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에세이> 내 마음의 등대

▲ 울기등대 구등탑 신등탑

 

저 바다를 마주보고 서 있는 하얀 등대. 문득 삶이 힘들고 외로울 때, 나는 등대를 떠올리며 위안을 얻곤 한다. 내가 본, 여러 등대의 잔영(殘影)이 아련하게 남아 있다. 내가 찾은 바닷가(섬)에 오롯이 서 있던 이름 없는 등대는 가을바람 살랑살랑 부는 지금도 뱃길을 안내하고 있겠지. 우연히 마주친 등대와 말 없는 대화를 나누었던 숱한 시간들.

동 서 남해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등대는 바다, 하늘, 절벽과 어우러져 내 마음에 잔잔한 그리움을 심어주곤 했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지만 태초에 거기 있었던 것처럼 순수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영상과 지면으로 봐왔던 등대를 두 눈으로 보는 순간, 나는 떨림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떨림과 흥분은 오래도록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왠지 모를 센티멘털리즘이 밀려와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지치고 찌든 내 심신은 파도와 바람에 실려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내 앞에 우연히 나타난 등대는 당당하고 우람했다. 저 등대는 모진 비바람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와 칠흑같이 컴컴한 어둠을 밝히며 바다의 길잡이 노릇을 충실히 해왔을 것이다. 고요하고 무서운 밤바다에서 어부들은 등대의 한 줄기 빛에 기대어 안전조업을 했을 것이며. 거친 바다를 헤쳐 가는 배들에게 등대가 없다면 얼마나 외롭고 위험할 것인가.

 

▲ 묵호 방파제 등대
▲ 송대말등대야경

 

이정표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서 등대는 어부들의 두려운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고마운 일꾼이다. 등대 불이 꺼진 캄캄한 바다, 거기에다 비바람에 파도까지 몰아치는 어둠 속은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친다. 등대는 그런 극한 상황에서 한 줄기 희망이요 구원의 빛이다.

등대와 바다는 동격이다. 바다 없는 등대, 등대 없는 바다를 생각해 보았는가. 얼마나 쓸쓸하겠으며 막막하겠는가. 아무리 세상이 뒤바뀌고 문명이 발달해도 등대는 늘 그 자리에서 어둔 밤바다를 밝혀줄 것이다.

등대를 볼 때마다 저 수평선 너머의 아득한 세계를 그려보곤 하였다. 바다는 등대가 있음으로 해서 그 존재 가치가 한층 빛난다. 두 아득한 풍경은 형제처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고독을 안으로 삭이며 견뎌온 숱한 나날들. 등대는 그러고도 불평불만이 없다. 등을 끈 낮에도, 등을 켠 밤에도 등대는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바다와 신호를 주고받는다.

등대는 여행객들에게 하나의 멋진 풍경으로 다가선다. 얼핏 탑처럼 보이는 이 건축물은 지역에 따라 그 모양이 조금씩 다른데 울릉도 등대는 오징어를 닮았고 영덕 등대는 대게의 집게발을 형상화했다. 또 통영 등대는 연필처럼 길쭉하면서 뭉툭하고 양양 해안에 세워진 등대는 송이버섯을 빼닮았다.

 

▲ 속초등대 전경

 

등대의 실체(역할)를 모르는 사람들은 등대를 ‘낭만’이나 ‘서정’ 따위의 감성적인 구조물로 생각한다. 이방인들에게 등대는 눈요깃거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등대지기(그들은 등대원이나 항로표지원으로 불러주길 원한다)에겐 삶 그 자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딴섬 등대원의 삶은 외롭고 고달프다. 오죽했으면 ‘도 닦는 직업’이라거나 ‘도둑이 찾아와도 반가워한다’고 했을까. 사람을 사랑하는 법만 알지 미워하는 법은 모른다는 말도 있는데 등대원의 고독한 삶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 아닌가 한다. 그래도 등대원은 긍지와 보람을 먹고 사는 신성한 직업이다.

등대는 통신, 전기 등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100년이 훨씬 넘은 등대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파란 많은 역사와 닿아 있다. 등대가 사라진다는 건 우리 역사와 문화가 사라진다는 걸 의미한다. 등대의 시초는 기원전 280년에 만들어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항의 파로스 등대로 알려져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드는 이 등대의 높이는 135m. 그 당시 나무와 송진을 태워 빛을 밝혔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해안에 있는 등대는 모두 1000개가 넘지만, 유인 등대는 43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유인 등대도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무인 등대로 바뀌고 있다. 가장 높은 등대는 인천 선미도 등대로 높이가 175m에 이르며, 불빛이 도달하는 거리가 가장 긴 것은 포항 호미곶 등대로 43㎞에 달한다.

