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철희의 자연에 살어리랏다> 한삼덩굴

 

한삼덩굴인가? 환삼덩굴인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어떤 문헌에는 한삼덩굴, 또 어떤 문헌에는 환삼덩굴로 다르게 표기하고 있어 혼란스럽다. ‘동식물 이름표기 대혼란’ 제하의 1978년 3월 20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우리나라 동식물의 이름이 중국 또는 일본식으로 일반인에게 제멋대로 통용되는가 하면 초중고교 교과서에도 여러 갈래로 표기돼 교사와 학생들 간에 혼란을 일으키는 사례가 많아 학자들이 동식물이름 바로 잡아주기 운동에 나섰다. 한국분류학회(회장 이영로李永魯)에 따르면 식물의 경우에만도 이같이 잘못 쓰이거나 두 가지 이상 이름으로 통용되는 종이 700여종에 이른다”며, 초중고교 교과서에 잘못 기재된 식물의 이름을 바로잡아 줄 것을 문교부에 건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중에는 ‘환삼덩굴’은 ‘한삼덩굴’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참고로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의 언론사와 한국식물생태보감 등은 한삼덩굴로 표기하고 있다.

 

한삼덩굴은 잡초인가? 약초인가?

누구라도 이 땅에서 가장 흔한 풀을 꼽으라면 한삼덩굴을 꼽을 것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흔하게 자라는 한삼덩굴은 마을의 숲 가장자리나 밭둑, 쓰레기더미 주변, 하천 변, 도시의 공터 등 주로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이라면 지천으로  자란다. 이러한 생태적 특성 때문에 식물사회학에서는 ‘사람을 따라다니는 풀’ 즉 인위식물종(人爲植物種, synanthropophyte)으로 분류한다.<한국식물생태보감 1, 2013. 12. 30., 자연과생태>

“한삼덩굴이 간재선생유허비 주변 언덕 일대를 우점한 채 며느리밑씻개, 닭의장풀 등을 꽤나 못살게 굴며 타의 접근을 불허하는 태세다. 생명력이 강하기로는 이 한삼덩굴을 따를 식물이 없어 보인다. 어떤 이는 숲가장자리에 이 한삼덩굴이 덤불을 이루고 있어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때문에 숲이 그나마 좀 보존된다며 환삼덩굴의 순기능적 역할을 역설하기도 한다.”

위의 글은 2007년 9월12일 왕등도 들꽃 탐사 때, 기대와는 달리 배에서 내려 맨 처음 한삼덩굴과 조우하고서 느낌을 적은 글이다. 왕등도는 부안의 서해 맨 끝 섬으로 거리상으로는 뭍에서 그리 멀지 않으나 좀처럼 발걸음하기 쉽지 않은 섬이다. 그러기에 혹여나 뭍에서는 자생하지 않는 그 어떤 희귀종이라도 만나지 않을까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어렵게 바다를 건넜건만 첫 만남이 한삼덩굴이다 보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삼덩굴의 강인한 생명력을 바다 건너 왕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삼덩굴(Humulus japonicus Siebold & Zucc.)은 뽕나무과(Moraceae) 한삼덩굴속(Humulus)의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다. 맥주의 원료인 호프(hop)와는 한 집안이다. 한삼덩굴은 범삼덩굴, 깔깔이풀 등으로도 불리는데, 범삼덩굴은 한자명 노호등(老虎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깔깔이풀은 줄기와 잎자루에 잔가시가 있어 까칠까칠하기 때문에 이름한 것으로 보인다. 한삼덩굴은 원줄기와 잎자루에 밑을 향한 가시가 빽빽이 나 있고, 주로 왼쪽으로 감는 덩굴성 식물로 자기들끼리 뒤엉키며 덤불을 이루면 줄기가 마치 철사처럼 억세 예초기로 제거하기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러니 자칫 방심하여 밭둑을 넘고, 농작물을 감아 오르기라도 하게 되면 농사를 망치게 된다. 이쯤 되면 웬수같은 잡초다. 어디 그뿐인가. 어릴 적 반바지차림으로 들판을 쏘다니며 팔뚝이나 종아리를 한삼덩굴에 무던히도 긁혔던 기억이 난다. 따갑고 가려워 긁다보면 진물이 나고, 상처는 늦가을 서리 내릴 무렵에야 사라진다. 그러니 한삼덩굴에 대한 기억은 온통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한삼덩굴은 한해살이풀로 이른 봄에 자줏빛 떡잎을 올려 여름이면 이내 무성한 잎들이 주변을 덮어버린다. 잎은 마주나며 잎자루는 긴 편으로 잎벌레와 네발나비의 먹이가 된다. 나비가 한삼덩굴의 잎에 알을 낳으면, 부화한 애벌레는 잎을 먹으면서 자란다. 잎 표면에 거친 털이 있으며, 손바닥 모양으로 5~7갈래로 갈라지는데 그 모양이 삼(麻)잎을 닮았대서 ‘한삼’이라 이름 지어졌다. 흔히 대마(大麻)라 부르는 삼은 직물(삼베), 밧줄, 그물, 종이 원료로 이용되고, 열매에서는 기름을 얻어 식용하거나, 비누, 페인트 등에도 이용되는가하면, 그 찌꺼기는 사료나 퇴비로 사용되고, 한방에서는 열매를 화마인(火麻仁)이라 하여 변비와 머리카락이 나지 않을 때 약재로 사용하는 등. 인류에게 유익한 작물로 이미 기원 전 부터 재배되어 왔으나, 꽃과 잎에 테트라히드로카나비놀(THC)을 주성분으로 하는 마취 물질이 들어 있어 담배(대마초)로 만들어 흡연하면 중독 증세를 보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대마관리법(1976.4.7. 법률 제2895호)으로 재배 및 취급을 규제하고 있다.

