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펐던 그 순간, 물대포가 사람 관통하던 바로 그 순간”
“가장 슬펐던 그 순간, 물대포가 사람 관통하던 바로 그 순간”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6.03.15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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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리얼리즘 한국 미술’의 아버지, 임옥상 화백-3회

<2회에서 이어집니다.>

▲ 임옥상 화백

 

-김영삼 문민정부 때 민중예술이 많이 쇠퇴해졌다고 평가하곤 합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민중예술이 다시 부활하는 느낌인데요. 가나 인사아트센터에서 ‘리얼리즘의 복권’이라는 주제로 민중예술로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기도 합니다.

▲참 오랜만이죠. 미술관에 그림을 전시하는 것이. 이번에 전시를 하면서 느낀 것인데, 그 동안 부자들에게 ‘노리개’를 공급하는 작가를 거부하는 삶을 살다 보니 좀 새로운 관점이 느껴져요. 예전에는 예술이, 내 그림이 돈으로 소유되어 창고에서 썩어가는 게 너무 싫었어요. 작품은 항상 사람들과 함께 호흡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좀 바뀌더라고요. 30년 만에 그림을 꺼내서 보니까 감회가 남달라요. 다른 생각이 들어요. 아, 매번 봐야 무슨 재미야? 이렇게 묵혔다가 다시 보니 또 다른 멋이 있구나, 하는 통찰력이 생긴 거죠. 작품이라는 것이 그 자체가 가지는 고유의 속성과 매력이 있습디다. 오랫동안 보지 않다가 다시 보는 것도 괜찮더라고요.

 

 

-전시회에선 ‘물대포’를 주제로 한 작품이 전시됐는데요. 전시된 작품 중 과거작인 ‘귀로’, ‘땅4’ 외 이 작품은 신작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인가요.

▲저는 작품에 있어서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동시대성’이거든요. 그림의 존재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동시대성이다, 그걸 놓치면 안 된다, 항상 함께 가야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소통이 되어야 하지요.

소통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욕을 하는 것도,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소통의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바른 소통이 있겠지요. 한마디로 하자면 ‘열린 소통’입니다. 만인과 함께 같이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죠. 민주화가 실현되려면 소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모리배들이 말하는 소통은 암세포를 발현시키는 거예요. 반면 열린 소통이 있어야 우리 생태계가 건강하게 돌아갑니다. 소통은 정치는 정치대로, 미술은 미술의 방식으로, 문학은 문학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30년 만에 꺼내놓는 내 작품이 과연 동시대성을 획득했느냐,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었지요. 지금 이 순간을 그려야 내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입증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스스로 반문하고 답을 내놓았어요. 이 그림으로 응답한 것입니다. 바로 ‘물대포’지요.

최근 우리가 가장 슬펐던 바로 그 순간, 소통이 막히고 물대포가 사람을 관통하던 그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저에겐 동시대성입니다. 사실 새로 만든 작품 중에서 두 작품을 가져갔다가 이 한 작품만 걸었어요. 나머지 한 작품은 ‘너무 세다’는 거죠. 지금 현실이 참 이렇습니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작품을 보면 정말 열려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 많습니다. 특히 상암동 하늘 공원 정상에 설치된 ‘하늘을 담은 그릇’ 같은 작품이 그런데요. 보기만 하는 작품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올라가 전망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 전남 구림 마을에 설치한 흙과 돌 그리고 감나무로 만든 조형물이에요. 이 작품 만들 때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 손자, 손녀 다 와서 흙 한 줌, 돌멩이 하나하나 같이 얹으면서 작업했어요. 엄청난 보람을 느꼈죠. 함께 땅을 다지고 땀을 흘리며 같이 만들었죠. 같이 한다는 기쁨, 세월의 때를 묻혀가면서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함께 살아가는 예술이 진정한 예술입니다, 저에게는.

저에게 예술이란 인간과 자연, 그러니까 세월이 같이 만들어주는 거예요. 상암동 ‘하늘을 담는 그릇’도 그런 개념이죠. ‘야, 작품에 손대지 마!’ 이런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때가 묻어가면서, 그렇게 같이 공생하면서 조화롭게 존재하는 거죠. 오래된 것이 더욱 아름답다, 저는 그런 것을 추구합니다. 아이들이 올라타고 하면서 자연과 인간이 동화되는 작품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 구림마을에 만들어진 '세월'
▲ 가나아트센터 출품작 '귀로'

 

 

-그런 것이 늘 얘기하던 ‘건강하고 열린 소통’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열린 소통’을 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전 윤리, 윤리성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윤리는 남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지요. 나의 양심과 내가 본 나, 그 사이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바로 그게 제가 생각하는 윤리성이고요. 전 제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최고의 윤리라고 생각하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작품에 ‘불’이 보입니다. 어떤 작품인가요.

▲가나 인사아트센터에 건 작품 주제가 ‘물’이잖아요. 지금 광화문에선 ‘물대포’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우리는 또 ‘불’과 싸워야 했습니다. 바로 ‘용산 참사’에요. 지금 작업하고 있는 것은 ‘물대포’에 이은 ‘불대포’입니다. 연작 개념이죠. 동시대성을 이야기했는데 아쉽게 제가 용산참사 당시 작품을 하지 못했어요. 이번 작품은 그 당시 작품을 하지 못 했던데 대한 미안함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대형 작품을 하려고 해요. 프라도미술관에 전시된 파블로 피카소의 1937년 작 ‘게르니카’를 보고 느낀 점이 있어요. 충격적이었죠. 이 작품은 무려 350cm의 작품이에요. 폭이 776.6cm에 달하죠. 진귀한 경험이었어요. 아, 이건 상징적으로 같은 크기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은 저만의 ‘제2의 게르니카’에요. 그 때 느꼈던 대형 작품에 대한 경외감, 진귀한 경험을 이번 화폭에 담을 예정입니다. 또 시리아 난민 등 국제 문제도 시급하게 대두되고 있지요. 국내 문제 포함해서 이제는 세계의 아픔에도 함께 동참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을 해보려고 해요.

 

임 화백은 작업실을 지난해 서울 평창동에서 이 곳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삼송테크노밸리로 옮겼다. 아파트형 공장이라 입구가 분명치 않다. 잘못 찾아 들어간 건물 뒤편에는 많은 예술 조형물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 공원을 조성해서 시민들이 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아이와 부모들이, 지팡이에 의지해서 산책하는 노인들이, 아이들이 누구나 와서 자유롭게 볼 수 있고 미술에 대해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서다. 그런 희망 아래 요즘 개인적인 작업에 몰두하면서 새삼 행복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작업했으니 앞으로 남은 생의 일부는 ‘내 작업’에 몰두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주말에도 작업실에 온다.

“나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고 있어요. 여기선 아이디어도 막 샘솟아요.”

개인 작업장에서 내 그림을 그리며 행복하다는 임 화백. 그렇게 소소한 행복을 꿈꾸는 그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고통 받는 이들을 대변하며 그들의 입장을 미술로 말하는 최일선에서 가장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육신의 나이는 66세지만 그 안의 그 누구보다 젊고 뜨거운 피가 그의 작품을 통해 재창조되고 있고 지금도 우리 삶으로 투영되고 있다. 그는 우리 시대 민중미술의 대부이자 영원한 소통의 예술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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