팔미도(1903), 부도(1904), 거문도(1905), 우도(1906), 호미곶(1908), 어청도(1912), 마라도(1915)…. 이들 섬에 있는 등대는 거개가 1910년을 전후해 만들어졌다. 가장 오래된 등대들은 대부분 인천 앞바다에 있는데 이는 인천이 우리나라 최초의 개항장이었기 때문이다. 인천 팔미도 등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로 알려져 있다. 1903년 6월 1일 팔미도 꼭대기(해발 71m)에 세워졌다. 비록 일본의 압력에 의해 외국인 기술자의 손으로 세워졌지만 첫 번째 우리나라 등대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남다르다. 한국전쟁 때는 수백 척의 함정들이 이 등대를 길잡이 삼아 팔미도 해역에 집결했고, 다음날 새벽 함포 사격과 동시에 상륙 작전에 돌입했다. 7.9m 높이의 옛 등대 옆에는 100돌을 기념한 26m 높이의 새 등대가 들어섰다. 팔미도 등대의 등명기는 국내 기술로 개발된 프리즘렌즈 대형 회전식 등명기로 50킬로미터까지 비추며, 10초에 1번씩 백섬광을 번쩍거린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등대를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 호미곶등대

 

팔미도 등대뿐만 아니라 앞으로 몇몇 아름다운 등대가 외국의 경우처럼 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는 소식이다. 경치가 수려한 몇 곳의 등대는 주변에 숙소를 지어놓고 손님을 받고 있는데, 입소문을 타고 몇 달 치 예약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일부 등대들은 직원들의 숙소를 개방해 파도소리를 들으며 밤바다의 낭만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유럽과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고유의 건축 미학인 등대가 아름다운 해안 절경과 함께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강원도 고성의 대진등대는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등대로 등탑이 팔각형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다. 12초 간격으로 불빛이 깜빡이며 약 37km 떨어진 해상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등탑 위 전망대에 올라서면 푸른 동해바다가 가슴 가득 안기며 해돋이와 석양을 감상하기에도 아주 좋다. 시야가 좋은 날에는 멀리 해금강은 물론이고 북한지역까지 바라볼 수 있다.

울산 앞바다가 훤히 바라보이는 울기등대는 울창한 송림 속에 자리하고 있다. 1906년 백색팔각형 구조로 건립된 구 등탑과 촛대 모양의 신 등탑이 바다와 어우러져 그림 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곳에는 TV와 주방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진 송죽당과 창작활동 공간인 문인의 방이 마련돼 있다.

아침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의 간절곶. 이곳에 있는 등대는 백색 팔각형 한옥식 지붕 구조로 지어졌다. 등대가 빛을 뿜어내는 해질녘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등대와 일출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두면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등대 내부에는 전망대형 등탑을 비롯해 휴양시설인 일영정(日迎亭)과 각종 해양자료들을 볼 수 있는 밀레니엄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해가 뜨기 전, 새벽바다를 오가는 수많은 선박들이 뿜어내는 불빛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다.

 

▲ 대진등대와 대진항

 

부산 태종대 언덕에 자리한 영도등대는 부산을 찾은 여행객들이라면 꼭 한번 들러 보고 가는 필수 여행 코스가 됐다. 등대와 어우러진 쪽빛 바다와 기암절벽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맑은 날에는 멀리 일본 대마도까지 바라볼 수 있다. 등탑에서 18초마다 세 번씩 깜박이는 불빛을 만나 볼 수 있는데 등대를 보려면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여행객들을 위해 해양도서관, 갤러리, 자연사박물관, 영상실, 정보이용실 등을 설치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해운대 인근에 있는 오륙도 등대도 멋있긴 마찬가지다. 1937년에 처음 불을 밝혔으며 오륙도의 다섯 섬 중 뭍에서 가장 먼 밭섬에 자리잡고 있다.

군산여객선 터미널에서 3시간 20분 정도 배를 타고 가야 다다르는 어청도. 중국에서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할 정도로 중국과 가까운 곳이다. 이곳에 있는 등대는 1912년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다. 군산항과 우리나라 서해안의 남북 항로를 이용하는 모든 선박들의 생명줄이자 신호등으로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주도 모슬포에서 직선거리로 11km 떨어진 마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의 외로운 섬이다. 거센 파도와 변덕 심한 날씨 탓에 오랫동안 출입이 통제돼 ‘금섬(禁島)’이라 불리기도 했던 섬. 언덕 위 잔디밭에 서 있는 마라도 등대는 일제 강점기인 1915년 3월에 건립된 하얀색의 8각형 콘크리트 구조로 높이는 16m이다. 10초에 한 번씩 섬광이 반짝이고 약 48㎞ 거리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마라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품고 있다.

 

▲ 소매물도 등대 전경

 

목포여객선 터미널에서 바닷길로 4시간 정도 가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가거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소흑산도에 속하는 이 작은 섬에도 등대가 있다. 등대원 3명이 근무하는 가거도 등대의 공식 명칭은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소흑산도항로표지관리소’다. 1907년에 처음 불을 밝혔으니까 올해로 100년 하고도 3년을 맞는 셈이다.

등대는 바다의 길잡이인 동시에 삶의 치열한 현장이며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삶의 진정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문득 삶이 외롭고 힘들 때 주저 없이 등대로 달려가 볼 일이다. 예전에 다녀온 등대를 추억해도 좋으리라. <사진=박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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