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앙코르> ‘분단문학의 큰별’ 이호철 작가 별세-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한국의 분단 문제에 천착해 온 소설가 이호철 작가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지난 6월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하던 고인은 최근 병세가 악화해 18일 오후 7시 32분 서울 은평구의 한 병원에서 운명했다. <위클리서울>은 고인을 추모하고 생전 그가 걸었던 길을 되짚어보기 위해 고인과의 심층인터뷰(2011년)를 앙코르 게재한다.

 

▲ 이호철 작가

 

- 전쟁 전후사와 관련,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다.

▲ 건국 논쟁이 있지만 이승만이라는 사람의 공과를 잘 봐야 한다. 이승만은 분명 건국했고 이뤄냈다. 당시 이승만이 아니었으면 스탈린한테 남한은 점령당할 수도 있었다. 이념을 떠나 당시 남북을 겪은 당사자들은 이해할 것이다. 이승만은 정말 냉혹한 리얼리스트였다.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무리도 했고, 억지를 쓰며 일제시대 형사들까지 써먹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랬기 때문에 스탈린의 음모를 막아냈다. 김구나 여운형이 훌륭한 인물임에는 분명하지만, 당시엔 냉혹한 리얼리스트 이승만이 필요한 시대였다.

 

 

- 만약 이북에서 계속 살았다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나.

▲ 제 삶을 결정적으로 좌우한 것은 분명 월남이다. 6.25때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봐야 한다. 가족들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요행이기도 했다. 제 경우, 북한에 있었다면 문학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 아니겠는가.

 

 

- 문인필화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는데.

▲ 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가 발족했다. 운영위원으로 들어갔다. 천관우 선생 등을 모셨다. 74년 1월, 61명 ‘문인시국성명’을 주도했고, 그 이튿날 긴급조치 1호가 발동되면서 서빙고의 ‘보안사’에 잡혀갔다. 저도 겁이 많은 문인들 중 하나였지만, 박정희 독재는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 반대 운동은 당시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 과거 정치인들은 남북문제를 권력싸움에 이용하기도 했다.

▲ 남북의 문제는 처음부터 양측 정치권력을 도끼로 장작 빠개듯이 빠개서 보여줄 때만 그 실체가 제대로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통일은 남과 북, 양측 권력이 공히 그 지나친 고압성에서 벗어나 평상의 ‘사람살이’ 수준으로 돌아오는 과정으로써만 이뤄질 수 있다.

우리 분단은 같은 국가였던 독일의 경우보다 몇 배는 더 엄혹했다. 양쪽 다 그렇게 오로지 강권체제로만 가다가 끝내 전쟁까지 치르며 더욱 더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그런 상태로 오늘까지 반세기를 끌어왔다.

80년대 들어서 정치권력은 차츰 평상을 사는 사람들 수준으로 돌아왔다. 사람살이는 날로 활기 차지고, 나라 전체는 놀라울 정도로 번영의 길로 들어섰다. 이렇게 사람살이의 평상 수준으로 돌아온 권력은 2000년 8월 대통령이 직접 평양으로 들어가 최초의 정상회담까지 성사시키며 그렇게도 강고했던 남북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바로 이렇게 고압 정치권력이 평상의 사람살이 수준으로 돌아오게 하는데 주된 역할을 해왔던 것이 바로 남쪽의 재야 만주화 운동이었다. 그런 면에서 두 차례 옥고를 치르며 이에 동참한 데에 그 점 새삼 보람을 느낀다.

 

 

- 이북에 누이동생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하나 남아있다. 일본 조총련 분들을 통해 도움을 주고 있다. 고향을 홀로 떠나올 당시 원산에는 할아버지와 부모, 누나 둘,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중국 옌볜을 통해 가족들을 찾았을 때엔 여동생을 제외하곤 모두 세상을 뜬 뒤였다.

 

 

- 2000년 남북이산가족찾기 제1차 상봉에서 누이동생을 만났다고 들었다.

▲ 그전부터 연변을 통해 고향 가족들 소식을 들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으니 가슴에 한으로 남아있었다. 1998년에도 북한 땅을 밟았지만 가족을 만나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이산가족찾기에서 가족상봉 당시 흥분을 많이 했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 배려로 적십자 자문위원 자격으로 가족상봉단에 참여하게 됐다. 누이동생 하나밖에 살아있지 않았다. 평양에서 50년 만에 누이동생 영덕이를 만났다. 동생 울음보가 터지려 하길래 ‘우린 울지 말자’고 다독거렸다.

 

 

- 향후 문단에서 남북문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 작정인가.

▲ 김대중 대통령과 남북관계를 함께 고민했었고 고생했었다. 하지만 한두 번 고생한다고 남북관계가 갑자기 변하는 것은 아니다. 분단 정국은 엄청 빠르게 변화해 가고 있다. 그래서 긴 눈으로 보고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호철 문학재단’이 올해 4월 발족됐다. 거기서도 제가 생각하는 현 남북관계에 과연 우리 문학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겠는지 뜨겁게 모색해 보려고 한다.

 

 

-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나.

▲ 두 정부 모두 큰일을 해냈다. 물론 한쪽에서는 퍼주기만 했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저는 그 비판도 일정 부분 받아들인다. 그리고 문학으로서도 저는 그 문제에는 비판적으로 활동할 것이다. 남북 문학인들이 백두산에 갈 때 저는 가지 않았다. 같이 문학을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문학은 북한에 없기 때문이다. 그게 제 기준의 문학이다. ‘독재’는 결코 안 된다고 저는 강하게 믿고 있다. 남북 모두 독재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독재체제는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 중국엔 여러 민주화 인사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연계해 북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모색해 보고 싶다.

