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그토록 집요하게 열정적으로 암컷을 탐하던 수컷 고양이를 우리 집 마당에서 더 이상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마치 한 십여 년쯤 드나든 처갓집에라도 온 것처럼 당당하게 고개까지 뻣뻣하게 쳐들고 다니던 녀석이 느닷없는 무슨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발길을 뚝 끊었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이 문제는 생각하면 할수록 오묘해서 새로운 생각거리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 옳지 옳지 달아나 보렴

 

어쨌든 우리 집 마당은 이제 긴장감 없는 일상의 평화가 찾아들었다. 검은 고양이 야옹이가 짝짓기에 몰입하고 있는 동안에는 외부에서 들어온 다른 고양이들을 보면서도 못 보는 척 용인하던 골드 녀석은 이제 본격적으로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다른 고양이가 들어와서 밥그릇을 노리면 위협적인 소리로 경고를 하고, 그래도 안 들으면 날카로운 발톱이 붙은 발바닥으로 상대의 뺨을 탁탁 치는데 그러면 신기하게도 침입자는 별다른 저항을 안 하거나 혹은 못하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다가 홱 돌아서서 달아나 버린다.

골드 녀석의 그런 활약은 검은 고양이 야옹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로 여겨지는 것이어서, 그 모양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도 뿌듯할 수가 없었다. 명실상부한 가족이, 식구가 되었다는 증표로써 그만한 것도 아마 없을 터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골드 녀석이 그렇게 침입자들을 물리쳐주지 않는다면 검은 고양이 야옹이는 먹을 것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냥 굶어죽을 것처럼 여겨졌다. 짝짓기까지 다 끝낸, 그러니까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고양이 야옹이 녀석의 성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골드 녀석과는 달리 검은 고양이 야옹이는 먹을 것을 집요하게 탐하거나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전혀 없었다. 사람의 손길을 썩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쥐를 잡아온다거나 개구리를 쫓아다니는 등의 공격적인 자세를 취해 보이는 법도 없었다. 고양이 두 마리의 성격이 달라도 그렇게 다를 수 없었다. 그렇게도 세계관이 다른 고양이 두 마리를 나의 그녀는 잘도 훈련을 시켜내고 있었다.

“얘들아 나와, 나와, 마중 나가야지. 마중 나가야지, 얼른, 얼른.”

내가 밖에서 일을 끝내고 마당으로 들어서면 그녀는 그렇게도 요란을 떨면서 한달음에 달려 나온다. 그러면 고양이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 나오는데 골드는 뒤에 바싹 붙어서 쏜살같이 달려오는 반면 검은 고양이 야옹이 녀석은 뭐랄까, 나는 임신한 몸이라서 몸이 무거워요, 하고 시위라도 하는 듯이 느릿느릿 마치 꼼짝도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나와준다는 투로 따라 나온다. 그것을 본 그녀는 짐짓 짜증스럽다는 투로 호통을 친다.

“얘들이 빠져가지고 말이야. 게으름이 아주 그냥 넘친다니까, 넘쳐 응?”

 

▲ 어디 한 번 놀아볼까

 

그녀가 그렇게 호통을 치면 웃기게도 고양이들은 제법 빠릇빠릇하게 움직여주기는 하지만 어제나 그 순간뿐이다. 어쨌든 그런 날이 한 달 넘어 반복되는 동안 고양이들은 뭔가를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내가 아직 마당에 들어서지도 않았건만 고양이들은 내가 온다는 것을 알고 사립문 근처까지 마중을 나오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니까 녀석들은 이 세상 모든 자동차가 다 같은 소리를 내지는 않는다는 것을, 자기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사람의 자동차 소리와 다른 자동차 소리의 미세한 차이를 간파해내고 멀리서도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면 귀를 쫑긋거리다가 반사적으로 일어서서 마중을 나와주는 것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녀석들은 가끔 작은 생쥐를 잡아다가 밥그릇 앞에 진열해놓는 충성맹세(?)를 해서 우리를 아주 감격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고 있기도 했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온 것이 뭐 그리 놀랍고 신기할까마는, 우리는 그랬다. 우리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사이좋게 협업으로 쥐를 잡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놀랍고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던 것인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검은 고양이 야옹이는 쥐든 무엇이든 살아 있는 것들에 별 관심이 없었다. 잡을 생각도 안 한다. 녀석은 마치 자기는 살생에 관심이 없다는 듯 골드가 쥐를 찾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다. 어떤 때는 자기가 임신한 몸이라서, 암컷이라서 살생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선언문이라도 온 몸에 붙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고양이가 쥐를 안 잡으면, 그러면 뭘 어쩌겠다는 거지, 하는 그런 엉뚱한 의문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지만, 어쩐지 검은 고양이 야옹이는 쥐를 잡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해서, 그냥 그런대로 이해해 버리기로 했다.

