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박상건의 치유의 섬과 등대여행기:경남 거제 서이말등대

▲ 해질무렵 서이말등대

경상남도 남해안에 위치한 거제도는 우리나라 섬 중에서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다. 거제도는 10개의 유인도와 52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거제도는 모래밭, 몽돌해수욕장, 동백숲과 소나무숲, 기암괴석해안 등 섬이 갖출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다 갖추고 있는 무한한 관광자원을 자랑하는 곳이다.

서이말등대가 위치한 일운면은 거제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면적은 30,500.7㎡이고 7345명의 인구가 거주한다. 6개 행정리와 17개 마을을 이루는데 주로 해안선에 마을이 분포한다. 옥녀봉, 북병산 등 산과 좁은 들판으로 이뤄져 있다.

 

▲ 서이말 지도

 

거제의 역사와 함께 해온 일운면은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시작된 신석기시대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일운면 일대에는 아직도 그런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이말등대 앞 바다의 내도(안섬)에는 조개무덤이 많다. 공고지와 좁은 해협은 높은 지대에서 보면 수심이 얕고 물이 맑아 바닥이 훤히 보인다. 패총은 사람이 먹은 조개의 빈 조개껍질인데 이런 것들이 바닷가와 어가에 지금도 퇴적되어 있다. 지세포와 소동마을에는 고인돌이 당시 삶을 짐작케 해준다. 대부분 주민들은 낚시 자망 통발 등 어업에 종사한다.

 

▲ 서이말등대 전경

끝없는 왜구 노략질에 고통 받던 거제도 어민들

고려 창왕 때까지 왜구의 침략은 누그러지지 않고 거제 지역 일대를 점거하다시피 하면서 많은 피해를 입혔다. 이 시기의 침입 사례를「고려사」에서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신축에 거제 남해현에 귀화하였던 왜구가 배반하여 그 나라에 돌아갔다.”
(공민왕 18년 1369년 7월)

“왜가 거제에 침범하여 노략질하니 전무 한원철이 배 1척을 포획하여 18급을 참하였다.”
(창왕즉위년 1338년 8월)

“왜가 진주 명진현에 침입하여 노략질하고 또 함안 동래 양주 언양 기장 고성 영선 진주 등의 장소를 불사르고 약탈하였다.”
(신우2년, 1368년 11월)
 

그렇게 고려 말 왜구의 침략은 조선 건국 초기의 과제로 남아 이종무의 쓰시마(대마도) 정벌로 이어졌다. 또한 일운면에 거주하던 백성들은 중앙부의 시책과 왜구의 침략 등으로 약 151년 동안 육지에서 서러움을 겪으면서 살아야 했다. 이들은 삼별초 항쟁군에 협조했다는‘반역자’로서 정든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 바람의 언덕

대마도와 가장 가까운 서이말등대

예로부터 거제는 국경의 섬, 군사적 요충지로 불려왔다. 그 가운데 지리적으로 일운면은 대마도와 인접하여 대외무역항으로 각광받아왔다. 날이 맑은 날은 육안으로 대마도를 볼 수 있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49.5km인데 서이말등대에서는 49km로 더 가깝다.

19세기 일본인들이 처음으로 이주 또는 어업활동을 벌인 곳도 서이말 옆 구조라에서 1893년, 지세포에서 1894년 때이다.또한 러일전쟁 직후 지세포와 구조라 등지는 일본해군 작전지역으로 묶여 어업활동을 제한받기도 했는데 중요한 어장 지역임을 감안해 일시 해제해주기도 했다. 그만큼 예나 지금이나 이 일대 해안은 매우 중요한 곳임을 웅변한다.

 

▲ 서이말등탑

 

국가지정문화재로는 해금강이 있다. 해금강의 원래 이름은 갈도(葛島)였다. 칡이 많다는 뜻인데 그래서 칡도라고도 불렀다. 강원도 해금강과 같이 아름답다하여 해금강으로 불리게 되었다. 해와 달이 이곳 바위 위에서 뜬다고 하여 일월관암(日月觀岩), 병풍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병풍바위, 신랑신부가 마주서서 전통결혼식을 올리는 모습과 같다하여 신랑신부바위, 돛대바위, 거북바위, 미륵바위 등이 있다.

