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지음/ 문학동네

살아간다는 일이란 원래 이토록 삶에 대한 실감을 하지 못한 채 흘러가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삶 안에 있음에도 그로부터 소외되어, 삶의 의미와 느낌 같은 것들에 쉽게 무뎌진다. 그것이 지나친 피로감 때문이든 혹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든,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들로 우리는 삶의 실감을 잃어버린 채 주어진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어쩌면 윤성희의 소설을 읽는 일은 바로 이 삶의 실감을 되찾기 위함이 아닐까. 2012년에서 2015년 사이에 쓰여진 열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다섯번째 소설집 '베개를 베다'에는 시간의 결과 마디를 살아나게 하는 이야기들이 넘실댄다.

소설집의 전반부는 '가볍게 하는 말' '못생겼다고 말해줘' '날씨 이야기' 등과 같이 어린 손자와 단둘이 사는 고모, 딸 하나를 잃은 어머니, 어쩐지 정신이 조금 없어 보이는 언니 등 연장자 인 여성을 관찰하는 여성 화자의 목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화자의 시선에는 죄책감이나 미안함, 연민 같은 확실하고 분명한 감정이 드러나는 대신, 과거를 조밀하게 기억하고 현재의 생활을 촘촘하게 이어나가는 삶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을 지나면, '휴가' '베개를 베다' '이틀' 등과 같이 어딘지 모르게 조금 모자라다 할 법한 남자들의 사연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다 큰 성인임에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차갑게 내뱉은 말에 매달려 자꾸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남자, 느닷없이 엑스트라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도 헤어진 남자, 또한 은퇴를 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결근하는 일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되짚어보면, 우리 안에도 역시 그 연약함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함께.

윤성희의 소설은, 작은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무늬로 굽이치며 흐르고 있기에 무척 촘촘하다고 느껴지지만, 사실 이 빽빽함 안에는 굳이 언급하기를 생략하여 생겨난 아주 환한 여백들이 있다. 이를테면, 어린 손자와 함께 사는 고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가볍게 하는 말'. 아마도 고모의 아들인 ‘태우 오빠’는 죽은 듯한데, 윤성희는 이에 대해 어떤 설명도 꺼내지 않는다. ‘나’가 기억하는 아홉 살 적의 태우 오빠―이른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일어난 그가 잠에서 깨어난 ‘나’에게 더 자라고 속삭이며 이불을 덮어주던 기억―의 부지런함과 다정함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말해주면서 말이다. 이처럼 누군가의 부재가 왜 발생한 것인지 함구하는가 하면, '베개를 베다'의 ‘나’가 갑자기 엑스트라 연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누군가의 결심이 어째서 비롯된 것인지 또한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어느 봄에서 시작해 다시 어느 봄으로 끝나는 이 소설집을 읽으며 우리는 “(유행하는 말로 해보자면) 윤성희 소설을 한 편도 안 읽은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단 한 편만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전혀 유행 따라 그저 해본 말이 아님을, 또한 “낮술을 마시고 길을 걸을 때처럼 무엇이나 환하고 선명하게 보이게 한다”(문학평론가 백지은)는 말이 그저 비유에 그칠 뿐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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