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테러방지법과 관련 이제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만이 최후의 수단이라고 했는데, 시민참여를 통한 권력 감시의 현실은 어떤 상태라고 보는가.

▲ 참여연대가 권력 감시와 권력 남용을 막는 시스템을 법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시민 참여와 행동을 통해 현실에서 계속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해왔는데, 한편으론 사실 우리가 그동안 뭘 해왔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우리는 나름 열심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시민권을 침해하는 감시와 도구들 이런 것들이 진화하는 사회적 상태에서 어떤 때는 역부족을 느끼기도 하고 투지를 느끼기도 한다. 이번에도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사실 이 법의 문제점에 대해서 그 훨씬 이전부터 거의 15년 동안 경고를 해오던 상황이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여태까지 막아온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이 너무 공부를 안 한다.

 

 

- 그렇다면 시민들이 참여할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 테러방지법과 그로 인한 필리버스터 정국으로 뜨거웠지만, 이를 시작하기 전까지 야당의원들도 이 법의 문제점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번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알 수 있듯 국민들은 권력이 너무나 많은 국민을 감시와 통제 수단을 통해 자기 입맛에 맞게 휘두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고 있다. 참여연대가 힘을 못 쓰더라도 시민의 자발적인 권력 감시 행동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테러방지법 반대 단체들이 모여서 시위하는 것보다 시민들이 스스로 댓글을 달고, 서명하고, 방청하고 하는 식으로 일어나야 한다. 또한 일부 크고 작은 독립 언론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시민들에겐 큰 힘이 된다. 시민이 행동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 권력과 자본이 지식층의 역할을 막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지식사회 즉, 대학사회가 대체적으로 자본에 종속되거나 포섭되어 있고 권력에도 포섭되어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엔 독립적인 싱크탱크가 얼마 없다. 있다면 모두 국책연구원인데 한동안 민주정부 내에서도 독립적인 연구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프로젝트를 맡는 국책연구기관이건 대학연구원이건 정부에 쓴 소리를 하면 바로 밥줄을 끊는다. 게다가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못하고 대학 전체가 소수 독점자본이나 정부에 ‘경제적 명줄’이 잡혀 있는 상태다. 그러니 제 소리를 못 낸다. 대학교수도 실적에만 매달려 정부프로젝트에 참여를 못하면 연구 활동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연구 활동에 사상의 자유나 탐구의 자유 같은 면이 보장되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정부 프로젝트나 국방부 프로젝트가 연구 활동을 제약한다는 연구논문도 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연구 활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행위가 노골적이면서 포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일고 있다. 신분 계층 상승의 단절 사태를 가리키는 것인데.

▲ 현재 한국사회에선 일부 상류층인 재벌과 법조계, 전문가 그룹 등의 세습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도 대학을 나와 고시를 보거나 다른 방법을 통해 계층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좋은 대학을 가려면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야 한다. 지금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사람 대다수는 강남출신이다. 고위 공무원이나 대기업 고위임원들은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이다. 이런 악순환이 돌고 돈다. 계층상승이 안 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상류층 전문가 집단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부자 출신의 양심적인 전문가 층이 있다 하더라도 약자들의 삶 자체를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듣거나 해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총선 얘기를 잠깐 하자. 선거구가 획정됐다.

▲ 사실 이번 선거구 획정 배경은 헌재판결 때문이다.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에 비해 농어촌은 인구가 흩어져 있다. 서울 한 구의 인구는 웬만한 농어촌보다 3~4배 많다. 원칙은 1대 1인데 최대로 치더라도 2대 1로 조정한 것이 헌재 판결이다. 그렇게 되면 농어촌 지역구 수가 확 줄고 도시 지역구 수는 늘어난다. 농어촌 지역은 인구도 인구지만, 면적이 넓은 지역구의 특성상 너무 줄이면 안 된다는 반응들이다. 그래서 여야가 타협안을 통해 농어촌 지역구 수를 조금 늘려 잡으면서 헌재의 판결을 존중하는 모양새다. 지역구 수가 늘어나는 상황이지만 헌재판결을 존중해야 한다. 사실 이 문제를 좀 더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무작정 농어촌 지역구를 특별지역으로 선정해 늘려주는 방식보다 공정한 선거를 위한 보다 근본적이고 전체적인 개혁이 필요한데 이 안은 여야가 검토조차 안했다. 지역구 수는 200석이니까 지역구에서 과반수를 얻어도 100석 내외다. 그래도 정당투표에서 40%를 차지하면 120석이다. 비례대표는 2석 정도 가져가는 것이다. 연동하면 그렇다. 지금 제도는 40석을 얻으면 40%를 비례대표가 가져가고 지역구에서 과반수 이기면 전체 과반수 의석을 가져가는 형식이다. 연동을 하면 정당이 얻은 득표수만큼 의석수를 가져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농촌 지역구도 그대로 배분이 된다. 비례대표 1번 후보에 농어촌 대표나 농민 대표, 어민 대표, 전남 대표, 영남 대표를 앞세워 얼마든지 지역대표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역구를 늘리자는 것이 본질적인 해법이다. 표의 등가성도 살리고 사표(死票)도 없애며 과두정당이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는 방식의 선거를 없앨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런데 여야가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여론 핑계를 대며 개혁안을 미루는 것이다.