동굴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통하여 크고 작은 바닷길의 문이 있어 십자동굴이라고 하며 북쪽과 동쪽에 있는 굴로 배가 서로 통하는 해상의 만물상 석문이 있으며, 남쪽동굴은 100여m의 동굴로 간조 때는 사람이 걸어서 지나갈 수도 있다. 흙 한 줌 없는 기암괴석의 절벽위에 서있는 작은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이를 천년송이라 부른다. 천년의 세파에도 청청히 살아온 해금강의 수호송(松)이다.

 

▲ 등대 가는 길

해금강과 팔색조, 그리고 해금강

풍란, 석란 등 희귀식물이 서식하고,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서불(徐市)로 하여금 동남동녀 3,000명을 거느리고 해금강에 왔다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도취되어 돌아가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글을 바위에 남겼으나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유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천연기념물로 아비가 있다. 아비는 바닷물에 살고 있는 물오리와 비슷한 새로 색깔은 짙은 회색으로 언뜻 보면 까마귀와 비슷하다. 전 세계적으로 아비류는 5종으로 분류되는데 주로 북극주변에서 번식하는 한지성(寒地性) 조류들이다. 대개 온대해안 지역에서 월동하는데 그중 1종은 매우 드물게 불규칙적으로 도래하고, 3종만이 우리나라 연안에서 관찰된다. 아비도래지의 구역이 당초 거제도 연안전역에서 2001년11월 9일 문화재청 고시 제2001-48호에 의거해 남부면 홍포 망산각 무인등대 해상 10Km 에서부터 일운면 서이말등대 해상 10Km까지로 육지를 제외한 바다부분 432㎢로 축소, 조정됐다.

 

▲ 바람의 언덕 등표
▲ 학동몽돌 해변

 

천연기념물 제233호 학동 동백림과 팔색조 번식지는 해금강으로 가는 국도변에 있다. 숲의 길이는 4㎞에 이른다. 그 숲속에 팔색조가 매년 6월 중순에 찾아와 아늑한 산세 안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팔색조는 새소리를 듣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소리가 특이하다. 팔색조는 세계적인 희귀조로 대만, 일본, 인도, 보르네오 등지에서 월동하다가 6월 15일경 바다를 건너와서 6~7월경에 산란을 한다. 남쪽의 극락조와 함께 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조(美鳥)라 할 수 있다. 문헌에는 팔색조라는 이름은 1917년 4월 황해도 장연에서 발견되었다하나 1850년 화란인 시볼트가 팔색조 한 마리를 잡아 일본인 동물상에 팔았다는 기록이 있어 세계에서 제일 먼저 소개된 팔색조의 산지는 우리나라인 셈이다. 학동해변에 자생하는 동백은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꽃이 피며, 꽃은 10여 일만에 낙화한다. 햇빛을 받으면 은빛을 발산하는 동백군림은 양봉업자들의 월동을 위한 곳이기도 하다. 꽃은 향기가 없는 것이 특색이며 색깔은 붉은 것이 많으나 흰 꽃도 볼 수 있다. 열매는 채취하여 기름을 짜 기계기름, 귀부인의 머리 기름으로도 사용했다.

 

▲ 지심도 해안
▲ 지심도 후박나무 노을

 

지심도 등 일운면에 분포하는 식물은 해국, 광나무, 털머위, 수국, 팽나무, 생달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비파나무, 치자나무, 머귀나무, 등나무, 누리장나무, 비목나무, 쥐똥나무,작살나무, 붉나무, 명아주, 조팝나무, 돌나물, 메꽃, 참나리, 일엽초 등 64과 114속 121종의 식물들이 분포한다.

서이말 일대에서는 횃불을 들고 멸치를 잡는 일이 성행했는데 어군을 유인하고 그물 일을 흥겹게 하기 위한 노동요로‘챗배노래’가 있다. 챗배는 횃불을 켜서 멸치를 모아 키 같은 들망이란 그물을 놓아서 고기를 잡는 배인데 이삼십년 전까지도 지세포 앞바다에서 성행하던 어로방식이다.

