가 달리 느껴졌다. 소중한 우리 문화와 문화재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덧붙여 역사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엔 적극적인 수호로써 올바르게 대대로 전해져야 한다. 대학생기자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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