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강진수의 ‘서울, 백석을 읽다’ – 3회

(詩)

▲ 시인 백석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리 묘향산 백오십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쌔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 주재소장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 ‘八院(西行詩抄3)’, 백석. -

 

(1)

내가 살던 땅에는 가을이 왔다고 들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졌다고 옷을 더 챙겨 입고 다니신다고
간만에 전화 드린 어머니를 통해 이야기를 들었다.

벌써 바깥에 물을 내놓으면
그 물이 차가워질 계절이고 시간이다.
타지에 있으면서 알 수 없는 단 한 가지는 계절이 가는 줄 모르고
시간이 흘러가는 줄 알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내가 살던 땅에는 시간들이 눈에 보이도록 흘렀고
그래서 가을이 오면
금방 춥다 춥다, 하면서 감기에 걸렸을 것이다.

나는 괜히 기침을 해 본다. 기침을 하면
이 낯선 땅에서도 감기에 걸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디메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나 저제나 멀리 달아나려는 마음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마음 어디 근처에 주재소장 같은 어른이 서 있는지
꽁꽁 얼어붙은 두 손을 호호 불어 가면서
그곳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겁먹고 고개를 숙여 걷던 것이다.
낯선 순간이 들이 닥치고 나면
나는 나에게 흐르는 시간을 잊고
기침을 해대면서 내게 병을 불렀을 것이다. 부르면 오는 것이 병이다.
병은 나에게 안식을 준다. 치열하게 살 수 없고
두려운 것을 두렵다고 하는 것에
그럭저럭 쓸 만한 근거를 대주는 것이다.

차디찬 아침이 그립다.
코끝이 찡하고 시리도록 서리를 맞아보고 싶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는 버스
하얗게 핀 성에꽃을 손톱으로 살살 긁고 싶다.


(2)

누구에게나 애처로운 기억이야 하나씩 있지. 누군가에게
동정을 받을 만한 기억 말이다.

하지만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사람도
가만히 듣고만 있는 사람도
다들 목구멍에서 무엇이 막혀버린 것처럼
컥컥대면서 운다.

울고 싶을 때야말로 그런 기억은 묻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묻혀 있지 않으면 달궈진 숯덩어리처럼
그것이 피워낸 불씨처럼
겨우내 자란 풀을 뜯어먹고 자라고 만다.

텅 빈 차 안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느 누군가가 그저
계집애가 운다는 것으로 같이 운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들불 번지듯 기억이 번진다.

누구에게나 있다고
위로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묻어버려야 한다.

내가 탄 차에는 이름 모를 어느 누구만 타고 있지 않다.
내가 모를 사람만 나와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


(3)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손이 시려도 찬물에 계집은 걸레를 쳤을 것이다.

계집 같던 나의 유년은
언제 다 찬물에 빠져 죽고

나이 먹은 나만 남아서 다시 걸레를 치는가.

우는 소리가 들릴까봐
일부러 걸레를 치면서 운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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