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의 여행스케치> 해남이 보여주는 겨울 풍경화

 

새해의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이맘때, 겨울 찬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남도 끝 해남으로 간다. 정겨움, 소박함, 질펀함이 공존하는 멋스러운 고장이다.

 

▲ 대흥사 가는 길의 고즈넉한 풍경
▲ 대흥사 들머리의 유선여관

 

제일 먼저 닿은 곳은 두륜산(頭輪山). 해남 하면 땅끝마을이 먼저 떠오르는 이들에게 두륜산은 또 다른 멋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매표소를 지나 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참 좋다. 대흥사로 가는 길. 새소리 물소리가 귓전에 그윽하게 와 머문다. 길 양쪽으로 둘러선 나무들이 실바람에 가늘게 떨고 있는데 그 느낌이 애잔하기 이를 데 없다. 삼나무, 나도밤나무, 동백나무, 소나무, 왕벚나무, 편백나무, 서어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 대나무 등등 쭉쭉 뻗은 나무들이 피톤치드 향기를 물씬 내뿜는다. 문득 시각, 촉각, 청각이 곤두선다. 매표소에서 1.5km쯤 가다 만난 유선여관. 그 역사가 무려 100년을 헤아리는 전통한옥이다. 몰려드는 손님들을 위해 객실을 늘리는 등 예전의 모습에서 조금 비껴나 있지만 여전히 고풍스럽다. 매표소에서 대흥사까지 이르는 숲길을 예부터 ‘구림구곡(九林九曲)’이라 했다. ‘아홉 굽이(십리) 숲길’이라는 뜻이다. 숲길은 대흥사를 코앞에 두고 두 갈래로 나눠진다. 어느 쪽으로 가든 길은 하나로 합쳐져 절에 이른다. 중간에 나타나는 삼나무 터널이 인상적이다.

 

▲ 고요함이 흐르는 겨울 대흥사
▲ 원교 이광사가 쓴 대흥사 대웅보전 현판

 

백제 때 지은 대흥사는 대종사와 대강사를 여럿 배출한 큰 절이다. 두륜산은 이 대흥사로 말미암아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다. 산보다 절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다. 사실 대흥사에서 눈여겨 볼 것들은 한 둘이 아니다. 절 자체가 풍기는 멋스러움도 마음에 와 닿거니와 천불전의 빛바랜 단청과 기둥, 그리고 꽃문살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기에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는 남도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썼고, 바로 옆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다. 두 분이 남긴 큰 족적은 이 절의 격을 한층 높여준다. 대흥사는 부속암자도 여럿 거느리고 있다. 마애여래좌상(국보 308호)이 있는 북암(北彌勒庵)을 비롯해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가 40여 년간 머물면서 다선일여(茶禪一如) 사상을 확립한 일지암(一枝庵)이 대표적이다.

 

▲ 대흥사 대웅전

동화 같은 두륜산의 겨울

이제 절을 뒤로 하고 두륜산으로 올라가 보자. 두륜산은 두륜봉(630m), 고계봉(638m), 노승봉(685m) 등 8개의 봉우리가 조망대 구실을 한다. 정상인 가련봉(703m)에 서면 흥분이 절로 몰려온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산줄기와 일망무제로 트인 남해바다가 가슴 가득 안겨온다. 그 푸른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고금도, 청산도, 노화도 등 섬들을 바라보노라면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 숙여진다. 날씨가 쾌청한 날에는 제주도의 한라산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다.

 

▲ 두륜산 케이블카

 

산행은 대흥사에서 시작해 북미륵암-오심재-능허대-가련봉-두륜봉-진불암-일지암-대흥사로 다시 돌아오는데 6시간 정도 걸린다. 이 코스는 아치형 자연바위인 구름다리도 볼 수 있어 가장 인기 있다. 산행에 자신 없다면 왕복 1시간 거리인 일지암까지만 갔다 오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고계봉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방법도 있다. 대흥사로 가기 전 집단시설지구에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다. 50인승 2량이 왕복 운행하는 케이블카는 고계봉 정상 아래 해발 570m(상부역)까지 8분 만에 오른다. 종점에 내리면 나무 계단이 정상까지 이어져 있다.