한편으로 북한의 좋은 점은 칭찬해야 한다. 우리 민족고유의 것들을 지켜내는 게 북한에 분명 있다. 우리 고유의 여성상 등은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독재’는 안 된다. 북을 거부하고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김일성의 5대, 6대 손자까지 정권을 이어가선 안 되지 않겠는가. 그 몇대 손자들은 앞으로 우리 일반사람들과 편하게 이웃으로 오순도순 살 수 있도록, 그 틀을 지금부터 염두에 두고 남북이 함께 고민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 김정일 정권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것 같다.

▲ 정치적으로는 저 같은 사람들이 껄끄러울 것이다. 그 쪽에선 가장 민감한 문제니까 말이다. 이호철 죽일 놈, 살릴 놈 할 게 뻔하다. 하지만 그 점, 각오하고 있다. 세상만사, 세계역사 통틀어 그렇지만, 성심으로 해내면 언제든 이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정치권은 각자의 정치적인 야심 차원으로 남북관계를 운운하고 있지만, 문학하는 사람들은 진정 민족 성심의 차원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 이명박 정부를 평가하자면.

▲ 이명박 정부도 천안함, 연평도 사건 때문에 골치 아플 것이다. 사과를 받아내고자 하는 입장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처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질상 그렇다. 그러나 좀 더 부드럽게, 북한과 정권차원으로는 대화할 수 있는 틀을 가져보도록 더 좀 노력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한편 현 정부 들어서 북한과 관련 좌파, 빨갱이 등의 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지금 국민들은 이북이 어떤 세상인지 알고 있다. 지금에 와서 좌파, 빨갱이라는 말은 좀 우습다.

 

 

- 통일에 대한 기대는.

▲ 남북엔 7000만 한 사람, 한 사람의 통일이 있다. 즉 7000만개의 통일 이론이 있다. 통일을 싫어하는 사람도 엄연히 있다. 그러니 참 어려운 문제다. 분단 극복의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했지만 아직까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맥이 빠지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도 통일에 관심이 없는 게 안타깝다. 남북이 갈리기 전엔 열차표만 사면 부산에서 회령까지 마음대로 오갈 수 있었다. 저는 그런 시대를 살았는데 분단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이제 북한 사람들을 달나라 사람으로 취급할 정도가 돼버렸다.

세계에서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유독 우리만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남북이 긴장국면에 놓여 있다. 독일 통일 이후 동독 지역에 가봤지만, 그때 이미 독일은 분단의 상처가 많이 치유돼 있었다. 이제 세계는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남북관계란 어렵고 까다롭게 생각하자고 들면 한없이 어려워진다. 쉽게 생각하자고 들면 이것처럼 쉬운 것도 없다.

정치적 통일은 일단 미뤄둬야 한다. 남북이 서로 많이 오고가는 게 중요하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한솥밥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다보면 물이 차오르듯 통일한국은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남북간 사사롭게 많이 만나고 정분을 쌓아가며, 제각기 형편만큼 한 솥밥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다보면, 어느 날엔 슬그머니 통일이라는 게 우리 곁에 와 있게 될 것이라고 본다.

 

 

- “더 절절한 것이 문학이다. 이념은 거기에 비하면 얕고 속된 것”이라고 했다.

▲ 이념은 추상적인 용어를 쓴다. 사회과학과 철학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학은 실제 삶을 보여주고 느끼게 한다. 문학이야말로 사실 그대로의 실제국면과 밀착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발언은 생동감이 넘치고 실제적이다. 이념적인 것들은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상투화 되는 순간에 그 병폐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 ‘이호철 문학’을 정의하자면.

▲ 제 문학은 ‘탈향에서 귀향’으로 가는 여정이다. ‘탈향에서 귀향’은 달리 얘기하면 ‘분단에서 통일’이다. 긴 여정이다.

 

 

- 끝으로, 원로로써 우리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최근 저축은행 사태를 보며 놀랐다. 자유라는 게 참 좋은데, 가장 마지막에는 개개인의 품위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게 그 민족의 수준이다. 덮어놓고 돈 돈 돈…. 모두가 환장해 있다. 그 때 그때 한 국가의 대다수 국민들이 어떤 수준의 책을 읽고 있느냐가 그 때 그 때 그 국가의 수준을 말해준다. 우리사회의 50∼60대 중진들 태반은, 문학 같은 것은 어린 애들이나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니 저축은행 사태 같은 게 벌어지는 것이다.

문화 관련 종사자들 마인드도 내가 볼 때는 수준 이하다. 그 사람들이 한 달에 어떤 책을 몇 권이나 읽고 있는지 보면 답이 나온다. 윗사람 눈치나 보거나, 혹 당하지나 않을까 하고 겁만 내고 있다.

독일만 하더라도 어떤가. 50∼60대들이 책을 가지고 와 ‘소설 낭독’을 듣고, 30분씩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그 작가에게서 사인을 받으려고 한다. 그게 선진국의 문학이고 문화이다. 우리 문화 수준은 그런 선진국에 비하면 너무 뒤떨어져 있다. 많은 국민들이 좋은 글을 많이 접했으면 한다. 경제에만 골몰하지 말고 각자 삶의 질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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