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고양이의 출산

사람은 거의 아무도 모르게 잉태돼서 온 세상이 떠들썩하게 태어난다. 그런데 고양이는 온 세상이 다 알도록 요란하게 잉태돼서 거의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태어난다. 오래 전 이런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무슨 말인지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게 무슨 말인지 가르쳐준다고 설명까지 해주고 있는데도 알 듯 모를 듯 헷갈렸다. 헷갈리면서도 헷갈린다는 말은 차마 못 하고 다 알게 된 것처럼 그냥 아 그래요, 하고 대충 넘기고 말았다. 그리고 잊었다.

 

▲ 출산 직전의 이상행동

 

잊었던 그 주제가 부활한 것은 우리 집에 들어와서 한 식구가 돼버린 검은 고양이 야옹이가 바야흐로 새끼를 낳게 되면서였다. 생각하면 그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장면이었다. 개가 새끼 낳는 장면을 몇 번인가 가까이서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고양이도 개처럼 발톱으로 바닥을 박박 긁어대다가 눈을 부릅뜨고 고통스런 신음소리와 함께 힘쓰는 소리도 내고 그러는 줄만 알았다. 흙바닥 위에서 뒹굴고 놀다가 문득 동작정지가 된 상태에서 불쑥 새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차마 해본 적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게도 고양이 새끼와의 인연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집에 이사 와서 두 번째 맞이하는 겨울 어느 날이었다. 말려서 시렁에 걸어놓은 무청을 삶으려고 헛간 문을 열었는데 뭔가 느낌이 좀 이상했다. 공포영화라도 보는 것처럼 숨을 죽이고 좌우를 살피며 이것저것 들었다가 놓기를 얼마나 했던가. 큰바구니 안에 넣어둔 작은 바구니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체를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은 그야말로 놀라움이어서 입을 쩍 벌릴 만했다.

집 주변에서 고양이 소리가 자주 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새끼는 전혀 상상밖의 일이었다. 네 마리였던가, 다섯 마리였던가. 정확한 숫자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하긴 숫자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순간은 아니었다. 처마에 고드름이 일 미터도 넘게 자라나 있는 강추위 속에 고양이 새끼들이 깔고 덮을 이부자리도 없이 그냥 바구니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는 것, 그 순간의 내게는 그 사실이 중요했다.

이것들을 어찌 해야 하나. 이 추위 속에 이대로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눈도 뜨지 않은 고양이 새끼를 내가 임의로 데려간다면, 그 뒤는 어떻게 되는 건가. 아니었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그것은 안 될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다만 새끼들이 조금이라도 덜 추우라고 부드러운 수건이며 담요 같은 것들을 가져다가 두툼하게 깔아주고 덮어주었을 뿐이었다.

 

▲ 쟤가 지금 뭐하는 거야

 

그리고 다음 날 일찍 가만히 한 번 가보았다. 그런데 이게 뭐냐. 새끼들은 한 마리도 없고 수건과 담요만 차가운 느낌으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 이해불능의 어리둥절한 상황을 누군가에게 얘기했더니 고양이는 원래 그런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야생의 동물들은 누군가 손을 댔다 싶으면 즉각 새끼들을 입에 물고 다른 데로 가버린다는 것을, 예전에 이미 ‘동물의 왕국’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고 있기는 했지만 글쎄, 그것은 제대로 된 앎이 아니라 나도 그쯤은 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은 셈이었다.

그러면 우리 집에 들어와서 식구가 돼 있는 검은 고양이 야옹이의 신분은 무엇인가. 야생인가? 집 고양이인가? 야생으로 살다가 사람 집에 들어온 지 육 개월도 채 안 됐으니 야생으로 보는 게 옳을 것 같기도 하고, 집 고양이로 보는 게 옳을 것 같기도 하고 헷갈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녀석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임신을 한 까닭에 고양이 특유의 날렵함은 사라지고, 몸매는 길고 둥글게 일자로 통통해져 있는 것이 볼 때마다 그것 참 하는 투의 웃음이 나왔다.

이런 녀석을 다시 야생으로 내보내면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뱃속의 새끼도 탈 없이 제대로 낳아서 기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니까 녀석은 이제 집 고양이로 봐도 무방한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조심스러웠다. 조심스러운 까닭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보였다.