 

▲ 단아함이 느껴지는 녹우당

고택이 보여주는 단아한 아름다움

두륜산의 정기를 마시고 806번 도로(해남읍내 방면)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 해남 윤씨 종가인 녹우당이 있다. 서남향으로 앉아 있는 이 민가는 <어부사시가>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1587∼1671)와 그의 증손이자 화가로 이름을 떨친 공재 윤두서가 나고 자란 곳이다. 전라남도에 남아 있는 고택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양반집으로 지금도 윤선도의 14대손이 살고 있다. 이 집은 여러 세대에 걸쳐 완성됐고 대문, 안채, 사랑채를 비롯해 사당이 3개, 마당도 6개(고방마당, 안마당, 사랑마당, 행랑마당, 작업마당, 바깥마당)나 된다. 사랑채에 걸린 편액, ‘정관(靜觀)’은 고산의 사상을 엿보게 한다. ‘고요하게 바라보라’는 뜻대로 집 안에 들어가면 고요함이 온몸을 감싼다. 녹우당은 원래 조선 효종이 윤선도를 위해 수원에 지어준 살림집인데 고산이 82세 되던 해(1669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온 것이다. 집 앞의 유물전시관에 윤선도가 직접 만들었다는 고산유금(거문고) 등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녹우단 종가 뒤쪽 산머리에는 푸른 비자나무숲이 청신한 기운을 발산한다. 해남 윤씨의 선조가 “뒷산의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가난해진다”고 해서 오랜 세월 정성껏 심은 것이란다. 비자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리면 마치 비가 내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녹우(綠雨)’란 이름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 달마산은 어느 방향에서 봐도 아름답다.

보면 볼수록 신비로운 산

녹우당에서 왔던 길을 되짚어 땅끝 쪽(55번지방도와 77번국도)으로 내려가면 공룡의 등 같은 기암들이 길게 둘러서 있는 달마산(481m)이 보인다.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달마산의 암봉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도 달마산의 기묘한 모습을 보고는 두 손 모아 합장했을 정도다. 도솔봉은 달마산의 여러 암봉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이름난 봉우리는 그 품안에 뭔가를 숨겨놓기 마련인지 아슬아슬한 벼랑 사이에 매달리듯 암자가 자리를 잡고 있으니 의상대사가 세운 도솔암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와 들판이 가히 천하절승이다. 거대한 동양화 그 자체다.

 

▲ 달마산을 병풍처럼 두른 미황사
▲ 달마산 미황사의 대웅전

 

달마산 자락에는 또 하나의 도량이 있으니 신라 경덕왕 8년(749) 의조화상이 창건한 미황사(美黃寺)다. 섬을 제외한 국토 최남단 사찰이다. 누각이며 단청을 입히지 않은 대웅보전(보물 947호)과 게와 거북 등이 조각된 주춧돌,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응진당(보물 1183호)과 만하당 등이 달마산을 빼닮은 모습이다. 앞으로는 다도해가 뒤로는 암산이 둘러싸고 있으니 명당 중의 명당이다. 미황사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노을이 번지는 저녁 무렵. 매월당 김시습은 낙산사의 일출과 미황사의 일몰 풍경을 최고로 꼽았다던가. 미황사는 템플스테이도 진행한다. 최대 7일 동안 미황사에 머물 수 있는 템플스테이는 프로그램이 다양해 인기다.

 

▲ 겨울철새들의 보금자리인 고천암호

땅끝마을에서 산하의 장엄함을 느끼다

해남이 보여주는 다양한 스펙트럼은 땅끝마을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곳에서 감상하는 해돋이는 막힌 가슴을 뻥 뚫어준다. 미황사에서 땅끝마을까지는 40㎞. 북위 34도 17분 21초, 위도상 함경북도 온성군 유포면 풍서동 유원진과 대각선에 위치한 국토의 최남단이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북 온성까지를 이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했다.

땅 끝에 우뚝 솟은 사자봉 전망대에 오르면 쪽빛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이 두 눈에 꽉 찬다. 땅끝마을에서 모노레일을 타면 전망대까지 단숨에 올라간다. 해안에 서 있는 ‘토말비’는 이곳의 상징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땅끝에서 시작해 사구미 해변을 지나 북평-북일면을 잇는 해안길이나 반대쪽인 송호해변-대죽리-화산면을 잇는 해안길은 멋진 드라이브를 약속한다. 이 해안길은 일몰 명소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저녁 무렵 바다로 스러지는 해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풍경화다.

