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적 드로잉 아티스트 김정기 작가

 

마치 지금이라도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다가올 것 같은 그녀. 귓가에는 어지러운 총성이 들려온다. 총을 든 일본인과 목청 터져라, 대한민국을 부르는 조선인들의 모습이 거대한 태극기의 태극원안에 갇혀있다.

삼일절 기념식에선 이색 걸개그림이 생중계로 그려졌다. 즉석에서 자로 잰 듯 정확한 태극기 가운데의 태극원안을 무한 상상력으로 빼곡히 채워내는 한 남자. 그는 즉석에서 9m 대형 걸개에 밑그림도 없이 붓펜 하나로 ‘라이브 드로잉’을 그려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김정기(42) 작가다.

 

▲ 크리에이티브 강연회에서 김정기 작가가 직접 드로잉하며 관객들과 대화하고 있다. 

 

그의 드로잉 솜씨는 국내에서 보다 해외에서 더 먼저 알아보았다. 그는 프랑스로, 스위스로, 할리우드로 1년의 반 이상은 해외에서 생활한다. 세계적인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과학SF소설 ‘제3인류’의 그림 작업을 함께 했다. 그의 ‘원화’는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고 12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지난 2011년 부천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즉석에서 드로잉을 그려보라는 제안을 받고 작업을 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후 그는 전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는 일약 ‘스타 아티스트’로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6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는데 워낙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하루에 10시간씩도 그렸죠. 하지만 만약 유튜브에 그림 그리는 모습을 올리지 않았다면 전 아직도 골방에 들어 앉아 휴지만 쌓아놓고 그림만 그리고 있었을 지도 몰라요. 아마 지금의 저는 없었겠죠”라고 말하는 김정기 작가를 최근 KT&G 상상아트홀에서 열린 ‘크리에이티브 세미나’에서 만났다.

그는 이 날 그의 창작 인생을 무대에서 ‘라이브 드로잉(Live Drawing)’을 통해 들려주고 보여줬다. 그림을 그리면서 관객들과 질의응답을 통해 서로 소통했다.

 

 

▲ 2015년 삼일절 기념 드로잉쇼 ‘삼일절 아트 콜라보레이션’

 

 

-어떻게 그림으로 진로를 정한 것인지.

▲그림을 좋아했고 뭐든 어디에든 그렸다. 영수증, 달력, 신문지 등 닥치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전부 나의 스케치북이었다. 사실 늘 그림 너무 잘 그린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대학 입시 때에도 심사위원들이 전부 감탄사를 연발해댔다. “와, 자네 뭔가, 너무 잘 그린다” 등. 하지만 첫 번째 대학 입시는 실패였다. 이유? 모르겠다.(웃음) 아무튼 그림을 좋아해서 계속 그림만 바라보고 온 것이 지금 이렇게 그림으로 먹고 살게 된 것 같다.

 

 

-해외에서 작업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 게임 일러스트 작가들과 해외 작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굉장히 화려한 일러스트를 사용한다. 그림의 장식적 요소가 많다. 그에 비해 미국 작가들이나 유럽의 작가들은 현실감 있고 실용적인 미를 많이 추구하는 편이다. 나 경우는 미국이나 유럽적 작가 성향이 맞는 것 같다. 뭐가 더 좋다, 안좋다 그런 것은 아니다. 문화적 성향, 시장의 성격 등 좋고 나쁘고의 차이가 아닌 ‘다르다’는 점이다.

 

 

-언제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나.

▲“정기야, 돈 벌고 싶지?” 친구가 말했다. 대학 때 친구 따라 ‘공장제’ 만화가 화실에 배경을 그리러 갔다. 6개월 정도 했는데 일을 마치고 나니 서울에 가서 ‘내 만화’를 연재해봐야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그래서 서울에 와서 11군데 출판사에 찾아갔다.

결과는? 다 퇴짜였다. 내 그림은 우리나라에 안 맞는다고 하더라. 당시에는 일본풍 그림이 대세였다. 낙심하다 다시 펜을 잡고 1년 뒤 재도전했다. 결과는 11군데 전부 다 합격.

근데 내 그림을 게재하던 잡지가 줄이어 다 폐간되었다. 또 자전거 타다가 큰 부상도 입고. 이래저래 안 좋은 일이 계속 겹쳤다.

 

 

-그림을 그리면서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면.

▲그림을 그리면서 힘들었던 일은 없었던 듯하다. 힘들었던 것은 아니고 가장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사건이 있었다. 지난 2011년 부천국제만화페스티벌 부스에 참가했는데 삼면에 종이를 걸고 ‘라이브드로잉’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고 실제로 시도해보았던 일이다. 9m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 힘들기는 했지만 인상 깊었다. 재미 삼아 유튜브에 올렸는데 프랑스에서 초청이 들어오고, 전 세계 각국에서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그 후 국내에서 머무는 시간보다 해외에서 거주하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크리에이티브라는 것을 어떻게 구현해내나? 계속 그리다 보면 아이디어라는 것도 한계가 오고 그리기 싫었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

▲그림이라던가, 창작 활동을 할 때 가장 경계를 해야 하는 것이 ‘남’을 위해, ‘돈’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부분 ‘나’를 위해, 내가 재미있는 것, 내가 관심 있는 것을 그린다. 그러면 많이 그릴 수 있다. 그림그릴 때 영화나 스포츠를 계속 틀어놓고 작업한다. 단, 소리는 안 나는 스피커를 사용한다. 그냥 보기도 하면서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린다.

 

 

 

▲ 2013년 숭례문 복구 기념 드로잉쇼 ‘다시 시작하는 천년의 동행’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작업하는지?

