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겨울 코스모스' 51회
'소설-겨울 코스모스' 51회
  • 이율 작가
  • 승인 2016.04.0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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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상경한 김숙영과 김경훈은 의붓아버지, 그리고 자신들의 친모인 김미자와 생활을 하기 시작한 일주일 뒤부터 악몽같은 생활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현재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낙인이 찍혀 감옥에 수감중인 김경훈에 따르면 정확히 일주일 뒤부터 김기춘의 김숙영에 대한 성폭행은 시작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숙영은 성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피어나는 꽃이었을 뿐이었다.

나중에 이를 안 김경훈은 참다 못해 가출, 전국을 떠돌며 방랑 생활을 했으며 그가 지니고 있는 몇 개의 강간·폭행·절도 등 전과도 바로 그 때 붙여진 것으로 확인됐다.

김숙영에 대한 의붓아버지의 만행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나중에는 친모인 김미자 역시 이 끔찍한 범행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묵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숙영은 몇차례 임신, 그때마다 김기춘과 김미자의 강요로 중절수술을 받았는데 놀라울만한 것은 한번은 아이를 임신, 출산하기도 했다는 것. 그 아이는 현재 전북 고창에 있는 한 고아원에 맡겨져 있으며 본지는 며칠 전 직접 현지에 내려가 아이의 신원을 확인하기도 했다.

본지가 김경훈의 진술을 토대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건 당일에도 역시 끔찍한 성폭행 사건이 김기춘에 의해 저질러졌다. 그동안 누적돼 온 천인공노할 행각으로 이미 삶에 대한 어떤 의욕도 갖고 있지 못했던 김숙영을 김기춘은 변태적인 방법으로 성폭행, 야욕을 채우려했다. 김숙영의 친모 김미자 역시 당시 사건현장에 함께 있었으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모르는 척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방에서 성폭행을 당하던 김숙영은 변태적인 김기춘의 요구에 반항하다 폭행을 당했으며 결국 살인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경찰조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김미자는 당시 부엌에 있었으며 다음날인 설날 사용할 쇠고기를 썰고 있었는데 김숙영은 그 칼을 빼앗아 김기춘을 살해한 뒤 이 광경을 목격하고 겁에 질려 경찰에 신고하려는 김미자까지 살해한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김경훈이 지목됐던 것은….

분명 신음소리였다. 그리고 그 신음소리의 원천을 확인한 경훈은 그냥 자리에 털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껏 잘 참아왔는데 갑자기 다리에 맥이 풀리면서 눈앞이 컴컴해졌다. 온통 어둠만이 경훈의 눈앞에 펼쳐졌고 어둠의 소리만이 귀에 들릴 뿐 세상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의식이 돌아온 찰라 경훈의 눈에 시뻘건 물체가 부시시 몸을 일으키는게 뜨였다. 바로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였다. 온 몸에 피가 가득한데 그녀는 그렇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잠시 옆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훑더니 이내 경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섬뜩한 빛이 경훈의 가슴을 스쳤다.

"너…이 놈."

느릿느릿하지만 분명하고 멀쩡한 말투. 그녀는 이제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그리고는 피인지 핏발인지 모를 선분홍색의 눈빛을 해가지고는 느릿느릿 경훈에게 다가왔다. 순간 경훈은 겁이 덜컥 났다. 분명 살아있는 자신의 어머니가 분명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는 백정에게 처형을 당해 아수라에 빠졌다가 그곳에서도 어기적어기적 도망쳐 나온 악귀인 것으로 비쳐졌다. 가까이 다가오면 올수록 확신은 더해갔다. 온통 피로 뒤범벅이 된 채 엉겨붙은 머리털. 몸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색의 어떤 옷을 입었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핏빛 투성이였다.

하지만 놀라운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멈추어져 굳은 피. 가까이 오면 올수록 그녀의 몸은 선명히 보였고 그럴수록 준오의 눈은 물체를 확연히 짚어나갔다.

느릿하지만 어떤 방해도 없는 자연스런 걸음걸이. 얼굴도 그랬다. 온통 피투성이에 잔뜩 찌그러져 있었지만 분명 어떤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맞다. 그녀는 그저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온 몸의 피는 순전히 남자의 몸에서 흘러나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더니 이내 피바다가 된 바닥 한가운데서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칼. 시뻘건 피가 잔뜩 묻은 고기를 썰던 칼이었다. 그리고는 경훈에게 향하던 발걸음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렸다.

분명 은회색이었을, 그렇지만 지금은 군데군데 녹이 슬어 버린 싱크대가 놓여있는 그 앞. 남자의 시체를 성큼 넘어선 그녀는 그곳에서 멈추어 섰다. 그 위에 두 뼘쯤은 돼 보이는, 경훈도 이전에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나무 도마가 있었다. 움푹 패어있는 가운데 부분. 여자의 행동을 줄곧 좇고 있던 경훈의 눈이 순간 흠칫했다. 바로 거기 시뻘건 고깃덩어리가 놓여있었던 것이다. 마치 살아있는 인육을 베어다 놓아 금방 김이라도 모락모락 피어오를 것 같이 생동감까지 느껴지는 고깃덩어리. 거기에는 이미 칼이 수차례 스친 흔적이 보였다. 쾅하는 소리가 경훈의 귀청을 갈랐다. 한껏 높이 쳐들려진 칼이 고기의 몸통 위에 내리쳐진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중얼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칼은 마치 신들린 무당의 그것 마냥 춤을 추듯 허공에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소리는 마치 발동기의 그것 마냥 점차 규칙적으로 집안에 울리고 있었다. 여전히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도 발동기 소리에 뒤질새라 볼륨을 높여가고 있었다. 엄청난 힘. 토막난 고기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꿈쩍도 않는 시체 위 피가 흥건히 고여있는 곳에 떨어진 고깃덩어리는 붉은 파문을 일으켰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미 도마 위에는 그것이 인육이던 우육이건, 고깃덩어리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칼질은 계속 되었다. 마침내 절정을 맛보려는 여인네의 그것 마냥 몸짓이 더욱 빨라졌다. 소리도 덩달아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몸이 한껏 뒤로 제껴지더니 이내 쾅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은 도마의 깊숙한 부분에 처박혀버렸다.

갑자기 정적이 온 집안을 감쌌다. 여인네의 가뿐 숨소리만이 거칠게 귀를 자극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축 늘어지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녀는 분명 헤아릴 수 없이 깊은 허탈감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경훈의 그런 예상은 금새 빗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중얼거림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이었다. 단말마처럼 여자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한마디.

"죽여야돼…이년."

그녀는 다시 몸을 홱 돌리더니 아까보다 몇 배는 더 선분홍색 핏발이 그득한 눈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경훈의 곁을 스친 그녀는 경훈의 존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경훈의 시선이 전화수화기를 거칠게 집어드는 여자를 좇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의식보다 빨리 몸이 움찔하고 움직였다.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입에선 어떤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시커먼 전화기를 집어드는 여자의 손이 클로즈업되었고 순간 눈앞에 시뻘건 칼자루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손을 뻗었다. 나무도마에 아주 깊숙하게 박힌 칼. 수 만년 바위에 꽂혀있다 아더왕의 손에 의해 세상에 나와 휘황찬란한 광채를 내던 엑스카리버 마냥 칼은 아주 쉽게 빠져나와 새주인을 만났다.

귀에선 윙하는 기계음만 언젠가부터 계속 되었고 그럴수록 칼을 잡은 경훈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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