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여행스케치> 부산시 기장

 

광활하고 멋스런 도시, 부산. 부산에서도 기장은 부산 도심의 복잡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고요하다고 해야 할까. 고층 건물과 아파트들이 밀집한 해운대에서 시작해 대변항으로 이어지는 동부해안도로는 그 고요함의 중심에 있다. 이 길은 수려한 자연미가 으뜸이다. 길 양편으로 바다와 들판이 이어지고 그 들머리에는 달맞이고개가 있다.

 

▲ 영화 친구 무대인 대변항 언덕

 

동양의 몽마르트 언덕

달맞이고개는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으로 1km에 걸쳐 카페들과 갤러리, 바다와 송림이 자리를 잡았다. ‘동양의 몽마르트 언덕’으로 불릴 정도로 언제 찾아도 정감이 넘친다. ‘선탠로드’ ‘문탠로드(Moontan Road)’ 같은 둘레길 푯말도 곳곳에 붙어있다. 이 달맞이길은 밤에 더 운치를 풍기는데, 포근함이 흐르는 네온사인의 행렬과 저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치장한 음식점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더 이채로운 것은 집집마다 바다 쪽으로 창을 내달아 전망을 한껏 살렸다는 점이다. 창을 낸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마음에 드는 집에 들어가 창가에 앉으면 그림 같은 정경이 펼쳐진다. 연인들이 소원을 빌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언덕 위의 ‘해월정’과 추리작가 김성종씨가 세운 김성종추리문학관은 이 달맞이고개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 갖가지 모양의 등대가 있는 서암 앞바다

가슴으로 만나는 바다 전망대

달맞이고개를 넘으면 아름다운 해변마을, 청사포가 나타난다. 지명이 퍽이나 인상적인 이 항구는 조용한 바다 정취를 즐기려는 이들에게 그만이다. 방파제 위로 올라서면 짙푸른 봄 바다가 가슴 가득 안겨온다. 그 바다 한쪽으로 보이는 작은 등대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청사포에서 다시 해안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활처럼 휘어 돌아간 송정해변을 지나 바닷가 바위 절벽에 우뚝 선 사찰을 만난다. 해동 용궁사. 이름이 말해주듯 신비함이 깃든 절이다. 108계단하며 사찰로 들어가는 절벽 위 돌다리는 경건함이 흐른다. 발아래로는 파도가 용틀임을 하고 경내에 서면 동해바다가 시원스레 바라보인다.

 

▲ 바다와 접해있는 용궁사
▲ 용궁사와 붙어있는 수산과학관
▲ 월드컵등대

 

용궁사는 고려 우왕2년(1376년)에 나옹화상이 창건했다. 풍광이 워낙 뛰어나서 금방 발길을 돌리기가 아쉽다. 그러다 보니 고즈넉해야 할 절이 방문객들로 인해 소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침 일찍 방문하면 수평선을 뚫고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다. 용궁사 위쪽, 바위 벼랑(시랑대)에서 바라보는 푸른 바다는 막힌 가슴을 뚫어준다. 시랑대(侍郞臺)는 용왕의 딸인 용녀와 스님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용궁사와 맞붙어 있는 국립수산과학원은 우리나라 수산업(어업)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수산과학관을 따로 마련해 두고 있어 가족 동반 여행객들이라면 찾아볼 만하다. 매주 월요일은 쉰다.

▲ 기장 앞바다가 시원스레 바라보이는 시랑대

해안길은 계속 이어진다. 그렇게 쭉 올라가면 아담한 포구 하나를 만나게 된다. 기장읍 연화리의 서암포구다. 전형적인 어촌 마을로 옛 이름이 ‘야르포’ 또는 ‘여리개’였다. 마을 앞 바다에는 ‘섬디’라고 불리는 바위섬이 떠 있다. 마을 사람들은 갈매기들의 쉼터인 이 자그마한 섬에 나가 파래나 미역을 딴다. 특히 서암항에서 대변항으로 가다보면 이름이 특이한 등대가 줄줄이 이어진다. 젖병등대, 닭벼슬등대(차전놀이등대), 월드컵기념등대, 장승등대, 야구등대가 그것들이다. 이들 등대는 어디서 보나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정경을 연출한다. 젖병 모양의 젖병등대는 큰 젖병과 작은 젖병이 나란히 서 있는데 큰 젖병은 등대고 작은 젖병은 우체통이다. 이 등대는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낮은 우리나라의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세워놓았다고 한다. 야구공과 글러브, 배트로 모양을 낸 야구등대엔 올림픽 야구 첫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친필 사인이 새겨져 있다. 대변항이 빤히 바라보이는 바닷가 한쪽엔 기장 8경의 하나인 죽도가 떠 있다. 기장 앞바다의 유일한 섬으로 사진 포인트로 제격이다. 죽도는 연륙교와 이어져있는데, 다리 옆으로 각종 해산물을 파는 ‘천막촌’이 들어서 있다.

 

 

▲ 어부들이 기장미역을 손질하고 있다

멸치와 미역의 주산지

서암포구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엔 멸치와 기장미역의 주산지인 대변항이 자리하고 있다. 해안을 따라 들어선 횟집들과 부둣가에 정박해 있는 멸치잡이 배들, 그리고 항구를 가득 메운 사람과 자동차들을 보노라면 생동감이 절로 솟구친다. 멸치잡이 배들은 보통 새벽 5시경에 출어하여 오전 9시가 되면 배 안 가득 멸치를 싣고 돌아오는데, 이때부터 이른바 ‘멸치 털기’가 시작된다. 멸치 잡는 그물인 ‘후리’를 일사불란하게 털어내는 장면을 지켜보노라면 숨어 있던 에너지가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을 받는다. 구성진 노동요와 함께 멸치 터는 것을 ‘멸치 후린다.’고 하며 이러한 작업은 6-7명이 한 조가 되어 하는 힘든 노동이다. 멸치 후리기는 조업을 마치고 귀항하는 어선의 도착시간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대개 오후 3시 이후에는 볼 수 있다. 포구에서는 일 년 내내 멸치 배들이 머무르고 멸치를 말리거나 다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봄멸치 가을전어’라는 말도 있듯이 멸치는 풍부한 칼슘을 함유하고 있는 영양의 보고이다.

