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도둑이 되고자 한다는 따위 이런 결심은 책임감 없는 아이의 투정이거나 떼쓰기로 비쳐질 수도 있다. 알면서도 이런 빌어먹을 결심을 개인의 일기장 수준이 아닌 이른바 공약의 형식으로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으로 살자면 나 자신을 구속해야만 하니까. 당연히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나도 올해부터는 뭔가 소원 하나쯤은, 희망 하나쯤은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서도 무려 열흘이나 지난 뒤에 내린 결정이니 나름 고민도 많았고 생각 또한 깊었다.

새해의 희망이라든가 소원 같은 테마에 나는 사실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하지도 않은 테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해넘이 행사장에 그런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도 까맣게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해넘이 행사의 가장 큰 의미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을, 그것이어야만 했던 것을, 무지 무식하게도 나는 그저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날 노을이나 진하게 감상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행사장을 찾았던 것일 뿐이었다.

 

▲ 해는 두꺼운 구름 뒤에 숨어 있지만...

 

맞이하는 것 못지않게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보내는 일이 맞이하는 일보다 훨씬 큰 무게를 내장하고 있을 수도 있다. 고창의 몇몇 문화 예술인들이 처음 해넘이 행사를 기획한 경위는 대략 이와 같았다. 십수 년 전부터 12월 31일이면 고창의 서쪽 상하면 구시포 해수욕장 그 쓸쓸한 겨울 모래밭을 화끈한 불꽃으로 장식하곤 했던 이 행사는 끔찍한 이천십오 년 말일에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들였다.

십 수 년 전부터 해넘이 행사가 있어 왔다고 했지만 나는 그동안 참여한 바가 없었다. 참가한 사람들로부터 얘기를 가끔 들어왔을 뿐이었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살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유는 이런저런 온갖 지역 축제에 신물이 난 까닭이기도 했지만, 보다 큰 이유는 그런 축제는 대개 정감 넘치는 가족이나 연인들이 참석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훔쳐볼 생각조차 못 하고 그저 숨어 있었다고 말하는 게 아마 정확할 것이다.

사람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혼자 살고자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마는, 이유야 어떻든 마흔 살이 넘어서도 혼자 살고 있는 사람 자신은 자기 자신이 마치 엄청난 범죄자나 파렴치한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가까운 친구나 친척 그리고 가족들이 별 생각도 없이 툭툭 내뱉은 한 마디, 두 마디 말들이 모이고 쌓여서 형성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런 심리적 위축은 행복해 보이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은근히 놀리거나 혹은 불쌍해하는 것만 같고, 심지어는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해놓고 감시하는 것만 같아서 그냥 절로 시선을 피하게 된다.

 

▲ 소원쪽지는 하나둘씩 늘어나고...

 

십 년도 넘게 그런 생활을 치러온 나 자신을 지금 돌아보면 엄청나게도 못 나고 멍청했구나 싶기도 하지만, 못 났건 멍청하건 그 자체가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처음이요 끝이고 보면 굳이 자책이나 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싶기도 하다. 게다가 못 나고 멍청한 인간을 예쁜 눈으로 바라봐준 여자가 있었으니, 적어도 내 경우에는 못 나고 멍청한 것이 잘 나고 똑똑한 것 이상으로 복되도다, 효과를 자아낸 것이고 보면 아 이것 참, 세상이란 이름의 공식은 역시 간단한 게 아니다.

어쨌든 나도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내 옆으로 온 초기에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 어리벙벙하기만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존재는 내 마음에 무슨 자격증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치 운전면허가 없던 사람이 운전면허를 얻은 것처럼 못 갈 곳이 없게 되었다. 예전에는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늘 전전긍긍하기만 했던 시장구경도 이제는 거칠 것 없이 하게 되었고, 모양성제든 고추축제든, 장어축제든 해넘이 행사든 뭐든 가고 싶으면 어디든 아무 거리낄 것 없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좋은 곳을 왜 한 번도 안 데려가 주셨어요?”

해넘이 행사 얘기가 나왔을 때 그녀는 나무라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행사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까닭에 글쎄, 소리밖에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물론 한참 동안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했다. 그게 좋은 건가? 무엇이 왜 좋은 거지? 등등 그런 의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녀가 좋다고 생각하면 좋은 것이지 달리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말이다.

 

▲ 이런 날 한판 굿이 빠질 수는 없다.

