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산림조합에서 운영하는 나무시장으로 소풍을 갔다. 갈 때는 한나절쯤 시간을 보내면서 먹을 것이 있으면 먹을 것도 사먹고, 그렇게 저렇게 놀다가 나무 몇 그루 사가지고 오리라 생각했다. 막상 가서 보니 건물은 우람하고 면적도 제법 되는데 사람이 없다. 관리하는 여직원 한 명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어쩌다 한 명씩뿐이다.

그러고 보니 나무들은 이미 싹이 나오고 있었다. 이런저런 기관들이 참석해서 벌이는 식목 행사는 한 달여 전에 이미 끝냈다고 한다. 정책적으로 지정한 공식적인 식목일은 아직도 여전히 4월지만, 지구 온난화 등으로 많이 더워져버린 뒤의 자연이 원하는 식목의 계절은 3월 즈음이라는 얘기이다.

 

▲ 나무시장에서...

 

그래도 아직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니어서, 사과나무 세 그루를 샀다. 나의 그녀가 사과를 좋아해서 사과나무를 선택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과를 따서 그녀에게 먹일 자신은 없었다. 복숭아가 익어갈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면 새들이 아침부터 떼로 몰려와서 죄다 쪼아버렸듯이, 딸기가 빨간 빛을 띠기 시작하면 또한 새들이 수시로 몰려와서 콕콕 쪼아댔듯이, 사과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무엇보다 집에 사과나무가 이미 두 그루나 있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따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안 할 것인가? 아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하는 속담을 굳이 상기할 필요도 없이, 나무를 심는 행위는 그 자체가 행복이요 즐거움이라는 경험을 나는 참 많이도 갖고 있었다. 과일이야 까짓 못 먹으면 어떠랴. 미래를 너무 크게 걱정하면 아무 일도 못 한다. 그렇다고 미래의 어떤 풍경에 대한 기대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꽃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과 꽃을 보았는가? 사과 꽃의 향기와 그 매혹적인 자태에 홀림을 당해 보았는가? 다소 엉뚱한 짓 같기는 하지만, 나는 가끔 나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놓고는 혼자 좋아서 그냥 배시시, 배시시 하는 투의 그런 웃음을 흘리곤 한다. 뭐랄까, 사과 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냥 행복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고나 할까. 한 마디로 말해서 나라고 하는 존재는 뭔가 나사 같은 것이 하나쯤 빠져버린 그런 인간인 셈이다.

사과나무를 심던 날 밤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무슨 영국신사 풍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었고, 그리고 마중 나온 사람과 정중하게 악수를 교환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중 나온 사람이 신기하게도, 희한하게도, 기가 막히게도 과거의 내가 한참 좋아했던 안철수였다.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무료로 배포하던 시절의 안철수를 사실로 나는 겁나게 좋아했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의 안철수를 나는 하나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내 꿈에 나타난 것이다. 아닐까? 내가 일방적으로 꿈속에서 그를 납치한 것일까? 아니다. 꿈의 상황을 미루어 보건데 그가 나를 초청했던 것 같다. 나는 영국신사 풍의 복장으로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었고, 그는 나에게 다가와서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으니까 말이다.

 

▲ 나무시장 본관

 

꿈은 바로 그 장면, 안철수가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미는 장면에서 끝났다. 꿈은 그렇게도 짧았지만, 꿈에서 깨어난 뒤의 기분은 매우 불쾌했다. 그 불쾌감의 깊이가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도 내 입에서 에이 씨,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깊었다. 그렇게도 집요한 불쾌감은 내 생애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겨우 가셔진 것은 또 하나의 꿈을 꾸고 난 뒤였다.

