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강진수의 ‘태국에서 살아보기, 사랑하기’-1회

공항에서의 시작은 뭔가 시작의 느낌이 아니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짐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시작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모든 것이 끝난 느낌. 땅을 밟고 올라서면 곧 다른 땅에 내려야 할 것이다. 공항에서 공항으로. 모든 여정은 그런 식이다.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똑같은 곳에서의 끝은 다시 똑같은 곳에서의 시작으로 잇닿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선택을 몇 달 전에 해버렸다. 오래도록 살아온 땅 바깥에서의 봉사활동을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기로 했고, 다른 땅에서 다섯 개월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 선택은 갑작스러웠고 즉흥적이었다. 그러나 후회스럽지는 않다. 나는 이미 공항에서 공항을 떠나와 다른 땅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흙 위에서 써내려가는 글. 이 글이 새로운 글, 새롭게 사랑하는 글이 될 수 있을까. 나의 힘없는 손가락은 앞으로의 긴 여정을 어떻게 묘사해낼 수 있을까.
 

 

공항에서 공항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 나는 그 어떤 숭고한 목표도 없이 봉사활동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뒤집어썼다. 그저 그 곳에 사람이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앞으로 사랑할 사람이 있어서. 그래서 이 글은 사랑하는 글이 되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사랑할 수 있는 글. 태국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그 익숙하지 않음을 살아가고, 사랑해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말하듯, 오그라든다고 해도, 부끄럽다고 해도, 글은 사랑을 전달하는 매개라면. 전혀 계획이 없이 무작정 길게 내 인생에 자리 잡은 이 여정을 써나가기에 적절한 매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끝이 났으니 이제 시작이다. 무엇이든 완전한 끝은 단 한 순간도 목격할 수 없었다. 내가 끝이라면 끝이고, 시작이라면 시작이다. 나는 벌써 떠나온 땅에서의 순간들을 매듭지었고, 새롭고 낯선 땅에서의 끈을 손에 쥐었다. 이 끈은 나를 어디로 인도할 것인가. 나는 이 끈을 붙잡고 얼마나 먼 곳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은 사랑에 대한 목격담이다. 내가 품고 있던 씨앗이 얼마나 더 큰 가능성을 피워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온전한 목격담. 글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감정적인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이 전부 사실이고 진실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 어떤 목격보다도 진실한 목격담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새로운 땅을 향할 때, 지금은 새롭다고 생각되는 땅에서 나의 매듭이 지어질 때, 나의 목격담은 비로소 또 다른 세계에서 그 의미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공항이 문을 닫을 때, 내 속엔 갓난아기가 들려 있었다. 새로운 땅에서의 새로운 탄생.

 

 

오토바이 아저씨는 웃고 가는가

방콕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길 가던 곳곳에서 오토바이 택시를 운전하는 사람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항상 나무 그늘에서 오토바이를 세우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손님을 기다린다. 행선지와 금액을 슬쩍 던지듯이 길 가던 행인들에게 뱉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들의 얼굴은 그들의 그늘로 짙어 있다.

돈 몇 푼이 오토바이를 인색하게 만든다. 방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돈 냄새 짙은 이 호객 행위들은 반갑지 않은 인사에 불과하다. 여행자들이 고객이 되고, 운전수는 상품이 되어가는 순간들 속에서, 낯익은 이웃들만이 오토바이들의 손님으로 남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동전으로 짤랑거리는 주머니를 괜히 흔들어 본다. 돈이 부딪치는 소리는 왜 즐겁지 않은가. 내 귀에는 여전히 탁한 소리. 나는 탁한 주머니를 탁하게 흔든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일상이 되어버린 방콕의 교통 체증을 느끼고 있다가 창밖으로 한 명의 오토바이 택시 기사를 흘낏 쳐다보게 되었다. 손님 한 명을 겨우 내려주고 다시 차도에 끼어들 참인지, 잠시 오토바이를 골목에 몰아놓고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더듬거리고 있는 모습. 중년의 아저씨뻘 나이었던 그는 능숙하게 담배를 꺼내더니 한 손으로 스윽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훅, 하고 내뱉는 연기는 그의 얼굴에 짙어온 그늘보다도 독한 것이었을까.

입술에 담배를 얹고서 다시 오토바이를 모는 아저씨. 창문 너머로 계속 훔쳐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 결국 오고야 말았다. 나는 오히려 바라봐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뿌옇게 이는 담배 연기 저 편으로 보이는 아저씨의 두 눈은 나와 마주치자마자 드리웠던 그늘을 벗어던졌다. 초승달 모양으로 씩 웃어 보이는 아저씨와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 모습. 아저씨는 왜 낯선 외국인에게 인사를 해보였고, 나는 알지도 못하는 타지인에게 고개를 숙여 답했을까. 이런 순간에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은 별다른 쓸모가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아저씨에게 나는 고객이 되지 않았고, 아저씨는 나에게 상품이 되지 않았다. 상품과 고객 사이에는 그런 정다운 인사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아저씨는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아저씨라는 사람에게 답했던 것이다. 사람과 사람 간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신비로운 만남은 이처럼 인사로 이루어지곤 한다. 인사의 힘은 신비로우면서 강력하다. 사람의 사이를 단순한 고갯짓, 눈짓만으로도 묶어버리곤 한다. 방콕이라는 도시는 감히 그런 인사의 영역을 건드릴 수 없다. 아직 그 신비로움만큼은 도시의 건물들처럼 견고해지지 않았다.

오늘도 오토바이 아저씨는 웃고 가는가. 이 나라, 이 땅에서의 사람들은 인사에 대한 열정이 식어있지 않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들의 인사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도 경건해야 하고 숭고로워야 하며,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 인사. 그 일종의 세레모니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귀찮을 수 없는 이유는, 주고받는 사람이 서로 행복해지는 인사로 굳건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잠깐의 만남이더라도 그 잠깐이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가 사람으로서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일 수 있는 시간. 오토바이 아저씨에게 그 인사가 담배보다도 소중할 수 있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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