 

행사장을 가리키는 이정표 같은 것은 한 개도 세워져 있지 않았지만, 나는 단 일 초도 헤매지 않고 잘 달리고 있었다. 전라북도 고창에서 상하 구시포 해수욕장은 오직 하나 그곳뿐이니 두리번거릴 이유가 없었다. 구시포에 도착하면 뭔가가 있겠거니 하는 믿음이 배신을 당할 것인가? 설령 배신을 당한다 해도 손해볼 일은 하나도 없었다. 둘이서 오붓하게 지는 해를 보면 되지 배신은 무슨 배신이고 손해는 또 무슨 손해일 것인가.

오후 다섯 시. 해가 지면서 노을을 만들어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하늘에 해는 보이지 않았다. 진한 노을은커녕 금방 눈이라도 뿌릴 듯이 축축한 느낌으로 흐려 터져 있는 날씨가 마치 우울해, 우울해, 하고 비명을 질러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도로 위의 자동차들은 경쾌하게 쌩쌩 잘도 달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마 고창보다 더 큰 도시가 상하쪽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름 한철 해수욕철 외에는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도로에 승용차가 꼬리를 물고 있으니 그 자체가 벌써 하나의 구경거리였다.

너른 들판처럼 평평하던 도로가 위로 솟구치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 순간 멀리로 바다가 보였다. 바다 냄새와 함께 자동차의 속도는 삼분의 일 이하로 줄었다. 인근 해안 경비대 소속 군인들이 나와서 해넘이 행사장 외곽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고, 행사장 주변에서는 경찰과 자율방범대원들이 속속 밀려드는 차량을 임시 주차장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 군고구마를 서비스하는 상하 청년

 

커다란 드럼통을 개조한 불깡통이 여기저기 도처에서 장작을 태우고 있었고, 그 앞에서는 청년회 회원들이 고구마를 구워서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한 개씩 나눠주고 있었다. 그 장작불을 염려한 소방서 직원들과 의용소방 대원들이 배치되어 사주경계를 펴는데 맞은편 무대에서는 저 멀리 천안에서 고창 친정에 왔다고 자기를 소개한 여인이 ‘얄미운 사람’을 열창하고 있었다.

금년에는 날씨가 흐려서 노을을 보기 힘들다는 예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주변 상가의 풍경은 한가하기 짝이 없었다. 겨울 해수욕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으니 음식점 문턱이 닳아빠질 만도 하건만, 그야말로 민망할 정도로 음식점마다 탁자와 의자와 밝은 전등불만 단정하게 다소곳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뿐 손님은커녕 주인조차도 아예 보이지를 않는다. 거리에서 어묵을 파는 작은 수레 앞에 아이들과 그 엄마들이 줄지어 서 있는 정도였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것만으로 마음이 바빠서인가. 아니면 주머니가 텅텅 비어서인가.

행사의 백미는 역시 소원을 적어서 불에 태워 보내는 달집태우기와 바람에 날려 보내는 풍등놀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준비된 책상과 의자는 이미 소원 글을 적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아이를 등에 업고 나온 엄마서부터 중학생, 고등학생, 청년, 장년,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줄을 서서 소원 글 적는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 참, 눈물겨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 모처럼 경찰관에게도 여유가...

 

나의 그녀 또한 책상 앞에 엎드려 십 분도 넘게 뭔가를 열심히 적어서 달집에 달았다. 무슨 그렇게도 많은 소원을 적어 보냈느냐고 나중에 물었더니 그녀는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치든 경제든 우리 사회가 정말로 민주화돼서 슬픔에 젖어드는 사람이 없게 해 달라는 소원을 첫 번째로 적었다고, 두 번째로는 자기를 아는 사람 모두에게 아픔이 없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고, 세 번째로는 창작의 열기가 화끈하게 타오르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내용을 적어서 태웠다고, 그러면서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 또한 뭔가 소원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녀가 소원 글을 적고 있을 때는 그저 재미있다는 생각으로 뒤에서 구경이나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는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다. 어린 시절 뻥튀기 장사를 보면서 나도 장차 뻥튀기 장사가 되겠다는 터무니없는(?)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혼자서 좋아라한 적은 있지만, 새해에는 어떻게 하겠노라는 맹세나 다짐, 또는 어떠어떠한 것을 이루게 해 달라는 소원 같은 것을 빌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짓을 왜 하는가 하는 냉소적인 마음은 분명 아니었다. 글쎄, 뭐랄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초조 혹은 의심 같은 것이 없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믿음? 어쨌든 나의 과거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었다.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눈앞의 어떤 것을 해결하는 데만 골몰했을 뿐 미래의 나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그 일에 투신한 적은 없었다.

