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에 갇힌 쇠약한 병아리들, 안간힘 쓰며 벽을 친다
박스에 갇힌 쇠약한 병아리들, 안간힘 쓰며 벽을 친다
  • 유미혜 기자
  • 승인 2016.08.01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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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 체험기> 인턴으로 살다-두 번째 이야기

인턴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면접을 위해 문을 열고 들어서던 처음의 설렘과 긴장감을 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식하지도 못하리만큼 빠르게 지나간 하루하루 속에 처음과 다른, 아니 그때는 몰랐던 생각이 분명 생겨났다.

▲ 사진은 대기업 인턴의 이야기를 다룬 TVn 드라마 '미생' 스틸 컷

회사생활이란 것이 커다란 화살 또는 칼이 되어 내 심장을 뚫을 고통을 주진 않으나 몸통 양옆으로 자잘한 선인장들을 세워 한 번씩 따끔, 따끔 내 심신을 괴롭히곤 한다.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야 나는 따갑지 않고, 즐겁게 생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요새는 그것이 최대 과제다. 어쩌면 풀리지 않을 과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사회초년생의 미숙한 눈이지만 ‘좋은 회사’를 고를 몇 가지 룰을 습득하고 있다. 많은 ‘취준생’이 “우리 회사에 지원한 동기가 뭔가?”라는 질문에 “돈 벌러 왔지 멍청아”라는 우문현답을 열을 내며 감출 때… 어차피 고만고만한 급여를 받는다면 당신의 생계는 ‘미래의 나’에게 맡겨두고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 근무 환경에 깐깐한 안목을 두는 건 어떨까. (물론 구직자 입장에서 직접 일해보기 이전엔 이 회사가 어떨지 알기 어려울뿐더러, 당장의 취업이 급해 일단 시켜만 주세요! 마인드가 용솟게 된다. 멍청한 과거의 나…) 그러니 가볍게 읽기 권한다. 사회초년생 스물세 살 인턴이 ‘우리 회사는 좋은 환경인가’를 나름대로 평가해본 후기글로.

 

하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가볍게 시작해보자. 입사 첫 날 번지르르한 건물 외벽과 잘 갖춰진 출입 관리가 나를 흥분시켰다. ‘대기업스럽군!’ 하지만 (일반적으로) 건물 외관을 보며 일할 수는 없지 않는가? 가끔 출퇴근이 낯설어 길을 헤맬 때 높게 솟은 회사 간판을 보며 쫓아갈 수는 있다. 그러나 대개 근로자라는 존재는 시간이 지나면 어디서 일하냐보다 어떤 곳에서 일하냐가 중요해지게 마련이다. 내부가 중요하다. 예컨대 밥은 잘 해결할 수 있나? 편의 시설, 휴게 시설은 마련되어 있나? 안전한 곳인가?

밥. 중요하다. 일하다가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식사를 해결하고 나면 심신이 건강해진다. 도시락으로, 외식으로 매일의 밥을 해결한다는 것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사내식당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백 배 낫고, 눈칫밥보다는 규칙적인 식사 시간이 있는 게 좋다.

쉴 공간, 더욱 중요하다. 학교도 아니고 집도 아니고 쉴 곳이 왜 필요하냐는 경영인의 머리를 쥐어박아주고 싶다. 쾌적한 편의‧휴식 시설 제공은 결국 기업 전체의 동력이 된다. 딱딱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시각적인 만족감과 안정감을 채워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귀여운 피규어 하나로도 행복해지는 우리들이 아닌가. “나는 똥내 맡으면서 밥도 먹어봤어.” 화장실 칸 너머로 청소노동자 어머님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들의 휴식처는 화장실 내 구석에 수납장처럼 마련된 공간이 전부였다. 휴게실이라곤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온갖 청소물품들과 나란히 숨을 마시거나 때론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까르르 하는 호탕한 웃음소리로 시작한 얘기들이었으나 그들의 대화는 결국 한숨과 정적으로 마무리됐다.

마지막 안전… 화재 위험(?) 승강기 안전(?) 부실공사(?) 같은 것들을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물리적인 이들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더 이야기해보자.

 

둘, ‘내일’은 안전한가?