 

 

- 경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GNP(국민총생산)도 2만 달러에서 정체돼있다.

▲ 한국은 재벌기업의 수출이 양적으로 늘고 FTA를 맺어 국부(國富)가 늘어도 국민이 돈을 벌기는 어려운 시스템이다. 고령화로 인한 가난과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낮은 최저임금, 그리고 내수기반이 약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의 ‘낚시효과’를 말하지만, 정작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매우 취약한 경제가 되는 이유다. 경제 체질이 약해지고 기업들도 수출에 한계가 오면 안에서 물건을 사줘야 하는데 돈이 없어 물건을 살 사람이 없다. 또 재벌이 아무리 고용을 늘린다 해도 한계가 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서비스산업에서 고용이 일어나야 하지만 국민들이 소비를 해주지 않으면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렇다보니 GNP가 10년간 2만 달러에 머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 서비스산업은 발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치관련 업종과 외국관광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즉 가진 사람을 위한 고급 서비스산업이란 특징 때문에 자영업자 등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를 보호하는 제도가 안정적으로 마련돼 있는 반면, 한국은 너무 재벌 편중적이어서 자영업자들이 버틸 수가 없다. 작년만 해도 자영업자 도산 비율이 최근 5년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들까지 내수창출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중적 한계에 봉착했다.

 

 

- 복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권의 복지관련 대선 공약이 거의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 소득을 얻는 젊은 층이 많아야 하지만, 연금으로 살아야하는 노인층이 급증하면서 경제적 문제가 크다. 국가는 연금을 충분히 제공할 능력이 없고, 복지혜택이 어려운 계층의 경우 국가가 아니라 가족이 복지를 해결해주어야 하는데, 부모세대인 노인계층은 자식이나 손자에게 지속적으로 복지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부모세대는 국가로부터 혜택 받는 것은 없고 자녀들이 결혼하면 집값을 주고 전세자금도 줘야하는 구조인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는 가진 모든 것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과거 출산율이 너무 높아 인구과잉으로 취직이 어렵다는 판단에서 저출산 사태를 불러왔다. 이는 집단적인 인구조절 행동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싼 사교육비 때문에 애를 낳아도 가르치기 힘들다. 여기에 자살률도 OECD 국가 중 1위다. 출산율도 최저다. 출산율이 적다는 것은 사회적 자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지금 사회적 자살행위가 진행 중이다.

 

 

- 일자리 문제도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 우리나라 사회복지시스템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작동을 않거나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더 낫게 개선해야 한다. 또한 기업이 모든 사람의 일자리 창출을 할 수는 없다. 그러면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세금을 들여서 공공부문에 투자를 하는 것이 사실 양질의 일자리다. 공무원을 왜 하는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공부문 지출을 늘려야 한다. 그저 복지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일자리를 늘리는 성장, 고용이 뒷받침되는 성장이 필요하다.

국가가 집을 사주는 개념보다는 모두가 대여해서 쓴다는 개념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정부는 재정적 이유로 미루고 집값을 낮추지 않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부동산 버블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집값이 갑자기 폭락하면 빚내서 집을 산 사람들이 모두 도산하고 가계부채는 폭발할 수준이 된다. 왜 이런 사태가 생겼는가. IMF 당시 재벌 등 정부의 정책실패로 인한 문제를 개별 가계가 카드빚을 떠안는 형식으로 전가시켰다. 지금 재벌들은 천문학적인 가계부채 만큼의 사내유보금을 갖고 있지만 돈을 못 써서 망하고, 국민들은 빚이 너무 많아서 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한 상태다.

 

 

-잠깐 다른 문제로 시선을 돌려보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도 빼놓을 순 없는데.

▲ 제주해군기지 공사는 이미 끝이 났다. 그러나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 일본 자위대도 해외출병이 가능해지는 가운데, 현 정부는 미국,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제주해군기지는 한ㆍ미ㆍ일 해군의 주요거점이 된다. 이는 지속적으로 중국과 갈등을 빚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일본 오키나와와 함께 제주해군기지는 동북아시아 군사긴장의 핵심 축이 될 수도 있다.

이걸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제주해군기지는 앞으로도 제주도민들은 물론 우리 국민들에게 매우 민감한 문제다. 이것은 우리나라를 지키려는 기지가 아니라, 미ㆍ중 군사적 패권싸움의 갈등 속에 우리 스스로를 끼워 넣는 자충수다. 바둑에서도 패싸움의 말 노릇을 자초한 것이다. 우리는 부산과 진해, 평택에도 여러 해군기지가 있다. 그런데 왜 서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미ㆍ중과 일본세력이 맞부딪히는 곳에 해군기지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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