고양이와 사람의 언어가 완전히 다르고 보니 무슨 약속을 할 수도 없고, 맹세를 할 수도 없고 부탁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요컨대 야옹이 녀석이 새끼를 낳을 때가 되어 집을 나가버리면, 그러면 우리로서는 그저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지? 하는 투의 걱정이나 늘어놓는 것 외에 아무 할 일이 없는 것이었다.

 

▲ 얘 너 거기서 뭐하니

 

그래도 혹시 모른다 싶은 마음에 종이 상자와 스티로폼 상자를 여기저기 구석진 곳에 놔두기는 했다. 포유동물은 대체로 새끼를 낳을 때 완전히 어두운 곳도 좋아하지 않지만 밝은 곳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기억하고 있어서, 그래서 상자를 준비하고 신문지 같은 부드러운 종이를 구겨서 이불처럼 깔아놓기까지 했지만, 녀석은 얄밉게도 그 많은 상자들 중 단 하나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저 노는 데만 열중을 바치고 있었다.

이 녀석이 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저리도 태평인 거지? 우리는 슬슬 불안에 빠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꼽아보면 출산이 임박해 있었다. 아니 굳이 손가락을 꼽아보지 않더라도, 한껏 부풀어 오른 녀석의 몸이 우리에게 긴장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녀석은 천하태평으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가끔은 골드 녀석과 장난질을 치다가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듯 뒤로 슬그머니 빠져서 또 잠이나 퍼자고 그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그러니까 일이 다 끝난 뒤에 역순으로 계산을 해보면 새끼가 나오기 삼십여 분 전에서야 녀석은 겨우 여기저기 구석진 곳을 찾아서 기웃거리고 다녔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내일이나 모레쯤 새끼를 낳으려나 보다, 생각하고 녀석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런데 녀석이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더니 뒷다리 한쪽을 높이 쳐들고 가랑이 사이를 혀로 핥기 시작했다.

그게 새끼를 낳으려는 징후인 것 같아서 우리는 거듭 긴장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삼 초, 내지 사오 초 정도 핥다가는 다시 일어나서 어슬렁거리는 녀석의 뒷모습을 우리는 뭔가에 속은 것처럼 다소 허망한 기분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니 저게 뭐야?” 비명 같은 소리가 우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녀가 그것을 먼저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는지, 내가 먼저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 새끼 낳기를 완료한 뒤에

 

어슬렁거리는 검은 고양이 야옹이 녀석의 뒷다리 사이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얼비치고 있었고, 그것을 발견한 우리가 어안이 벙벙해서 외마디비명 같은 소리를 질러대는 순간 검은 고양이 야옹이 녀석은 그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그렇게, 집도 없는 채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태어났다. 게다가 흙바닥 위로 굴러 떨어지다시피 태어났다.

그때는 몰랐다. 상상도 못했다. 흙바닥 위로 굴러 떨어지다시피 나온 첫째가 끝내 잘못 되리라는 것을. 하긴 경험도 없는데 어찌 눈치나 챌 수 있었으랴. 어쨌든 첫째는 그렇게 얼결인 듯이 무슨 판토마임이라도 하는 듯이 아무런 소리도 액션도 없이 갑자기 쑥 나와 버렸다.

훗날 이 첫째 녀석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슬픔을 잔뜩 안겨주고 떠나버리는데, 어쨌든 그날은 느닷없이 흙바닥 위로 빠져 나와서 꿈틀거리는 녀석의 모습이 우리는 그저 신기하고, 신기하면서도 은근히 무서워서 입을 헤, 벌린 채로 그냥 서 있기만 했다.

그런데 녀석은 어미의 뱃속을 완전히 다 빠져나오지는 못하고 태반에 갇힌 채로 아직 걸려 있는 것이어서, 어미는 꿈틀거리는 그것을 잡으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잡히지를 않았다. 그 바람에 어미는 그것을 잡으려고 꼬리를 바싹 치켜세운 자세로 빙빙 도는 꼴이 되고 말았다. 꿈틀거리는 새끼는 물론 어미의 회전을 따라서 역시 빙빙 돌고 있는 것이었다. 그제야 우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아무래도 잡아줘야겠는데?”