한삼덩굴은 초본식물로는 드물게 암수딴그루로 7~9월 걸쳐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른 그루에 피는데 꽃 모양 또한 서로 다르다. 수꽃은 황록색이며 고깔꽃차례(원추화서圓錐花序)로 달리고, 암꽃은 자색빛이 도는 갈색이며 이삭꽃차례(수상화서穗狀花序)로 달린다. 꽃가루받이는 주로 바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가을에 익는 얇은 열매는 포(苞, 꽃싸개)가 커지면서 종자가 들어 있는 중앙부가 렌즈처럼 부풀어 오른다. 크기는 길이 4㎜, 너비 5㎜로서 황갈색이 돌고 윗부분에 잔털이 있다.
 

 

▲ 한삼덩굴 수꽃
▲ 한삼덩굴 암꽃


맥주 원료 호프와 같은 집안-식용, 약용으로도 유용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삼덩굴은 농작물을 감아 오르고, 꽃가루알러지 주범으로 몰리는 등 위해한 잡초쯤으로 여기지만 알고 보면 꽤나 쓰임이 많은 풀이다. 먼저, 숲 가장자리에서 덤불을 이루고 숲을 지키는 첨병 역할을 하는가 하면, 공터나 쓰레기더미, 너저분한 하천 변을 덮으며 무성한 녹음을 선사하는 등의 순기능적인 역할이 크다. 그런가하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감미로운 향을 내는 맥주 원료 호프와 같은 집안으로 어린순은 나물로, 차(茶)로, 줄기의 껍질은 섬유로, 씨앗으로는 기름을 얻을 수 있는가 하면 전체(全体)를 약재로 이용하는데 그 효능도 다양하다.

한방에서는 한삼덩굴을 율초(葎草)라고 하며, 혈압을 낮추는데 유용한 약재로 이용된다. 그런가 하면 소화불량, 이질, 설사, 학질, 폐결핵, 임질성 혈뇨, 임파선염, 치질, 종기, 소변불리 등의 치료에 쓰인다. 『동의보감』에는 “5림(五淋, 5종류의 임병)을 낫게 하고 수리(水痢, 물 같은 설사)를 멈추고, 학질을 낫게 하고 문둥병을 낫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민간에서는 벌레나 뱀에 물렸을 때에 한삼덩굴 잎과 줄기를 짓찧어 소주에 약간 섞어서 연고처럼 만들어서 환부에 바르기도 한다. 또 한삼덩굴을 진하게 달여 욕조에 물과 함께 섞어 목욕을 하면 특히 아토피 질환 등 피부병에 효능이 있고, 한삼덩굴 잎을 여름에 채취하여 말린 다음 가루를 내어 복용하면 혈압을 낮추는 등 고혈압 제증상에 효과가 있다.


<‘부안21’ 발행인. 환경생태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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