골드 녀석의 검은 고양이 야옹이를 대하는 태도는 이중적이다. 평소에는 임신한 암컷을 배려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자기가 쥐를 잡아온 순간에는 매우 적대적으로 날카롭게 공격적인 소리를 내서 검은 고양이 야옹이가 아예 접근을 못하게 한다. 어찌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고양이도 감정이 있거늘, 쥐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 들인 공력이 얼마인데 그 과실을 무조건 함께 누리려 하겠는가 말이다.

 

▲ 골드가 쥐를 갖고 노는 동안 야옹이는

 

마당에서 앞발을 가만히 들었다가 가만히 내려놓는 골드 녀석은 흡사 한 마리의 나비 같다. 아니 한 장의 낙엽 같다. 쥐를 노릴 때의 녀석은 땅을 밟아도 밟는 것 같지가 않다. 바람에 날려 온 낙엽 한 장이 땅에 살짝 닿았다가 다시 나르는, 나르다가 땅에 슬쩍 몸을 대보고 다시 나르는 것 같다. 가령 고양이 자신의 체중이 삼 킬로그램이라면 내가 고양이의 행동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체중은 삼 그램도 채 안 된다. 자신의 몸무게를 백분의 일 이하로 줄여서 가벼운, 너무도 가벼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는 존재로 순식간에 자기 자신을 탈바꿈시켜 놓는 셈인데 여기에 따르는 에너지 소비는 아마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할 것이다.

가만히, 살금살금, 무성하게 자라는 각종 화초며 마늘이며 고추 등등 식물들 사이를 걷는다기보다는 차라리 유영을 하는 고양이가 어느 순간 펄쩍 뛴다고나 할까, 자신의 몸을 위로 삼십 센티미터 가량 솟구치면서 앞으로 휙, 직진하다가 머리를 잡풀들 속으로 처박으면 그 순간 찍찍,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머리를 쳐드는 고양이 녀석의 입에는 한 마리의 쥐가 매달려서 발버둥을 치는데 그 모양이 흡사 바람에 날리는 낙엽 같다.

그런데 고양이는 신기하게도 쥐를 입으로 덥석 물었는데도 치명상을 입히지는 않았다. 치명상은커녕 피 한 방울 흘리지를 않는다. 고양이는 식물들 속을 빠져나와서 편편한 곳에 쥐를 내려놓는데, 그 순간 쥐는 아이고 살았다, 하는 투로 재빨리 달아난다. 하지만 끝까지 달아나지는 못한다. 쥐의 달아남은 그저 달아나는 행위를 취해보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한다.

녀석이 쥐를 잡았으면 일단 숨통부터 끊어놓으면 좋으련만, 산 채로 입에 물고 와서 내가 보는 앞에 내려놓고는 나를 본다. 그때 검은 고양이 야옹이가 뭔 일이냐고 묻기라도 하듯이 멀리서 달려오는데, 그것을 본 골드 녀석이 나로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위협의 소리를 내서 야옹이를 단숨에 쫓아버리고 다시 나를 본다.

그 사이에 쥐는 달아나 버렸다. 그런데 혼이 나가버렸던 것일까. 쥐는 달아난다고 달아났으면서도 멀리까지 가지는 못하고 신발장 근처를 빙빙 돌다가 고무신 속으로 쏙 들어간다. 고양이는 미처 그것을 못 보았다. 놓친 쥐를 찾는다고 오른발 왼발을 번갈아가며 신발 사이를 뒤지는데 공포에 질린 쥐가 스스로 나와서 다시 달아날 자세를 취하는 순간 고양이의 입이 날렵하게 물어버렸다.

물기는 물었지만 쥐가 죽을 정도로까지 세게 물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고양이는 참 묘한 취미를 가졌다. 달아난 쥐를 다시 잡았으면 그때라도 숨통을 끊어놓을 법도 하건만, 녀석은 무슨 철학을 갖고 있는 것인지 이번에도 산 채로 물고 와서는 내 앞에 내려놓고 발바닥으로 틱, 틱 치기만 한다. 쥐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틱 쳐서 왼쪽으로 돌려놓고, 그래서 쥐가 왼쪽으로 달아나고자 하면 다시 발바닥으로 틱 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려놓는다.