 

▲ 대변의 맛, 멸치무침회

 

돌미역도 대변항의 명물이다. 잎이 두껍고 넓으며 파릇한 빛깔에 윤기가 자르르 흘러 어디에 내놔도 높은 값에 팔린다. 기장미역은 국을 끓이면 흐물흐물해지지 않고 쫄깃한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대변항에서는 기장멸치축제가 열린다. 싱싱한 멸치회도 맛보고 기장 앞바다에서 잡은 멸치를 싸게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어부들이 그물에 잡아온 멸치를 해변에서 털어내는 멸치털이와 직접 어선을 타고 멸치를 잡는 어부체험도 할 수 있다.

 

 

▲ 봄이 찾아온 임랑해변

수채화 같은 싯푸른 바닷길

대변항이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언덕에 오르면 영화 ‘친구’ 촬영장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영화 속 어린 주인공 네 명이 헤엄치며 놀던 곳이다. 지그재그로 뻗은 해안길은 죽성리 월전-황학대-일광해변-임랑해변-고리원자력본부로 이어진다. 마을 이름을 따서 두모포 왜성이라고도 불리는 죽성리 왜성은 임진왜란 때 서울에서 후퇴한 왜군이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쌓은 성이다. 이 왜성에 올라서면 죽성리 해안 절경이 시원스럽게 바라보인다. 왜성 아래에는 6그루의 노거수가 마치 한 나무처럼 모여 용틀임을 한 해송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음력 정월 대보름날 이곳에서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낸다. 왜성에서 내려와 바닷길로 접어들면 기암과 어우러진 드라마 <드림> 세트장과 황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것 같은 ‘황학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황학대는 고산 윤선도가 7년간 유배생활을 하던 곳으로 해송으로 둘러싸인 야트막한 언덕이다. 윤선도는 이곳에서 세월의 시름을 달래며 6편의 시를 남겼다. 일광해변과 이웃한 이을포(학리마을)는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의 실제 무대로 소설에 등장하는 강송정과 느티나무, 당집 등이 남아있다.

 

▲ 죽성리 해안가에 서 있는 해송,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 일광해변
▲ 죽성리 해안가에 서 있는 해송,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기장땅 끝머리의 임랑해변은 아름다운 송림(松林)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波浪)에서 각 한 자씩 따서 임랑(옛 지명은 임을랑(林乙浪))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고운 모래밭이 1㎞ 이상 넓게 깔려 있고 푸른 노송과 탁 트인 바다는 수채화 같은 정경을 보여준다. 옛사람들은 바다와 접한 이곳 임랑천의 맑은 물에서 놀다가 밤이 되어 송림 위에 달이 떠오르면 사랑하는 님과 함께 조각배를 타고 달구경을 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고 한다.

 

▲ 고요함이 흐르는 장안사 경내
▲ 장안사 뒤편의 대숲길
▲ 장안사 뒤편의 대숲길

놓치면 아쉬운 곳들

임랑해변 인근에는 철따라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안사가 있다.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은 중건과 중수연대가 명확히 전하는 부산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다포식 건축물이다. 봄기운이 자욱하게 깔린 절집 뒤편으로는 그윽한 대숲길과 계곡길이 나 있어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철마면 옥녀봉 계곡의 홍연폭포도 기장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명소다. 연못(홍연) 위에 걸려 있는 물줄기가 찬란한 햇살을 받아 무지개를 만드니 무지개폭포로도 불리는 이유다. 기장군 문화관광 홈페이지(http://tour.gijang.go.kr)참조. <수필가/ 여행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51)

가는 길=해운대에서 동부해안도로를 탄다. 해운대-달맞이고개-청사포-송정-용궁사-연화리-대변항-월전마을-31번국도-일광해변-임랑해변. 경부고속도로 원동 나들목-벡스코 사거리-송정방향 좌회전-송정터널-시랑리-대변항. 부산울산고속도로 언양분기점-장안나들목-일광나들목-기장나들목. 대중교통: 부산지하철 동래역에서 183번, 해운대역에서 39번, 181번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기장읍내에서 대변항을 거쳐 서암포구, 수산과학관, 용궁사, 해운대를 잇는 시내버스가 수시로 있다.

숙박=대변항, 청사포 쪽에 전망이 아름다운 모텔이 많다. 오즈모텔(722-9030), 기장빕스모텔(724-1377)등. 송정해변 쪽에 있는 베니키아송정호텔(702-7766/www.songjunghotel.co.kr)은 한국관광공사가 인증한 숙박시설이다.

맛집=대변항 주변에 멸치회와 무침, 멸치구이, 멸치찌개를 파는 식당들이 몰려있다. 수현횟집(721-8888), 광진활어횟집(721-2122) 등. 기장읍 시랑리에 가면 이곳의 명물인 곰장어짚불구이를 맛볼 수 있다. 흔히 '꼼장어', '꾀장어' 등으로 불리는 곰장어는 볏짚으로 굽기 때문에 본래의 맛이 살아있다. 기장곰장어집(721-2934), 돌담장횟집(722-9332)이 유명하다. 기장시장에 있는 못난이식당(722-2527)은 갈치구이와 갈치찌개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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