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생각> 류승연

아들이 훌쩍 크고 있다. 폭풍 성장기를 지나고 있는 중인지 매 끼니마다 밥을 한 공기 반씩 먹는다. 어른 밥공기로. 아이가 커가는 것이 즐겁지 않다. 사내아이들의 힘은 왜 이리 센 것일까? 힘 대 힘 대결에서 평형을 이룰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점심 약속이 있을 때 아들을 데리고 나갈 때가 종종 있다. 그 때마다 듣는 말이 있다. “승연이 네가 갈수록 더 힘들어지겠다.” 이어지는 동정 어린 시선.

키가 커지고 몸무게가 부쩍 늘어난 아들은 더 이상 귀여운 꼬마가 아니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겨서 한 번 꼬장을 부리기 시작하면 지독했다. 울고 불며 머리를 바닥에 찧는 것까진 봐줄만한데 화풀이를 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는 건 미칠 노릇이다. 길을 가던 수 십 여명의 사람들이 아들의 손바닥에 한 대씩 맞곤 했다.

 

 

아들이 좀 더 어렸을 때는 괜찮았다. 멋모르고 맞은 사람들이 처음엔 흠칫 놀랐다가 이내 자기를 때린 이가 꼬마란 걸 확인하고 그 아이의 엄마가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면 이해를 하고 넘어가줬다. 지금은 아니다.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를 해도 기분 나쁘다는 눈빛으로 한동안 쏘아보는 이가 많아졌다.

우리네 관용이란 것이 그렇다. 꼬마 장애인은 많은 것들을 이해받을 수 있지만 어린이 장애인은 그 범위가 확 줄어든다. 청소년을 지나 어른이 되면….

가끔씩 궁금해진다. 다른 장애인 부모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누구처럼 돈이 많아 상주하는 특수교사가 아이를 키우다시피 하고 여차하면 외국의 좋은 학교에 보내 버리면 되는 그런 일부의 사람들 말고 나처럼 평범한 삶을 사는 보통의 장애아 부모들 말이다. 그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그리고 왜 계속 살아나가는 것일까?

내가 비교적 상세히 아는 장애인 부모의 삶은 한 명뿐이다. 학교 선배 언니. 이제 중학생이 된 자폐아를 키우는 그 언니의 삶은 나보다 한층 더 고단하고 나보다 한 뼘 더 힘들다.

실질적인 가정파괴가 진행된 지도 오래고, 가족 모두의 삶은 피폐해졌으며, 언니는 마음과 몸의 병을 모두 얻었다.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라고 언니는 최근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그 언니가 2~3년 전에 형부랑 부부싸움을 크게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형부가 아이를 장애인 시설에 보내자고 해서 난리가 났었다. 형부는 그 아이 때문에 나머지 세 가족의 삶이 엉망이 됐다며 산 사람이라도 살기 위해서 시설에 보내야 한다고 했고, 언니는 자신이 죽기 전엔 그 꼴을 못 본다며 버텼다.

그 때 나와 함께 형부를 욕하던 우리 남편. 요즘 들어 말한다. 왜 시설에 보내자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고. 한 사람을 살리려고 세 명이 죽느냐, 한 명이 죽고 세 사람이 사느냐의 문제란 걸 이제야 알겠다고.

물론 화가 났을 때 한 말이고, 내가 눈 뜨고 있는 한 우리 아들이 시설에 입소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그런 생각을 할 만큼 장애인 부모로서의 삶은 고되다.

너무나 고되고 힘든데 이 고통을 개인 혼자서 짊어지고 가려니 더 힘이 든다. 갈수록 더. 장애 아이를 키우는 책임이 오로지 부모의 몫, 오로지 엄마인 내 몫이다. 국가 차원의 개입은 한 달에 8번(복지부), 4번(교육부) 이렇게 12번의 치료를 지원해 주는 게 전부다.

단지 12번 치료비 값(한 달에 받는 치료 총 횟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을 대주는 것으로 끝. 어느 순간부터 나라에서 국민들에게 돈 주는 거 좋아하기 시작하더니 그거와 다를 바 없는 정책인 셈이다.

장애 아이의 부모가 왜 힘드냐고? 일단 아이에게 묶여 산다는 게 힘들다. 아이가 곁에 있을 땐 설거지 하나, 목욕 한 번을 하기가 쉽지 않은 부모들이 많다.

