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안자이 미즈마루 지음/ 권남희 옮김/ 비채

 

1998년 직물회사 NUNO는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반짝반짝(키라키라), 와글와글(자와자와), 폭신폭신(후와후와) 등, 직물을 표현하는 의성의태어를 주제로 여섯 권의 책을 기획하여 유명 작가 및 사진가에게 테마북 작업을 청탁했다.

그중 무라카미 하루키가 선택한 말은 '후와후와'. 구름이 가볍게 둥실 떠 있는 모습이라든지, 소파가 푹신하게 부풀어 있는 모습이라든지, 커튼이 살랑이는 모습이라든지, 고양이털처럼 보드랍고 가벼운 무언가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사실 하루키는 NUNO의 신선한 기획을 전해 듣고 어렵지 않게 '후와후와' 편을 선택했다고 훗날 이야기했다.

늘 쓰고 싶다고 마음속에 담아둔, 어린 시절의 친구 '단쓰'라는 고양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후와후와'라는 말에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 단쓰와의 추억을 실어나른다. 시인 듯 여백을 담은 담백한 말에, 동화인 듯 쉽고 예쁜 말들로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후와후와'는 지금은 환갑이 훌쩍 넘은 작가의 소년 시절의 풍경을 불러낸다.

“무슨 사연인지 꽤 나이를 먹고 우리 집에 왔던 ‘단쓰’. 내 어릴 적 좋은 친구였던, 그 늙은 암고양이 이야기를 언젠가 꼭 쓰고 싶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다.

이렇게 시작된 '후와후와'는 이후 팬들의 열띤 요청으로 단행본으로 출판되면서 오랜 지기지우이자 최고의 작업 파트너인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과 컬레버레이션을 이룬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더 스크랩' 등 표지 혹은 삽화로 콤비를 이룬 적은 많지만, '후와후와'와 같은 그림책 작업은 처음이었다.

“고양이 이야기이니 고양이를 그리면 되겠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표현해야 하는 것은 그 ‘후와후와’한 느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참 어렵더군요. 날마다 ‘후와후와’만 생각했습니다. 후와후와, 후와후와 하고”라며 안자이 미즈마루는 낯선 작업에 잠을 설치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안자이 미즈마루 특유의 느슨한 듯 자유로운 그림체가 함께하는 사랑스러운 '후와후와'가 완성됐다.

특별히 한국어판은 기분 좋은 독서를 위해 폭신폭신한 촉감의 스펀지 양장으로 제작됐다. 지난 2014년, 안타깝게도 안자이 미즈마루가 별세함에 따라 '후와후와'는 명콤비 ‘하루키&미즈마루’의 유일무이한 그림책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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