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보물 그녀가 ‘잡놈’이 되고 싶단다
내 보물 그녀가 ‘잡놈’이 되고 싶단다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6.06.06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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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야생차만 찾아다닌다는 사람을 만났다. 그들 부부와 함께 선운산 골짜기에서 차 만드는 일을 하기로 했다. 함께 일한 날수가 열흘을 넘어서던 어느 하루 부인이 내게 말했다. 당신은 집에 보물을 두고 있다고. 보물을 보물답게 잘 간수해야지 안 그러면 안 된다고, 그 말을 들은 내가 보물? 하고 반문을 하니 부인은 이런 멍청이, 하는 투로 내 얼굴을 하-안참이나 보고 있다가는 이렇게 말했다.

“돈 좀 있으세요? 없잖아요. 유명인사 같은 명예 있으세요? 없잖아요. 그렇다면 젊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글쎄, 아니잖아요. 아무것도 없는 그런 중늙은이를, 응? 이런 어려움 저런 어려움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싹 무시하고 깔깔거리며 붙어 있는 여자를 보물이라고 하지 않으면, 응? 뭐가 보물이겠어요?”

 

▲ 가끔은 대낮에도 딸기를 찾아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렇구나, 하고 금방 설득되었다. 그렇구나, 그녀는 확실히 보물이구나. 그렇다면 이제부터 그녀를 보물이라고 불러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집에 돌아가면 막바로 보물아, 하고 부르겠다는 결심까지 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집에 들어갔을 때는 보물이고 뭐고 다 잊어버렸다. 잊기는 했지만 아주 잊은 것은 아니어서, 뭔가 있었는데 그게 뭐지? 뭐지? 하고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기를 몇 번이나 했지만 끝내 생각해내지 못한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들어서 꿈결이었던가. 아니면 잊어버린 그 생각이 너무 감질나게 안타까워서 계속 찾고 있던 중에 선잠이 들었던 것일까. 하여튼 잠자리에서 어느 순간 아 이것이다, 하고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잠에 취한 목소리로 “보물아”하고 부르며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돌아눕고 있었고, 나는 다시 보물아, 보물아, 부르기를 몇 번이나 하고 있었다.

그녀는 뿌리치며 돌아눕기를 몇 번이나 하다가는 “아이 참, 뭔 소리야, 웬수 같애”하고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웬수 같다’는 말은 그녀가 좋은 의미로 쓴다는 것을 내가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섭섭한 마음은 또 어쩔 수가 없어서 “자기가 보물인 줄도 모르는 멍청이 같으니” 어쩌고 혼자 속으로 꿍시렁거리기를 얼마나 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자기가 보물인 줄도 모르는 그녀는 인생 중년에 이르러 깨달은 바 있어 ‘잡놈’이 되고자 하는 새로운 꿈을 잡아놓고 있었다. 말을 제대로 하자면 ‘잡년’이라고 해야 옳겠지만, ‘잡년’은 어쩐지 욕 같고 ‘잡놈’은 어쩐지 스스로를 높여주는 표현 같아서 ‘잡년’이 아닌 ‘잡놈’으로 결정했다나 어쨌다나.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세상 모든 잡스런 것들을 다 알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요즘 별별 ‘짓’을 다하고 다닌다.

주말이면 관광지의 식당에서 음식 그릇을 나르기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된장찌개 같은 것들을 끓여내기도 하며, 그러면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온갖 이야기들을 마치 우표 수집을 하듯이 수집한다. 산으로 들판으로 쏘다니며 나물을 캐고 고사리를 꺾는 재미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지만, 어디서 누가 못자리 낙종 하는 일을 좀 도와달라 하면 달려가고, 심지어는 모내기 현장에 불려가서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 못자리 낙종현장에서

 

그리고 밤이 되면 끙끙 앓는다. 어깨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정강이도 아프고 발목도 아프고 도대체 안 아픈 데가 없다. 심지어는 잠에 취한 채로 고개를 한 번 돌리는 데도 끙, 끙 하는 신음소리를 마치 무슨 기합을 넣듯이 넣어야만 한다. 모내기 현장이든 식당이든 열두 시간 가까이를 서서 움직여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게 그녀는 자기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세상을 새롭게 열심히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덤으로 듣게 되는 온갖 가십성 이야기들을 그녀는 내게 열심히 들려준다.

“아유 나 미치겠어. 오늘도 새로운 소식이에요.”

“또 뭔?”

“가만 있어봐요, 가만 있어봐. 아무렇게나 막 까놓을 빅뉴스가 아니라니깐.”

그녀가 차에 올라타면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진다. 손짓 발짓에 고갯짓까지 마구 해대며 떠들어대는 엄청난 수다에 나는 그만 땅을 떠나서 하늘을 비행하는 것만 같아진다. 그러다 보니 운전인들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아이 좀, 손짓 좀 그만 해. 사고 난당게.”

