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여행스케치> 경기도 가평

온 누리에 녹색이 진하게 깔렸다. 대지는 생명력이 최고조에 달해있다. 불볕더위는 기승을 부린다. 바캉스철, 사람들은 떠난다. 이번 여름엔 해외보다 국내 여행지를 찾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국제테러사건 때문이다. 어려운 경제도 한몫을 한다. 휴가 여행지로 가까운 곳을 잡은 건 그래서이다. 경기도 가평은 싱싱한 생명력의 고장으로 한반도의 가장 중앙에 놓여 있다. 험준한 산과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강(호수)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북한강이 홍천강과 합류하여 서남방향으로 흐르고 북쪽으로는 해발 1000미터 이상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큰 맥을 이루고 있다.

 

▲ 온갖 꽃들이 피어난 아침고요 정원

아침처럼 상쾌한 숲과 정원

가평 여행은 상면 행현리 축령산 자락에 들어선 아침고요수목원(www.morningcalm.co.kr)에서 시작하자. 서울에서 가자면 구리-남양주를 거쳐 젊은이들의 해방구인 대성리를 지나 자동차로 15분 남짓이면 닿는다. 일찍이 꽃의 낙원으로 이름을 드날린 수도권 제1의 수목원이다. 1996년 삼육대학교 원예학과 한상경 교수가 설계하고 조성한 이래 33만㎡의 넓이에 총 4500여종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주제별로 나눈 10여 개의 테마정원엔 봄부터 가을까지 갖가지 꽃들이 피어난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소나무 향나무 같은 자생수종으로 꾸민 ‘분재정원’, 초가와 장독대가 있는 ‘고향집정원’, 우리나라 지도 모양을 한 ‘하경정원’, 영국식으로 지은 건물과 여러해살이 풀꽃들이 어우러진 ‘J의 오두막정원’ 등등 눈요깃거리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 아침고요의 천년향

 

수목원 중앙에는 아침고요를 상징하는 천년향이 우아하게 서 있다. 이 나무(당산목)는 원래 안동의 한 마을에 있었는데 마을이 수몰되면서 한 수목 수집가에 의해 이곳으로 오게 됐다. 천년향이라는 이름은 다른 향나무들과 비교했을 때 나이를 1000살 정도로 추정해서 붙였다고 한다. 수목원 옆으로 흘러내리는 축령산 계곡물은 땀을 식히기 좋고 카페, 식당, 펜션, 기념품숍 등 편의시설도 잘 갖춰놓았다. 수목원 한 바퀴를 돌아보는 데 2-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나오는 길에 ‘이화원(二和園)’에도 들러보자. 남미 지역의 열대식물을 모아놓은 자연생태테마파크다. 이화원은 국가간(한국· 브라질), 지역간(수도권, 영·호남, 지방)의 화합을 의미한다.

 

▲ 그윽해서 좋은 아침고요 잣나무숲길

잣의 고장

아침고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축령산 자락에는 잣나무들이 거대한 숲을 이룬 ‘잣 향기 푸른 숲’이 자리하고 있다. 수령 80년 이상 된 5만여 그루의 잣나무가 청청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데 힐링센터와 축령백림관, 화전민 마을터 등 다양한 숲속체험시설을 갖추고 있다. 남양주시 수동면과 가평군 상면에 걸쳐 있는 축령산은 서리산과 이어져 힐링 산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독수리 머리를 닮은 수리바위와 조선시대 명장 남이 장군이 호연지기를 기르며 훈련을 했다던 남이바위, 해발 800미터 위에 펼쳐진 3km 길이의 웰빙 산책코스 등 몸과 마음 건강해지는 힐링 명소가 가득하다.

 

▲ 잣향기푸른숲 산책길

 

한편 가평의 군목(郡木)으로 지정된 잣나무는 소나무과 소나무속에 드는 늘 푸른 침엽수로 우리나라 고산지대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유독 가평에 잣나무가 많은 것은 생육에 좋은 토질과 적당한 기온, 그리고 강우량이 풍부해 잣나무가 자라는데 최적의 조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가평군 상면 행현리는 일명 잣마을로 불린다. 마을에서 바라보이는 축령산 계곡 안은 온통 잣나무로만 채워져 있다. 행현리에서 본격적으로 잣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무렵으로 마을 사람들이 잣에 쏟는 정성은 지극하다. 잣나무는 여느 유실수와는 달리 첫 열매를 딴 뒤에도 25∼30년간 계속 생산할 수 있고 나무가 커 갈수록 열매가 많이 열려 경제성이 높은 작물이다.

