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그를 보고 있노라면 밥투정 하는 아이가 생각난다. 슬프다. 그러나 흥미롭기는 하다.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아이였던 것 같기도 하다. 똘똘한 아이가 한 명도 없어서 걱정이 태산인 집안에 어느 날 똘똘한 아이가 들어왔다. 입양이다. 집안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죽이고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핀다. 괜찮다. 제법 괜찮다. 이제 아이는 그 집안의 희망이 되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었고, 앞으로도 계속 해주겠다는 생각을 한다.

 

▲ 고추모종은 잘도 자란다.

 

그런데 아이가 좀 이상하다. 시간이 갈수록 이상해진다. 할아버지의 수염을 잡고 흔들어대다가 쑥 뽑아버리는가 하면, 살이 너무 쪄서 걷지도 잘 못하는 개를 데려와서는 고기밥을 많이 주라고 식구들을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러자 가까운 이웃과 친척들이 들고 일어났다. 저런 이상한 아이가 무슨 희망이냐고 손가락질을 해대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쫓아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까지 한다.

그러자 아이는 자존심이 몹시 상해서 밥상을 높이 쳐들고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자신을 의심하는 이웃과 친척들을 단칼에 쳐내지 않으면 밥상을 확 던져버리겠다는 것이다. 이에 집안사람들은 놀라서 우왕좌왕하는데, 아이는 집안사람들의 그런 모습이 즐거워서 남몰래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뭔가 기분이 나빠서, 또는 자신의 원하는 바가 충족되지 않아서 문득, 갑자기 숟가락을 내던지며 “나 밥 안 먹어”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홱 돌아앉아 버리는 아이의 밥투정은 사실 매우 정치적이다. 밥투정에서 승리하면 그 아이는 엄마를 휘어잡는 절대군주가 되지만, 실패하면 억울하다고 징징대기나 하는 애물단지 울보 꼬마로 전락해 버린다.

“그래, 굶어라, 굶을 테면 굶어라. 네가 굶으면 비용이 절약돼서 엄마는 좋기만 하지 뭘.”

 

▲ 불을 때는 집이 점차 늘어난다.

 

엄마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와 버리면 그 아이는 끝난다. 엄마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아이는 엄마를 다루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그냥 덮어놓고 밥숟가락을 던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를 완전히 휘어잡지는 못하고 치마꼬리를 붙잡고 다니는 식의 절충을 한다. 그런데 드물게는, 아주 드물게는 엄마를 완전히 장악해서 노예처럼 부리는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의 전략은 그 아이의 머리에서 나왔다기보다 몸에서 나온다고 보는 게 아마 정확할 것이다. 이른바 타고난다는 그것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한 김종인 씨의 절대군주를 연상케 하는 권위의식은 아마도 타고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에게서 배운 게 그것이었듯이, 권위주의라면 항상 첫손에 꼽히는 박정희 체제에서 태어난 김종인 씨는 신군부라는 이름의 새로운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본격적으로 성장했고, 꽃까지 피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의 언행은 하나도 민주적이지 않다. 민주적이지 못한 시대와의 타협으로 일관한 삶을 살아 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절대군주도 그런 절대군주가 있을까 싶을 정도인 그가 최종 결제를 해서 발표한 비례대표 명단 상위 순번을 보면 그가 주창하는 경제민주화의 실체가 무엇인지 매우 의심스러워진다.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비례대표란 교과서에도 나온 바와 같이 힘없고 사회적 배경도 없는 이른바 취약계층을 대변해서 그 계층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도입한 제도이다. 물론 대중과의 소통을 낯설어하는 전문가 집단을 의회에 진출시켜 좀 더 다양한 방면의 국가발전을 꾀하자는 목적도 있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역시 취약계층 배려가 목적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의 전도사가 총책임자로 있는 정당에서 비례제도의 취지를 깡그리 무시하는 인선을 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사상이 매우 의심스러운 무슨 의사회 회장이라든가 비리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군 참모총장, 논문표절 논란을 빚고 있는 교수 등등 힘도 좋고 백도 두터운 이런 사람들은 굳이 비례라는 이름으로 예우하지 않아도 그 집단의 권익 정도는 스스로 알아서 잘 찾아먹고도 남게 되어 있다. 나라의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뒷담화에 따르면 비상대책위원 몇 명이 비상시국을 이용해서 자기 사람 몇 명을 상위순번에 슬쩍 밀어 넣었다고도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 해도 책임은 여전히 총지휘자인 위원장에게 물어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이 땅에 힘도 없고 배경도 없는 취약계층은 너무도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지경이지만, 그 중에서도 농업 분야는 매우 민감해서 함부로 언급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농자천하지대본 어쩌고 하는 입에 바른 소리 들먹일 필요조차 없이, 먹지 않으면 죽게 돼있는 사람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 집단이라 할 수 있는 농민이 취약 계층화 돼버렸다는 현실 자체가 사실은 피를 토할 노릇이긴 하지만, 과정이야 어떻든 상황은 그렇게도 비상하게 돼버렸다.

