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요것이 그 유명한 비아그라라는 것인디 말이여∼!!”
“아, 요것이 그 유명한 비아그라라는 것인디 말이여∼!!”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6.09.12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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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비아그라 소동, 그 후일담

미쳤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인상을 박박 구기면서도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이 아마 음담패설일 것이다. 그런 류의 다소 낯선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오랜만에 갯벌 일을 나가던 중에 들은 이야기였다.

갯벌 작업에 참여한 날수로만 보자면 일 년도 채 안 되겠지만, 햇수로는 4년째나 되고 보니 낯익은 얼굴이 꽤 있다. 대개가 갯마을 사람들이지만, 농사만 짓고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멀리서 오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그 중에 한 아주머니가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 내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 출근 시간에 자동차를 기다리는 중

 

“우덜 좀 태워다주시오, 야?”

그러면서 뒤를 가리켰다. 아주머니 네 명이 더 있었다. 모두가 흙투성이들이었다. 마치 어딘가로 끌려갔다가 탈출해 온 사람들 같았다. 게다가 하나같이 기진맥진한 상태들이다. 소금내가 펄펄 풍기는 갯벌의 땡볕에서 땀을 뻘뻘 흘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상태를 볼 때마다 가슴에서 뭔가 짠한 것이 흐르는 까닭은 또 뭔지 모르겠다. 어쨌든 모두가 힘든 일을 끝내고 난 뒤의 지친 표정들이었다.

“아 삼십 분도 넘게 기두렸는디, 차가 안 온당게라.”

갯벌에서 나오면 항상 대기하고 있던 승합차가 오늘은 안 보인다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전화를 해볼 수도 없었다. 작업 현장이 갯벌이다 보니 핸드폰은 아예 안 가지고 다니고, 공중전화는 찾아볼 수도 없고, 누구 낯익은 사람을 만나면 전화라도 좀 빌릴까 해서 두리번거리던 중에 나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방향이 같은 나는 예전에도 이 양반들을 더러 태워드리곤 했던 것이다.

그 중에 한 양반은 내 기억에 아주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이 양반의 아들이며 딸들은 요즘 보기 드물게 효성이 지극한 편이었다. 매 주말마다 자식들이 모두 찾아오지는 않는다 해도, 최소한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누가 됐든 자식들 중에 한두 명이 부모님을 찾아뵙는다. 올 때마다 하는 잔소리가 있는데 제발 남의 일 좀 그만 다니라는 것이란다.

그래서 이 양반은 아들이건 딸이건 자식들이 오는 날에는 바싹 긴장을 해야만 한다. 저기 어디 잠깐 다녀온다는 말로 자식들을 속이고, 작업복이며 장화 같은 것들을 숨겨 가지고 나와서 마을 회관이나 남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몰래 작업복을 갈아입고 갯벌 일을 나가면, 일을 끝내고 돌아온 뒤에도 역시 그렇게 몰래 옷을 갈아입고 얼굴도 깨끗하게 싹 씻고 집으로 간다. 갯벌 일이 농사처럼 하루 내내 하는 게 아니고, 바닷물이 빠져 있는 두세 시간 정도만 그야말로 잠깐 집중적으로 하고 돌아올 수 있는 일이기에 가능한 속임수였다.

 

▲ 노동집약적인 작업

 

문제는 당신이 쓸 돈이 필요해서 갯일을 나가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손자 손녀들에게 줄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게 좀 웃겼다. 손자 손녀들의 배포가 어찌나 큰지 몇만 원 단위로는 어림도 없다는 거였다. 손자 손녀들의 배포를 그렇게 키워놓은 것은 따지고 보면 아주머니 자신이었다. 용돈을 줄 때마다 금액을 늘려 왔는데 그게 몇십만 원 단위로 커져 버렸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은 할머니에게서 받는 용돈의 금액이 전보다 적으면 시큰둥해 한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그나저나 은제 비 온다는 소식 못 들었소?”

차에 올라타서 자리를 잡자마자 한 아주머니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리신다. 비, 그놈의 비, 이제는 비라는 단어만 들어도 한숨부터 나온다. 밤공기가 서늘해지기 시작하면 김장용 배추며 무를 심는 농촌 사람들의 오래된 습관 그대로 여기저기에 밭을 갈아놓기는 했지만 날씨는 꿈 깨라는 식으로 투명하기만 하다. 영남 쪽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물폭탄이 쏟아졌다지만 호남의 평야는 그냥 타들어만 간다. 이 뜨겁게 냉엄한 현실 앞에서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아무도 아무 말도 못하고 눈이나 끔뻑거리기를 얼마나 했던가. 누군가의 입에서 갑자기 짜증스런 한 마디가 터져 나왔다.

