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연의 아주머니> 퇴학

귀한 내 자식이 장애인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엄마들의 여론. 우리 아들의 전학을 위한 교육부 민원 제기 움직임. 어떻게 대응해야 옳은 걸까? 맞서 싸워야 하나? 아니면 엄마들의 여론을 받아들여야 하나?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까?

며칠 전이다. 집 앞에서 시어머니를 만났다. 이 동네에서 40년을 넘게 산 시어머니. 여기저기 모르는 사람이 없다. “동환이 때문에 어쩌냐~”며 얘기를 꺼내신다.

모임에 나가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한 할머니가 그러더란다.

“김 회장 손주가 @@초등학교 다닌다 했지? 근데 어떻게 하냐? 지금 난리도 아니라는데.”

 

 

그 할머니 손주가 같은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란다. 우리 아들은 1학년. 그 할머니 며느리가 얘길 전하더란다.

김동환이라는 장애아이가 친구들을 때리고 다녀서 엄마들이 난리도 아니라고. 그렇게 위험한 아이와 어떻게 같이 학교에 다니느냐고. 같은 반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학년 상관없이 다 공격하는 모양이라고. 엄마들이 개학하고 나면 그 아이를 전학시키기 위해 교육부에 민원을 제기할 모양이라고.

“뭐라구요?” 귀를 의심했다. 전학을 위한 교육부 민원? 아이들을 무차별 공격?

어이가 없었다. 황당함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내 속도 모르는 시어머니는 내가 하루 종일 학교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의견을 그대로 전한다.

대충 “네네” 대답을 한 뒤 집으로 올라왔다. 눈물이 벌컥. 가슴이 벌렁벌렁. 그리고 서서히 끓어오르는 깊은 분노.

하나씩 보자. 우리 아들이 친구들을 할퀸 건 인정한다. 학기 초에 문제가 됐었다. 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아들은 ‘거부’나 ‘싫음’ 등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 주변에 있는 친구를 희생양으로 삼아 할퀴었다.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순간적으로 쫙! 누군가를 할퀴는 것만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친구 목에, 어느 날엔 친구 팔에. 할퀴는 건 문제가 됐다. 2~3cm라도 자국이 남았기 때문이다. 물론 3~4시간 안에 없어지는 자국이었지만 어쨌든.

할퀴는 습관을 없애기 위해 무단히도 애썼다. 엄마와 누나를 한 번씩 할퀼 때마다 손등을 때렸고, 손톱을 이틀에 한번 씩 바짝 깎았다.

그리고 나는 그 날의 희생양이 된 아이의 엄마에게 장문의 긴 메시지를 보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저희 아이가 댁의 아이를 할퀴었대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여태까지 5명의 엄마들에게 사과를 했다. 그 엄마들은 모르고 있다가 내 사과 메시지를 받고 나서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아무리 컸어도 초등학교 1학년이다. 어른만큼 힘이 세지 않으니 할퀸 자국은 집에 갈 때쯤 없어졌고, 아이들도 크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엄마에게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도 먼저 사과를 하는 게 순서였다. 엄마들이 모를 것이라고 나까지 모른척하고 있다가 나중에 다른 경로를 통해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기분이 안 좋을 것이었다.

엄마들은 괜찮다고 했다. 때론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미안했고 고마웠다.

내가 엄마들에게 사과를 한 횟수가 5번. 우리 아들이 친구를 할퀸 날이면 담임선생님이 하교 길에 얘기를 해주셨다. 설령 나한테 말을 안 하고 지나간 날이 있다 해도 9월이 된 현재까지 10번을 넘지 않을 것이었다.

그나마도 부모와 담임선생님과 특수반 선생님의 집중 지도 덕에 5월이 지나면서는 할퀴는 문제가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자 그럼 두 번째. 우리 아들이 친구를 때리고 다닌다는 얘기. 맞고 다니는 아이들 심정이 어떻겠냐는 시어머니의 말. 울화통이 터진다. 대체 우리 아들이 누구를 때리고 다닌다는 것인지.

우리 아들은 손 근육이 발달하지 못했다. 손에 힘이 없어서 숟가락을 쥐지도 못하고, 연필도 잘 잡지 못한다. 당연히 주먹을 꽉 쥐어본 적은 8살 평생 한 번도 없다.

손바닥으로 맞은 친구가 한 번 있었다. 2학기 개학식 날. 오랜만에 학교에 간 아들이 난리가 났다. 교실에 들어가기 싫다고 복도에서 울고불고. 담임선생님이 억지로 끌어서 교실에 간신히 들어가기는 했는데 또 난리가 난거다. 큰 소리로 울면서 머리를 바닥에 박고, 손발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그 와중에 옆에 있던 짝이 격하게 휘두르는 손에 여러 대 맞았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얘기를 전해 듣고 곧바로 또 다시 나는 해당 아이의 엄마에게 사과의 전화.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아이스크림 쿠폰을 사과의 선물로 보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한테 맞고 사는 아이들이~”라고. 우리 아들은 남을 때리는 방법을 모른다. 때릴 줄을 모르기 때문에 할퀴었던 것이다.

