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휴지 수집인들의 하루

 

봄이 오나 싶었는데 폭설이 내리붓는다. 날씨는 여전히 혹한 속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난방비. 깜깜한 새벽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일해야 하루 겨우 5000원을 벌 수 있는 폐휴지 수집인들에겐 더더욱 힘든 계절이다. 새벽 이불 속 온기를 털어내고 일터로 나선 수집인들을 만나봤다.

 

해 기울수록 손수레는 빨라지고…

창신동 일대가 ‘일터’라는 박모(74) 씨는 점심시간이 되어도 식사할 엄두를 못낸다. 5000원 하루벌이에, 밥을 사먹는 일이란 한 마디로 ‘정신 나간 짓’이다. 집에서 싸온 감자 몇 조각을 먹은 뒤, 식당 거리로 나섰다. 쓸 만한 물건이 없는지 기웃거려 보지만 그뿐이다.

자라나는 손자들을 바라보며 편히 쉬어야 할 때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박 씨는 손수레를 끌고 매일같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폐지와 공병을 줍는다. 한 시간 남짓 흘렀을까. 박 씨는 한숨을 쉬며 잠시 벽에 기대어 앉았다. 거리가 ‘깨끗’했기에.

“요즘은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 경쟁력이 높아졌어. 오늘은 돈 될만한 게 별로 없구만. 10년째야. 무덤에 갈 적까지 이 짓을 하고 살아야겠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겨울엔 특히 많이 움직여야 해. 보일러비가 장난이 아니거든. 밤마다 추위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낮에 부지런히 뛰어야지.”

 

 

겨울엔 특히 경쟁률이 높아져 수레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돌아서는 날이 허다하다. 급할 수밖에 없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수록 박 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곳저곳에서 경적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함소리가 들렸다.

“비켜요 비켜.”

박 씨가 박스를 줍느라 수레를 잠시 세워둔 사이 운전사들은 박 씨의 사정도 모른 채 무조건 ‘비켜!’라며 몰아세우기만 한다. 박 씨는 ‘무조건 주워야 산다’는 입장. 하지만 신경질적인 경적소리에 수레를 끄는 박 씨의 마음은 조급하기만하다. 어느덧 수레 위에 수북이 쌓인 박스와 빈 병들이 위태위태하다.

“이렇게 쌓아도 얼마 못 받아. 고물상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내가 가는 곳은 그나마 1000~2000원 더 쳐주지. 10년 단골이거든. 많이 벌 땐 7000~8000원 씩도 버는데, 오늘은 5000원도 못 받을 것 같구만. 되도록 무거운 게 좋아.”

한 푼이 아쉬운 박 씨는 기자의 집이 어디냐고 물어왔다. 혹 버릴 물건은 없느냐며.

 

 

컴퓨터 모니터나 TV가 최고지. 그런데 요즘은 다들 중고물품 다루는 곳에 파는 것 같더라고. 예전 같으면 다들 버리는 물건들인데, 멀쩡하게 사는 서민들 삶도 힘들어지니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거야. 그래서 요즘은 중고품 가게를 기웃거리기도 해. 중고품 가게에서조차 버리는 물건들이 종종 있단 말이지. 때론 비치해놓은 걸 버린 줄 알고 줍다가 주인이랑 언쟁을 벌인 적도 있지.”

날씨가 큰 변수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지. 그날 장사는 접어야 해. 그래도 아쉬우면 나가서 젖은 박스를 집에 와서 말려. 말린 후 날씨 풀리면 고물상에 가서 팔지.”

가장 두려운 건 폭설이다.

“수레를 끌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지. 미쳐버려 정말. 며칠 내내 고생한다니까. 눈 내릴 때마다 다친 노인네들 많지. 하루 5000원 벌어서 무슨 병원을 가겠어. 골골거리며 푹 쉬는 수밖에.”

박 씨는 몸이 아파 일을 나가지 못할 때 가장 속이 상한다. 여러 가지 불합리한 조건에 치여 정부의 노인복지 혜택은 엄두도 못 낸다.

“좀 젊었더라면 건물 청소 일이라도 하겠지. 아니면 건물 경비를 보던가. 그 정도만 돼도 먹고 살만 하잖아. 이제는 나이가 너무 많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짓 밖에 없어.”

오늘도 해가 저물기 전까지 이 깡마른 노인은 수레를 밀고 도로를 질주해야 한다.

 

정부에 기대하는 것 없어

성북구 삼선동 골목길에서 만난 석모(76) 씨는 폐품을 줍는가 싶더니 장초(담배꽁초 긴 것)를 집어 들었다. 주머니에 담배는 없어도 라이터는 꼭 갖고 다닌다는 석 씨. 입에선 이내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이어지는 혹한의 추위 때문에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이다.