“아따 엊저녁에 잠을 한숨도 못 잤더니만 죽겄네 그냥.”

“홀엄씨가 믓헌다고 밤에 잠도 못 자고 노래나 불러대고 있었당가?”

“염병하고 있네, 다 암시롱.”

“알기는 믓얼 알어 내가, 암 것도 몰러, 나는.”

“아니 그 잡녀러 자석이, 으째서 해필 내 뒤에 와서 그놈의 것을 그렇게도 비벼싸대느냐 이거제, 잉?”

“긍게, 그리서, 잠을 못 잤다?”

“자네 같으면 안 분하겄는가? 나는 분해서 못 살겠다, 왜.”

“하이고 거짓부렁도 참 내.”

“머시여? 내가 거짓부렁이라고? 아따 이 여자가 참말로.”

 

▲ 멀리서 보면 한가해 보이지만...

 

그야말로 순식간에 붙은 싸움이었다. 목소리로만 보자면 금방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사투를 벌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두 사람이 싸우는데 그 옆의 다른 사람들은 키들키들 웃는 소리를 내고 있다. 싸우는 두 사람도 말투는 짐짓 험악한 욕설이지만 웃고 싶어 죽겠다는 투의 뭔가가 녹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런 뭔가가 있었다. 남자가 아닌 여성들이기에 가능한, 숨기고 싶지만 도무지 숨길 수가 없어서 어떤 식으로든 터뜨려야만 하는 이야기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

듣고 보니 그게 또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니까 며칠 전 서울에서 누군가의 결혼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요즘은 농촌에서도 누군가 멀리서 결혼을 한다면 축의금 봉투나 건네는 것으로 ‘빚갚음’을 하고 말지만, 가끔은 아직도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길을 나서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문제는 관광버스 안에 뜬금없는 비아그라가 등장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마을에서 푼수덩어리로 통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십몇 년 전에 아내를 잃고, 희망도 잃은 채로 술이나 벗 삼는 남자였다. 육십대 중반의 이 남자가 그날도 아침부터 해장을 했는지 술 냄새를 풍기며 관광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손에 뭔가 이상한 알약 한 알을 들고 있었다.

“아 요것이 그 유명한 비아그라라는 것인디 말이여.”

남자는 손에 든 알약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중얼거렸다. 상세하게 오랜 시간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다. 잠깐 휙, 하는 식으로 마치 속임수에 능한 약장수처럼 그렇게 슬쩍 보여주며 한 마디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이 사람 앞으로 가서 슬쩍 보여주며 한 마디 하고, 다시 저 사람 앞으로 다가가서 슬쩍 보여주며 한 마디 하는 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그는 관광버스에 탄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비아그라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내가 요놈의 것을 한 번 먹어보고 자픈디 말이여. 먹어도 될랑가-아?”

 

▲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끊임없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먹어도 될라나, 될라나? 사람들은 어이가 없고,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안 하겠다는 투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감정을 지닌 사람의 입이 언제까지나 그렇게 닫혀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자들은 자칫 잘못하면 싸움이 될 수도 있는 까닭에 여전히 모르는 체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여인들의 경우는 달랐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고 생각한, 보자보자 하니 이 남자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한 여인의 입에서 마침내 꽥, 하는 투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아 그놈의 것을 그렇게 자랑만 혀쌌지 말고 응? 사나이가 돼 가지고 뭘 그렇게도 조잡스럽게 응? 죽든지 살든지 그냥 한 번 먹어버리시오, 먹어버려, 응?”

“참말로? 내가 이걸 먹고 나면 내 몸이 벌떡 일어서는디 말여. 구경할라요?”

“아따 그놈의 것, 보라면 못 볼 줄 알고.”

