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1회

 

가계 빚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이고 있다. 경제도 남북관계도 최악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혼미하다.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정부여당은 난데없이 ‘테러방지법’을 들고 나왔다. ‘국가비상사태’를 이유로 댔다. 9일간 이어지던 야당 의원들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중단됨과 동시에 테러방지법 제정안은 통과됐다. 테러방지법은 테러 위험인물의 출입국, 금융 거래, 통신 정보 등을 수집·조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국가정보원은 ‘테러방지’를 위해 국민의 개인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제정안에 따르면 국정원은 테러예방과 대응에 관한 제반활동을 근거로 영장 없이 금융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고 영장을 받아 통신수단을 감청할 수 있다. 인터넷상 글에 대한 긴급삭제 요청, 테러 위험이 있는 내·외국인 출국금지도 가능하다.

내국인의 통신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허가가 필요하며 외국인은 서면으로 대통령의 승인을 얻으면 정보수집이 가능하다. 제정안은 대테러활동에 관한 정책의 중요사항을 심의, 의결하기 위해 국가테러대책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했으며 그 위원장은 국무총리가 맡는다.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추적을 할 경우 국무총리인 대책위원회 위원장에게 사전 또는 사후에 보고하도록 했다. 대테러센터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며 국민의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해 대책위원회 소속으로 대테러 인권보호관 1명을 두는 내용이 제정안에 포함됐다. 테러단체를 구성하면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이 처벌을 받으며 테러를 기획한 자는 무기 또는 7년 이상, 다른 나라의 외국인테러전투원으로 가담하면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타인을 테러 관련 혐의로 처벌받게 하기 위해서 무고 또는 위증하거나 증거를 날조한 사람은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다.

테러방지법과 관계없이 국제정세는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다. 3일 새벽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에 대응한 새 대북제재 결의를 공식 채택했다. 제재안엔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내용들이 담겼다. 그러자 북한은 보란 듯 다시 무력시위에 나섰다. 제재안이 발표된 직후인 3일 오전 10시께 강원도 원산에서 단거리 미사일 여러 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긴급 뉴스, 그만큼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정세.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착잡하기만 하다. 그 시선 중에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있다.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이 처장의 첫 인상은 소년 같아 보였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86학번 출신인 이 처장은 참여연대가 창립한 이듬해인 1995년 5월 몸을 담았다. 참여연대 원년멤버인 셈이다. 그가 사무처장직을 맡은 건 2011년. 그는 “내년이면 민주화운동 30년이다. 하지만 참여민주주의는 오히려 위기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테러방지법’과 관련 야당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이어지고 있을 때 국회 앞에서 시민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기도 했다.

“경찰청장은 외유를 떠나고 국가테러대책회의는 한 번도 안 열린 상태다. 그런데 국정원의 브리핑 한마디에 국가비상사태라고 한다. 인권침해 폐해가 심해 미국에서는 이미 폐기된 법을 가져와서 국정원에 모든 권력을 달라는 것이다. 기정사실이었지만 국회에서도 통과돼버렸고, 이제 남은건 국민들에게 법의 폐해를 보다 정확히 알리는 것뿐이다.”

이 사무처장은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이 영장 없이 테러방지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통신정보와 금융계좌 등을 무제한 감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이번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알 수 있었듯 국민들은 권력이 너무나 많은 국민을 감시와 통제수단을 통해 자기 입맛에 맞게 휘두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고 있다”고 했다.

최근의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선 “한·미동맹이 전통적인 관계이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전혀 새로운 국면이다. 미국이 일본을 중심으로 서태평양 즉 동북아시아에서 질서를 재편해서 미국이 중심이 되고 일본이 전략적 파트너로서 한국과 필리핀, 호주 등을아우르는 동북아시아판 나토(NATO)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3회에 걸쳐 게재된다.

 

 

-‘테러방지법’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 정의화 국회의장이 법안을 직권 상정했는데 그 이유가 국가비상사태라고 했다. 그런 시국에 경찰청장은 외유를 떠나고 국가테러대책회의는 한 번도 안 열린 상태다. 그런데 국정원의 브리핑 한마디에 국가비상사태라고 했다. 이것이 의회일정을 중단시킨 것 아닌가. 국회의장이라면 의회주의의 보루이고 정부를 상대해서 견제하는 헌법기구의 최고 수장인데 이분이 의회주의적 장치, 말하자면 법안에 대한 점검과 토론이라는 기능을 중단시키면서 국가비상사태라고 하면 뭔가 자구적 수단이 있어야 된다.