이런 비상한 사태를 비상하게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 동분서주해야 하는 게 국가의 의무이고 정치인의 할 일이라는 것쯤은 초등학생도 다 안다. 그런데 실제상황은 어떻게 흘러 왔던가. 국가의 백년지계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역대의 정부는 식량이야 뭐 돈 주고 사다 먹으면 된다는 일 년짜리 정책을 일관되게 꾸준히 펴 왔고, 몇몇 개별 정치인들은 그나마 뭔가 생각이 좀 있다는 포즈로 야 이거 심각한데, 심각한데, 소리나 중얼거리다가 슬쩍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다.

식량을 다른 나라에서 돈 주고 사다 먹으면 된다는 정부의 정책이 옳다고 치자. 자동차나 스마트폰 팔아서 그 돈으로 쌀도 사고 고기도 사오고 한다고 치자. 만약에 흉년이 들어서 팔 것이 없다고, 안 판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정부의 답변은 그럴 리가 없다는 정도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애당초 답이 없는데 무슨 대책을 내놓을 수 있으랴.

 

▲ 사람이 없어 비워둔 농촌 집

 

어쨌든 돈 주고 사다 먹으면 된다는 정부 정책에 의해 우리나라의 농촌은 지금 멀쩡한 논밭에 관상수를 심거나 대규모 묘지를 조성하는 일로 날밤을 지새다시피 한다. 농촌의 이러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뭔가 대안을 연구해야 할 농업협동조합은 그러면 어떠한가. 이것도 돈, 저것도 돈, 모든 것을 그저 돈, 돈, 돈으로만 환산하는 정부 정책이 계속되다 보니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농협은 이미 수술조차도 불가능할 정도로 괴물화 돼버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선 농협의 조합장 중에는 농사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조합장 선거판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정도는 금방 드러난다. 입후보자들은 대개 자신의 농정경험이라든가 자기만의 특정 브랜드를 내세우기보다는 농협근무 경력이 얼마인가를 맨 앞에 내세운다. 어떤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협에 사환으로 들어가서 농협대학을 다닌 다음 농자재 판매 부서에서 몇 년, 유통 부서에서 몇 년, 금융에서 또 몇 년, 보험을 얼마나 유치해서 무슨 상을 탔고, 주유소 운영을 아주 잘해서 이익을 엄청나게 많이 낸 공로를 높이 사서 전무로 승진했다는 등등의 경력을 화려하게 내세운다.

가뭄이나 홍수 때문에 눈물 한 번 흘려본 적이 없는 이런 사람들은 금융이나 유통 등 이른바 돈 되는 일에나 열심을 바칠 뿐 농업의 근본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못한다. 관심을 갖고 싶어도 아는 게 없으니 관심을 둘 수가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덩치만 엄청나게 커져버린 농협은 이미 공기업화 돼버렸고, 농협관료를 배출하는 인큐베이터화 돼버렸다.

