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농 활성화, 같이 고민해주세요!!”
“우리농 활성화, 같이 고민해주세요!!”
  • 가톨릭뉴스지금여기 배선영 기자
  • 승인 2016.07.25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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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뉴스지금여기=농민주일기획> 인터뷰: 가톨릭농민회 최경미 부회장

“마을 할머니들 보면 멋있어요.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아요. 힘닿는 데까지 농사지으면서 내 한 몸 건사하며 독립적으로 살고 싶어요.”

20년 전 귀농했을 때만 해도 “농사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최경미 씨, 지금은 농사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단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하고 싶다.

 

▲ 지붕 위의 최경미 씨. ⓒ배선영 기자

 

그녀는 귀농이라는 말이 잘 쓰이지도 않던 때 전남 해남에 왔다. “서울에서 회사 다니며 친구들과 노는 게 다였던” 그녀의 인생은, 농사를 짓고 싶은 남편을 따라 귀농하면서 180도 바뀌었다. “잔잔한 물에 파도를 쳐 준 남편” 덕분에, 삶이 “다이내믹”해졌다.

농민주일을 맞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가톨릭농민회(가농) 부회장과 광주대교구 가농 여성위원회 위원장인 최경미 씨를 만나 여성 농민으로서의 삶, 우리농이 활성화되기 위한 방안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경미 씨는 자신이 땀 흘려 농사지으며 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시골에 대한 향수, 아이가 자유롭게 자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갖고 농촌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농사에 잘 적응한 것이 “자신의 장점인 게으름” 때문이라고 했다. “적응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느긋하게 바라보며 물 흐르듯 하니 적응이 됐다.”

최경미 씨는 농사가 재밌다. 지루하지 않다. 해마다 날씨는 달라지고 그에 따라 작물도 잘 골라야 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늘 변하는 환경에 잘 대처하고 나면 뿌듯하고 자존감도 커진다. 물론 힘들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 힘든 건 마찬가지. 그녀에게 농사는 힘들지만 재밌는 일이다.

농사의 또 다른 매력은 짬나는 동안의 휴식이다. 해남은 겨울에도 농사를 짓는데, 밤새 얼었던 농산물이 해가 들면 녹는다. 농산물이 녹는 오전 10-11시까지는 빈둥댈 수 있다. 이맘때부터 8월 중순까지도 좀 한가하다. “이 휴식기가 정말 달콤하다.”

그러나 시련도 있었다. 그녀는 1999년 태풍 올가가 지나가는 모습을 직접 봤다. “구름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던지…” 비닐하우스가 뒤집혔고, 고추 농사는 망했다. 그 뒤로 태풍은 해마다 한 번씩 오는 것, 그러려니 한다. 그녀는 피해를 최소화한다면, 태풍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해에는 병충해가 사라져 작물 상태가 괜찮기 때문이다.

 

▲ 부부가 직접 지은 흙집. ⓒ배선영 기자

 

인생이 다이내믹해진 것은 농사일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3년째 가농 부회장을 맡고 있다. 남편 김군호 씨는 그녀가 조직 일을 하도록 “부추겼다”. 김 씨는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 잡고, 조직에서 역할을 맡는 것이 우리나라 여성 농민 중 극소수”라며, “가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만 즐겁게 하길 바란다”고 했다. 김 씨는 아내보다 먼저 한살림 생산자 공동체 등에서 활동했다. 최경미 씨가 조직을 경험하면서 부부는 서로를 더 공감하게 됐다. 몸담은 공동체를 주제로 대화도 잘 통하고, 함께 화를 내기도 한다.

광주대교구 가농 여성위원장을 하면서는 ‘여성’ 농민으로서의 관점이 생겼다. 그녀는 여성위원회를 하기 전까지 농민과 여성농민을 구별하지 않았다. 그러다 “적극적이고 싶은데, 남성 중심의 문화 때문에 나서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을회의가 있는 날, 여자들은 밥을, 남자들은 회의를 한다. 밥 먹고 나면, 여자들은 남자들 사이사이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는다. “가끔 대가 센 아줌마가 말하기도 하는데, 여자들이 대가 센가, 주로 (남자들)분위기에 주눅 들지.” 여성이 나서서 이야기를 하면 앞에서는 끄덕하고 뒤에서는 “누구네 마누라”라면서 흉을 본단다.

공동체에서 차별을 실감한 뒤 그녀는 마을 모임에 잘 나가지 않게 됐다. 최경미 씨 부부는 서로에게 역할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한다. 권위적 분위기가 없다. 그녀가 굳이 ‘여성’농민이라고 자각을 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녀는 “농사는 부부가 같이 지으면 좋다”고 강조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이 채워지면서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부부가 같이 있으면 싸우지 않느냐고 묻자, “밭 매면서 수다 떨다 보면 일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보통은 많이들 싸운다. 멀리서 보면 밭에서 두 노인이 고함을 지르고 있다.” 김군호 씨는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는 것과 평상시 관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부부가) 위아래 관계가 되면 사소한 일에서 반감과 불신이 생겨요.”

 

▲ 단호박을 포장하는 최경미 씨. ⓒ배선영 기자

 

부부의 주 작물은 단호박과 고구마다. 겨울에는 봄동과 시금치 농사를 짓는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우리농), 지역 한살림, 개인소비자 등에게 제공한다. 최경미 씨는 교회 안에 성당과 기관이 많은데도, 우리농이 잘 안 돼 답답하다.

특히 생산자 입장에서는 판매가 불규칙해 농사 계획을 세울 수 없어 어렵다.

“전년에 감자가 잘돼 2-300평 심었는데, 20∼30박스 가져가고 소식이 없어요. 기다리다 감자는 잘 썩으니까 가려낸 뒤 알음알음 팔았어요. 근데 뜬금없이 연락해 감자 없어요? 하면 속이 터져요.”

그녀는 교회 안에 변수가 많아 (우리농) 실무자도 계획하기 힘들어 한다고 덧붙였다.

김군호 씨도 “우리농이 본당 신부의 취향과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고 지적했다. “어떤 신부가 본당을 맡느냐에 따라 (우리농 매장이) 엄청 활성화되기도, 문을 닫기도 해요. 이런 게 매출에 크게 작용하니까 계획적인 생산과 소비가 어려워요.”

최경미 씨는 또 사제 대상으로 우리농 교육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농 회장이나 농민이 강의를 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농이 활성화될 수 있는지 사제들과 함께 고민하길 바랐다.

더불어 “교회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 농민이 무엇을 하는지 깊은 관심을 갖고 문을 좀 더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교회의 모든 기관과 시설, 사제관과 수도원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밥상 차리기’에 적극 동참해 달라”는 주교회의의 농민주일 담화문을 보고 힘을 얻었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땀 흘려 농사지은 밭을 둘러보고, 13년 전 부부가 당시 전 재산인 500만 원을 들여 직접 지은 흙집의 지붕에 올랐다. 최경미 씨는 까맣게 탄 얼굴에 연신 미소를 지으며 “얘들”(농작물)을 설명했다. 문득 20년 전 서울에 살 때 그녀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녀는 ‘농민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 늘 “농촌과 도시가 하나로 이어져”라는 구절에서 간절해진다고 했다. “농촌과 도시의 구별은 학자나 행정가가 구분한 것 뿐, 하나이고 서로 순환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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