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검은 고양이 야옹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갔다. 길면 한 달이요 짧으면 이십여 일 정도에서 야옹이는 우리 집을 떠날 것이라고 우리는 예상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정 같은 것을 너무 많이 쌓지는 말자고 했지만, 녀석은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다 돼가도록 우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녀석과의 정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져 버렸다. 이른바 눈물의 씨앗을, 슬픔의 씨앗을 우리는 각자 가슴에 심는다는 생각도 없이 심어놓고 있다가 싹이 나와버린 뒤에서야 아차 이게 뭐냐, 하는 뭐 그런 형국이 되고 말았다.

 

▲ 누가 쫓아내지도 않았건만 집을 나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야옹이가 우리에게 준 정이랄까 사랑 같은 것은 사실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사랑이라든가 정을 너무 많이 주지 말자고 맹세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야옹이를 찾고, 또 틈만 나면 녀석의 행동거지에 관심을 갖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쳐다보았으며, 또 틈만 나면 어떻게든 녀석을 만져보고자 안달복달을 하고 있었지만, 녀석은 그런 우리를 마치 어린아이라도 대하듯이 언제나 한 걸음 떨어져서 우리를 지켜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우리가 방에서 밖으로 나오면 녀석은 저 멀리 어디에 있다가 쏜살같이 달려온다. 그 기세가 금방 우리의 품에 안겨들 것 같아서 우리는 반갑게 손을 내밀고 다가서지만, 녀석은 재주도 좋게 마치 무슨 서커스라도 하듯이 니은자 형으로 몸을 홱 돌리면서 빠져나가 버린다.

뿐만 아니라 녀석은 우리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자신의 모습을 잠깐 보여주고는 금방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뭐 그리 깊은 데로 숨는 것도 아니다. 화분이나 장화 같은, 한눈에도 그냥 빤히 보이는 작은 물건 뒤로 슬쩍 몸을 감추는 형식으로 웅크리고 있다가는 우리와의 거리가 일 미터쯤으로 좁혀지면 불쑥 튀어나오는데 필경 우리를 놀래주자는 속셈인 것 같다. 우리는 매번 녀석의 그런 모습이 반갑고 귀엽고 깜찍해서 손을 내밀고 다가서지만, 그때마다 녀석은 나 잡아봐라, 하는 투로 달아나 버린다.

어쩌다 가끔 잠깐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허용하는 경우도 있기는 있다. 이를테면 녀석이 무엇인가에 집중해 있을 때, 그때 가만히 다가가서 손가락으로 살살 목을 긁어주면 갸릉, 갸릉, 소리를 내며 가만히 있어 주기도 하지만, 그 시간은 그야말로 잠깐일 뿐이었다.

 

▲ 남의 집에 들어앉아서...

 

우리는 녀석의 몸에 손을 대는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목이나 살살 긁어주는 정도로는 뭔가 해갈이 안 된다는 느낌이어서, 그래서 끌어안고 싶고, 안아주고도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슬쩍 한 번 만져보기라도 하자고 자세를 취해보는 것인데, 하지만 녀석은 감각이 귀신 뺨치게 발달해 있어서 우리의 손가락 움직임이 조금만 이상해져도 날렵하게 몸을 비틀어서 빠져나가 버린다.

“아유 얄미운 녀석.”

검은 고양이 야옹이는 그런 녀석이었다. 손길을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녀석은 우리들 중 누구라도 마당에 나와서 움직이면 뒤를 졸래졸래 따라다닌다. 때로는 가만히 앉아서 우리의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뭔가 흥이 동하면 온갖 동작으로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귀뚜라미나 여치 혹은 사마귀 같은 곤충을 잡아서 놀린다거나 감나무 위로 재빨리 올라가서 우리를 내려다며 야옹, 야옹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자기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그렇게 녀석은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두 달 동안 자랐는지 안 자랐는지 각종 계량기를 동원하지 않으면 거의 알 수도 없을 테지만, 야옹이 녀석은 한눈에 그냥 척 봐도 어른 티가 나고 있었고, 자기 몸을 얼마나 열심히 다듬었던지 온 몸에서 윤기가 흘렀으며, 이런저런 각종 기술도 많이 숙달돼 있었다. 초기에는 감나무 위로 뽀르르 올라가기만 잘할 뿐 내려오는 방법을 몰라서 애타게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곤 했지만, 이제는 마치 서커스라도 하듯이 단숨에 올라갔다가 훌쩍 뛰어내리는 등으로 자신의 민첩성을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녀석은 의식도 부쩍부쩍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야옹이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는 이를테면 생각하는 고양이가 돼 가고 있었고, 한 번 더 과장을 하자면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친구거나 동지일 뿐 적이란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세계평화주의 내지 박애주의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예전의 꼬리 잘린 고양이에게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 밥그릇을 아예 침대로 삼아버린 어린 녀석

