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 용맹정진 하는 도솔산 골짜기에 웬 개짖는 소리가?
스님들 용맹정진 하는 도솔산 골짜기에 웬 개짖는 소리가?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6.07.18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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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풍산개 ‘돌프’

진돗개 잡종 마루 녀석을 장염으로 잃어버린 지도 이 년을 넘어 삼 년이 다 돼 간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마다 집에 개가 없으니 이상하다고 했다. 그 중에 몇 사람은 어디서 좋은 품종으로 한 마리 데려다 주겠다고 했지만 모두 거절해왔다. 동물을 좋아하는 내 옆의 그녀는 누군가 개를 데려다 주겠다는 얘기만 하면 눈을 반짝이며 좋아라 했지만 나는 글쎄, 다른 개를 집에 들여놓기에는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새로 들어온 녀석의 죽음을 미리서 두려워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 대화가 제법 통한다.

 

태어나지 마라 죽을까 두렵다, 죽지 마라 태어날까 두렵다, 하는 뭐 그런 말장난의 늪에 빠져버렸던 셈이라고나 할까. 그런 내가 이제 상상도 못해본 풍산개 한 마리를 데려와야만 하는 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이름은 돌프. 코와 눈에 붉은 기운이 도는 것이 동화 속의 루돌프를 연상케 한다고, 그래서 루는 빼고 돌프만 차용해서 이름으로 삼았다나 어쨌다나.

돌프는 태어난 지 육 개월여 밖에 안 됐다는데 덩치가 마루 녀석의 세 배는 넘어 보인다. 굳이 몸무게를 따지자면 내가 더 많겠지만, 이종격투기 식의 힘겨루기를 하자면 나는 아마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말 것이다. 좋아서 죽겠다고 앞발을 높이 쳐들고 달려드는데도 나는 그만 온 몸이 휘청거린다. 처음 만났을 때 녀석은 앞발을 높이 쳐들어서 내 어깨 위에 올려놓고 쑥 내민 혀로 정신없이 내 코를 핥아대며 낑낑낑, 칭얼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나는 녀석과 나의 인연이 꽤 오래 전부터 있어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 녀석의 고향은 전주 한옥마을이다.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그곳을 고향이라고 말해도 뭐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한옥마을에서 강아지 시절을 보내는 동안 녀석은 엄청나게 행복했단다. 아침이건 저녁이건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녀석을 주변 사람들은 모두가 예쁘다고, 귀엽다고, 좋아라 했다. 만지고, 쓰다듬고, 긁어주고, 안아주고, 심지어는 뽀뽀까지도 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녀석은 아마 자기가 왕자나 제왕쯤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녀석은 건강했고, 빨랐고, 애교도 곧잘 부렸다. 그리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것이 문제였다. 무럭무럭 자라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너무 커져 버렸다. 한옥마을은 이른바 관광지이고, 사람이 많다. 아이들도 당연히 많다. 풍산개는 성품이 온순하지만 일단 물었다 하면 진돗개처럼 끝장을 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호랑이와도 맞장을 뜨는 용맹성을 자랑한다고 하지만, 사실 여부야 어떻든 그 엄청난 덩치와 짖을 때의 소리만으로도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해서 돌프 녀석의 고독이, 슬픔이 시작되었다. 천만 관광객 유치를 공언하는 전주한옥마을 거리에서 거대한 개가 자유롭게 나다닌다면 그 또한 근사한 그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주체인 세상에서 만약의 경우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고 보면 돌프의 자유를 구속해야만 한다. 그래서 부득이 목줄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울부짖는 돌프 본인 못지않게 주인의 마음 또한 갈기갈기 찢어져 나갔다.

 

▲ 자다가 깨어나서

 

돌프를 어린 시절에 데려다가 이름까지 붙인 사람은 녹차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어지간한 산간 마을은 안 가본 데가 없고, 차와 관련된 사람은 안 만나본 인사가 없을 정도로 그 방면으로 유명인사 중에 한 사람이었다. 환경이 좋은 곳에 차나무가 있다 하면 기꺼이 달려가서 반 년 정도는 아무 일 없이 살아내는 유목민적 기질이 농후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선운사로 유명한 도솔산 골짜기로 들어왔다. 목줄에 묵인 돌프도 당연히 함께 왔다. 처음 생각으로는 도솔산 골짜기에 돌프를 풀어놓을 작정이었단다. 그러면 녀석이 이 골짜기 저 골짜기 마음껏 뛰어다니면서 놀다가 가끔은 꿩이나 노루 같은 것을 사냥해 올 수도 있으리라 하는 생각도 했었다나. 두 말이 필요 없는 꿈이었다. 한여름 밤의 꿈같은 꿈이었다.