지금도 내 소원 중 하나가 밤에 잠들면 아침에 눈 뜨는 것이다. 중간에 몇 번이나 깨서 아들 신변처리를 해줘야 한다. 남들은 아이가 어릴 때나 1~2년 경험했던 그런 일들을 많은 장애 부모들은 아주 오랜 시간, 어쩌면 평생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아이가 학교나 유치원에 가 있는 단 몇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경제활동에 나서거나 자신의 삶을 찾거나 그런 거창한 일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좋다. 하다못해 잠이라도 자거나 집안을 치우는 시간을 버는 것만으로도 좋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 짧다. 일반 아이들의 방과후 수업은 여러 과목이 종목별로 잘 돼 있으면서 장애인 아이들의 방과후 수업은 아예 전무하거나 한두 개 과목으로 한정적이다.

집 다음으로 안전한 장소인 학교. 공교육의 틀 안에서 장애 아이들을 조금 더 껴안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장애 아이들은 정규 수업 끝났으니 어서어서 집에 가라.”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지 말고 미술, 놀이, 음악 수업 등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특수 수업을 매일매일 방과후로 진행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굳이 개인이 돈 내서 여러 치료실을 전전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도 많이 줄어들 테고, 장애인 양육자가 누릴 수 있는 개인 시간도 조금 더 늘어날 텐데.

또 하나 부족한 것이 놀이 공간이다. 장애 아이들이 놀 데가 없다. 학교 끝난 뒤 30분 또는 40분씩 하는 특수 치료를 매일 두 세 과목씩 받고 나면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일반 아이들이야 집에서 숙제도 하고, 영화관이나 도서관도 가고, 친구들과 모여 놀기도 하면 하루가 짧게 지나가지만 친구와 어울릴 줄도 모르고, 무엇에 집중할 줄도 모르는 장애 아이들의 하루는 길기만 하다.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실내놀이터가 있긴 하지만 서울시내 각 구마다 한두 곳밖에 안 될뿐더러 오후 6시 칼퇴근과 12~1시 점심시간을 어찌나 잘 지키는지 시간이 안 맞아 거의 이용을 못하는 실정이다.

오전 11시 놀이터에 도착한 장애 아이에게 “자, 이젠 점심시간이라 여기 선생님들 밥 먹게 우리도 나가야 해”라고 말을 해봤자 알아듣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않는다.

 

 

신체는 건강한 아이들과 다를 바 없어 한 번 놀이터에 가면 두세 시간은 진이 빠질 때까지 놀다 와야 하는데 한 시간 만에 아이를 다독여 데리고 나오려면 또 다시 전쟁을 치러야 한다.

울고 불며 자해하고 남을 공격하는 아이를 힘으로 무력화시키는 생난리를 치르느니 차라리 안 가고 만다. 내 돈 내고 마음껏 놀 수 있는 개인 키즈카페를 데리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나마도 안 되는 아이들이 있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인 우리 아들은 키즈카페라도 갈 수 있지만 이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거나 중학생 이상이 되면 그마저도 갈 수가 없다.

전에 중학생 지적장애 아이를 둔 한 언니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덩치가 커져도 마음속은 여전히 어린아이라 ‘방방장’ 가서 뛰고 미끄럼틀 타고 노는 걸 좋아하는데 다 큰 아이가 그렇게 놀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다고. 그나마 아이가 어려서 키즈카페라도 갈 수 있는 내가 행복한 거라고.

어이가 없을 정도로 불필요한 곳엔 예산을 그리도 펑펑 써대면서 왜 장애인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장애인 놀이시설은 전무하다시피 한 것일까? 앞으로 3~4년 후에 우리 아들이 나만큼 키가 커버리고 나면 그 땐 집 앞 놀이터 말고는 어디에 데려가서 이 아이와 지루한 하루를 보내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놀이터도 초등학교 때까지만 이용할 수 있겠지. 중고등학생이 되어 수염이 가뭇한 덩치 큰 남자아이가 3~4살 아이들이 타는 미끄럼틀을 타겠다고 뒤에 가서 기다리거나 유치원 아이들이 공놀이 하는데 가서 같이 하자고 얼쩡거리면 놀이터에 있는 엄마들이 난리가 날 테니까.

우리 아들의 황금기도 앞으로 몇 년이 끝이다. 아이가 커가고 엄마인 나는 점점 힘이 딸려간다. 커가는 아들을 보는 게 즐겁지가 않다. 남편 입에서 장애인 시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변의 시선이 갈수록 냉담해진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 어른으로 크지 말거라. 그냥 어른으로 크지 말고 예쁠 때 가자.”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부모로 사는 건 그런 일이다. 아이가 어른으로 크지 않기를 빌면서 매일을 살아야 한다. 성인 장애인으로 자라 나보다 만 배는 더 힘들 인생을 꾸역꾸역 살아나가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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