▲가장 많이 작업했을 때가 12시간이다. 고등학교 때는 하루 10시간씩 꼬박 3년간 그렸던 것 같다. 그림은 닥치는 대로 그렸다. 뭐든지 나의 연습장이고 스케치북이었다. 300원짜리 연습장이 2~3일이면 다 채워져서 버려야 했다. 그 다음부터는 냅킨이고 달력이고 우편물 봉투건 하얀 여백만 있으면 그렸다.

 

 

-최종적인 꿈이 있다면?

▲거창한 것은 없다. 그저 지금처럼 그림 그리는 것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냥 안지치고 계속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 요즘은 좀 지친다. 국내 활동은 뜸했지만 해외에서의 작업량이 어마어마하다. 나를 위해 순수하게 몰두하고 그리는 시간이 아쉽다. 늙어서도 계속 그리는 것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욕심이 하나 있다면 긴 장편만화를 하나 하고 싶다. 국제적으로 IS, 첩보, 테러, 정보국 등이 논란이 될 때마다 그걸 주제로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한다면 ‘본’ 시리즈 같은 밀리터리물을 하고 싶다.

 

 

-장편만화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림 그릴 때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던가, 캐릭터 구상은 어떻게 하는지?

▲초등학교 때 이후로는 캐릭터 구축은 안 해본 것 같다. 그냥 상황을 보고 이 상황이 어떻게 유추할 수 있는가 하는 그런 그림을 좋아한다. 정지되어 있는 그림 보다는 뭔가 진행형의 그림을 좋아한다. 내 그림도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즉 그림 하나가 하나의 연결요소, 에피소드가 되도록 상황을 연출한다. 그걸 이으면 장편이 될 것도 같은데, 쉽지는 않다.

 

 

-사회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느라, 공부하느라, 돈 버느라, 사는 게 바빠서 돈 안 되는 그림이나 예술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군대 있을 때 그림을 많이 못 그린다. 상황이 자유롭지 않으니까. 그렇게 상황이 안 될 때 나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정말 나는 수많은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엄청 재미있다. 그림 등 창작 활동이라는 것이 포기만 안 한다면 언젠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시작해서 될까?”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의외로 늦게 시작해서 잘 하는 사람들도 많다. 가능하다.

학력도 중요하지도 않다. 예술이야 말로 ‘학력 파괴’의 본보기가 되는 시장이다. 실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실력을 잘 갖춘다면, 나이나 학력이나 성별이나 뭐가 되었든 상관이 없다. 요즘처럼 세계가 커넥팅 되어 있고 실시간으로 어느 곳에서 누구나 전부 내 그림을 볼 수 있고 내 실력을 보여줄 수 있다.

해외 유명한 곳을 가서 보면, 한국인들이 엄청 많다. 정말 잘한다. 내가 어디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해요.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밑그림 없이 그리는 화법에 전 세계가 놀랐다. 밑그림 없이 거대한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 것인가.

▲머릿속에서 이미지화 되어 있는 형상을 그대로 그리면 된다. 가령 ‘토끼’하면 전 세계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 인식에 맞춰서 그리면 전 세계 사람들이 ‘아, 토끼다’하고 느낀다. 사실은 하나도 안 똑같은데 토끼라고 믿는다. 즉 그림을 모두 다 똑같이 잘 그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특징만 잘 잡아서 그리면 된다. 밑그림 없이 그리는 것은 머릿속으로 수없이 많이 시뮬레이션 해 본 결과다. 그 이미지를 그대로 화폭에 옮겨 그리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일이다. 무슨 말이냐면 평면 TV의 부서진 부분을 그려야 한다면, 그전에는 앞면만 보던 뒷면의 TV 모습을 그냥 보는 것으로 끝나면 그림을 그릴 수 없겠지만, 나중에 그림을 그릴 때 그 때 보았던 부tu진 TV를 그대로 꺼내서 다시 내가 그릴 수 있어야 한다.

 

 

▲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과학소설 ‘제3인류’ 삽화

 

 

-‘천재성’과 연관되는 부분 아닌가.

▲그렇다. 외국작가들이 저보고 ‘너는 반칙이야, 이건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하곤 한다.(웃음) 유치원 때부터 제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재능이 전부가 아니다. 정말 많이 그렸다. 24시간 내내 그림만 생각했다. 저 벽의 색은, 저 공간은, 저 사람은, 이런 장면은 여기서 쓸 수 있겠다 등등 모든 것을 그림과 연결시켜 생활했다. 다른 사람들 보다 몇배, 몇 십배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천편일률적인 입시공부를 하는, 미대 입시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입시를 하다 보면 그림이 어쩔 수 없이 획일화 된다. 하지만, 대학을 가서는 달라질 수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 관심 있는 스타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수험생활 때는 힘들겠지만, 그 시기를 이겨내면 나중에 한 단계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 시기에 기본기를 잘 닦고 나중에 하고 싶은 것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로 떠올리고 그리는데 잘 안 그려질 때가 있지 않을까?

▲당연한 이야기다. 어떤 천재도 자기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가 그대로 화폭에 전달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해보고, 많이 관찰해보는 것이 그것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해준다. 30년을 넘게 그림을 그려왔는데 나는 아직도 내 자신이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노력한다.

 

 

최근에는 잉크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은 극소수다. 많은 이들이 디지털 기기로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표현해낸다. 아날로그가 표현하기 어려운 테크닉적인 디지털 느낌이 또 다른 독자들을 열광하게 하고 있다.

김 작가는 디지털 기기는 크리에이티브를 극대화 해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서도 여전히 ‘손그림’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느낌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디지털 기기는 도구일 뿐 결국 표현해내는 것은 작가가 알고 있는 만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서는 ‘원화’가 여전히 ‘아트시장’의 핵심이다. 그는 첨단과학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디지털에 녹아있는 작가의 ‘순수한 감성’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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