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나라가 망하려면 공직자들이 노골적으로 기생충 노릇을 한다는 옛말이 절로 생각나는 요즘이다. 공직이란 이른바 ‘특별한 사명감’을 최고의 덕목으로 친다. 그러나 이 땅에서 공직은 신분과 정년이 보장되는 아주 좋은 직업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했으니, 공직자들의 기생충화는 너무도 당연한 흐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제 본격적으로 망해가기 시작한 것인가?

이런 빌어먹을 생각을 되풀이하느라 밤에 잠도 못자고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까무룩이 잠이 들었던가 어쨌던가. 시인 백석의 여인 자야 선생을 꿈에서 보았다. 이상한 일이다. 그 양반이 왜 내 꿈속을 방문한 것인가. 사놓기만 하고 차마 읽지 못한 채 묻어둔 그 양반의 산문을 끄집어내서 뒤적이노라니 내 눈에서 눈물이 그냥 철철 흘러버린다.

 

 

자야는 시인 백석이 함흥 시절에 만난 기생 진향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기생 진향은 무능하고 파렴치한 공직자들이 판을 치는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 까닭에 먹고살 일이 막막해서 기생에 들기는 했지만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상당한 사람이었다.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대응한 조직으로 훗날 유명해진 조선어연구회 회원들을 스승으로 모셨던 자야와 백석의 만남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한 상징이라 할 만하다.

나라가 이미 망했는데도 기생은 양반 자제와 정식 혼인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높고도 높은 신분제 사회의 벽을 두 사람은 뛰어넘고자 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먼저 생각한 사람은 기생 자야였다. 그녀는 시인 백석의 눈길이 못 미치는 곳으로 세 번 도망을 하고, 한 번은 자살까지 꾀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녀 자신의 본심은 그것이 아니었던 까닭에, 그리고 그녀를 원하는 백석의 발걸음이 워낙 민첩했던 까닭에 그녀의 극단적인 선택은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도망가고 찾아내는 술래잡기에 빠져있을 수는 없는 법, 자야의 고달픈 심사를 알면서도 어쩌지 못해 괴로워하던 백석은 결국 그 자신이 만주의 신경으로 떠나버린다. 자야는 이때부터 희망에 넘친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그러면 세상도 바뀌고 두 사람은 기어이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으로 자야는 씩씩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얄궂게도 일본이 패망하면서 나라는 두 동강이가 나고 말았다.

그렇게도 서로를 존중했던 두 사람. 그렇게도 서로를 깊이 헤아렸던 두 사람. 그러나 끝내 헤어져버린, 헤어져야만 했던 두 사람. 한 사람은 북쪽에서,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남쪽에서 하늘을 나는 새나 쳐다보며 눈물을 삼키고 또 삼키다가, 나중에는 삼킬 눈물도 없어서 마른 눈을 손등으로 비비다가, 그러다가 세월 속으로 묻혀버린 두 사람.

두 사람을 그렇게 남북으로 갈라놓은 ‘후레자식’은 누구였던가. 언필칭 지도자를 자임하는, 아니 참칭하는 그 ‘후레자식’의 후예들이 지금 거리를 활보한다. 전에는 그나마 낯짝이라는 것이 있어서 조금은 은밀하게 자중이라도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와,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뻔뻔하고 당당하고 심지어는 의젓한 시늉까지 해댄다. 저 엉터리로 의젓한 다리몽둥이를 어서 빨리 부러뜨려야 하는데, 그런데 슬프게도 모두들 휴가를 떠나버렸다. 그런 형국이다.

 

 

쓸데없는 고백 같지만, 나는 공무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랬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부터 공무원을 수상스러워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남북 전쟁 말기에 육군 중사로 제대한 아버지가 마을 이장 일을 장장 십팔 년이나 보고 계셨는데 공무원들이 자주 찾아왔다. 농사철에는 농사와 관련된 공무원이 찾아오고, 선거철에는 선거와 관련된 공무원들이, 그리고 겨울철 농한기에는 밀주 단속이라든가 도박단속 혹은 산림단속 공무원이 무시로 한두 명씩 드나들곤 했다.