 

받아라
받아라
받아만

실어라
받어라
연방연방(빨리빨리)
받어라
자꾸우

받어라
방어라
물캉살캉(수면과 뱃전과 가지런하도록 멸치를 많이 잡아)

실어도라
(이하 생략)

 

▲ 서이말에 본 와현

 

고라니 뛰노는 숲길 끝자락에 자리잡은 등대

지세포에서 와현으로 넘어가는 큰 도로 고개에서 서이말등대까지는 5km이다. 다시 한국석유공사 초소 앞에서 부터 서이말등대로 가는 길은 산길이다. 이 산길은 동백나무 메밀잣밤군락, 굴참나무 군락, 소사나무군락, 곰솔군락, 생달나무 군락 등 총 11개 군락이 우거진 천연 상록활엽수림지대이다. 이 숲 구간으로부터 등대까지는 3.8km이다. 이 산에 국내 석유소비량의 23일분에 해당하는 총 4,750만 배럴의 원유가 비축돼 있다. 한국석유비축기지 숲길을 관통한 그 길의 끝자락 해안선에 서이말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등대로 가는 길은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인적이 드문데 야생동물들이 자주 목격할 정도이다. 이곳에 고라니 너구리 삵이 산다. 등대원들은 밤길을 가다가 갑자기 고라니가 길가로 뛰쳐나와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서이말’이란 지명은 땅 끝의 형국이 마치 쥐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쥐귀 끝’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이곳 토박이들은 서이말등대를 지리 끝 등대라고 부른다. 와현에서 산길로 가면 ‘길이 끝인 곳의 등대’라 하여 그렇게 부르다가 ‘길’이 경상도 사투리인 ‘질’로 발음되어 ‘질이 끝 등대’로 되었고, 그것이 다시 ‘지리 끝 등대’가 되었다고 전한다.

 

▲ 서이말등대와 사무실

 

서이말등대는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산 65번지에 있다. 장승포항에서 유람선을 타고 한려해상국립공원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해금강으로 가는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등대 아래 해안은 천연해식동굴과 기암괴석의 절경을 자랑한다. 서이말등대는 1944년 1월 5일 최초로 불을 밝혔다. 8.15 해방 직전 미공군기 폭격으로 파괴돼 1960년 5월 복구했다.

서이말등대는 백색원형 콘크리트구조물로 해발 228.4m 고지에 등탑 높이는 10.2m이다. 등대는 20초마다 1번씩 37km 밖에서 불빛을 볼 수 있도록 비추고 있다. 거제도지역을 항해하는 모든 선박에게 항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과 통영 삼천포 여수 거문도 등 남해안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들은 모두 이 곳 등대 불빛을 받는다. 서이말등대 불빛이 비추는 반경은 부산 영도 앞 주전자섬에서 홍도 등대 주변 12해리까지이다. 그 외는 공해상이다. 결국 부산에서 제주로 나아가는 이 구간의 항로는 국내 선박은 물론 국제선박까지 항해하는항로로 서이말등대 불빛은 남해안 항로를 너머 결국 태평양으로 뻗어가는 불빛인 셈이다.

 

▲ 외도풍경과 여행객
▲ 홍도 원격제어시스템

 

서이말등대에서는 홍도등대 원격제어 감시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홍도 정상의 등탑에 부착된 CCTV가 실시간으로 회전하면서 해안절벽 아래 해수면과 선착장, 갈매기들의 움직임을 탐지한다. 2001년 4월부터 위성항법보정 감시국(DGPS)을 운영하고 2006년 12월 등명기를 HY-610에서 KRB-375로 보강했다. 현재 3명의 등대원이 근무하는 데 소매물도등대와 근무지를 순환한다. 기상청에 시간별로 해상날씨를 통보한다. 특히 등대의 날씨 예측은 인근 외도 유람선 출항 여부를 결정짓고 수익과 직결된 탓에 매우 예민한 문제이다.

밤낮으로 적막한 숲길을 걸어 오가는 등대원들. 이런 길이 좋아 인근 주민들은 이 숲길을 아침 산책코스로 활용하기도 한다. 등대 아래는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33년째 등대원 생활을 하고 있는 최중기 서이말등대장은 풍랑에 휩쓸려 물에 빠진 낚시꾼을 구하기도 했다. 등대원은 불빛만 밝히는 것이 아니라 반사적으로 육안으로 여러 지형지물을 체크하며 선박과 사람의 안전에 늘 신경을 쓴다. 그리고 마을마다 명예등대장을 임명해 주민들과 연대감을 이어가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런 아름다운 등대를 방문하는 생각하는 여행자들의 발길은 1년에 2만 여명에 이른다. 거제시는 공곶이에서 서이말등대까지 둘레길을 설치, 등대를 찾는 여행자의 발길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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