 

▲ 탄생 이틀째

 

나는 아마 두려움에 사로잡힌 목소리로 더듬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말과 동시에 나는 손을 내밀었고, 그리고 물컹하게 미끈미끈한 그것을 잡았다. 잡는 순간에도 어미는 계속 돌고 있었고, 그리하여 마침내 새끼는 어미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다. 아직 태반에 싸여 있는 물컹하고 미끈하면서도 흙투성이가 돼버린 새끼를 나는 손에 잡은 채로 한순간 어쩔 줄 몰라 하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혼이 완전히 나가버린 것은 아니어서, 새끼를 얼른 어미에게 넘겨주고 한 걸음 물러서서 추이를 지켜볼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등허리에서 땀이 주룩 흘러내린다는 느낌이 되곤 하는데, 만약에 옆에서 그 모양을 보고 있던 그녀가 손뼉을 치며 잘했어, 잘했어, 하고 격려를 해주지 않았다면, 모르긴 해도 나는 아마 놀란 가슴을 어쩌지 못해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으리라.

어쨌든 새끼를 넘겨받은 어미는 그것을 덥석 물더니 신발장 아래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집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사실 골드와 함께 사용하는 일종의 공동주택이었다. 공동주택을 혼자만의 산실로 정해버린 검은 고양이 야옹이가 그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우리는 몹시 궁금했지만 두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덮어놓고 카메라를 디밀어서 찍히건 안 찍히건 셔터나 몇 번 눌러댄 것이 고작이었다.

 

▲ 탄생 사흘째

졸지에 공동주택을 빼앗겨버린 골드 녀석은 뭐랄까, 녀석이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하여튼 그 표정과 태도는 기록해 둘만했다. 살다살다 이렇게도 이상한 분위기는 처음이라는 표정이었다고나 할까. 커다랗게 뜬 눈을 도저히 깜빡거릴 틈조차 없다는 듯이 고정시킨 채로 공동주택 안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 집중하고 있는데 어찌나 바싹 긴장을 했는지 그야말로 털끝 하나 꼼짝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녀석은 아마 내심 고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새끼 한 마리를 새로 낳아놓고 그 태반을 어미가 벗길 때마다 끼잉, 끼잉, 하는 아주 작은 소리가 들리곤 했다. 골드 녀석은 그 소리가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듯 모를 듯 감을 잡기가 어려웠을 터이었다. 평상시의 골드라면 그 소리에 즉각 사냥본능이 발동해서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일어섰을 테지만, 그런데 이 소리는 아무래도 그 소리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무엇인가. 그래서 확인해 볼 필요를 느꼈던 모양이었다.

이십 분도 넘게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상황파악에 골몰하고 있던 골드 녀석이 마침내 벌떡 일어섰다. 일어서자마자 공동주택 앞으로 한 달음에 달려갔다. 달려가기는 했지만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는 못하고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제야 뭔가를 제대로 알았다는 듯이 냉큼 돌아서서 공동주택 앞을 물러나오더니 마당으로 가서 데굴데굴 굴러대기 시작했다. 이게 그런 것이었어? 하는 뭐 그런 심사였으리라.

검은 고양이 야옹이의 새끼 낳기는 한 시간이 채 안 돼서 다 끝났다. 너무나도 조용해서 가만히 들여다본즉 어미는 새끼를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고 잠들어 있었다. 개는 새끼가 나오면 어미가 즉시 태반을 찢어줘야지 안 그러면 새끼가 숨이 막혀 죽는다지만, 고양이는 새끼를 둘러싼 막이 개와는 달리 매우 얇아서 어미의 뱃속을 나오는 순간 자동으로 찢어지고 있었고, 그래서 고양이 어미는 개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새로 알았다.

 

▲ 내 새끼를 왜 건드리는거 냥~

 

다음 날 나의 그녀는 첫째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흙바닥 위로 쑥 나왔다 해서 자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둘째 이후부터는 그 순서를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임의로 순서를 정해버렸다. 그리하여 둘째는 턱과 눈 주변에 검은 점이 있는 등 생김새가 경이롭다 해서 경이라 이름을 붙였고, 셋째는 탈 없이 잘 살라는 뜻에서 무탈이, 넷째는 아예 해탈을 했으면 좋겠다고 해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녀석들이 모두 함께 잘 살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세상사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는 너무도 평범한 진리를 검은 고양이 야옹이는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슬픔이 새끼의 탄생과 동시에 이미 만들어져 있었고, 그것이 시시각각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일이 다 끝난 뒤에야 겨우 알았다.

하긴 그래서 사람인 것인지도 모른다. 새끼를 낳은 어미 고양이가 집을 나가버릴 수도 있다는 놀라운 사실 또한 우리는 전혀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미는 나가버렸다. 왜?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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