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 빠진 사람은 죽음에서 희망을 본다는데…
절망에 빠진 사람은 죽음에서 희망을 본다는데…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6.08.25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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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칼럼> 대통령의 극단적인 마지막 선택은 혹시…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개별소비세와 법인세 등 지난해 도박회사인 강원랜드가 납부한 세금이 역대 최다인 2968억 원이었다고 한다. 강원랜드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매년 사상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다는 발표도 있었다. 도박 사업은 망하거나 위축되는 법이 없이 당당하게 꾸준히 정부 당국자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런 개떡 같은 뉴스를 접하고 있노라니 문득 ‘금 따는 콩밭’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콩을 심은 밭에서 금맥이 발견되었다는 환각으로 콩밭을 모조리 파헤치는 등의 ‘미친 짓’을 했지만 금은 안 나오고 빚쟁이만 되었다는, 결국은 땅도 집도 다 잃고 유랑민이 되었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 8월의 가을풍경

 

‘금 따는 콩밭’은 소설이지만 소설만은 아닌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제가 짜놓은 정교한 사기도박이었다. 땅은 있고 돈은 없는 조선의 농민들을 일제는 가능한 한 합법적으로 착취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가짜 금광이었다. 어디의 무슨 땅에 금맥이 보인다는 소문을 내고, 이에 현혹된 땅 주인의 눈이 멀어지면 땅을 담보로 개발자금을 빌려주는 형식이었다. 땅 주인은 열심히 돈을 빌려다가 열심히 투자를 해 보지만, 금이 나올 까닭은 없다.

도박은 어떤 형식의 것이든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곧잘 도박의 유혹에 빠진다. 죽는 순간까지 고생하느니 일확천금을 꿈꿔보는 것이다. 사람의 이런 약한 고리를 이용해서 정부는 은근슬쩍 도박을 권장하고, 장려하기도 한다. 각종 복권과 경마, 경륜, 경조 등등 온갖 장치를 만들어놓고 눈먼 돈을 기다린다.

급기야는 새만금 지역에 내국인 출입이 자유로운 카지노를 유치하는 법안이 등장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새만금은 애초에 갯벌이었다. 갯벌은 온갖 생명들의 운동장이다. 사람들은 생명의 운동장인 갯벌에서 희망을 캤다. 그런 갯벌을 깡그리 없애놓고 그 자리에 도박장을 만든다?

인간들의 이런 ‘짓거리’에 하늘도 무심하지 않아서 아마 신물이 나버린 모양이다. 흙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문을 열면 흙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생강이며 고구마 같은 뿌리식물들은 화염방사기라도 지나간 것처럼 타들어 갔고, 감나무라든가 무화과 등등 과일 나무들은 쪼그라드는 열매를 매단 채로 가을날의 단풍처럼 물들어 갔다. 천지사방이 온통 불바다라도 되어버린 것 같은 지독한 폭염이 두 달도 넘게 지속되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 묻는다면 바보라고 할까?

 

▲ 다래는 다 죽었고...

 

왕조 시대에는 가뭄이 심하면 왕이 기우제를 드리고 정치를 잘못해서 죄송하다는 요지의 대국민 성명서라도 내놨다지만, 오늘날의 민주공화국 대통령에게서 그런 위로의 말씀을 바란다면 아마 덜떨어진 놈 소리 듣기 십상일 것이다. 하긴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감옥에서 돌아가셨다는 등 자신의 입으로 하면서도 그게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통령에게서 뭘 바랄 것인가.

사람은 늙어서 죽는 순간까지도 배우는 동물이라고 했겠다. 송로버섯이라 불리는 곰팡이식물이 있다는 것을 청와대 덕분에 새로 알았다. 무슨 놈의 곰팡이식물이 일 킬로그램 한 덩이에 현금으로 일억 육천 만원에 낙찰됐다는 얘기도 당연히 처음 접했다. 그런데 그런 버섯을 청와대 사람들이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 일행을 불러다가 밥상을 차릴 때 식자재로 사용했던 모양이다.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이 불난 데 기름을 부었다는 생각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다는 등의 뉴스가 인터넷을 포함한 각종 매체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청와대 사람들이 송로버섯을 식탁에 많이 올린 것은 아니고 조금, 아주 조금 풍미를 위해서 뿌린 것일 뿐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청와대 사람들의 그런 해명이 나는 어쩐지 음식의 풍미를 위해서라면 구더기나 거머리의 체액을 빼서 뿌릴 수도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식의 횡설수설로 들리는 것이어서, 한 시간도 넘게 웃어대느라 그만 턱이 빠져버렸다. 턱이 빠져서 밥도 잘 못 먹는 몸으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뒹굴어대고 있노라니 문득 절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청와대를 직장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혹시 절망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 사람들이 가령 눈곱만큼이라도 희망 비슷한 것을 갖고 있다면 그런 덜떨어진 해명 따윌 내놓느라 머리를 쥐어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희망이라는 것은 누가 뭐래도 한 사람보다는 열 사람을, 열 사람보다는 백 사람을 위한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마음에서 절로 발생하는 향기 같은 것일 테니 말이다.

