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져 나오는 자유의 함성 “진정한 자유 시작될 그 곳 자이뿌르여!”
터져 나오는 자유의 함성 “진정한 자유 시작될 그 곳 자이뿌르여!”
  • 문지연 기자
  • 승인 2015.12.03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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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문지연의 좌충우돌 인도 유랑기-32회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다. 애정 혹은 진저리. 애정은, 드넓은 대지 위에 우뚝 솟은 수많은 문화유산, 그 속에서 맥을 잇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경의다. 반면 가난, 더러움, 무질서와 끊임없는 골탕, 치근거림은 인도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이유다. 필자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인도에 두 번이나 가면서 때마다 다시는 안 오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도 순간순간 용솟음치는 감동과 환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도는 그래서 애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멀리 떠나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억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때 그 시절의 인도 유랑기를 펼쳐본다.
 

 

▲ 피리 부는 아저씨와 뱀



처음 인도에 발을 딛었을 당시 여행사의 유혹에 휘말려 예정에 없던 스리나가르에 갔었다. 스리나가르에서는 치안이 불안정한 현지 사정 때문에 ‘우리끼리’ 마음 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가 없었다. 그곳을 찍고 다시 델리에 도착했을 때는 본의 아니게 인도인 친구의 인솔을 따랐다. 결국 스리나가르부터 델리까지 이래나 저래나 오롯이 ‘나만의 독자적인 여행’은 이루지 못하던 터였다. 슬슬 갈증이 밀려왔다. 그즈음 ‘우리끼리’ 처음 찾았던 곳이 바로 라자스탄 주의 자이뿌르였다. 진정한 자유의 시작점이었던 셈이다.

“야호!”


버스에 오르면서, 억압에서 탈출 해 비로소 자유를 얻은 아이마냥 함성을 질러댔다. 한참을 달려 진정한 자유가 시작될 그곳, 자이뿌르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숙소를 찾았다. 적당한 곳을 골라 가격을 흥정한 뒤 짐을 풀었다. 그 길로 동네 산책 겸 장을 보러 슈퍼마켓을 찾았다. 조막만한 생필품 몇 가지를 소진한 찰나였다. 샴푸, 린스, 로션을 집어 들었다. 과자와 빵, 초콜릿도 챙겼다. 또 맛이야 어떻든 간에 익숙한 형태만으로도 그저 반갑기만 한 사발면을 망설임 없이 잡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오렌지, 포도도 한 봉지 샀다. 생전 않던 군것질을 원 없이 해볼 참이었다. 대부분 조양이 먹어 치웠지만 말이다.ㅋㅋ 그녀, 아침에 눈도 못 뜬 상태에서 입 안 가득 과자부터 털어 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머리맡으로 손을 뻗어 전날 놓아 뒀던 과자를 우격우격 씹어 먹는 것이 아침운동이었다. ‘버석버석’, ‘와삭와삭’ 필자의 알람은 대체로 귓전에서 맴도는 조양의 과자 씹는 소리였다.ㅎㅎ; 

장본 물건들을 숙소에 내려놓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아 나섰다. 그럭저럭 괜찮은 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난 뒤에는 동네 어귀에 앉아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다. 그때였다.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인도는 처음이냐”, “어느 곳을 다녀왔냐” 등 여행을 하면서 늘 받아왔던 질문을 쏟아냈다.

 

▲ 암베르 성



“스리나가르에 다녀왔다”고 하자 그는 놀란 토끼눈을 만들었다.

“거기는 온통 거짓말 천지야.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여러 번 속았지?” 필자 일행이 그의 격앙된 목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말솜씨가 청산유수였다. 허공에 대고 한참 떠들던 그가 한참 만에 이런 말을 해왔다. “나한테 진짜 좋은 실크 스카프가 있어. 품질 좋은 물건들이 많은데 볼래? 무척 싸.”

‘그럼 그렇지.’ 밑도 끝도 없이 스리나가르의 누군가를 사기꾼으로 몰아붙이던 그의 속내는 다름 아닌 ‘판매’였다. 뻔한 술책에 더는 휘말리고 싶지 않아 그에게 작별을 고하고 미련 없이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종업원의 친구로 짐작되는 한 청년이 옥상에서 곧 인형극을 시작할 참이라고 일렀다.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 같아 옥상으로 직행했다. 그런데, 어라?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인형 몇 개만이 쓸쓸한 옥상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청년은 의아해하는 필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곧 있으면 사람들이 올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즐기라”고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러나 그의 안심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슬쩍 밀려왔다.

청년과 옥상에 대기 중이던 또 다른 남자가 무턱대고 필자 일행을 잡아끌어 바닥에 앉혔다. 인형극을 시작할 모양이었다. 하, 그러나 모든 것이 탐탁지 않았다. 두 개 정도 밖에 안 되는 인형은 공연용이라고 보기에는 몹시도 조악했다. 어디서 주워온 것 같이 너덜너덜하기까지 했다. 무대 세트 따위도 아예 없었다. 청년들의 연기력 또한 두 말할 것도 없이 형편없었다. ‘아, 유치원 학예회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다행히 인형극은 시작한 지 5분여 만에 끝이 났다. 천만다행이었다.