남자는 이제 궁지에 몰렸다. 그렇게 해서 그는, 그놈의 비아그라를 꿀꺽 삼켜 버렸다. 그는 정말로 그 결과를 그녀에게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일까. 아니 그보다도 그녀는 정말로 비아그라를 먹은 그의 상태를 보고자 했던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화 자체가 중요했다는 것을 말이다. 어찌됐든 남자는 비아그라를 먹었다. 그런데 그의 신체 구조가 비아그라 같은 약제에 잘 반응하게끔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흐른 뒤에 사람들은 그가 비아그라를 삼켰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지만, 남자의 몸은 잠에서 깨어나듯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때쯤 관광버스는 휴게소에 들렀다. 버스가 휴게소를 출발한 뒤부터는 혼주의 주선으로 여흥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결혼식 참석차 출발한 관광버스이고 보니 떡이며 과일이며 각종 안주에 술이 없을 수 없었다. 혼주는 단속경찰에 걸리면 안 된다고 운전석과 객석이 서로를 못 보게 가리는 용의주도함까지 보여주었다. 야외에서 텐트를 설치할 때 이슬막이로 치는 덮개를 준비해 와서 그것으로 운전석 뒤를 가려놓은 것이다.

 

▲ 허리가 너무 아파서 잠깐...

 

객석의 중간 통로를 스테이지 삼아 누군가 홀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저마다의 기분껏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때 스마트폰에서는 흥겨운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어쩌고 한참 이어지던 흥겨운 노래는 다시 카바레 풍의 음악으로 바뀌었다. 누구 나와라, 누구도 나와라, 부르는 소리와 사양하는 소리가 섞이고 풀어지는 실랑이가 얼마나 벌어진 뒤에 드디어 본격적인 춤판이 벌어졌다.

달리는 관광버스 통로에서 추는 춤이란 것은 춤이라기보다 일종의 흔들림이기 마련이었다. 손은 다리의 리듬을 따라가지 못하고 다리는 허리의 율동을 받쳐주지 못한다. 신체의 모든 부위가 통제 불능이 되어 그야말로 제멋대로 움직이다 보니 춤 같은 춤은 찾아볼 길이 없다. 대신 웃음꽃은 여기저기서 활짝활짝 피어난다. 서로가 서로의 춤사위를 보면서 웃긴다고 웃어대면서 아무 데나 쿡쿡 찔러댄다.

버스가 흔들리면 사람도 흔들리고, 어깨와 어깨가 부딪히는가 하면 발등을 밟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손등으로 앞 사람이나 뒤에 사람의 어딘가를 쥐어박기도 한다. 그래도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은 없다. 설령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댄다 해도 그 소리에는 이미 웃음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비아그라를 삼켜버린 사내가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을 참지 못하고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서야 알았다.

남자들은 일이 다 끝난 뒤에도 몰랐다. 여자들만 느끼고 있었고, 그리고 나중에 여자들끼리만 모여서 그날의 상황을 복기해본 결과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러니까 그날 비아그라를 삼켜버린 남자가 버스 통로에서 춤을 춘다는 구실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여자들의 엉덩이에 자신의 앞을 대고 비벼대기를 수도 없이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모든 여자이기는 했지만 특히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었던 모양이다.

그 남자에게는 특히 한 사람이었던 그녀,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서 어리둥절했고, 나중에는 이 남자가 왜 이러나 해서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좀 더 지난 뒤에는 화가 났다. 억울하고 절통하고 분하고 슬퍼서 한숨도 잠을 못 잤다. 다음 날은 잠깐 눈을 붙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선잠이나 이루고 말았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금방 잠이 올 것 같으면서도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뒤척거리다가 아침을 맞이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 남의 집에서 옷을 갈아입는 아주머니

 

“내가 서방 없이 혼자 산다고, 그 잡녀러 화상이 나를 시피 보고 잉?”

그녀는 뿌드득, 이 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자 옆의 다른 아주머니들이 와악, 하고 큰 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다. 비아그라에 힘 받은 남자가 자신의 그것을 여자의 뒤에 들이대고 비벼댔다면, 그것은 명백하게도 성추행 내지는 의제강간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남자를 경찰에 고소함이 마땅하다 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잠을 못 잤다는 식의 투정이나 하고 있다.

이게 뭐지? 의구심을 가득 품은 채로 그날은 일단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에 일부러 그 아주머니들을 기다렸다가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아직도 억울하고 분하고 슬퍼서 밤에 잠이 안 오는 것이냐고, 그렇게 물어본즉 그 아주머니는 세상에 둘도 없이 해맑은 표정으로 헤, 하고 한참이나 웃고 있더니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아따 아자씨도 참말로, 믓얼 그런 것을 안 잊어뿐지고 여태까지, 아 사람이 살다 보믄 그럴 수도 있는 것이제. 안 그러요? 남녀가 유별하다고 해서 뭐, 완전히 따로따로일 수가 있는 것이간디.”

나는 은유법을 사용하는 아주머니의 그 말을, 두 남녀가 본격적으로 뭔가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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