선운산 또한 관광지이고 보니 주변으로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하는 수 없이 작업장 옆 대나무에 개를 묶어놓았다. 그런데 관광객 중 일부가 차 만드는 장면을 구경한다고 찾아들기 시작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못 오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찾아오는 사람 중에는 개를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개한테 물려본 적이 있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선운사 인근에서 진돗개가 사람을 물어뜯은 오래 전의 사건을 거론하며 개를 치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이렇게 해서 돌프는 차 만드는 곳으로부터 백여 미터 떨어진 매화나무에 묶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매화나무 뒤에는 구지뽕나무가 무성했고, 앞에는 감나무가, 좌우 양쪽에는 느티나무를 비롯한 각종 잡목이 성성해서 돌프는 이제 거의 아무것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나무들뿐이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소리는 들렸다. 돌프는 이제 귀를 쫑긋 세우고 사람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바로 그것,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노라면 나뭇잎들 사이로 사람들이 얼핏설핏 보였다. 그러면 돌프는 반갑다고, 혹은 외롭다고, 함께 놀아달라고 낑낑대다가 끝내는 왁왁, 거대한 소리로 짖어대기 시작했다. 밤이면 하늘에 별이나 달을 보면서 또 거대한 소리로 짖어대었다.

녀석의 짖는 소리는 우렁차기가 천둥 같아서 누구라도 들을 수 있었다. 멀리서도, 아주 멀리서도 들렸다. 절간의 스님들 또한 귀가 있는 사람들이고 보매 그 소리를 안 들을 수가 없었다. 스님들이 주로 하는 일은 용맹정진이란 이름으로 온 정신을 집중하여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찾고자 하는 것은 안 보이고 개 짖는 소리만 들린다. 이게 뭔 소리냐. 웬 개가 이 밤중에 짖어댄단 말이냐.

 

▲ 놀아달라고 아우성을 칠 때
▲ 비 오는 날에

 

“아이고 나 참말로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요?”

용맹정진에 잡소리가 웬 말일까마는, 어쨌든 개 소리에 심기가 상한 스님들의 항의가 두세 차례 반복되고 난 뒤에 차 선생이 나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글쎄 난들 뭐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차 선생의 의중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돌프 녀석을 나더러 좀 어떻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누구 좋은 사람 있으면 돌프를 그이에게 입양시킬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찾아봐도 적당한 사람이 없거든 나더러 데려가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달리 좋은 방안은 없어 보였다. 한옥마을 집으로 데려다놓는다는 것은 상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고, 선운사 인근에 그냥 두기도 난감을 넘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 이 노릇을 어떻게 한다? 나로서는 글쎄, 관심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색깔이 죽은 마루 녀석과 똑같았고, 눈매와 얼굴 생김이 또한 비슷한 것이어서, 이 녀석과 나의 인연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뭐 그런 감상적인 생각에 빠져드는 시간도 제법 있던 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뜻 자신감을 갖기가 어려웠다. 뭔가 잘못 돼서 녀석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이제 문제도 아니었다. 녀석의 엄청난 힘을 내가 제압하기 어렵다는, 그러니까 강한 자 앞에서 느끼는 어떤 주눅감 같은 것이 나를 망설이게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개보다 약한 자인가? 그런 자존심 상하는 질문이 드는 순간 결심을 하고 말았다.

좋다, 일단 그녀에게 물어나 보자. 커다란 개가 한 마리 있는데 나더러 데려가라 한다, 어떻게 할까? 내 입에서 그런 질문이 나오자마자 그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좋아요, 무조건 좋아요. 그대의 마음이 문제지 뭐…”하고 말꼬리를 흐린다. 이런 상황에서 고민이 더 필요할까?

그러자. 내가 데려가자. 그렇게 결심을 하고 매화나무에 묶인 녀석의 목줄을 풀고자 하는데 어마지두야,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 오랜만에 사람 맛(?)을 본 녀석이 손이고 발이고 허리고 얼굴이고 할 것 없이 그냥 달려들어서 발톱을 들이대며 핥아대는데 폭력도 그런 폭력이 없다. 그만 포기할까 하고 뒤로 물러서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 개를 미치게 하는 붉은 구름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내가 이제 와서 그만두겠다고 하면 차 선생은 아마 굉장히 실망할 터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내가 내 생각을 하루도 안 돼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바꾼다는 게 일단 마음에 안 드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녀석을 차에 태우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건 또 뭐냐. 차에 태우고 재빨리 문을 닫아버리는 순간부터 녀석은 애달프게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오줌까지 벌벌벌 싸질러댄다. 세상에, 이렇게도 겁이 많은 녀석이었다니. 뿐만이 아니다. 집에 도착해서 보니 아주 그냥 생똥까지 싸질러놓았다.