 

▲ 땅끝마을에서 가까운 송호리 해변
▲ 저 멀리 땅끝전망대가 보이는 사구미 해변

 

이제 땅끝을 뒤로 하고 화산면 쪽(77번국도 진도 방면)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들판과 바다를 조망하며 한참 올라가면 황산면 들머리인 고천암방조제를 지나게 된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고천암호는 갈대가 장관을 펼치고 있다. 역광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갈대는 빛의 방향에 따라 황금색으로 변하기도 하고 암갈색으로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철새들도 이곳을 찾아왔다. 가창오리, 쇠기러기,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물오리, 흰뺨검둥오리 등등 수만 마리가 떼 지어 고천암 주변을 맴도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간간이 새들의 울음소리가 바람소리에 섞여 들려온다.

 

▲ 해남의 명물인 겨울 배추

놓치면 아쉬운 곳들

고천암에서 우항리 쪽으로 올라가면 해안가에 공룡 화석지(천연기념물 394호)가 있다. 물갈퀴 달린 새발자국, 초식공룡 발자국, 육식공룡 발자국 등 9천 만 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세계 유일의 고생물 화석이 넓은 지역에 분포돼 있다. 화석지 바로 옆에는 공룡박물관도 들어섰다. 시기별로 400여 점의 공룡화석을 전시하고 있는데 중생대 육식공룡인 알로사우르스 화석을 비롯해 포악한 공룡으로 유명한 티라노사우르스 화석 해양파충류실, 익룡실, 영상실, 어린이 공룡실 등으로 나눠져 있다.

 

▲ 우항리 공룡박물관

 

박물관 부지에 만든 실물 크기의 공룡 조형물들도 눈길을 끈다. 공룡화석지 앞의 금호호는 철새도래지로 유명하고 충무공이 큰 승리를 거둔 명량대첩지도 지척이다. 진도와 맞닿아 있는 화원면 일대는 해남관광 8경으로 꼽히는 주광낙조(周光落照)를 비롯해 울돌목 거북선, 강강술래 발상지, 우수영 성지, 명량대첩비, 진도대교, 우수영유물전시관 등 볼거리가 많다. 특히 낙조가 아름다운 주광리와 매월리 해변은 서쪽으로 해안선과 접하고 있어 주변 경치가 으뜸이다. 해남 최서북단의 목포구등대도 일몰 포인트로 아주 좋다. 이 등대는 일본이 대륙진출을 하려고 1908년에 만든 것인데 지금 등대는 2003년에 새로 지었다. 삶의 에너지가 충만한 새해, 해남은 삶의 활력을 채워올 수 있는 맞춤 여행지다. <수필가/ 여행작가>

 

 

☛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 목포 나들목-영암 방조제-2번국도(강진 방향)-성전-13번국도-해남, 호남고속도로 나주나들목-13번국도-영암-해남으로 가면 된다. 영암방조제를 건너 오른쪽 진도 이정표를 따라 화원반도를 거쳐 해남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이 길은 우수영관광지-우항리 공룡 화석지-고천암-땅끝-달마산(미황사)-두륜산(대흥사)-녹우당 방향으로 돌게 된다. 해남읍내에 두륜산, 녹우당, 땅끝 이정표가 잘 돼 있다. 해남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흥사행 버스가 30분 간격으로 다닌다. 두륜산 케이블카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행한다.

☛숙박=대흥사 입구에 있는 유선여관(534-3692)에서 숙박이 가능하며 전남개발공사에서 운영하는 해남땅끝호텔(530-8000)은 땅끝전망대와 송호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수영유스호스텔(533-2114), 땅끝오토캠핑장(http://autocamp.haenam.go.kr, 534-0830)도 여행자들에게 좋은 잠자리를 제공한다.

☛맛집=해남읍내에 있는 용궁해물탕(535-5161)은 20여 가지의 해산물로 끓이는 해물탕이 별미다. 80년 전통을 자랑하는 천일식당(536-1001)의 떡갈비정식과 불고기정식도 맛깔스럽다. 땅끝마을에도 다도해(532-0005 생선회) 등 식당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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