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박상건의 치유의 섬과 등대여행기: 전남 여수 거문도등대

▲ 하백도 기암괴석 위 하늘

거문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있는 섬이다. 여수와 제주도 중간에 위치한 다도해 최남단 섬이다. 서도, 동도, 고도 3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 지리적 여건으로 열강의 침입을 받아왔다. 대부분 암석해안과 해식애로 이뤄져 있다. ‘거문도 뱃노래’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주요 농산물은 고구마, 감자, 마늘, 유채, 양파이고 연안에서 삼치, 멸치, 도미, 갈치 등이 잡힌다. 자연산 굴, 미역, 조개류가 채취된다. 특산물은 자연산 미역, 갈치, 갈치창젓이다.

 

▲ 거문도 내항

 

문득 거문도 사람들의 애환이 묻어난 ‘거문도 뱃노래’가 떠오른다. 섬사람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가거나 만선으로 돌아올 때 부르는 거문도 뱃노래. 거문도 뱃노래는 400여 년 전부터 전해와 지금도 불리고 있는 우리 가락이다. 북과 꽹과리, 장고를 두들기며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쁨과 편린이 묻어 있다.

어야디야 어야디야
해가 떠서 일광보살 어야디야
달이가 떠서 월광보살 어야디야
수로 천리가 멀다해도
아침은 점점 가까와지고
뒤수는 점점 멀어져가네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기영차 노저어가세
어기영차 노저어가세
남해바다가 어디메냐
서해바다가 어디메냐
이 바다를 건너면은 고기 바탕이 나온다네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노저어가세
몇일을 가서 남해를 갈꺼나
몇날을 가서 서해를 갈꺼나
이보소 도사공 말 들어보소
뱃전이 어디로 돌아를 가나
걱정을 말고 돌아를 가세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노저어가세
어야디야 어 쳐라 어야
- ‘거문도 뱃노래’ 전문 

 

▲ 거문도등대 등탑

 

‘거문도 뱃노래’와 함께 400여 년 전부터 거문도 서도마을 주민들에 의하여 전승되어 온 노동요가 ‘거문도 술비소리’이다. 바람이 많은 거문도에서는 밧줄이 생명줄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붕을 이거나 어로 작업에 밧줄이 절대 필요하여, 마을 사람들이 칡덩굴이나 짚을 모아 갯가에서 작업을 한다. 이 때 작업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노래를 한다. 400여 년 전부터 전해지고 있는 이 노래에는 섬사람들의 협동심과 단결심이 배어 있고 외딴섬에서 사는 고달픔과 외로움, 그리고 끈질긴 생활력까지도 그대로 담겨 있다.

에이야라 술비야/ 에이야라 술비야/ 너는 주고 나는 받고/ 에이야라 술비야/ 까지 까지 돌려보세/ 에이야라 술비야/ 이번 맞고 금 쳐 놓세/ 에이야라 술비야/ 술비여어/ 에헤에 술비여어 어루야/ 에헤어루 술비야/ 에이야 술비야/ 에야 디디야라 술비야

살살 비벼라 꼬시락 든다/ 에이야라 술비야/ 중간 사람은 잘 봐 주소/ 에이야라 술비야

여섯 가지를 고루 돌리소/ 에이야라 술비야/ 이번 맞고 금 쳐놓세/ 에이야라 술비야/ 술비여어/ 에헤에 술비여어 어루야/ 에헤어루 술비야/ 에이야 술비야/ 에야 디디야라 술비야

이 줄은 다려서 보름날 당구고/ 에이야라 술비야/ 저 줄은 다려서 닷 줄을 하고/ 에이야라 술비야/ 다음 줄 다려서 갓 버리 하세/ 에이야라 술비야/ 이번 맞고 금 쳐놓세/ 에이야라 술비야/ 술비여어/ 에헤에 술비여어 어루야/ 에헤어루 술비야/ 에이야 술비야/ 에야 디디야라 술비야

- ‘거문도 술비소리’ 중에서

 

▲ 거문도항

뱃노래 부르며 해삼, 갈치 잡으러 가세

예로부터 어촌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삼월삼짇날이 가까워지면 해삼도 꽃을 따먹으러 뭍으로 올라온다고 했다. 미역, 톳, 참가사리, ‘불둑’이라 부르는 붉은가사리, 참몰 등도 많이 난다. 이 중에 거문도에서 나는 미역은 수중에서 나는 자연산 돌미역이다. 거문도 특산물이다.

은빛갈치 역시 거문도 상징이다. 거문도 갈치잡이는 전통적으로 배에서 잡는 채낚기와,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안강망, 기선저인망, 선망, 트롤이 있고, 일정한 수역에 어장을 설치하여 잡는 낭장망과 정치망이 있다. 갈치로 만든 음식으로는 갈치회, 갈치조림, 갈치구이, 갈치국, 건조갈치(편갈치)와, 젓갈로는 갈치속젓과 갈치통젓을 담아 먹는다. 현재는 갈치가 비싸서 갈치통젓은 잘 담그지 않는다. 요즘 갈치를 잡는 배는 채낚기 어선들이다. 바늘이 여러 개 달린 낚싯줄을 이용해 잡는데 이렇게 갈치를 잡으면 그물로 잡을 때보다 은빛 비늘이 덜 상하고 훨씬 싱싱하다.