또 하나의 꿈, 그 세계에서 나는 양 어깨에 날개가 돋아난 한 마리 거대한 새였다. 그런데 이 새가 얼마나 큰지, 내가 내 몸의 끝과 끝을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발톱을 보고자 해도 발톱이 보이지 않고, 배꼽 근처가 간지러워서 뭐가 붙었나 하고 보고자 해도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그 새가 혹시 장자에서 말하는 붕새 같은 것이나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거대한 새가 되어 구름 속을 비행하고 있었고, 구름 속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보이는 것이어서, 오대양 육대주에 기거하는 거의 모든 인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인간 세상을 두루 관광한 나는 이제 좀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달은 너무 삭막하고 볼 것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고, 태양은 너무 뜨거워서 멀리 우회를 하고, 그렇게 지나고 또 지나서, 나는 마침내 안드로메다 성운에까지 이르렀다. 안드로메다, 사람들이 처음 발견했을 때 그것은 다만 하나의 별일뿐이었다. 그런데 별 치고는 좀 이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고, 또 보기를 되풀이했다. 급기야는 천체 망원경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망원경이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다만 하나의 별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사실은 수천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은하라는 것이 밝혀졌다. 바로 그것, 그 엄청난 은하계의 한복판을 나는 비록 꿈속에서일망정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뒤의 기분은 당연하게도 가볍고 상쾌하고 유쾌해서 노래라도 막 불러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만이 아닌 다른 꿈이 또한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매우 유쾌한 기분으로 냉이도 캐고, 달래도 캐고, 수선화도 구경하는 등 봄을 만끽하고 있었지만, 꿈속에서일망정 안철수와 악수를 하고 난 뒤의 불쾌감이 아직도 내 몸에 남아 있는 것이어서, 문득문득 내 몸에 마치 무슨 가래침이라도 붙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동백

 

사람이 뭔가를, 혹은 누군가를 많이 좋아하면 결국 많이 미워하게 돼있다는데 그 말은 확실히 옳은 말이다. 진실로, 진실로 나는 안철수를 많이 좋아했었다. 좋아할 뿐 아니라 사랑까지도 했었다. 물론 나 혼자의 일방적인 감정들이긴 하다. 그리고 오늘날의 나는 그를 극악하다는 표현을 써도 좋을 정도로 싫어한다. 그렇게 돼버리고 말았다.

오래 전의 어느 하루 강화도의 마니산 골짜기를 헤매고 있었다. 헤매던 중에 하얀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온 노인을 만났다. 그가 나를 유심히 보더니 대뜸 말했다. “공부할 때가 되었네.” 그 말을 듣고 나는 당연히 호기심이 일었다. 게다가 가슴까지 내려온 그의 하얀 수염은, 그것은 두 말이 필요 없는 신비스러움이었고, 믿음의 근거가 되어주었다.

그는 나에게 따라오라면서 앞장을 섰다. 그렇게 해서 따라가 본 그곳은 일종의 무당 양성소 같은 곳이었다. 몇 달 공부를 하고 서울의 미아리 같은데 가서 철학관 간판을 걸면 대성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말하는 대성이란 뭔가. 철학관 간판은 허름한 판잣집 같은 데다 걸어놓고, 살림은 타워팰리스 같은 데서 포르쉐나 비엠더블유 같은 외제차를 굴리면서 사는 것을 말함이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뭔가 대단한 단초라도 제공할 것 같지만, 기껏 점쟁이나 길러내는 그런 자칭 도사의 이미지를 나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의 안철수에게서 보고 있었다. 고도의 정치철학을 완성해놓고 나서도 모자랄 판에, 현실정치에는 별 관심도 없던 사람이 옆에서 남들이 대통령 해도 되겠다고 하니 문득 그럴까? 대통령을 해볼까? 하고 달려든 형국이라니, 오 맙소사, 무슨 이런 블랙코미디가 다 있는가. 보다 큰 문제는 그 뒤에 그가 보여준 행적들이다.

 

▲ 목련

 