 

▲ 백두산 천지를 닮은 호명호수

백두산 천지를 닮은 산정 호수

수목원과 산에서 힐링을 얻었다면 이번에는 산정 호수의 매력에 푹 빠져보자. 해발 632미터 호명산 9부 능선에 오르면 눈을 의심케 하는 별천지가 펼쳐진다. 맑은 물을 가득 담고 있는, 청평 양수발전소의 상부 저수지 역할을 하는 호명호수(약 15만㎡(4만5000여평))다. 북한강에서 이곳으로 물을 끌어올려 낙차를 이용, 관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발전에 활용한다. 백두산 천지를 닮은 모습도 경이롭거니와 산마루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그윽하고 장엄하다. 호수 주변으로 야생화가 지천인 공원이 꾸며져 있고 청평호가 바라보이는 팔각정· 전망대 등이 설치돼 있다. 둘레 1.9㎞를 따라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도 탈 수 있다. 호수로 올라오는 노선버스가 1시간 단위로 운행하며 경춘선 전철 상천역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도 된다. 호수 입구에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다.

 

▲ 물맑은 청평호
▲ 호명호숫가에 핀 국화가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산정에 호명호수가 있다면 산 밑에는 청평호가 기다리고 있다. 청평호는 1944년 청평댐이 준공되면서 형성됐다. 그 넓이가 무려 580만평에 달한다. 호수 양쪽으로 호명산과 뾰루봉이 높이 솟아 마치 북유럽의 어느 웅장한 호수를 보는 듯하다. 호수를 중심으로 계곡마다 숲과 등산 코스가 있고, 수상스키와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청평댐에서 가평에 이르는 강변도로는 북한강변의 절경을 만끽하기 좋은 곳이다.

 

▲ 프랑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쁘띠프랑스
▲ 쁘띠프랑스에서는 주말마다 각종 공연이 펼쳐진다.

 

청평호가 꼬리를 감추는 북한강변 끝자락에는 프랑스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테마파크(쁘띠프랑스)가 자리하고 있다. 마치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 온 듯 이채로운 풍경이 가득 펼쳐진다. ‘어린왕자’의 생텍쥐페리 재단과 협력해 자연을 그대로 살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다. 생텍쥐페리 기념관, 19C 프랑스의 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전통주택 전시관, 오르골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오르골 하우스, 프랑스 및 유럽에서 수집한 다양한 골동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골동품 전시관, 유럽 전통 인형극을 감상할 수 있는 인형극장 등 눈길을 사로잡는 볼거리가 가득하다. 곳곳에 마련된 야외카페와 전망대에선 북한강과 호명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와 이벤트홀, 야외무대도 갖춰놓았다. 구조가 제각각인 숙소는 밤하늘의 별과 북한강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해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 자라섬 캠핑장
▲ 생텍쥐페리기념관에 전시한 작가의 육필원고

 

가평이 유명해진 건 캠핑도 한몫하고 있다. 가평읍내서 지척인 북한강 자라섬 캠핑장은 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도· 서도· 중도· 남도, 4개의 섬으로 이뤄진 자라섬은 모양이 마치 자라목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라섬이란 지명이 생기기 전에는 이 섬을 ‘중국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해방 이후 중국사람 몇 명이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캠핑장은 모빌홈과 카라반· 카라반사이트· 오토캠핑 등 하루 최대 1500여명이 이용할 수 있는데 다목적 운동장을 비롯해 인라인장· 자전거대여소 등 놀이시설도 갖추고 있다. 카라반 이용요금은 평일 11만원, 주말 16만원, 성수기 18만원이다. 오토캠핑장 이용 요금은 주말 1만5000원, 주중 1만원이며 카라반에는 냉장고, 전기 인덕션, 밥솥, 식기류 등이 비치돼 있고 공동취사장과 화장실, 온수를 사용할 수 있는 샤워장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매년 가을 이곳에서 열리는 국제재즈페스티벌은 가평의 대표적 문화예술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자라섬관리사무소 031-580-2700

 

▲ 귀목계곡 아랫마을인 와곡부락 앞 하천, 수심이 낮아 물놀이하기 좋은 곳이다.