가끔 친구들을 뒤에서 밀기는 한다. 놀자고 할 때의 행동이다. 함께 놀자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옆에 가서 등을 앞으로 민다. 먼저 뛰어 가라고. 자기가 나중에 뛰어가겠다고. 그걸 등을 때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기 초에 반 전체 엄마들에게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했다. 갑자기 뒤에서 밀면 당황하겠지만 아프거나 세게 때리는 게 아니라 같이 놀자고, 먼저 뛰어가라고 그러는 거니까 아이들한테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엄마가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 문제에 대해서도 입학하면서부터 얘기를 나눴는데 담임선생님도 특수반 선생님도 그 부분에 반대하셨다. 엄마가 보이는 이상 아이의 학교적응은 더욱 늦어지고 학교 측에서도 부담이라고. 손길이 필요할 때는 보조 선생님이 투입돼 아들을 캐어하겠다고.

그동안 나는 동환이반 엄마들에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리는 태도를 보여 왔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안녕하세요”가 아닌 “죄송합니다”부터. 마주칠 때마다 “미안해요”부터.

우리 아들 때문에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내가 취한 이 태도가 내 무덤을 판 것인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 아들에게 무자비한 가해자 낙인을 찍는 데 내가 일조를 했던 것인가!

나는 반대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를 깔고 따져 묻듯 독기 어린 목소리로 상황을 물었다. 처음 듣는 얘기란다. 반 전체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면 당연히 자기가 먼저 알고 있을 텐데 자기는 나한테 처음 들었단다.

오케이. 그러니까 이 사안은 공식화 움직임이 아니다. 장애인을 포용할 수 없는 일부 엄마들의 뒷담화가 소문에 소문을 타고 다른 학년으로까지 퍼지는 과정에서 우리 아들이 매우 위험한 장애인으로 둔갑을 하게 된 것이었다.

독기 어린 내 목소리에 반대표 엄마도 처음으로 속내를 보인다. 자기도 솔직히 내가 왜 아들을 이 학교에 보내는지 모르겠다고. 일반 아이들에게 피해주지 말고 그냥 특수학교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나도 중학교 이후부터는 특수학교에 보낼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 아들이 자라서 사는 세상은 장애인들만 모여 사는 세상이 아니다. 일반인들과 함께 사는 세상. 그 일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방법을 배울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가 초등학교다. 그래서 평균 2개 학교에 1개 꼴로 초등학교엔 특수반이 개설돼 있다.

우리 아들 때문에 너무 싫다는 일부 엄마들의 불만도 들어야 하고, 내 얘기도 들어야 하고. 자기는 반대표를 하고 싶어 한 게 아닌데 중간에서 너무 힘들다는 그녀. 왜 이 초등학교를 보내는지 구구절절 내 설명도 더는 듣고 싶지 않단다. 우리 아들 문제에서는 이제 완전히 발을 빼겠다는 선언이다.

그래. 우리 아들 일은 내가 지고가야 할 내 짐이지 네 몫이 아니겠구나. 너는 발 빼고 모른 척 하고 있으렴. 앞으로는 내가 일대일로, 일대 백으로 직접 맞장 뜨마.

난 각오를 다졌다. 장애인 관련 교육청에 전화를 걸어 엄마들의 교육부 민원이 제기됐을 시를 대비한 모든 대응방법을 알아뒀다.

결론부터 말하면 엄마들의 민원제기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 아들은 국민의 일원으로서 정당한 의무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고, 실제로 우리 아들의 공격성이 큰 문제가 되면 ‘학폭위’ 정도가 열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아들을 둘러싼 소문은 그 정도가 심하게 과장되었다.

5명의 친구를 할퀸 것으로 학폭위가 열린다면 대한민국 초등학교 1학년 사내 아이 중 학폭위 무대에 오르는 이는 수천에 이르리라.

오히려 내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인권침해 등을 내세워 여론을 주도한 엄마들에게 민사 소송을 걸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나는 독기가 서렸다. 앞서 장애 아이를 키우는 선배 언니가 갈수록 ‘싸움닭’이 되어 가는 현실을 보며 왜 저렇게 사나 불쌍하다 싶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알았다. 엄마가 ‘싸움닭’이 되지 않고는 이 사회에서 장애 자식을 지키며 살아갈 수가 없다. 왜 그럴 수밖에 없냐고? 남편이 말한다. “이 대한민국이란 사회가 X 같아서 그래.”

X 같은 대한민국에서 장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죄. 그 죗값으로 나는 이제 ‘싸움닭’이 되어야만 한다. 자 어디 한 번 덤벼보시죠. 나는 피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을 테니.

<주부, '아주머니'는 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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