 

▲ 거문도 녹산 무인등대
▲ 거문도 동백터널

 

이런 어업을 주로 하는 거문도에는 590여 가구에 14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거문도는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배가 처음 들어설 때 왼쪽 방향 작은 섬이 동도, 오른쪽 섬이 서도이다. 여객터미널이 있는 섬이 고도이다. 고도에서 서도를 잇는 타원형 구름다리 삼호교를 건너면 100년 역사를 지닌 거문도 등대가 있다.

거문도 관문 서쪽에는 녹산 무인등대가 있고 동쪽리 수월산 절벽 위에 유인등대가 있다. 역사적인 거문도 등대로 가는 길은 ‘목넘어’, ‘무넘이’로 불리는 길이다. 이른 봄, 갯바위를 타고 등대로 가는 길에 들어서면 이른 봄이면 더욱 환상적인 동백터널이 이어진다. 동백터널 끝에 거문도등대가 있다.

 

 

▲ 거문도 등대 팔각정

아픈 역사의 등대, 팔각정의 여유

등대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맞아주는 것은 두 마리의 강아지. 등대 숙소에서 묵던 그날 밤, 밤 깊도록 강아지는 이방인 문밖에서 턱을 괴고 앉아 떠나지 않았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오징어 다리를 던져주자 녀석은 반갑게 받아먹곤 했다. 눈이 참 선했다.

거문도 등대는 1905년 4월에 처음 불을 밝혔다. 긴 역사를 지닌 남해안 최초의 등대로 숙소, 사무실 등 전체 규모로는 동양 최대 규모이다. 등대는 연와조로 만든 하얀 색상이다. 높이는 6.4m, 해수면으로부터는 69m에 이르는 절해의 고도에 서 있다. 절벽 아래는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깎아지른 벼랑. 군락을 이룬 푸른 모시풀이 그 벼랑을 타오르고 있다. 등대 아래 배치바위에서는 강태공들이 낚시에 여념이 없다. 이따금 고기잡이 어선들이 포구로 돌아온다. 노을바다에 깃발을 나부끼며 돌아오는 어선의 모습이 포근하고 이국적이다. 등대 옆에는 ‘관백정’이라는 팔각정 쉼터가 있다.

 

▲ 거문도 등대아래 해안
▲ 거문도등대야경

 

거문도 등대는 15초마다 한 번씩 불빛을 깜박인다. 23마일(42km)까지 불을 밝힌다. 거문도 는 1885년부터 2년 동안 영국해군의 점령을 받았다. 이후 1988년 강대국과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등대가 설치됐다. 현재 거문도등대는 오륙도, 영도등대, 대마도 앞까지 연락이 가능한 위성항법장치 GPS가 설치돼 있다.

 

 

▲ 거문도등대 전경

등대지기는 영원한 휴머니스트

밤이 되자 등대원들 그리고 동행한 일행과 밤새 등대이야기를 나눴다. 등대에는 집배원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직접 여객터미널까지 내려가 우편물을 가져온다. 그렇게 가로등 없는 산길을 밤길마다 오간다. 동백꽃이 피어있을 때면 떨어져 뒹구는 꽃을 피하느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자연과 한 호흡으로 사는 등대지기들의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여수에서 뱃길로 6시간 걸리던 소리도 등대지기 시절에는 지게에 배터리를 짊어지고 등대로 가는 산길에서 배터리 수은이 터져 독성으로 속옷이 펑크 나고 피부가 다 벗겨지기도 했다. 피곤에 지쳐 잠에 들었는데 독성 탓에 이불이 불에 탄 듯 구멍이 났더란다. 태풍주의보에 보급선이 오지 않으면 나무를 베어서 군불을 지피고 집배원이 섬에 올 수 없어 늦게 도착한 전보 탓에 가정 대소사 놓치기가 일쑤였다. 초도라는 외딴 섬 근무 시절에는 사람의 시체를 가마니에 싸서 바람에 썩히는 소위 ‘초분’ 탓에 도깨비 혼령에 떨어 머리끝까지 땀범벅이 되어 줄행랑을 쳤다. 어느 깊은 밤에 노파가 주검을 쓰다듬는 모습과 마주치기도 했다.

 

▲ 백도전경
▲ 거문도 서도 방파제등대

 

물론 어민들의 이러한 풍습에 서서히 젖어가는 것은 등대지기들의 인지상정. 섬마을 집집마다 생업에 어려움이 없도록 안개가 낄 기미만 보이면 미리 등대를 점검하고 발전기가 고장 나면 온몸으로 등명기를 돌리고, 밤을 꼬박 새우곤 한다. 우리나라에서 24시간 근무하는 유일한 공무원이 등대지기이다.

아무튼 섬 여행에서 만난 등대지기 이야기는 밤새 해도 끝이 없다. 우리시대 영원한 휴머니스트이다. 그런 등대지기 사랑을 상징하듯 동백 숲은 더욱 무성하게 거문도등대를 에워싸고 있다. 고기잡이 간 남편을 기다리다 끝까지 정조를 지키고 몸을 던져 피토하며 죽은 전설을 가진 동백과 등대지기와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다음날 이른 새벽 쪽지 한 장 남기고 등대를 떠났다. 마음씨 좋은 등대지기들이 아침밥상을 차릴 것만 같은 예감 때문이다. 오늘은 그 섬 그 등대지기들이 무척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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