“세월이 참 빨라. 나이가 드니 더 빠르네 그려. 지난겨울이 꼭 어제 같구만. 세월이 화살이야 화살. 겨울을 대비하려면 봄, 여름, 가을에 부지런히 뛰어야 해. 겨울에는 일거리가 없거든. 근데 겨울에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잖아. 난방비만 해도 얼마야. 나머지 계절에 저축해서 겨울나기 하는 거지.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계산하며 못 살아. 계산한들, 사계절 구분 없이 몸이 이곳저곳 쑤시니, 약값이 겨울 나기 위해 저축해 놓은 통장을 깨뜨리게 하거든.”

석 씨는 얼마 전 눈길에 미끄러져 다리를 다친 상태. 거동이 불편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골목골목을 쉴 틈 없이 헤집고 다녀야 한다.

“‘나와바리’(자신의 구역)가 있으니 꾸역꾸역 다니다보면 일당은 벌 수 있다고. 문제는 경쟁자들이지. 조금씩 조금씩 내 땅에 침범해서 내 물건들에 손을 댄단 말이지. 요즘은 걷는 속도가 예전 같지 않아서 물건을 뺏기는 경우가 허다해. 그래서 수입이 조금 줄었지. 대책이 없어.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것도 아니니.”

 

 

 

석 씨는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은 고물상에 수레를 반납한 이후 시간에도 폐품을 주우러 다닌다. 야근을 하는 셈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래잖아. 조금씩 조금씩 모으고 있어. 회사로 따지면 수당을 챙기는 셈이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답이 없어. 다리만 다치지 않았어도 조금은 편할 텐데.”

석 씨의 집 앞엔 폐품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때론 박스 안에 코 푼 휴지, 과자 부스러기, 우유 갑 등 쓰레기가 뒤섞여 있어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박스를 펼쳐 납작하게 만든 뒤 차곡차곡 쌓으니 꽤 높다랗다. 동네 주민들의 도움도 컸다. 버릴 물건 있으면 석 씨 방 앞에 두고 간단다. 관할 동사무소 주관 ‘관심 인물’로 지목된 셈이다.

반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는 석 씨는 차마 자신의 집 내부는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방엔 볼 게 없어. 여기서 담배나 한 대 태우자고.”

사연은 길었다.

“자식들이야 있지. 그런데 있으면 뭐하나. 지들도 제대로 못 사는데. 빚에 쫓겨 살아. 지금은 또 어디로 이사했나 모르겠네. 한 마디로 콩가루 집안이지. 차라리 내 손으로 벌고 말지. 보일러값 내고 방값 내면 거의 맞게 떨어져. 밥은 매일 먹진 못하지. 라면 하나 사면, 반으로 나누어서 아침, 저녁으로 삶아 먹지. 다행히 아는 사람 소개로 단칸방은 얻었어. 월 5만원 씩 내고 있거든. 보증금도 없어. 이 집이라도 없었으면 영등포 쪽방에나 가 있겠지.”

석 씨는 그렇다고 동정의 눈으로 보진 말라고 했다.

 

 

“늙고 병든 몸 이끌고 박스를 줍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게 현실이지. 그렇다고 무시하진 마. 노인들도 다 자기 하기 나름이야. 눈 오고 비 올 때면, 나름대로 문화생활도 한단 말이지. 그 날이 휴일이지. 지하철 티켓은 공짜니까 종로에 가서 산책도 해. 비슷한 처지 노인들 만나서 덕담도 나누지. 만나서 하는 얘기가 다 똑같아. 노인들을 위해 정부가 중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청들을 높이거든.”

그는 ‘복지정책’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공짜로 지원해주고, 밥 먹여준다는 얘기는 다 헛소리야. 여기가 무슨 공산국가도 아니고 말이야. 다 입 발린 소리 아니겠어. 내 평생 살면서, 가만히 노는데 돈 받아 본 적 없어. 지하철 티켓 공짜인 게 좋긴 하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안가.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 돈인지 모르겠어. 어찌됐든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 해. 주변을 의식하거나 기대어 봤자 소용없어. 그래서 누가 뭐라던 일단 돈은 모으고 봐야 돼. 다른 건 몰라도, 돈이 돈을 벌어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더라고. 부자감세정책이라는 말이 유행이었잖아. 그럴 줄 알았어. 그게 현실이야.”

석 씨가 일평생 살면서 한 가지 얻은 교훈은 “부자들은 절대 돈을 내놓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힘들어도 폐휴지 수집에 ‘올인’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덤덤히 받아들이겠단다. 흔히 폐휴지 수집인들을 두고 정부의 관심이 필요한 계층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수집인들은 자신들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별다른 기대치가 없는 상황이다. 절망의 가장 밑바닥에서 당당해지는 편도 썩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다.

“겨울 뿐 아니라 늘 두렵지. 그런데 그것은 절대 바뀌지 않는 현실이니까… 받아들이고 살아야지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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