이런 심각한 현상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늦기 전에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일군의 농민들이 있어서, 더불어민주당 내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위원회라는 이름의 농업관련 작은 기구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단 한 명이라도 농민이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인식 하에 그들은 전국적으로 후보를 공모하고, 바쁜 일손을 뒤로 하고 달려온 후보들의 열정적인 정견발표와 투표를 거쳐서 한 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에서 공천관리위원회에 올렸다.

 

▲ 산골마을의 우물

 

그런데 김종인 체제 하의 비대위는 농민 후보를 당선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후순위로 밀어냈다. 그것조차도 세 개의 단위로 그룹을 정하는 이상한 꼼수를 부렸다. 제1그룹은 당선 안정권, 제2그룹은 당선이 될 듯 말 듯, 제3그룹은 당선이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예상되는 이 기상천외한 꼼수에 따르자면 농민후보는 중앙위원회의 순위 투표를 거친다 해도 당선 안정권으로는 들어갈 수 없게 돼 있었다. 당선 불가능인 제3그룹에 농민후보를 배치해놨기 때문이다. 영화 ‘설국열차’의 꼬리칸을 연상케 하는 이런 무지몽매한 아이디어가 어느 머리에서 나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권위주의 시대의 부산물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쨌든 최고의결기관인 중앙위원회가 마침내 열렸고, 중앙위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순위 투표는 당헌에서 보장하는 중앙위원의 고유 권한인데 그룹을 정해놓으면 이게 무슨 투표냐 하는 게 외침의 핵심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중앙위원들의 그런 문제제기를 김종인 위원장은 패권이라는 단 한 마디로 정리해 버렸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패거리 작당해서 아우성이나 치는 식의 권력 행사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너희들이 알아서 뭐를 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도도한 권위주의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사람들이 할 말을 잃고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김종인 위원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나는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 내일이라도 당장 그만두면 된다 하는 요지의 발언을 간헐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그만둘 만한 상황은 아닌데 그만둘 수도 있다는 발언은 영낙없는 아이의 밥투정 그것이다. 그리하여 아이의 엄마격인 문제인 전 대표가 비행기까지 타고 서울로 날아왔다. 아이의 밥투정 전략은 성공했는가? 일단은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정확한 내용은 아마도 선거가 끝나고도 한참 뒤에나 밝혀질 것이다.

 

▲ 오래 전의 작두샘

 

한편 김종인 위원장의 절대권력에 문제가 많다고 판단한 중앙위원들은 일단 ‘꼬리칸’부터 없애자는 데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장시간의 토론과 정견발표를 거친 다음 한밤중에 비례대표 순위 투표를 했다. 투표를 끝내고 개표를 한 결과는 놀라워서, 꼬리칸에 배치돼 있었던 농민 후보가 당선 안정권인 상위 순번으로 올라오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변을 낳고야 말았다.

중앙위원 중에 농민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농민을 1번으로 밀었을까.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공당의 중앙위원이란 그야말로 각계각층에서 모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굳이 직업을 따지기로 하자면 전 현직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들이 절반 이상이다. 그런 사람들이 사전에 무슨 약속을 한 것도 아니련만, 비밀투표에서 농민 후보를 맨 앞줄로 밀어올린 것이다. 그렇게 마치 무슨 기적처럼 당선권에 들어간 농민후보 김현권씨는 말하고 있었다.

“촌놈이 농촌에서 개고생 하다가 서울까지 올라왔으니 따뜻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준다는 마음들이 모인 게 아닌가 싶네요.”

그 말을 듣고 눈시울 붉히지 않은 사람이 누구 있을까. 어쩌면 김종인 위원장은 눈시울 같은 거 붉힐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보기에 농민후보란 아무래도 가당찮은 운동권에 불과한 존재일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 양반의 속내야 어떻든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알았고, 배웠다. 민주주의란 다른 게 아니라 한 사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찾아내는 이심전심의 마음들이 응축되어 표출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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