맑은 계곡의 천국

산과 계곡이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가평. 산과 산이 만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소(沼)와 담(淡) 그리고 폭포가 어우러져 있다. 늦더위를 식히기 좋은 계곡으로는 용추계곡, 어비계곡, 화야산계곡, 녹수계곡, 귀목계곡, 운악계곡, 명지계곡, 조무락골계곡, 도마치계곡, 유명산계곡 등을 들 수 있는데 이곳들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들과 함께 최고의 산소탱크 역할을 한다. 경기 5악산 중 산세가 으뜸으로 꼽히는 운악산은 운악계곡 위로 무우폭포와 천년고찰 현등사가 자리하고 있고, 봉우리마다 울창한 숲과 미륵바위· 망경대· 눈썹바위· 병풍바위 같은 기암괴석이 솟아 등산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 도마치계곡에 있는 적목용소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1468m)과 계곡이 멋스러운 명지산(1267m)은 또 어떤가. 명지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산행 들머리부터 계곡이 펼쳐져 있으며 특히 가을단풍은 가평 8경 중 제4경에 들만큼 아름답다. 조무락골에서 강원도 화천 방면인 적목리에는 용소폭포와 함께 가평5경에 드는 적목용소가 기다린다.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깊은 소에는 천연기념물인 열목어가 서식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등장하는 화악산은 웅장함으로 치면 저 지리산에 뒤지지 않는다. 정상인 신선봉은 동쪽의 매봉(1436m)과 서쪽의 중봉(1447m)과 함께 삼형제봉이라 부른다. 이들 삼형제봉은 일명 설봉(雪峰)으로도 불리는데 봄 날 중턱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었음에도 정상은 하얗게 눈이 쌓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큰 바위에 글씨를 새긴 조종암

 

지그재그로 이어져 풍광이 웅장한 녹수계곡은 상면과 하면에 걸쳐 있는 계곡으로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다. 특히 물이 맑고 수심이 낮아 아이들이 놀기 좋다. 계곡 바로 옆인 하면 대보리에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가 이채로운 조종암(朝宗巖)이 긴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1684년(숙종 10년) 가평군수 이제두와 허격, 백해명 등이 명나라가 임진왜란 때 베푼 은혜와 청나라로부터 당한 굴욕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바위에 의종의 어필, 선조의 어필, 효종의 글, 낭선군 이우의 친필 22자를 새겼다. 조종암이란 ‘임금을 뵈이는 바위’란 뜻으로 낭선군 이우의 글씨이다. <수필가/ 여행작가>

 

 

여행쪽지(지역번호 031)

가는 길=서울춘천고속도로 설악 나들목-신청평대교-37번국도-아침고요, 경춘선 청평역(도보)-청평터미널-아침고요행 시내버스 이용. 청평터미널(584-0239). 서울춘천고속도로 화도나들목-청평검문소-호명호수. 서울-구리-남양주-청평-가평-양수리-45번국도-새터삼거리-46번국도(춘천 방향)-남이오거리 우회전-자라섬. 가평터미널에서 도보로 15분-자라섬. 서울-미사리-팔당대교-양평 방향-조안면-구 양수대교-금남리-청평댐 방향(75번국도)-10Km-쁘띠프랑스. 서울춘천고속도로 화도나들목-현리터미널-운악산 입구, 청량리에서 1330-44 버스 이용-운악산 입구 하차. 서울-경춘국도-도농삼거리-대성리-청평검문소-에덴휴게소-가평군청-명지산 방향-승안삼거리-목동삼거리-명지산/연인산. 가평터미널에서 북면, 목동, 백둔리행 마을버스 이용-명지산 입구. 조무락골과 도마치계곡(적목용소)은 명지산 입구에서 강원도 화천 방면으로 20분쯤 더 가야 한다.

맛집=아침고요에 산채비빔밥, 묵무침, 송이덮밥 등을 내놓는 한식당이 있다. 가평읍내의 가평축협한우명가(582-1592)는 가평 한우를 맛볼 수 있는 곳이고 서울춘천고속도로 가평휴게소(584-1426)의 가평잣산채비빔밥도 인기다. 경춘국도변의 큰가마곰탕(585-4455)은 오래 고아낸 진한 한우 사골맛이 일품이다.

숙박=청평호 주변에 가평커플펜션(584-6776), 강변의 추억펜션(585-7740), 아침고요 주변에 곰들산장펜션(585-6398), 꿈의궁전펜션(585-0396), 운악산(현등사) 입구에 SKY펜션(584-5425), 펠리체펜션(010-5357-02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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