“어머, 참 그렇네. 미안해요. 아이 참 그런데 말이에요.”

그녀는 매번 그 순간뿐이다. 미안하다고, 안 그렇겠다고, 자중하겠다고 금방 약속을 해놓고는 약속 따위 무슨, 하는 식으로 까먹어 버린다. 침묵의 약속은 중요한 게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일이다, 하는 투로 하다 만 수다를 연속극 식으로 다시 떨어대는데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알 수조차도 없게 마냥 이어진다.

그럴 때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거의 들을 수가 없다. 손짓이 안 들어가면 이야기의 맛이 떨어진다는 듯 끊임없이 손짓을 해대는데 그 손짓에 유혹당하는 순간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는 차로를 벗어나서 어딘가에 쾅, 하고 부딪혀버릴 게 뻔하다. 때문에 나는 그 손짓에 유혹당하지 않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악물고 긴장을 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이야기 도중에 “아까 내가 말했잖아요”라고 뭔가 확인이라도 할라치면 나는 아까 무슨 말 했지? 하고 의아해 해야만 한다. 가끔은 “아이고 그놈의 손짓 좀 그만해라”하고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끔일 뿐이다. 내가 만일 짜증을 버릇처럼, 습관적으로 부리게 되면 그녀는 필경 “뭐 이런 감각 없는 남자가 다 있나”하고 속상해 하며 입을 꾹 다물고 눈도 꾹 감아버릴 게 뻔한 일이고 보면, 나는 결국 그녀를 데리러 갈 때마다 생명을 건 모험이라도 나서는 것처럼 비장한 각오를 해야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 차 만드는 곳에서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할 말이 많다. 그녀와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무려 열두 시간인데 어찌 할 말이 없겠는가. 게다가 야생차 부부는 천생연분이라는 용어가 진부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사이가 좋은데 그 세계관이며 인생관 또한 깊고도 넓어서 보고 듣고 생각할 것들이 참 많다. 그 많은 것들을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그녀의 엄청난 에너지에 내 에너지가 압도당했다고나 할까, 하여튼 나는 내 말을 할 틈을 찾지 못하고 그녀의 폭발적인 수다를 응, 응, 하면서 그냥 듣고만 있게 되었다.

“아이 글쎄 주인아줌마가 말이에요. 아저씨랑 그 미친년이랑 떡 치는 소리에 놀라서 깨었다가는 그만 그 장면을 봐버렸다는 거지 뭐에요.”

나의 보물인 그녀의 에너지는 이제 여기까지 왔다. 나는 처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그 ‘떡 치는 소리’라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다. 그녀가 말하는 떡 치는 소리라는 것이 남자들의 입에서 가끔 나오는 그 ‘떡 치는 소리’가 맞는가? 아닌가? 그런데 그 뒤로 계속 이어지는 그녀의 얘기는 그 소리가 그 소리인 게 분명하다고 증명하고 있었다.

세상에, 떡 치는 소리라니. 과거의 그녀라면 아마 다른 데서 그런 식의 표현을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인격적인 모욕을 당했다고 분해할 것이었다. 하지만 ‘잡년’ 아니 ‘잡놈’이 되고자 결심을 굳힌 뒤의 그녀는 떡 치는 소리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내 앞에서만 그런 ‘야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세월이 얼마나 흐른 뒤에는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아 그것들 떡 치는 소리가 말야” 할 것이 거의 틀림없고 보면, 그녀의 그런 표현을 듣고 보일 사람들의 표정이 나는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것이다.

아무튼 뭐 그렇다. 광광지에서는 아마 일반생활 공간에서는 감지하기 어려운 특수한 에너지가 흐르는 모양이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할 것이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이 날마다 바뀌고, 뜻밖에 부딪히는 눈빛과 눈빛의 낯선 스펙트럼 혹은 새로움의 발견 같은 것들이 무시로 일어나는 현장이 관광지이고 보면 자기도 모르게 끌리는 사람을 발견해내는 건 너무도 자연스럽다.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 벌어지는 연애행각은 굉장히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어서 소문은 금방 좍 퍼지기 마련이다.

