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3회

<2회에서 이어집니다.> 

▲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

 

- 민들레에는 여성 노숙인도 있는가.

▲ 현재는 없는 상태다. 여성 노숙인들은 참 안타까운 게 노숙을 하면 거의 약육강식 동물의 세계에서처럼 갇히고 만다. 정글 속 남성 노숙인들이 여자 쟁탈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가부장적인 시회라는 게 그대로 드러난다. 이들이 성적대상으로 여성을 강탈하기 때문에 거리에서 여성 노숙인은 거의 볼 수가 없다. 그 전에 다 채 가버린다. 그래서 여성 노숙인 대부분은 정신적 질환이 있거나 알코올중독자가 많다. 손 쓸 길이 전혀 없게 되고 남자들보다 더 끔찍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들을 수용하는 곳이 한 군데 있지만,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수용해서 될 일도 아니다. 보통 여성 노숙인들을 보면, 지적발달장애 등 여러 질환이 있거나 문제가 많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국가가 나서서 돌봐주어야 하지만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건 직무유기라고 밖에 볼 수 없다.

 

 

-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귀한 존재로 섬기며 지금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 숨은 고생도 많았을 텐데.

▲ 여기를 처음에 찾는 손님(노숙인)을 보면 꼭 호두 같다. 껍질은 단단한데 일단 깨지기만 하면 속은 진짜 멋있다(웃음). 이분들의 마음을 회복시키려면 조금만 기다려주고 비빌 언덕이 되어주면 된다. 그러면 변한다. 처음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을 때, 첫 날은 손님이 없었다. 그 다음 날인 2일 박대성 씨라는 첫 손님이 왔다. 나보다 한 살 적은데 현재 자활센터에서 일하면서 혼자 살고 있다. 이젠 술도 끊고 저축도 하며 잘살고 있다. 그 사람을 바꾸는 데만 아마 20전 21기는 될 거다. 이 친구는 연평도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는데, 모친이 재가를 한 것이 항상 가슴에 걸려 있었다. 성장하면서 신발공장에서 기능공을 하다가, 30대 초반부터의 노숙생활 그리고 알코올중독 상태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다. 그게 인연이 되어 민들레 식구가 되었는데, 조금 살만하면 뛰쳐나갔다가 죽을만하면 다시 돌아오고 또 나가고 하기를 수 십여 차례였다. 이들이 알코올에서 벗어나는 일은 암 치유보다 더 어렵다. 며칠 전 이 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술 끊은 지 2년이 넘었고 얼굴도 활짝 폈더라. 열심히 일해서 저축도 한다고 해 참 뿌듯했다.

 

 

- 노숙인들이 스스로 변하도록 하는데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 ‘즐탁동기’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고 애쓸 때, 엄마 닭이 부리로 껍데기를 살짝 깨주면 쉽게 나오는 것과 같다. 병아리는 엄마가 알을 깨준 것을 전혀 모르고 스스로 나온 줄 안다. 이렇듯 사람도 스스로 살아나도록 옆에서 살짝 거들어주면 그때 살아날 수 있다. 그렇게 살아난 사람은 남을 도울 줄 안다. 그런데 남의 힘으로 됐다고 하면, 자기 힘으로 된 것처럼 건방을 떨고 남을 못 살게 굴게 된다. ‘즐탁동기’의 사람들은 이웃을 도우며 근본적으로 마음이 변하게 된다. 또 사람은 갑자기 화급한 일이 생기면 하느님을 찾다가 거기서 벗어나면 다 잊어버린다. 그건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런데 사람이 가장 행복하고 충족한 순간에 있을 때 마음으로 결정 한 것은 잘 안 변한다. 행복할 때 정신이 충만할 때 내린 결정은 오래간다. 우리를 변하게 만드는 계기는 행복감이 충만할 때다.

 

 

▲ 저서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

- 25년간의 수도원 생활을 접고 환속해 민들레국수집을 하면서 세상의 육신적 가난 그리고 신앙적으로 봤을 때의 영적 가난과의 차이점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 세상 육신적인 것보다 신앙적 가난이 더 끔찍하다. 성직자라 해도 진정한 신앙이 없을 수도 있다. 교회나 절, 성당을 열심히 다닌다 해도 신앙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겉으로는 신앙이 깊은 사람을 종교인이라 부른다. 이런 사람은 이웃에 대한 배려가 없거나, 오직 자기만 위해서 산다. 신앙이 아주 가난한 사람이다. 제일 끔찍하다. 교회가 건물을 하늘높이 지어 놓았다고 그 안에 소속된 사람 모두의 신앙이 돈독한 건 아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다.

 

 

- 얼마 전 천주교 인천교구 주보에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민들레국수집에 대한 비난의 글이 실렸다.

▲ 자초지종은 이렇다. 지난 2009년에 노숙인 자활센터인 민들레 희망지원센터가 개원했다. 개인적으로도 그 이전에 이런 센터를 만들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건복지부 직원이 찾아와서 성공회 재단을 통해서 국가지원을 받도록 할 테니 복지센터를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그 말을 듣고 성공회는 싫고 천주교라면 가능하다고 하자, 복지부 공무원이 천주교 인천교구를 찾아가서 복지센터를 건립할 지원금 3억원을 제 앞으로 보냈다. 그래서 현 건물을 인천교구 명의로 매입한 후, 주교님에게는 오직 노숙인을 위한 운영센터로 사용하는 동안 무상으로 쓰겠다고 확증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사용기한이 만료되면 건물을 다시 돌려드린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천주교 체제 특징상 복지담당 책임자들이 인사이동으로 몇 차례 바뀌었고, 그 동안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담당자들이 오면서 현재의 희망센터를 다짜고짜 인천교구 소유물이라 주장하는 거다. 그동안 재정운영비를 지원했으니 재정사용에 대한 감사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들레국수집’은 인천교구나 어디에서든 감사를 받은 사실이 없었다. 받을 이유가 없는 단체다. 그런데도 난데없이 2014년도에 재정 감사를 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그동안 인천교구 명의로 된 건물을 모두 회수하라고 포기선언을 했다. ‘민들레국수집’에 재정적 도움이 없었는데도 재정 감사를 강행하려 해서 간판을 내리고, 2014년에 인천교구 명의로 하던 사업을 모두 중지했었다.

 

 

- 김남주 시인의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는 내용의 ‘사랑’이란 시를 보며, ‘피정(避靜)의 시간’을 통해 힘을 얻는다고 들었다.

▲ 마음으로 늘 보고 읽는다. 사랑하면 사과를 둘로 나눠 가질 줄 안다.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불모의 땅에 제 뼈를 갈아서 재로 뿌릴 줄 안다’는 이 시에서 사랑의 숭고함을 느낀다. 사랑이 희생적이지 않고는 사랑이 될 수 없다. 사랑할 때만 나보다 남이 더 귀중하게 여겨진다. 자식을 사랑하면 나보다 자식이 더 귀하게 여겨지는 것과 같다.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가 나보다 더 귀하게 여겨진다. 천주교에서는 신부와 수녀가 되기 직전에 오랫동안 피정(避靜)을 한다. 피정이란 세상의 여러 잡다한 일을 일시 중단하고 하느님과 함께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왜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지금의 내 형편은 어떤지 등을 심사숙고하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기도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결정을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하면 ‘리스타트(Restart)’, 즉 마음의 재정립을 하는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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