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앙코르> ‘분단문학의 큰별’ 이호철 작가 별세-1회

한국의 분단 문제에 천착해 온 소설가 이호철 작가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지난 6월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하던 고인은 최근 병세가 악화해 18일 오후 7시 32분 서울 은평구의 한 병원에서 운명했다. <위클리서울>은 고인을 추모하고 생전 그가 걸었던 길을 되짚어보기 위해 고인과의 심층인터뷰(2011년)를 앙코르 게재한다.

 

이호철 작가는 현역 최고참 소설가다. 1955년 데뷔작 ‘탈향’ 발표를 시작으로 56년째 남북 분단문제를 주제로 수많은 소설을 집필한 원로 작가다. 원산에서 태어나 전쟁 중 월남한 그는 ‘문학예술’에 단편 ‘탈향’을 발표해 등단한 이후 ‘판문점’, ‘소시민’, ‘서울은 만원이다’ 등 60년 가까이 분단을 주제로 소설을 써왔다. 그는 또 유신헌법 개헌반대 서명을 주도했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는 등 문단의 대표적인 재야 민주화 인사로 꼽혀왔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만 북한 정권에 대한 평가도 더할 나위 없이 가혹했다. 이 작가는 “문학은 맨 끝머리에 가면 ‘독재는 안된다’는 것에 이른다. 북한은 문학도, 작가도 없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재국가”라고 혹평했다.

 

▲ 이호철 작가

 

그의 작품은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4월 헝가리에선 ‘남녘사람 북녘사람’(1996)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이 작품은 헝가리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영어, 독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헝가리어 등 모두 10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그동안 헝가리어로 번역된 한국 작품으로는 ‘황순원 단편선’, ‘엄마의 말뚝’(박완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 등에 이어 네 번째다.

이 작가는 “남북관계가 있는 한 나는 계속 쓸거리가 있다. 작가로선 참 요행이다. 여생도 남북관계, 귀향에 관한 얘기를 쓸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탈향’에서 ‘귀향’까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호철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 올해 팔순을 맞은 현역 최고참 소설가다. 감회가 어떤가.

▲ 행복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많은 작품들이 세계 각국에 번역돼 있고,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그 작품들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주고 있기에 말이다. 남북 체제를 경험한 작가들이 더러 있었지만, 저처럼 문단 데뷔 이후 끈질기게 남북문제를 문학의 화두로 삼은 작가는 거의 없지 않았나.

 

 

- 많은 작품들이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엔 ‘남녘사람 북녘사람’이 그렇다.

▲ 지금 해외에선 ‘남녘사람 북녘사람’을 가장 많이 알아준다. 독일, 중국,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프랑스, 스페인, 일본 미국 등에서 주목하고 있다. 10개국에서 번역된 상태다. 이 때문에 최근에 부다페스트까지 다녀왔다.

 

 

- ‘남녘사람 북녘사람’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나.

▲ 85년부터 90년대까지 10년 동안 띄엄띄엄 발표한 것을 묶은 것이다. 1950년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인민군에 동원된 순간부터 전쟁이 끝난 이후의 삶을 통해 남북 분단을 조명하고 있다. 그 당시 저는 국군의 포로로 잡혔다. 포로 잡힌 순간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전쟁 당시의 경험을 쓰고 있다. 중요한 대목에는 ‘픽션’들이 가미됐다. 현 남북관계에서 앞으로 우리가 명심하고 유념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가 중요 메시지다.

 

 

- 해외 전문가들의 반응은.

▲ 6.25라는 엄청난 전쟁을 겪은 나라이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전쟁 소설이나 분단 소설이 나오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남녘사람 북녘사람’은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니리라 기대해본다.

이북 사회를 5년 이상 살아본 사람만이 이 소설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대의 남북관계가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다. 독일에서는 북쪽이 공산화 되던 첫 과정이 과거 동독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하냐고도 하더라. 일본의 모리지아 미찌오라는 학자도 일본어 번역판을 보고 제게 편지를 썼다. 그는 한반도 상황을 늘 가슴 아프게 지켜본 이다. 그는 제 소설에서 북한 권력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평하더라.

 

 

- ‘닳아지는 살들’도 주목받고 있다. 분단을 정면으로 다루는 소설은 아닌 것 같은데.

▲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저를 분단작가로 규정하려고만 했다. 이 소설을 통해 제 소설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 나온 작품이지만 최첨단의 기법이 동원된 소설이다. 포르투갈어로 번역돼 브라질에서도 출간됐다. 그쪽 교수 한분은 지금 이 시점에 전 세계의 단편소설집 한 권을 펴낸다면, 이 소설은 꼭 들어가야 한다고 극찬을 하더라.

 

 

- 데뷔작 ‘탈향’은 컬럼비아 대학 출판부에서 ‘한국 단편선’에 꼽히기도 했다.

▲ ‘탈향은 6.25 당시 부산에서 부두 노동했던 경험에 픽션을 가미해서 써낸 작품이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테드 휴즈 교수가 영어로 번역했다. 이 대학의 출판부에서는 한국 단편 24편을 묶어 냈다. 그 속에 생존 작가로는 제가 첫 순서로 실려 있다. 그리고 김승옥. 최인호 등으로 이어진다.

 

 

- 실제 6.25를 겪었다. 전쟁터에선 어떤 생각이 들었나.

▲ 매 순간이 극한의 상황이다 보니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만 골몰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완전히 무심의 상태로 지낸 것이다.

 

 

- 인민군에 동원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책 한권을 몸에 지니고 나왔다고 들었다. 어떤 책인가.

▲ 막심 고리키가 톨스토이, 체홉, 안드레예프 등 3명의 러시아 문호에 대한 추억을 정리한 ‘3인의 추억’이라는 책이었다. 러시아 소설에 특히 관심이 많은 때였다. 고 3때 교내 문학서클 책임자였는데 많은 책을 읽었다. 최인훈(‘광장’의 저자)은 그 학교 2년 후배이기도 했다.

 

 

- 1953년 정전협정 당시 어땠나.

▲ 정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저는 당연히 전쟁은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집에 가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 6.25는 우리 민족에게 어떤 사건이었나.

▲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5000년 역사에 그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사람들이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던 때다. 이데올로기 대립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그런 민족의 운명 같은 사건이었다.

 

 

- 탈북 직후 실향민 생활은 어땠나.

▲ 처음엔 부산으로 갔다. 국수공장 등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미군 기관에 경비원으로 들어갔다. 거기 가서 커피맛을 처음 알았다(웃음). 거기 있으면서 글을 썼다. ‘오돌할멈’ 등을 염상섭 선생한테 보내고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52년 서울로 올라와서는, 지금의 숙명여대 근처 미군부대 경비원으로도 있었다. 경비원으로 있으면서 나온 첫 작품이 ‘탈향’이다. 56년, 1월호에 ‘나상’이 발표되며 작단에 데뷔, 그 10년 뒤인 66년에 ‘서울은 만원이다’를 연재했다. 그러니 생활이 크게 어렵진 않았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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