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시침’은 어디에?

5월의 화사한 햇살 아래에서도 한반도의 ‘평화시계’는 여전히 위기를 가리키고 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최근 제7차 당 대회를 통해 평화협정 공세를 강화했지만 오히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김 위원장은 평화협정을 언급하면서도 ‘핵보유국’임을 분명히 선언했다. 그만큼 비핵화에 응답할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김 위원장이 자신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가운데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광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보유와 평화협정 논란 속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는 한반도 분위기를 살펴봤다.

 

 

수면 위에선 ‘평화’라는 구호가 난무하지만 저 깊은 곳 불안으로 똘똘 뭉쳐진 용암은 여전히 끓고 있다.

북한은 최근 들어 ‘평화협정 체결’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련국들은 없다.

지난해 가을 리수영 외무상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한 이후 북한의 평화협정 공세는 줄기차게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서도 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최근 당 대회에서도 이를 확인했다. 하지만 핵실험과 동시에 나오고 있는 ‘평화협정’ 발언은 그 진의를 놓고 논란이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 성사 가능성이 낮은 평화협정 체결에 북한이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다양한 이유 때문이다. 우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60여년간 계속된 정전체제를 정리하고, 대미 관계 등을 정상화해 국제사회의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를 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북한으로선 한반도 냉전의 탓을 상대방에게 떠넘길 수 있는 입지를 마련하게 된다.
 

중국 ‘병행추진론’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당 대회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한국 정부와 미국은 이런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에 선비핵화-후평화협정 논의 원칙으로 대응해 왔다.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합의엔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함께 북·미 관계 정상화, 한반도 영구평화를 위한 협상 조항 등이 들어있다.

북한이 먼저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면 그에 따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이 사이에서 ‘병행추진론’을 주장해왔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의 병행추진이라는 절충론을 제안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평화협정 부각은 대북 압박을 통해 북한 핵을 포기시키자는 국제사회 논의를 분산시킬 수 있다”고 회의적인 입장이다.

미국은 병행추진론 가능성을 완전배제하지는 않지만 북한의 ‘핵보유국’ 발언이 계속되는 만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한편에선 중국이 핵 폐기 등을 의미하는 비핵화보다는 낮은 수준의 북한 핵 동결과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를 전제로 미국에 평화협정 논의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설이 나오기도 했지만 현실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도 논란이 적지 않다. 북한 비핵화에 모든 것을 연계해 대북 대화를 단절한 것은 결국 선택의 수를 좁힐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북한의 김 위원장이 이 문제와 관련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는데 반해 남한의 카드는 응답이나 반응 차원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5차 핵실험’ 가능성

실제로 김 위원장의 최근 행보는 ‘핵보유국’과 ‘비핵화 실현’, ‘평화협정 체결’ 주장으로 요약된다.

그는 5월 당 대회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 비핵화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와 관련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국제사회 앞에 지닌 핵전파방지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을 비롯 미국 등 관련국들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북한 체제에 대해 제재와 압박을 하지 않는다면 비핵화 의무를 준수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 당의 투쟁목표이며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우리 공화국 정부의 일관한 입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비록 지난날에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었다 해도 우리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는 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움직임이 ‘관계개선’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도발’이 동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초 북한은 4차 핵실험과 연이은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로 세계를 경악케 했다. 이에 맞서 국제사회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2270호) 채택과 대북 독자제재 등으로 맞섰다.

북한은 당 대회를 통해 굳어지고 있는 ‘김정은 체제’를 알리기 위해 5차 핵실험 등 전략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 ‘대선 후폭풍’ 주목

미국의 북한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는 5월 초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 “조만간 5차 핵실험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결심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안보리 결의 2270호의 전면적 이행과 대북 독자제재를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 강도를 당분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중국 주석까지 나서 중국이 안보리 결의의 ‘전면적이고 완전한 이행’을 거듭 약속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기름을 붓는다면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는 다시 전면으로 부상할 수 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도 여전히 치열하다. 중국이 북측으로부터 비핵화 약속을 받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핵동결을 끌어낸다면 협상의 주도권은 상당 부분 이동할 수 있다.

미국은 국내 정치의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을 이유로 ‘철수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일단 한국 정부는 경계선을 분명히 하는 입장이다. 외교부는 북한의 ‘책임 있는 핵보유국’ 발언에 대해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보여줬다”고 규탄하며 “북한이 핵 개발의 미몽에서 깨어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도록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선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를 행동으로 보여라”고 반박했다. 통일부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 남북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대남위협과 도발을 중단하고 진정성 있는 비핵화의 길로 나와야 할 것”이라며 “북한이 핵개발과 도발 위협을 지속하면서 대화와 협상을 거론한 것은 전혀 진정성 없는 선전공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이란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위한 열쇠는 한반도 평화통일에 있다”고 강조했다. 분위기가 악화 일로를 걷던 지난 3일엔 “동 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듯이 한반도가 평화와 통일로 가는데 있어 지금이 가장 어려운 마지막 고비”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 남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선언 등으로 박 대통령이 주장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이미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화약 냄새는 여전히 한반도 주변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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