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비채

옥타비아 버틀러는 SF의 프레임을 전복시킨 작가다. SF는 인간의 상상력을 아무 제약 없이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임에도, 마치 백인 남성의 전유물인 것처럼 인식된 채 성별과 인종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뽐냈다. 하지만 옥타비아 버틀러는 그 장벽을 딛고 올라가 우뚝 섰다. 1976년에 첫 작품 '패턴마스터'를 발표한 이래,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머쥐며 자신만의 독보적 위치를 확립한 것이다.

‘흑인 여성’이라는 태생적 약점은 오히려 강점이 되었다. 인종 문제를 기반으로 하는 다수의 작품에는 어떤 백인 작가도 감히 알지 못하던 세계가 담겼고, 작가 자신이 여성이자 페미니스트였기에 젠더 문제를 작품 속에 완벽하게 녹여냈다. 버틀러는 2006년 돌연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SF계의 ‘그랜드 데임’이라 불리며 칭송받고 있다. 

1976년 6월 9일은 다나의 생일이었다. 약혼자 케빈과 동거를 시작한 다나는 짐 정리로 분주하던 와중에 갑작스러운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진다. 몸을 일으킨 곳은 1815년 메릴랜드 주의 숲 속이었다. 그곳에서 호수에 빠진 한 소년을 발견해 구해낸 다나는 몇 분 뒤 다시 1970년대로 돌아온다. 당황하는 것도 우왕좌왕하는 것도 잠시였을 뿐, 이내 또 과거로 끌려간다.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일이 당연시되던 시대, 1815년. 언제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나는 한 명의, 혹은 한 마리의 노예로서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과거의 세상에서 만난 소년(루퍼스)이 자신의 조상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킨'은 타임슬립을 하며 100여 년의 시공간을 오가는 흑인 여성 다나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인종, 노예, 젠더,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권력과 인간의 근원적 감정의 문제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 독특한 작품은 출간 즉시 독자와 평단의 이목을 끌었고, 오래지 않아 옥타비아 버틀러의 최고 흥행작이자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다. 타임슬립과 노예.인종 문제라는, 결 다른 모티프 간의 결합은 뜨거운 반응을 촉발하며 미국에서만 45만 권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SF로는 이례적으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것은 물론, 수십 년째 각종 북클럽에서 필독서이자 베스트 추천 소설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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