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한상권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상임대표-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 한상권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상임대표

 

- 박근혜 대통령과 ‘뉴라이트’의 1948년 ‘건국절’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 국정화 강행으로 튀어나온 문제가 ‘1948년 8월 15일’이다. 종래의 검정교과서는 이를 ‘대한민국정부 수립’으로 보지만, 최근 교육부 지침은 ‘대한민국 수립’으로 하려고 한다. 여기서 ‘1948년=대한민국 수립(건국)’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향후 국정교과서 내용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 암시하는 바가 크다. 1948년을 기점으로 남과 북의 입장도 다르다. 남측의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이었지만, 1948년 9월 9일 북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남측은 ‘정부(政府, Government)’를 수립하고, 북은 ‘국가(國家, Nation)’를 수립한 문제를 두고 양측이 국격에 혼선을 불렀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에 대한 오해다. 북측은 3.1운동에 대한 평가가 미흡했고, 3.1운동의 결과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임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1948년을 건국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남측은 1919년 3.1운동 정신을 이어 받아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임시정부로서 국가인 대한민국을 운영했다. 그러다가 1948년에 정식으로 정부를 수립했기 때문에 1948년의 정부수립이 결코 국격을 훼손한 것이 아니다.

 

 

- 그렇다면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 대부분의 국민들이 대한민국 출범이념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로 잘못 알고 있다. 지난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으로 우리 민족은 인류사의 보편적 길로 나아갈 길을 열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두 바퀴로 삼아 ‘발전의 신화’를 창조할 토대를 닦았다”고 밝혔고, 2007년 박근혜 대통령 역시 “만약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고 나라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것이 보수라면 저는 자랑스럽게 보수를 택하고, 그것이 진보라면 진보를 택할 것”이라며 마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대한민국 헌법가치인 것처럼 말했다. 심지어 ‘뉴라이트’도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목적과 관련 ‘오늘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어떻게 성립했나’는 질문을 놓고 근현대사에 다양하게 존재해온 흐름들을 외면하려 한다. 이렇듯 냉전수구 이데올로기 세력들은 정체성을 알면서도 왜곡한다. 대한민국은 정부수립과 함께 초대 국회인 제헌국회에서 ‘제헌헌법(制憲憲法)’을 만들었다. 이후 아홉 차례 개정한 이래 지금까지 오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볼 때 공화주의와 평등주의 정신을 계승하고 경제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 사회복지국가 원리와 재산권의 사회적 의무성을 규정한 제헌헌법이야 말로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미래가치라 본다. 제헌헌법은 ‘오래된 미래’라 평가할 수 있다.

 

 

-역사학계에선 정부가 국정교과서에서 독립운동사를 지우려고 한다는데.

▲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의 산물이며 그에 대한 큰 빚을 지고 있다. 다시 말해 독립운동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없다는 말이다. 헌법 1조 1항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1조 2항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도 독립운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3.1운동과 독립운동정신이 헌법안에 숨 쉬고 있다.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한 날이고 동시에 우리는 해방을 맞았다. 이전에도 제국주의 식민지국가가 많았지만, 한국만 연합국으로부터 사전에 독립을 약속받았다. 미국은 원래 한국 독립운동에 관심이 없었고 상해임시정부를 승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이 ‘카이로선언’에서 마지못해 한국의 독립을 인정한 이유가 바로 40~50년간 해 온 독립운동 때문이었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제일 가까이서 보았던 중국의 국민당 장제스 (蔣介石) 총통이 미국과 영국에게 한국의 즉각적인 독립을 요구한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독립운동사를 잘 가르쳐 왔다. 그런데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금까지의 독립운동사가 자학사관에 입각했기 때문에 가르치지 말라는 거다. 그것도 축소해서 왜곡하고 폄하해서 가르치라고 한다. 온갖 어려움을 겪고 피땀 흘려 조국의 독립과 민족해방을 이룬 선열들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물려받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왜곡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 한․중․일 3국의 역사교과서 문제,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역사교육도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 현재 한․중․일 3국의 역내교역과 인적교류가 매우 활발하다. 외부적으로도 평화스러워 보인다. 열심히 오가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관계이지만 내면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3국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한 ‘월스트리트 저널’ 결과를 보면,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25%이고, 중국인에 대한 감정은 12%로 매우 낮다. 중국에 대한 일본인의 호감도는 9%다. 무척 미워하는 상태인 것이다. 이것이 동아시아 3국의 현주소다. 최근에는 역내 갈등도 심각하다. 평화와 안정이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이렇듯 평화를 저해해온 요소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가 북한의 핵 위협이다. 두 번째가 중․일과 미국의 정치군사적 갈등고조다. 마지막으로 과거사를 둘러싼 서로 다른 역사인식 문제다. 특히 한․중․일 세 나라의 역사교육이 모두 과도한 민족주의에 입각해 있다는 점이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가장 강한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을 하나의 민족, ‘중화민족’으로 묶고 있다. 일본도 매우 심한 민족주의 성향을 띠는데 이것이 우익적 역사다. 일본은 과거 침략전쟁 과정에서 자행한 범죄부정과 식민지배 정당화이론을 통한 역사교육을 하고 있다. 한국도 자학사관에 젖은 뉴라이트 역사학자에 의해 교과서 서술이 개악적으로 탈색됐다. 하지만 동아시아 평화를 추구하는 역사교육이 3국간에 다양한 층위에서 시도되고 있다. 한·일과 중․일 정부차원에서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만들어 역사현의를 논의했고, ‘임나일본부’ 문제를 합의한 성과도 있었다. 민간차원에서 훨씬 활발한 교류가 이뤄져왔다. 일본만 해도 민간부문에서 역사를 제대로 보려는 학자들이 꽤 많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3국간 미래역사 교육의 희망이 보인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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