“짜식, 이제 보니 너 아주 형편이 무인지경이로구나?”

나는 이제 사뭇 의기가 양양해졌다. 그 의기양양의 시간이 그렇게도 짧을 줄은, 그때는 당연히 몰랐다.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달려와서 이 괴물은 뭐냐, 뭐냐 하고 기웃거리기 시작했고, 고양이를 처음 본 돌프 녀석은 이게 웬 사냥감이냐 하는 투로 흥분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놀란 고양이들은 재빨리 달아나서 나무들 뒤로 몸을 감춘 채 날카로운 눈초리로 상황파악에나 주력하고 있었지만, 돌프 녀석은 금방 보이던 녀석들이 안 보이니까 더욱더 흥분해서 날뛰는데 목줄이 그만 내 다리를 칭칭 감아서 나를 넘어뜨려 버렸다.

그 순간 나는 아마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을 것이다. 돌프 녀석은 내가 넘어졌는데도 관심을 가져주기는커녕 그저 흥분해서 날뛰고나 있을 뿐이었다. 겨우 어떻게 일어나서 놈의 세력권을 벗어났을 때는 화도 나고, 수치스럽기도 하고, 민망스럽기도 해서 내 마음은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세상에, 내 몸이 개한테 짓밟히다니. 결국은 이렇게 당하고 말았구나, 이게 끝은 아닐 텐데, 어쩌지?

그것을 아마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이를테면 두려움이 상상을 낳고, 상상이 두려움을 가중시킨 형국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이제 개를 개로만 보기가 어렵게 되고 말았다. 내가 편안하게 살자면 돌프를 어딘가 다른 데로 보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내가 개의 발에 짓밟히는 장면을 다행히도 목격하지 못한 내여자 그녀는 개가 집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격해서는 그냥 돌프야, 돌프야, 어쩌고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쩔 것인가.

자, 이렇게 해서 우리 집의 평화는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밤하늘에 별이나 달을 보면서 낑낑거리고, 낑낑거리는데도 사람이 안 나오면 컹컹 짖어댄다. 겨우 어떻게 잠이 들었다가도 먼동이 터 오르면 또 빨리 나와서 함께 놀자고 낑낑거리고, 그렇게 신호를 보냈는데도 사람이 안 나오면 역시 컹컹 짖어댄다. 날씨가 맑은 대낮에도 하늘에 구름이 붉어지거나 유난히 검어지면 또 짖어대고, 고양이를 보면 한 입에 삼켜주겠다는 듯이 날뛰면서 으르렁거리는데 목줄이 금방 끊어져버릴 것만 같다.

 

▲ 야생차 작업장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돌프 녀석은 하루에 적어도 열 시간 이상을 사람과 함께 놀고 싶어 하는 녀석이다. 그런데 나는 개와 함께 할 시간이 별로 없다. 개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굶어죽더라도 개와 함께 있고자 하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굳이 해명을 하자면 나는 일종의 소시민이다. 책도 보고 싶고 뭔가 쓰고도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밥도 벌어먹어야 한다. 개를 싫어하지도 않지만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어서, 개와 함께 하는 시간을 따로 낼 수는 없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내여자 그녀는 다르다.

그녀는 개가 낑낑거리면 즉각 밖으로 나가서 최소한 십 분 정도는 같이 있어 준다. 밖에서 멸치 꼬랑지라도 하나 발견하면 비닐봉지에 싸들고 와서 개를 즐겁게 하는 오지랖을 자랑하기도 한다. 돌프 녀석이 앞발을 쳐들고 나서면 그녀의 키를 훌쩍 넘겨버리고, 그래서 그녀의 온 몸은 금방 흙투성이가 돼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능한 한 개의 목덜미를 한 번이라도 더 긁어주고자 한다. 신기한 사람이다.

그나저나 돌프 녀석은 왜 저렇게도 사람을 그리워하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주제는 살짝 고약하다. 녀석은 강아지 시절에 사람의 손길을 너무 많이 탔던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너무 자주 강아지를 만졌다는 거. 그러면 그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는가. 강아지가 자라서 개가 되고 개의 덩치가 너무 커지니까 그만 죄다들 달아나 버린 형국인데, 비유가 좀 그렇긴 하지만, 돌프 녀석은 결국 약간 다른 차원의 유기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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