 

▲ 풍등과 모닥불의 조화

 

자, 그렇다면 나는 이제 뭘로 소원을 삼지? 그녀가 혹시라도 나를 떠나겠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도록 해주십사, 하고 빌까? 아니면 시작만 해놓고 칠 년 가까이나 만지작거리고만 있는 소설 한 편을 새해에는 완성하게 해 달라고 빌까? 등등 오만 잡다한 생각들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옆방에서 언니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던 나의 그녀가 놀라서 펄쩍 뛰는 소리를 하며 뛰어온다.

“세상에, 둘째 언니가요. 그동안 언니 자신도 모르게 사찰을 당해 왔었다네?”

“사찰? 뭔 소리야?”

얘기를 듣고 보니 그야말로 기가 막히고 코도 막힌다. 언니가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회단체와 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데 어느 하루 단체 사무국에서 전화가 왔단다. 계약이 만료되어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금융거래를 포함한 개인정보 일체를 수사기관에 제공해야 한다는 수사당국의 협조요청 공문이 들어와 있다는 얘기였다.

언니는 한때 통합진보당원이었었다. 그녀가 통합진보당 당원이 된 것은 오직 한 사람 유시민씨 때문이었단다. 방송에서 백분토론을 진행할 때부터 좋아해 온 유시민씨가 정치에 뛰어든 이후 온갖 고비를 넘어서 새로운 당을 만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 때, 그녀는 그동안 유시민씨에게 빚진 마음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당에 가입하고, 당비까지 납부해 왔지만, 유시민씨가 탈당해 버린 뒤로는 그녀 자신 또한 탈당하고 당비 자동이체하던 것도 해제해 버렸다. 그리고 잊었다. 그런데 본인은 잊고 있었던 그 일을 빌미로 권력이 그녀의 밥줄을 끊어놓을 수도 있다는 통보를 해 왔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작 해야 할 일은 손도 대지 못하면서, 그 일을 왜 안 하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온갖 시비 거리를 만들어내는 저 파렴치한 세금도둑들을 어찌해야 하는가.

 

 

▲ 소원을 싣고 타오르는 불꽃

 

나는 ‘사기’의 저자 사마천의 여러 이론들을 신봉, 까지는 아니라 해도 상당한 신뢰감으로 존중하고 존경하는 편이다. 내가 존경하는 사마천의 얘기에 무릇 권력은 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권력이 자신의 민낯을 내놓고 활개를 치기 시작하면 그 나라는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권력이란 있는 듯이 없는 듯이 거기에 있으면서 각종 분쟁을 해결하는 데 힘을 써야지 권력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놓고 분쟁의 한쪽 당사자가 돼버리면 그 권력은 조만간 망하는 것이 필연이다. 그런데 수준 미달의 그런 권력은 망하면서도 자기 혼자만 망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을 끌고 들어가 버린다. 그러니 그 나라가 온존할 까닭이 없다.

사마천의 그런 가르침을 토대로 보건대 우리나라의 지금 권력은 자신의 민낯을 드러낸 정도가 아니라 똥구멍 생김새까지도 다 드러내놓고 보여주며 예쁘지? 예쁘지? 하고 예쁘다고 말해줄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권력의 무엇을 믿고 미래를 도모할 것인가. 그렇다고 정면으로 대들면 그 지저분한 무기를 휘둘러서 내 발목을 잘라놓을 것이다. 어쩌면 눈알을 파내고 귓구멍을 시멘트로 막아버린 다음 콧구멍에 작은 호스나 두어 개 찔러놓는 식의 만행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그렇다. 기억해야 한다. 못난 권력일수록 사람을 억수로 괴롭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도둑이 되기로 했다. 도둑의 마음으로 은밀한 행보를 해야겠다는 뜻이다. 도둑이란 무엇인가. 자기 것이 아닌, 타인의 무엇인가를 절취하고서도 그런 일 없다고 시치미 떼는 사람을 일러 우리는 도둑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도둑이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지만, 내가 낸 세금으로 그 존재가 유지되는 권력자들의 손에 죽고 싶은 마음 또한 전혀 없다. 지금 우리나라의 돌아가는 상황은 내가 도둑이 되지 않으면 타고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어야 할 것만 같다. 어쩔 것인가. 사는 날까지 씩씩하게 살고자 한다면 도둑이 되어야만 한다. 거짓말을 좋아하는 자들에게는 거짓말로 응수를 해야 한다. 도둑의 마음은 도둑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라도 도둑의 마음을 갖기로 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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