 

내가 속한 부서는 잦고 빠르게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다. 같은 층에 있는 직원들 대다수가 인턴과 아르바이트, 프리랜서로 채워져 있다. 하루에 두 번씩 사무실 곳곳을,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루 종일 일해주시는 청소노동자와 단순 용역도 당연 단기 계약직이다. ‘연명’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근무 시작 초에 설렘과 낯선 두려움으로 만난 사람들과의 첫 인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작별 인사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무슨 팀에 아무개고, 이제 2개월 남았습니다” “다음 달이면 떠납니다” 하는 식이었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도 잦은 물갈이(?)는 원치 않는다. 아직 일에 서툰 신입은 노련함을 갖춘 퇴직자보다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다. 인수인계 동안 인력비도 2배로 들어간다. 새 인력이 가져올 환기보다 혼란과 비용이라는 부담이 크다. 그러니 애당초 장기 근로자를 원한다거나 떠나겠다는 이들에게 좀 더 있으라는 둥 붙잡기도 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경영자의 장기(長期)란 어디까지나 현재를 뜻하고 노동자의 내일을 지켜주지 못한다. 현재소모적인 ‘내 일’이 내일까지 지속될 수 있느냐는 자기주체성의 범위 밖에서 결정된다.

조식을 챙기러 밖으로 나갔다. 한 직원의 친근한 얼굴이 보였다. 혼자 계시기에 옆자리로 찾아갈까 망설이다 이내 몸을 반대편으로 틀어 조용히 공간 속 사람들을 관찰했다. 자주 찾는 식당에는 인근 회사원으로 가득하다. 여기 모두가 하던 일을 내려놓고 경건하게 오롯이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득 갈라진 물결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유니폼을 입은 청소근로자와 가지각색 세미 정장을 차려입은 회사원들로 식당 안은 갈라져 있었다. 굳이 여긴 누구 좌석, 저긴 누구 전용 나뉜 것도 아닌데 모두들 알아서 갈라 앉았다. 어차피 모두 같은 비정규직임에도…. 박스에 갇힌 쇠약한 병아리, 같은 운명을 지닌 사람들이 안간힘을 쓰며 벽을 친다.

 

셋, 가족 간 예의

 

아직까지 사무실 한가운데 내 자리는 가시방석이다. 입사 초반만 해도 ‘대폭풍’을 일으키겠다며 신이 났었는데, 우리 팀 업무는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아직 작문도 미숙하여 한 달이 지나도록 검토과정을 밟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눈치를 보게 됐다. 선배 인턴이 다른 직원을 대할 때의 표정과 말씨를 어느새 관찰하고 있더라.

조직 생활이란 친밀한 흥분에 가슴이 뛰다가도 사소한 오해와 실수가 심장을 움켜오는 어려운 환경이다. 학교고 회사고 그건 어딜 가든 마찬가지겠지만, 학교와 달리 회사에선 나에게 조여 오는 불편함을 쉽게 놓아‘버릴’ 수가 없다. 겸손이라 생각한 언행이 순식간에 자신을 미더운 사람으로 형상할 감점 요인이 되기도 하고, 생각보다 개방적이며 유동적인 구조로 느꼈던 곳이 한 순간에 한 없이 보수적인 집단으로 변하기도 한다.

삶과 사람이 만난 이상 자연스레 질책과 갈등이 부딪힐 수밖에 없지만, 내가 몸 담근 조직에서 하나 감탄했던 점은 가족 간의 예의를 철저히 지켜주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팀은 혈연이 없는 가족이다. (물론 지연-학연으로 많은 공통 고리는 생기기도 한다.) 가족은 특히 남보다 더 많은 갈등이 생기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구성원이 받는 질책을 다른 구성원에게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아이가 보는 앞에서 엄마가 아빠를 면박 준다든지, 아빠가 엄마에게 폭력을 행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둘 사이 뿐 아니라 다른 구성원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리 없다.

그걸 알아서였을까. 문제가 생기면 상하 관계든 동료 관계든 서로를 조용히 다른 곳으로 불러냈고, 차단된 공간 안에서 모든 갈등을 해결하고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언성을 높이거나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 잔재는 남더라도 문제의 핵을 직접적으로 해결하고 나니 더 이상의 악화는 막을 수 있어보였다.

또 생각해보면 영웅은 많았다. 누군가 울그락푸르락 한 얼굴로 기억에 남을 때, 그들은 그의 피부색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늘 당차게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맞았다. 낯선 이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언제나 노여워하거나 힘든 기색을 구태여 보이지 않았다. 자꾸만 기대고 싶고 응석부리고 싶은 것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내 어린 마음이다. 스쳐간 인연 중 가까워진 사람들과 잊어간 사람들도 많지만 좋은 기분을 주는 사람은 늘 전자였다.

 

난측하지 않다 보았던 하나의 사무실, 하나의 칸칸마다 실로 많은 일들이 생기고 움직이나 보다. 또 그럼에도 나는 이 집단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들어온 문이 한 때 벽이었음을 기억하고, 스스로 전력을 다하지 않음에 핑계 대지 말자고. 그렇게 마음먹고도 또 새로운 낯선 것이 다가와 어느 날 하나의 마음을 무너뜨릴 것이다.

“아~! 정말 어렵다, 인턴!” 나는 아직도 골머리를 썩인다. 사실 뭐, 하나라도 쉬운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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