 

전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버린 꼬리 잘린 고양이는 밖에서 다른 고양이가 들어올라치면 눈에 힘을 주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등의 공격 자세를 취하는 방식으로 쫓아내곤 했지만, 검은 고양이 야옹이 녀석은 밖에서 누가 들어오든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보고만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꼬리를 흔들어서 찾아온 손님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기도 했다.

어쩌다 한두 번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그러나 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야옹이 녀석은 찾아오는 모든 고양이들에게 꼬리를 흔들어주었다. 그러면 찾아온 녀석은 야옹이 곁으로 다가와서 뭔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척하다가 야옹이의 밥그릇을 점령하곤 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손님들은 야옹이와 친구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어디에 무슨 먹을 것이 없나 해서 우연히 한 번 들러본 것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도둑고양이들이었다. 도둑고양이의 특징은 사람을 발견하면 냉큼 달아나 버린다는 점을 아마 첫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그런 녀석들은 사람이 애써 먹이를 주고자 해도 다가오지 않는다. 먹이를 내려놓고 사람이 돌아서면 그제야 다가와서 먹어치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이 거의 없는 녀석들이었다.

그런 도둑고양이들에게 야옹이의 밥그릇은 아마도 굉장히 만만한 식량창고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야생 고양이들 사이에 널리 소문까지 나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고서는 그렇게도 많은 고양이들이 차례로 찾아올 수가 없다. 그런데 야옹이 녀석은 어느 쪽이냐 하면, 찾아온 손님이 밥그릇 쪽으로 가면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고자 뭔가 액션을 취하는 게 아니라 옆으로 슬그머니 물러서 버린다. 서너 걸음 물러선 채로 손님이 밥 먹는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가만히 쳐다보기나 할 뿐이다.

 

▲ 또다른 손님

 

야옹이의 그런 태도는 명백하게도, 고양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밥그릇 따위나 지키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하는 여유만만으로 우리에게는 읽혀졌다. 그것 참, 아무리 보고 또 봐도 희한한 녀석이었다. 이런 험악한 자본주의 세상에 저런 이상한 박애주의자 동물도 다 있었더란 말인가? 한편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했다. 고양이도 저렇게 배고픈 동료를 위해 자신의 밥그릇까지 다 내줘버리는데 우리는 명색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동안 뭘 했었나 하는 느닷없는 성찰에 그만 뒤통수를 긁적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야옹이는 박애주의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재미있게도 검은 고양이 야옹이 녀석은 질투의 화신이기도 했다. 아, 이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에 야옹이 녀석이 하나에서 열까지 온통 평화주의에 박애주의자로서의 면모만 보이고 있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열등감을 못 견뎌서라도 야옹이를 쫓아내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국화가 한창 피어나는 지난 늦가을의 어느 날,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그날이 왔다.

마당에서 삽을 들고 텃밭을 어슬렁거리는 식의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참인데 어디서 애처로운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라 생각하고 무시했는데 아니었다. 발등에 느낌이 이상해서 내려다본즉 주황색 계통의 굉장히 초라한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발등에 자신의 목을 비벼대며 야흐, 야흐, 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때의 그 소리는 틀림없는 ‘야옹’이 아니고 ‘야흐’였다. 나중에 알았다. 녀석이 배가 하도 고파서 자신의 소리 하나도 제대로 낼 힘이 없었다는 것을. 어쨌든 나로서는 꽤나 낯선 경험이었다. 아무리 어린 녀석이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호랑이과 고양이거늘, 고양이가 낯선 사람을 보고 달려와서 발등에 자신의 몸을 비벼대는 식으로 아양을 떨어대다니. 어린 녀석의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서 우유라도 한 잔 먹이자는 생각으로 돌아섰다. 그러자 녀석은 그냥 졸래졸래 따라오며 야흐, 야흐, 소리를 내고 있었다.