그들은 대개 자전거를 타거나 드물게는 걸어서 오는데 점심은 꼭 우리 집에서 먹었다. 가끔은 저녁까지 먹고 술 냄새를 풍기며 비틀 걸음으로 “나 인제 퇴근하요 잉?”하고 소리를 치며 마당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그들이 떠난 뒤에는 엄마의 한숨 소리와 울먹이는 소리가 한참이나 어둠을 흔들었다.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먹어치운 계란이며 오리며 닭이며 등등 그 모든 것들은 사실 엄마의 꿈이었다.

당신의 새끼들이 밖에서 조금이라도 덜 가난해 보이도록, 가능한 한 어느 한 구석이라도 빛나 보이도록, 고무신짝 한 켤레라도 새로 사 주고 싶고, 명절에는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무엇이든 하여튼 사 주고 싶어서, 그래서 닭을 키우고 오리를 키우며 많지도 않은 계란을 차곡차곡 모아두는 것이지 무슨 공무원 나부랭이들의 밥상이나 풍요롭게 해주자는 목적은 절대로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찾아온 사람은 목적이야 무엇이든 손님이고, 손님의 밥상을 푸성귀로만 채울 수 없다는 것은 그 당시 거의 모든 엄마들의 도덕이요 신념이었다.

공무원이 올 때마다 닭을 잡아야 하는 엄마는 아마 혼자 속으로는 고민도 많이 했을 것이다. 이걸 꼭 잡아야 하나? 안 잡으면 안 되나? 하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잡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닭 요리를 하는 엄마의 표정은 엄숙했고, 비장했으며, 장마가 오기 직전의 하늘처럼 어둡고 무거웠다. 그리고 그들이 다 먹어치운 그릇을 설거지 할 때는 눈물이 절로 왁, 하고 쏟아져 내렸다. 엄마의 그런 심사는 누가 굳이 설명해주지 않았어도 내 마음에 절로 스며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차츰 하나의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공무원이 집에 찾아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구나. 그런데 저것들은 왜 저렇게도 고기를 좋아하는 거지? 우리는 가난하다. 명절이나 제사 때 외에는 고기를 구경도 못 한다. 그렇게도 가난한 우리 집에 와서 고기를 처먹어대는 저것들은 대체 뭐지? 거지로구나. 거지 중에서도 아주 이상한 기생충 거지로구나.

그랬다. 내 어린 시절에 형성된 공무원에 관한 관념은 이상한 거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도 공무원이라면 비웃음 가득한 시선으로 일별하곤 했던 내가 나이 스물세 살에 공무원 시험을 치렀더랬다. 이른바 불알친구 하나가 공무원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시험을 보는데 이 년 동안 세 번을 연거푸 떨어졌다. 저게 대체 뭔 시험이기에 자꾸 떨어지나 하는 호기심에 그냥 한 번 봐본 것인데 그만 덜컥, 합격을 하고 말았다.

 

 

서울신문에 실린 합격자 명단을 보고 난 뒤의 느낌은, 뭐 이런 시시한 게 다 있나, 하는 것이었다. 겨우 이런 것으로 공직자의 자질 유무를 판단한다는 거야? 하는 뭐 그런 심사였다. 어려서부터 서당을 다니며 공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념이 어설프게나마 형성된 내 관념에 따르자면 공직이란 결코 그렇게 시시한 것이 아니었다. 작게는 지렁이와 사람의 관계를 살피고, 크게는 한 그루의 나무와 천둥 번개의 관계를 살펴야만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로부터 석 달 뒤에 나는 종로 2가에 있는 행정고시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말단 공무원은 아무래도 ‘거지같아서’ 내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고급 공무원이라면 까짓 뭐, 해볼 만할 것 같았다. 학원 이름은 행정고시 학원이었지만 사법고시 준비생도 다수 있었다. 내가 목적으로 한 것은 사법고시였다. 사법 중에서도 검사를 나는 희망하고 있었다. 가난이 천직인 서민들의 눈물을 뽑아먹는 하급 공무원들을 찾아내서 처단하겠다는 철없는 생각이 낳은 선택이었으리라.

하지만 육 개월이 채 안 돼서 그만두고 말았다. 학원비가 떨어져서도 아니고 아까워서도 아니었다. 공사장 막일과 병행하는 고시공부가 너무 힘들어서도 아니었다. 뭐랄까, 봐서는 안 될, 어떤 천기누설 같은 것을 목도해버린 뒤의 충격이랄까 욕지기 같은 것을 감당하기 어려워서였다고 하면 아마 거의 정확할 것이다.