예전에도 송로버섯이니 삭스핀 따위 값비싼 식자재가 청와대 주방에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값이야 싸건 비싸건 식탁에 오른 음식 재료가 외부로 흘러나가 크게 말썽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그런데 값비싼 식자재 얘기가 박근혜 시절에는 외부로 흘러나갔다. 대통령의 이정현 사랑이 그만큼 깊다는 것을 온 국민이 알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살짝 흘려본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내부에 간첩이 있어서 청와대가 지금 이렇게도 흥청망청 환장해 가고 있다는 대국민 고발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 단풍이 든 무화과는 익을 수 있을까?

 

허허헛 참, 웃다가 이미 턱이 빠져버린 나는 더 이상 빠질 턱이 없어서 웃을 수도 없고, 해서 가능한 한 청와대 쪽 뉴스는 안 보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인터넷을 안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가끔 들어가 보는데 점입가경이라고 했던가. 우병우가 어떻고 저떻고 한참을 설왕설래하더니 마침내 결론이 나왔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연합해서 우병우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병우를 끌어안고 가겠다는 것이다.

“너희들 하는 꼴이 지저분해서 못 살겠다, 바꿔달라.”

“이렇게 좋은데 못 살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넌 차암 나쁜 생각을 머릿속에 담고 있구나. 그런 나쁜 생각 버려 얼른, 응?”

대통령과 내가 만약 일대일 대화를 한다면 이런 식의 동문서답 형국이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나는 지금 매우 우울하지만, 우리의 대통령은 매우 행복하신 것 같다. 객관적으로 더듬어보아도 우리나라에서 현재의 대통령만큼 거침없이 행복을 노래한 사람은 예전에 없었다. 일찍이 그 누가 한 달에도 몇 번씩 비행기를 타고 외국 여행을 다니며 자신의 맵시를 봐달라는 듯이, 귀여워 보이지 않느냐는 듯이 살짝 돌아서서 한 손을 흔들며 해사하게 웃어 보이는 여유만만의 포즈를 취할 수 있었던가.

사람이 절망에 빠지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법이다. 귀에 들리는 남의 얘기도 당연히 없고, 눈치를 봐야 할 이유 또한 없다. 그저 혼자서만 좋아서, 자기 혼자만의 기분에 취해서 이런저런 온갖 요사한 포즈를 절망적으로 취해볼 수나 있을 따름이다. 이런 절망을 스스로 뚝 잘라내지 못하고 방치하면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도 볼 수가 없어져 버린다. 옛 어른들은 그런 상태를 일러 환장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환장한 사람이 차고 넘친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견문이 짧아서 환장의 역사나 계보를 일목요연하게 펼쳐놓을 수는 없겠지만, 도립병원을 단호하게 폐쇄해 버린 홍준표 도지사를 보면서 나는 환장이 저런 형태로 발현될 수도 있구나, 하고 한참이나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명박이 산을 뚫어서 운하를 만들고, 그 운하에 유람선을 띄우면 모두가 부자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을 때는 정치란 저렇게 황당무계한 소리로 일단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보자는 개똥철학으로 무장한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을 뿐, 그것이 환장했거나 앞으로 환장할 개연성이 농후한 사람의 특징이라는 생각까지는 차마 해보지 못했다.

 

▲ 봉선화도 죽어간다.

 

사람이 환장을 하면 가치관도 전도되어 있기 마련이다. 공동체의 이익 같은 것은 너무나 허접해 보이고, 그래서 공동체 자체를 아예 파괴해 버리고자 한다. 십자군 전쟁이 그랬고 히틀러가 그랬고, 일본 제국주의가 그랬으며 또한 박정희가 그랬듯이, 내세우는 명분은 거창하지만 명분 자체가 이미 자기중심적이어서 대중의 동의를 끌어내지는 못한다. 그런데 슬프게도 다수의 대중은 그 폭력적인 주장이 두려워서 침묵을 선택하는 까닭에, 침묵은 곧 동의라는 법칙이 작동되면서 공동체 파괴는 착착 진행된다.