 

▲ 맑은날 아침에

 

그러니까 육 개월 전에 한 쌍의 부부가 고창의 관광지를 찾았던 모양이다. 그들 부부는 고창이 너무도 마음에 든다고, 떠날 생각을 안 하고 민박집에 방 한 칸을 잡아놓고 남자는 아예 취직까지 했다. 그리고 부부는 날마다 밤이면 식당에 들러 술을 마셨다. 여기저기 아무 식당이나 막 가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한 식당만을 찾았다. 급기야 그들 부부는 식당 주인남자와 의형제를 맺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느 하루 남편이 그만 죽어버렸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던 중에 전봇대를 들이받고 즉사했다. 남편 옆에 앉아 있던 아내는 왼쪽 팔뼈가 열세 조각으로 분리되는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남자가 심근경색으로 사고를 냈다고 추정했지만, 여자의 성격을 알고 있는 몇몇 주변 사람들은 부부가 차 안에서 싸움을 하던 중에 남자가 그만 충동적으로 자살을 해버렸다고 해석했다.

어쨌든 남자는 죽고 여자는 삼 개월 동안이나 입원을 해야 하는 중상을 입었다. 치료비 또한 막대했지만, 만취상태의 운전이고 보니 보험회사에 지불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이 막대한 치료비를 식당 주인 남자가 자발적으로 해결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여자가 깁스를 한 상태로 퇴원했을 때는 아예 방도 한 칸 내주었다. 그렇게 그들의 이상한 동거는 시작되었고, 그리고 주인아주머니는 어느 하루 잠결에 옆방에서 들리는 신음소리를 듣게 된다. 신음소리뿐만이 아니라 한밤중에 화장실을 갔다가 두 남녀가 목욕하는 장면까지 목격하게 된다.

너무도 놀라서 숨도 못 쉬고 두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은 채 사태의 핵심을 파악하고자 노력하던 아주머니는 마침내 두 사람을 불러 앉혀놓고 물어보았다. 마누라가 옆방에서 자고 있는데도 그런 짓을 벌이는 너희들의 배짱은 어느 나라에서 수입해 온 것이냐,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이냐, 주인아주머니의 이런 질문에 여자는 놀라운 답변을 쏟아내 놓았다.

“저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아저씨를 좋아했어요. 아저씨도 물론 저를 좋아하셨어요. 미치고 환장할 정도로 저희는 서로를 좋아했어요. 그치만 아내가 옆에 계시니까, 참고 또 참았던 것일 뿐이에요. 얼마나 더 참아야 하나요? 죽을 때까지요? 그러면 그냥 죽지 뭐하러 살아요?”

 

▲ 비가 내리는 날 아침에

 

여자의 이런 대범한 발언 앞에서 주인아주머니는 아무 할 말이 없게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여자를 당장 내보내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 생각은 곧 바꿔야만 했다. 만약에 여자를 내보내면 남편이 밖에서 그 여자를 만날 것 같아서였다. 두 발 달린 짐승이 무슨 짓을 못할 것인가 말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주인아주머니 본인의 입을 통해서 밖으로 조금씩 새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관광지 내의 상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었다. 여자가 식당 일에 적극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오는 손님 가는 손님들에게 인사나 하는 정도였지만, 차츰 종업원들에게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계산대를 장악해 버렸다. 현금 출납 업무를 손아귀에 움켜쥔 여자는 이제 아르바이트 종업원들의 임금까지 멋대로 조정해 나갔다.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 종업원은 시급을 살짝 올려주고, 마음에 안 드는 여자 종업원은 손님이 적었다는 이유로 일당을 깎아버렸다.

나의 보물인 내여자 그녀는 그 여자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녀는 비록 돈만을 목적으로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여자의 행태는 참을 수가 없었고, 그리하여 결국 식당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말았다. 식당 주인아저씨와 그 여자의 관계가 어디까지 어떻게 진행될지 귀추가 매우 주목되는 바이긴 하지만, 그들의 치정 문제가 너무 불쾌한 냄새를 풍겨서 더 이상은 견뎌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녀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손짓 발짓은 물론이고 음성변조에 표정의 변화까지 사용 가능한 모든 표현수단을 동원하는 형식의 수다를 떨어대는 것이어서, 운전대를 잡고 나로서는 그녀의 넘치는 에너지와 관심의 폭이 한편으론 존경스러우면서도 경이롭고, 또한 웃기다 싶으면서도 불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것이었다.

물론 수다스러움이 그녀의 모든 것은 아니다. 그렇게 수다스럽던 그녀도 집에만 들어오면 싹 변해버리는 마술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아침이면 그녀는 천상의 여인 아니 선녀가 된다. 요즘은 딸기가 익어가는 계절이라서 잡동사니 농법으로 기르는 우리 집 마당에 딸기가 여기저기 숨어 있는데 익은 딸기를 찾아다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도 우아하고 신비롭게 느껴질 수가 없다. 맑은 날이나 비가 내리는 날이나 가리지 않고 아침이면 무조건 작은 바구니 하나를 들고 이쪽저쪽 두리번거리며 조용히 걷는 그녀의 발걸음은, 그것은 두 말이 필요 없는 선녀의 ‘포오즈’로 내게는 보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정말로 보물은 보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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