눈싸움이란 과목이 있었다. 이것은 학원 내의 정식 과목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공부 중에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나는 통 모르고 있다가 육 개월이 다 된 즈음에야 알았다. 수사실무를 전공한 강사가 권했던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강의 한 과목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면 여기저기서 두 사람씩 마주 서거나 혹은 앉아서 그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공부라기보다 훈련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훈련의 목적이라는 것이 참으로 맹랑했다. 시험에 합격해서 연수를 마치고 현직에 나아갔을 때 피의자나 혹은 민원인을 심리적으로 단숨에 위축시키고 제압해서 쓸데없는 횡설수설로 시간을 허비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그런 훈련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틈만 나면 두 사람씩 마주 서거나 앉아서 상대의 눈을 콱 찔러버릴 듯이 노려보는 것이었다. 날카롭게, 뱀이 개구리를 쏘아보듯이, 그렇게 섬뜩한 눈초리로 서로를 노려보는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야아 이거 잘못 됐다. 공무원 시험 방식 자체가 완전 엉터리다. 공직자가 민원인을 대할 때는 그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 마음에 쌓인 앙금이 무엇인가를 알아내서 해결해주는 게 공직자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눈을 날카롭게 찢어놓을 듯이 노려보는 방식으로 아예 입도 못 열게 한다?

뭔가 좀 더 보람 있는 일을 해보고자 해서 공무원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국가라는 이름의 강력한 권력을 등에 지고 서서 국민을 호령하는, 한 마디로 말해서 왕왕 짖어대는 개가 되고자 해서 공무원을 지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일차로 걸러내야 한다. 그것이 공무원 시험의 목적이고 방식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행정상의 편익을 제외하고 보면 거의 쓸모도 없는 이런저런 법률이며 규칙, 헌장 따위들이나 열심히 달달 외게 하는 시험 방식으로 사람을 골라내면, 그런 사람들은 아마 자기를 선택해준 정권에 맹목적인 충성을 다하기는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 일부는 자기가 선택되었다는 도취감에 빠져서 앞뒤분간을 못 하고 날뛰다가 민중은 개돼지라는 등의 천기누설로 권력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어놓기도 할 것이다.

교육정책 기획관인가 하는 사람의 민중 개돼지 발언은 실수였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권력자들에게 있어 구십구 퍼센트의 민중은 옛날부터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도와 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런 식의 돌출 발언을 했던 사람이 이른바 출세줄을 잡아서 승승장구할 확률이 대단히 높은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지금은 일단 불이나 끄고 보자는 식으로 파면이다 뭐다 부산을 떨어대는 척하지만, 그 사람 한 명 파면시켰다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보인 더불어 민주당 김종인 대표의 발언은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미국이 결정하고 한국 정부와 협의를 거쳤으니 국민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 이런 말씀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가를 굳이 분석해볼 필요나 있을까? 김종인 대표는 누가 뭐래도 상위 일 퍼센트 계급군 가운데 한 사람이다. 교육정책 기획관이란 사람의 말처럼, 상위 일 퍼센트에 진입하기 위해 고시를 보는 등의 충성맹세를 거듭해 왔고, 그리고 마침내 성공한 사람이다. 구십구 퍼센트의 민중을 자기와 동급의 사람으로 봐야 한다고 누군가 옆에서 충고를 한다면 그는 아마 속으로 대단히 기분 나빠 할 것이다.

구십구 퍼센트의 민중이 사람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놓고 고민할 때 반드시 짚어봐야 할 사람은 역시 우리의 대통령이시다. 사드라고 하는 엄청난 괴물을 나라에 들여놓는다는 결정을 내리고도 우리의 담대한 대통령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냥 몽골로 떠나버리셨다. 내가 어찌 하찮은 너희들과 더불어 그런 문제를 토론한단 말이냐 하는 강고한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의 사드가 앞으로 무슨 괴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알고나 있을까? 동학농민군을 때려잡을 목적으로 청나라와 일본을 끌어들였다가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바쳐버린 민비가 생각난다는 말이 도처에서 들리고 있지만, 대통령의 귀에는 아마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설령 들린다 해도 뱁새 따위들이 어찌 감히 황새의 깊은 속을, 하고 간단히 넘어가버릴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민심은 부글부글 끓기나 할 뿐 터지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역시 동방예의지국이 분명하구나 하는 생각이 슬쩍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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