 

▲ 달아난 쥐를 기다리는 마음

 

그렇게 하기를 몇 번이었는지, 그야말로 한참을 그렇게 쥐를 갖고 놀던 고양이 녀석이 무슨 딴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저도 이젠 조금 지쳤던 것인지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 쥐는 찌찌, 하고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재빠르게 달려서 토방의 바위들 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고 이런, 이런, 옆에서 구경하는 내가 아쉽고 안타까워서 혀 차는 소리를 내며 막대기 하나를 주워들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궁리를 하는 동안 고양이 녀석은 계산 다 끝났다는 듯이, 이제야 비로소 신나게 재미있는 사냥놀이가 시작된다는 듯이 느긋하게 구멍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바위틈으로 발톱을 디밀어 보지만 글쎄 그 발톱이라는 것이 무슨 갈고리도 아니고 쇠꼬챙이도 아닌 바에야 바위틈으로 깊이 들어가 줄 까닭이 없다. 골드 녀석은 엎드려서 눈으로 마치 레이저 광선이라도 쏘아대는 것처럼 노려보다가 다시 발톱을 디밀어보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써보지만, 그놈의 바위틈 속에 또 무슨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인지 쥐는 영영 기척도 내지를 않는다.

고양이에게 얼림을 당할 때는 그렇게도 금방 죽을 듯이 애처로운 소리를 내던 쥐 녀석이, 구멍 속으로 들어간 뒤로는 아무런 소리가 없으니 내 입에서는 절로 그것 참, 그것 참, 소리가 나오는데, 고양이 녀석은 끈기도 좋게 바위틈 사이로 발톱을 내밀었다가 엎드려서 눈으로 들여다보기를 되풀이한다.

그러다가 끝내는 아예 차분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린다. 뒷다리 두 개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엉덩이를 올려놓고, 앞다리 두 개는 언제라도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역동적인 자세로 앉아 있는 골드의 그 모양이 안타까워서 우유 한 컵을 따라 내주니 녀석은 껑충 달려온다. 하지만 우유를 다 마시지는 않고 이내 다시 쥐가 사라진 바위틈 앞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이 쥐를 살렸다. 앉은 채로 졸고 있는 골드 녀석은 필경 자기가 무엇을 하던 중이었는지를 잊은 것 같았다. 잠에서 깨자마자 검은 고양이 야옹이와 더불어 장난질을 치는데 그 모습이 참 맹랑하다. 하지만 다음날 녀석은 새로운 쥐 한 마리를 잡아왔다. 이번에는 제법 크다. 덩치가 크니 소리도 커서 방안에 있는 내 귀에까지 들린다. 이번에 잡힌 쥐도 역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역시 애처로운 소리를 내서 달아날 기회를 노린다.

쥐를 물고 토방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골드는 개선장군 같다. 꼬리를 바싹 치켜 올린 것이 그렇게도 의기양양해 보일 수가 없다. 하지만 잡은 쥐를 바로 죽이지도 않고 괴롭히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행위는 뭔가 치사하고 야비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고양이의 직업인 것을.

 

▲ 또 한 마리 잡았다.

 

직업이라는 말을 쓰고 나니 문득 의문이 생긴다. 고양이의 직업은 정말 쥐를 잡는 것일까? 혹시 잡은 쥐를 갖고 노는 것이 최종 목적인 것은 아닐까? 어쨌든 고양이는 쥐의 성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어쩌면 그래서 그토록 잔인한 방식으로 끝장을 내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양이의 발톱은 매우 날카롭고 낚시 바늘처럼 휘어져 있다. 그런 발톱으로 쥐의 뺨을 왼쪽에서 때리고 오른쪽에서 때린다. 쥐는 한 번 맞을 때마다 애절한 소리를 내서 동정을 구하고자 한다. 맞고 또 맞아서 지친 쥐가 소리도 못 내고 가만히 있으면 고양이도 일단 가만히 있어준다. 그러면 쥐는 아이고 살았다 하는 듯이 재빠르게 뽀르르 달아난다. 이때 고양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을 낸다. 하지만 금방 일어서서 쥐의 진로를 막지는 않는다.

잡힌 쥐가 달아나는 방향이 편편할 경우 고양이는 일 미터 이상까지도 쥐의 달아남을 허용한다. 쥐가 숨어들 만한 물건들이 앞에 있을 경우에는 삼십 센티 이내에서 몸을 날린다.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서둘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게 몸을 날려서 쥐를 다시 입에 문 고양이는 느긋한 폼새로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리고 다시 쥐의 뺨 때리기를 시작한다. 가끔은 입에 문 쥐를 허공으로 던져놓고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데굴데굴 구르기도 한다.

쥐의 입에서 나오는 애절한 소리는 점점 가늘어진다. 달아나는 행위 자체가 고통의 연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달아날 엄두도 못 낸다. 하지만 고양이는 발로 툭툭 쳐서 쥐로 하여금 기어이 달아나는 자세를 취하게 만들어놓고야 만다. 이런 잔인한 고문 같은 놀이가 한 시간을 넘어서 어떤 때는 두 시간까지 계속된다. 삶의 희망은커녕 죽음에 대한 희망마저 앗겨버린 채로 그저 비명만 애처롭게 질러대야 하는 처지가 돼버린 쥐는 혹시 이런 하소연을 하고 있지나 않을지.

“차라리 죽여주라. 제발 나를 이쯤에서 좀 죽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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