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정 지음/ 문학동네어린이

“이 이야기는 내가 사는 도시의 전철역에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짧은 뉴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이 책을 쓰는 동안 세상에서 들려온 소식 중 어느 하나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뉴스가 이상하고 믿을 수 없게 비참했습니다. 그런 뉴스를 보면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다른 세계의 존재를 끌어들여서라도 뭔가 다른 결말을 내 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그런 무모하고 단순한 소망으로 엮어 낸 이야기입니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과 푸른문학상을 수상하며 동화작가로 이름을 알린 김선정 작가가 소설 영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뜻밖의 행보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다져왔다.

어두운 곳에 잠깐이나마 손전등을 비추는 심정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에는, 자신의 고통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 외로운 존재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여러 인물들의 시점으로 사건을 넘나들며 현실 위에 환상적 장면들을 포개 놓았다.

환상적 장면에는 어김없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멧돼지가 있다. 보아 줄 이도 들어 줄 이도 없는 아이들 앞에 엎드려 가만히 귀 기울이는 멧돼지. 서글프지만 심장을 두드리는 가닥가닥의 이야기들은 독자들의 눈앞을 뿌옇게 가리기도 하면서 대단원을 향해 독자들을 끌고 간다.
 
이 소설은 ‘만약에 그랬더라면’에 관한 이야기이며 ‘제대로 묻지 못한 질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수많은 가정을 안고 산다. 만약 거기 없었더라면, 그때 너를 만났더라면, 똑똑한 목소리로 이유를 물었더라면, 지금 나와 우리의 모습은 달라져 있지 않을까. 반추하고 희망을 그려 보는 것이다. 유림의 아버지가 기수란 것을 알고 나서, 화신은 25년 전 가슴에 묻어 둔 “왜?”라는 질문을 꺼내 본다. 그때 그 질문을 계속했더라면 유림의 열여섯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을 주호의 열아홉은 달라졌을 것을 알고 있다.

만연한 강제와 불합리 앞에서 침묵했고, 질문은 불온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쳤던 화신은 질문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이 25년 뒤의 삶의 간극을 더 맹렬하게 벌려 놓을 것을 알고 있다.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리산을 보며 화신은 멈췄던 질문을 시작하기로 한다. 잠시 인간의 별에 머물다 떠난 산바를 떠올리며 주호는 더 이상 대답을 회피하지 않기로 한다. 모든 슬픔이 자기 때문이라 여기던 유림은 너 때문이 아니라던 산바의 말을 기억하기로 한다. 사라진 마리산 위에 여전히 산바의 별이 뜨듯, ‘겨울의 서원’은 여전히 살아 있는 이들의 끝없는 질문과 이야기를 펼쳐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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