하지만 그런 식의 공동체 파괴가 끝까지 제대로 성공한 사례는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인류의 역사는 그런 막돼먹은 파괴자는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퇴출돼 왔다는 기록이기도 하다.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망하는 줄 알면서도 뭔가를 해야만 하는,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특징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데도 그저 구경만 했거나 박수를 치는 등으로 아예 살인의 대열에 참여했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도 있듯이,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정치인들은 대개 자기주장이 강하고 목소리 또한 높다. 팔십년 오월 광주의 슬픔을 알면서도 전두환의 부하가 되기를 자청했던 이정현씨의 사례는 그런 점에서 교과서적이라 할만하다.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는 데서 오는 행복감이 매우 신비하게 깊다는 것을 그들도 이미 알고는 있지만, 자신의 선택을 취소할 용기는 없기 때문에, 그저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자신의 살아 있음이나 열심히 증명하고 다니는 것 외에 달리 할 만 한 일이 없다.

어떤 사람은 이정현씨가 매우 무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허리를 깊숙이 꺾어대는 방식으로 환심을 사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현실적인 권력이 손에 쥐어졌을 때 무슨 짓을 할지 그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주인이 저놈 물어뜯어라, 하면 ‘그놈’이 누가 됐건 냉큼 달려가서 물어뜯는 충성을 과시할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뿐이다. 더불어 살아가야만 그나마 외로움을 덜 느끼게 돼있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사회가 아닌 한 개인에게 충성을 바친다면 그것이 곧 맹목이다. 맹목적인 충성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가에 대해서는 역사가 이미 리얼하게 기록해놓고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절망을 넘어 환장으로 달려가는 정치인이 속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크거나 작거나 공동체의 멸망에는 뚜렷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사치와 도박은 공동체 멸망의 양대 축이다.

잘 나가던 필리핀 사회를 가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아키노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의 구두가 일천여 켤레에 달했다는 옛날 뉴스를 돌아보고 있노라면 절망이 마치 손에 잡힐 듯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한 켤레의 구두를 사기 위해서는 돈만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도 투자해야 한다. 아키노의 부인 이멜다에게 가령 희망 같은 것이 있었다면 일천여 켤레도 넘는 구두를 사기 위해서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여름낙엽은 쌓이고...

 

사치의 사전적 정의는 물화를 필요 이상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막 써댄다고 돼 있다. 청와대와 그 일행들의 씀씀이는 사치의 사전적 정의와 매우 정확하게 부합한다고 여겨진다. 대통령이 너무 자주 옷을 갈아입고 너무 자주 여행을 다닌대서가 아니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 같은 아무 쓸모가 없는, 대통령 자신과 그 일행들의 기분만 좋아지는 일을 너무 자주 찾아서 벌인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그들은 서민들의 기호식품 가운데 하나인 담배 소비세를 왕창 올려버리는 방식으로 자신들이 쓸 재화를 미리 확보해놓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개성공단 폐쇄는 또 어떤가. 그토록 짧은 시간 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을 그토록 엉뚱하게 울려놓는 정책은 아마 인류사 전체를 통해서도 희귀한 사례일 것이다. 이제 와서 곰곰이 따져보면 그놈의 정책은 말 안 듣는 놈 뺨이나 한 대 때려보자는 식의 대단히 즉흥적이고 개인적인 감정놀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통령이 진실로 희망을 갖고 있었다면, 희망이란 무엇이고 절망과의 차이는 또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죽어도 좋다는 식의 그런 막돼먹은 파괴적 발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죽음에서 희망을 본다고 한다. 죽음이야말로 최고 등급의 창조적 행위라는 믿음이 그들에게는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의 대통령이 줄기차게 강조하시는 창조경제라는 용어는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다. 설마 개돼지로 통칭되는 서민들을 모두 죽게 한 다음 나머지 사람들로 새판을 짜자는 구상은 아닐 테고, 혹시 도박이나 도둑질 같은 행위를 창조경제의 품안으로 끌어들여서 활성화시키라는 지시라도 내리면 어떻게 하지?

우리의 대통령께서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극단적인 정책을 시행하자고 하지야 않겠지만,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결국 거기까지 나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새만금 카지노뿐만 아니라 부산 카지노, 유람선 카지노, 기차여행 카지노 등등 온 국토를 카지노 공화국으로 만든다면, 이것이야말로 지구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창조경제로구나 하고 무릎을 칠 수도 있겠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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