 

▲ 의기소침해진 녀석

 

그날 아침 우리의 검은 고양이 야옹이 녀석은 엉뚱하게도 무슨 풀을 자꾸 뜯어먹고 있었다. 그리고 한두 시간쯤 뒤에는 그동안 먹은 것들을 죄다 토해버렸다. 녀석이 토해놓은 것들 중에는 생선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미처 치우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었는데 새로 찾아온 어린 녀석이 그것을 발견했던가. 아니면 냄새를 맡았던가. 내 뒤를 졸래졸래 따라오던 어린 녀석이 그 토사물 앞으로 가더니 허겁지겁 그것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뭔 꼴이냐. 개가 자신이 토해놓은 것을 도로 먹어치우는 꼴은 더러 봤지만 고양이가 남의 토사물을 먹어대는 꼴은 또 처음이고,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라서 당혹스러워하고 있는데 우리의 검은 고양이 야옹이가 보기에도 그 모습은 대단히 괴상하게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거 참 희한한 녀석이네, 아니 내가 토해놓은 것을 왜 지가 먹고 지랄이야? 하는 꼭 그런 표정인 것도 같고, 아니 어디서 무슨 저런 거지도 상거지가 찾아온 거야? 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우리의 검은 고양이 야옹이 녀석은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다시 옆으로 갔다가 그렇게 온갖 각도에서 어린 고양이를 관찰하며 나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주황색 고양이는 야옹이가 토해놓은 것을 일단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나의 그녀가 준 우유도 한 컵 다 먹어치우고, 그래도 뱃속이 허전하다는 듯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우리의 검은 고양이 야옹이가 먹다 남겨놓은 밥도 다 먹어치웠다. 우리의 검은 고양이 야옹이는 새로 찾아온 어린 녀석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그 모든 장면을 다 구경하고 있었다.

자, 이제 어린 고양이는 배를 다 채웠다. 지난 날 우리 집을 찾아온 거의 모든 고양이들이 그랬듯이, 배를 채운 뒤에는 인사도 없이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녀석은 돌아갈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는 듯 토방에 벌렁 자빠져서 한숨 늘어지게 잠을 자는가 싶더니 아예 밥그릇 안으로 들어가서 온 몸을 쭉 뻗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기분 좋게 하품을 하고, 빨랑빨랑 뛰어다니는데 그 모습이 뭔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 겨울날의 노을

 

한 마디로 말해서 귀여웠다.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검은 고양이 야옹이와는 달리 통통 튄다는 느낌이었고, 뛰다가 뒤를 돌아볼 때는 사람 어린아이가 ‘이쁜짓’을 하듯이 귀를 쫑긋쫑긋 한다던가 눈썹을 쭈삣쭈삣하는 식으로 떨어대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워 보이는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내밀어봤는데 어렵소, 이 녀석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다가와서 자신의 온 몸을 맡겨버리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검은 고양이 야옹이는 자연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가 의식적으로 검은 고양이를 홀대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다만 어린 고양이가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허락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다른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만지고 긁어주고 품에 안아도 보고 뭐 그런 것일 뿐이었다. 검은 고양이 야옹이는 우리의 그런 태도와 행위에서 아마 슬픔을 느끼고 끝내는 분노까지도 느꼈던 모양이었다.

아마 사흘인가, 나흘째 되는 날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사흘이든 나흘이든 그까짓 거 며칠 되지도 않은 날들이었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검은 고양이 야옹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실로 엄청난 일이 벌어졌었다. 자신의 집을 어린 고양이에게 빼앗겨버린 것이다.

나의 그녀는 박애주의자 검은 고양이 야옹이가 자신의 침실을 어린 고양이에게 양보했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볼 때는 빼앗긴 것이었다. 만약에 양보한 것이라면 새로 지어준 집에 입주를 해야 했다. 그런데 검은 고양이는 내가 새로운 집을 지어서 이불까지 깔아주었는데도 입주를 거부하고 마치 쫓겨난 아이처럼, 버림받은 아이처럼, 어마어마한 전쟁이라도 치른 뒤의 난민처럼 한뎃잠을 자는가 하면 밥을 줘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멀리서만 배회하더니 그만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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