야당의원들은 그 상태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는 없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마저 중단됐고 결국 테러방지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말았다. 국정원이 낸 이 법안은 여당의원이 발의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국정원 청부입법이다. 이게 다른 나라에서 안 해본 것이라면 몰라도 인권침해 폐단이 심해 미국에서는 이미 폐기된 법을 가져와서 국정원에 모든 권력을 달라는 것이다. 의회가 할 수 있는 자구적 수단은 ‘필리버스터(Fillibuster)’였다. 이제 남은 건 국민에게 법의 폐해를 보다 정확히 알리는 것뿐이다.

 

 

- 테러방지법을 적용했을 때 국정원의 감청대상은 어디까지가 되는 건가.

▲ 사실상 국정원이 영장 없이 테러방지라는 명목만으로 국민의 통신정보와 금융계좌 등을 무제한 감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테러단체 소속원이라든가 테러단체 소속원이 되려는 ‘테러위험인물’과 그 주변 50여명에게나 적용되는 법이고 모든 국민을 감청하진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범주 또한 모호하다. 테러위험인물이란 유엔이 정한 테러단체 이외에 ‘기타 테러를 선동하는 자’로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국정원은 ‘기타 테러’라는 의미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테러위험인물과 통신하는 모든 사람과, SNS에서 통신하는 모든 사람들을 감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테러위험인물의 정의도 문제지만, 국제기구의 국제행사 안전을 위한 활동도 대테러활동이고 테러위험 물질의 안전관리를 위한 활동도 대테러활동이다. 그것을 위해 또 무제한 감청을 할 수 있다. 국제기구단체장 주변 사람은 모두 감청대상이 되는 것이다. 만일 G2국제행사가 개최된다면 그 행사장 주변 사람들은 모두 감청대상이 된다.

허가법조항도 모호하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긴급감청이라는 게 있다. 먼저 감청을 한 뒤에 국제기구의 안전을 위해서 우선 해야 했기 때문에 허가서를 받을 수 없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법자체가 모호하다보니 감청하고 난 뒤에도 유야무야되기 십상이다. 더 심각한 것은 36시간미만 감청을 하다가 감청사유가 없어서 중단하면 또 그걸로 끝이라는 점이다. 허가서를 안 받아도 된다. 그러면 국정원이 감청을 했는지 안했는지조차 전혀 모르게 된다. 그 이전에 누군가를 감청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들을 위축시킨다. 내 전화를 국정원이 추적할 수도 있다면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불안사회가 되고 마는 것이다.

 

 

-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경제도 극악한 상황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갈등도 극에 달해있다.

▲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하원의원제도를 두고 있는데 이것이 민의원이다. 왕정국가의 경우는 귀족출신인 상원의원으로 구성된다. 요즘은 상원이 지역을 대표한다. 일반시민을 대변하는 건 민의원이다. 우리도 그런 제도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가라는 개념이 너무나 강하다. 국회의원 등의 용어도 그렇다. 또 재벌들은 사실 IMF를 거치면서도 그에 걸맞은 자체개혁 없이 문어발식으로 몸집을 키워 한국사회 경제의 명줄을 쥐어왔다. 그렇다보니 탄탄하지 않은 경제구조로 언제든지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매우 부실한 상황이 돼버렸다. 약자층이 급증하고 중간층은 매우 취약해졌다. 민주화 원년인 1987년에는 향후 중산층이 더 늘고 내수경제가 살아나 경제기반이 탄탄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어떤가. ‘낙수효과’로 경제적 부를 누리는 건 전혀 통하지 않게 되었고, 이미 입증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 계층의 벽이 견고하게 들어서있다. 특히 최고 상층부는 소수이고 아래층은 거대해지는 1: 99의 사회가 되었다.

게다가 사회적 갈등은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고 사회경제적 환경 또한 열악해졌다. 정치는 제 역할을 못한다. 국민의 사회경제적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의지조차 없는 집권층이나 지배세력들은 매우 냉전적인 사고의 틀에 갇혀 소위 ‘사회주의’ ‘좌빨’이라고 하면서 무조건 진영논리로 몰아간다. 사이비까지는 아니어도 부풀려진 진보나 보수, 보-혁 대결로 나뉘어 진영화 되었다. 정작 정치는 보수-진보로 대변되지 않는데 반해 그런 보-혁 대결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의제화 되어 있어서 사회문제가 제기되면 저건 보수다, 진보다 나누어서 치부해버리고 그것을 해결할 합리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냉전시대 해체 이후 기대했던 한반도 해빙과 남북관계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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