이어지는 청년들의 행동은 더 가관이었다. 이번에도 다짜고짜 손을 내밀며 관람료 150루피를 내놓으라고 떼를 썼다. 반 강제적으로 앉혔어도 재미만 있었더라면, 또 진정 연극이나 같았다면 어느 정도의 사례는 했을 것이 분명하다. 좋은 게 좋다고. 그러나 이것은 돈으로 값어치를 매길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화를 부르는 장난질이었다. 웃으며 손을 내미는 청년들에게 좋게 이야기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 하와 마할 (바람의 궁전)



다음날 라자스탄 주에서 운영하는 반나절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오전 8시부터 낮 1시까지 주요 관광지를 관람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관광지 사이의 오토릭샤 값이나 이동 소요 시간, 경로의 간결함 등을 따져보니 충분히 이용할 만 했다. 

처음 향한 곳은 ‘암베르 성’. 버스로 한 참을 달리다 보니 저 멀리 언덕 위에 세워진 성이 눈에 들어왔다. 불끈 솟은 성은 주변의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 장엄했다.

암베르 성은 카츠와하(Kachwaha) 왕조의 성이다. 붉은 사암과 대리석을 이용해 지은 성은 힌두와 이슬람 양식의 조화로움을 자랑한다.

‘자이 만디르(승리의 방)’는 기하학적인 모양의 거울을 아로새긴 천장이 매혹적이다. ‘거울의 방’으로도 불린다. 맞은편 ‘수크 니와스(환희의 방)’는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해 실내에 배관시설을 설치한 곳이다.

암베르는 아름답고 화려한 실내 장식은 물론, 채광과 통풍, 실내 온도까지 생각한 편의성이 돋보이는 성이다. 인간이 살기 편하게 디자인된 공간인 셈이다.

자이뿌르 명소 탐방 다음 코스는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마하라자 사와이 자이 싱 2세가 각지의 천체 관측기구를 모아 전국 5곳에 천문대를 만들었다. 자이뿌르 천문대는 그가 델리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든 곳이다.

겉부터 화려한 중앙박물관은 아쉽게도 이동 중에 잠깐 스치는 것으로 끝이 났다. 1876년에 지은 박물관에는 보석, 직물, 도기 등이 전시돼 있었다.

 

▲ 은항아리



자이뿌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건축물은 바로 ‘하와 마할(바람의 궁전)’이다. 벌집처럼 생긴 독특한 외관은 짙은 분홍색 사암으로 이뤄졌다. 왕족 여인들에게 도시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문과 창문 등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기 좋게 설계됐다.

궁전을 바라보고 있자니 독특한 예술혼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건물에서 은은히 뿜어져 나오는 묘한 기운에 계속해서 마음이 들썩였다. 건물 안의 뭇 여인들이 창문 틈으로 멀찌기 서 있는 필자를 몰래 염탐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자이뿌르 중심에 위치한 시티 팰리스는 자이 싱 2세가 지은 건물이다. 이슬람, 유럽 등의 건축양식이 혼재돼 있다. 내부는 왕이 입었던 옷과 악기 등을 전시한 직물박물관, 회화 등이 걸린 아트 갤러리, 옛날에 쓰던 무기를 공개한 무기 전시관 등이 있다. 특히 직물박물관에 전시된 자이 싱 1세의 의복이 유명하다. 그는 키 2m에 몸무게 250kg가 넘는 거구로 알려져 있다. 아내는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궁전 내부를 거닐다 보니 어마어마하게 큰 은 항아리가 눈에 띄었다. ‘디완 이 카스(접견실)’ 입구에 놓인 이 항아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은제품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독실한 힌두교 신자였던 자이 싱 2세는 영국에 갈 때 이 항아리에 갠지스 강물을 담아 가서 목욕을 했다고 한다.

 

▲ 중앙박물관



시티 투어를 끝내고 시장 구경에 나섰다. 신발 가게에 들러 여행 중에 신고 다닐 슬리퍼를 골랐다. 알라딘(?) 신발도 하나 집어 들었다. 계산을 앞두고는 ‘또 얼마를 올려 부를까’ 싶은 지레짐작에 일단 방어태세에 돌입했다. 주인아저씨가 부른 신발값은 역시나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높았다. 이래저래 적정 가격을 찾고 있을 때 아저씨가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우리랑 함께 기념사진 찍자. 한국에 가서 그 사진 보내준다고 약속하면 깎아줄게.”

‘저 사진 갖고 다른 한국 관광객을 또 얼마나 현혹 할까’ 싶었다. 한편으로는 ‘사진 찍고 보내 주는 게 나쁜 일도 아닌데 거절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리하여 무뚝뚝한 아저씨와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만들며 한 장의 기념사진을 만들었다.

볼거리도 열심히 찾아보고 필요한 물건 쇼핑도 하고 하루를 다양하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자이뿌르의 자유가 꽤나 흡족했다. 훗날, 즐거웠던 동네로 기억될 법 했다. 그 날 오후 사기꾼을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오전에 만끽했던 반나절의 행복은 그자로 인해 완전히 퇴색되고 말았다. 그놈 때문에 자이뿌르는 결국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동네가 되었다. 길에서 만나기라도 할까 싶어 무섭기까지 했다. 필자에게 약 탄 밥을 먹인 바로 그 놈,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제 3화를 참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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