새정치라는 단어 하나를 새로 만들어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이라도 되는 양 홍보를 하고 다니는데 바로 그것, 새정치라는 단어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뭔가 그럴싸한 것이 있는 것처럼 포장은 화려하고 연막도 제법 짙은데 연막이 가셔진 뒤에 포장을 벗겨보면 이게 뭐냐. 흰개미 서너 마리가 꼬무락거리는 형국일 뿐 다른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안철수의 이런 정치행태를 나는 일종의 다단계 피싱으로 파악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의 안철수는 유감스럽게도,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일취월장이 아니라 땅굴을 파고 안으로, 안으로, 자꾸만 안으로 들어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언행으로라도 전체의 이익을 상징하는 뭔가를 보여줘야 마땅함에도 그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느낌이었다. 국민 전체의 이익과 안철수 개인의 이익을 구별하지 못 하거나 혹은 안 하고, 안철수의 이익이 곧 국민 전체의 이익이라는 자가당착의 호수 속으로 풍덩 빠져서는 그냥 홀로 콧노래나 부르는 형국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절에 자기 집 마당의 곡물더미에 불을 질러버린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이른바 부잣집의 막둥이로, 모자란 것이 하나도 없고, 부러워할 만한 것 또한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같은 존재로 우뚝 서서 집안사람 모두를 호령하다시피 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큰형님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때부터 그의 존재감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엄마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투정을 부리고자 해도 손자를 보는 재미에 푹 빠진 엄마는 “저리 가서 놀아라”하기 일쑤였고, 작은 엄마처럼 정답기만 하던 형수는 자기 아이 젖 물리기에 바빠서 “아이 참 도련님 이러심 안 된다니까”하고 뿌리치기 일쑤였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녀석이 집에 불을 지르는 방식으로 식구들의 관심을 돌리려 했던 것인지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하늘도 높은 가을날의 어느 하루 마당에 쌓인 낫가리에 불을 질렀고, 이때부터 식구들의 관심은 온통 그에게 쏠렸다.

 

 

▲ 수선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안철수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패권 운운하면서 당을 뛰쳐나가 새로운 당을 만든 것인지 여부는 당연하게도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의 그런 파격적인 행보를 보면서 그 옛날 자기 집 마당에 불을 지른 그 막둥이 녀석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연상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당을 뛰쳐나가 새로운 당을 만들어야만 했던 이유가 너무 모호하거나 부실하기 때문이다.

패권이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패거리 작당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게 민주정치의 기본이 아니던가. 목적이 전체의 이익에 있느냐 일부의 이익에 있느냐를 놓고 따진다면 모를까, 패권 자체를 나쁘다고 비난할 이유는 없다. 자신의 패거리가 수적으로 열세라면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숫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열심을 바치면 된다. 그런데도 그는 패거리를 늘리기보다 새로운 집을 지어서 나가 버렸다. 돈이 없었다면 아마 그런 ‘짓’도 못했을 것이다.

이제 남은 답은 하나다. 그의 사전에서 정치란 대화와 토론으로 이견을 좁히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실현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는 것,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리라는 추론이 여기서 나온다. 이러한 추론이 어쩌면 추론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안철수는 총선 정국을 맞이하여 아주 대담한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선거연대는 없다. 끝까지 간다. 지역구가 안 되면 비례라도 최소한 한두 석쯤은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당선에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여기도 공천, 저기도 공천, 선거가 치러지는 곳에 사람만 있다면 공천장을 준다는 안철수, 그가 만든 당의 전략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침 바르기가 생각난다.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하고 그렇게 미리서 마구 침부터 발라놓는 그 침 바르기 말이다. 그런데 그런 침 바르기의 본거지가 하필 호남으로 정착되고 말았다.

 

 

▲ 오골제비꽃

 

호남 자민련이라니. 이 얼마나 치욕적인 평론인가. 명분은 그럴싸하게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 하면서 호남을 홀대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설득력 있는 근거는 하나도 없이 그냥 풍설만 난무할 뿐이다. 그리고 이 풍설은 죽는 순간까지 국회의원 명함을 갖고자 하는 토호들의 장난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리하여 총선 즈음의 평범한 대다수 호남 사람들은 완전히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편을 칭찬해도 욕먹고, 저편을 칭찬해도 욕먹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 이편을 욕해도 욕먹고, 저편을 욕해도 비난받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침묵이다. 계 모임이든 친목 모임이든, 운동 모임이든 산행 모임이든 모임에 나가면 너도나도 정치 얘기는 가능한 한 피하고자 한다. 어쩌다 정치 얘기 비슷한 것이 화제로 올라올라치면 “정치 얘기는 하지 맙시다”하는 고함 소리가 터진다. 가장 활발하게 떠들어대야 할 선거의 계절에 정치 얘기를 피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그냥 침묵으로 술이나 마시고 만다.

이게 대체 뭔가? 정치의식이 가장 높다는 호남의 정서를 이런 지경으로까지 만들어놓은 안철수는 대체 누구인가? 무엇인가? 선거의 계절이 지난 뒤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원성과 저주를 담아낼 만한 그릇이나 되는가?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