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자영업자들의 한숨, “옆가게 주인 또 바뀌었어요”
깊어지는 자영업자들의 한숨, “옆가게 주인 또 바뀌었어요”
  • 김범석 기자
  • 승인 2016.09.21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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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덮은 암울한 그림자

한국 경제의 만성적 뇌관이 심상치 않다. 국가채무와 가계부채, 그리고 기업들의 불안한 재무 구조 등 그 어느 것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가장 큰 위험은 자영업자들의 대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대출은 실질적으로 가계 부채와 연관이 돼 있고, 이 중 상당수는 생계비용으로 쓰이는 것으로 추산된다. 빚의 늪은 점점 더 상황이 악화되는 고리구조여서 향후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가을바람과 함께 냉각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살펴봤다.

 

 

“10집 개업해서 1집 살아남으면 다행이죠.”

“일단 가게 문을 열었다가 권리금도 못 챙기고 떠나는 사람들이 수두룩해요.”

서울 사당동에서 만난 50대 자영업자의 말이다. 한 때 이곳은 서울에서도 유명한 재래시장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방문객들의 지갑이 닫히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자리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퇴직금에 대출을 받아 영업을 시작하지만 6개월 이내에 승패가 결정돼요. 더구나 경험까지 부족하니 무리할 수 밖에 없죠.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개업하는 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런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자영업자들의 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1년 새 늘어난 은행권 대출만 24조원 가량이나 된다.
 

“시대 트렌드 못 쫓아가”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시행, 조선업계와 건설업계의 악화 등 여러 가지 상황도 자영업자들의 한숨을 깊게 하고 있다.

용산 전자부품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40대 중반 A씨는 “이미 이 쪽은 정리가 거의 다 됐다”면서 “10년전에 비하면 살아남은 가게가 얼마 되지 않는다. 누군가 이 일을 한다고 하면 말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은행권 자영업자 대출은 253조 8000억 원으로 1년 전 229조 7000억원보다 무려 24조 1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가폭은 무려 10.5%에 달한다. 자영업자 대출은 8월 기준으로 2013년 185조원, 2014년 202조 원 등으로 그 어느 분야보다 급증하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 중에서 자영업자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자연스레 늘었다. 지난해 8월 41.8%였던 비율은 1년새 1.5% 증가해 43.3%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자영업자들이 몸답고 있는 업종은 경기에 민감한 도소매업과 음식업, 숙박업 등에 몰려 있다. 서울 종로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C씨는 “시대를 휩쓸었던 노래방, PC방, 당구장 등의 숫자가 대폭 줄었다”면서 “이제는 자영업자들도 공부하고 트렌드를 읽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될수록 자영업자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한은의 ‘예금취급기관 산업별 대출금’에 따르면 올 2분기 도․소매업, 숙박 및 음식업의 전 분기 대비 대출 증가율은 산업 전체 평균(1.2%)보다 높은 2.2%와 3.6%를 차지했다.

사당동에서 식당을 운영중인 D씨는 “요 몇 년 새 간판 교체비율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 같다”며 “맛집으로 소문난 집인데도 어느 순간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쉬쉬했지 다 적자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하물며 다른 가게들이야…”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저기 있던 순대국집이 이곳에선 유명했어요. 나름 단골들도 많았구요, 10시 되면 칼같이 문을 닫을 만큼 손님 유치엔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어느 순간 주인이 바뀌고 족발 체인점이 됐더군요. 이웃집 가게 주인들도 이런 변화를 잘 몰랐다고 해요.”

장사가 일정부분 유지 되더라도 늘어나는 비용을 충당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부모요양에 자녀 생활비까지”

자영업자 대출은 다른 대출에 비해 연체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된다. 대부분 은퇴 세대에 집중돼 있는데다 생계 비용의 증가를 따라잡는 게 쉽기 때문이다. 가게문을 닫는 순간 수입이 막혀버리는 경우가 많아 대출금 이자 내는 것도 벅차다는 게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이다.

그러면서도 ‘손해가 불 보듯 뻔해 보이는’ 상황에서 가게를 유지하는 것도 무리수일 수 밖에 없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자영업자 대출 잔액을 연령대로 살펴보면 은퇴 세대인 50세 이상 중․장년층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이 연령층은 자녀들의 대학등록금과 결혼 자금 등을 부담해야 하고 고령층의 노년을 책임져야 하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청년실업의 악화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다.

“자영업자들 대부분이 자녀들만 보고 살아왔는데, 대학 졸업후에도 생활비를 보조해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그런 상황에서 장사까지 안 되면 미칠 노릇이죠. 결국 대출 금액만 커질 수 밖에 없어요. 사실 자영업자 대출이라는 게 생계비도 벅차다는 증거겠죠. 당장 발등의 불이 급한 데 그럼 어떡해요.”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당장 좋아지기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히려 기업구조조정으로 조선, 해운업계 근로자들이 자영업으로 유입된다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요 몇 년 새 메르스 사태, 세월호 후폭풍 등이 지나가면서 경기에 민감한 자영업자들은 좀처럼 어깨를 펴지 못하고 있다. 사드 배치 등을 둘러싼 북핵 문제와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 여파도 시장을 움추려들게 만드는 요소다.

자영업의 경쟁 상황이 한계에 부딪힌다면 다른 소득 수단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하는데 이 역시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경마나 도박, 스포츠복권 등에 눈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자영업 생존율 ‘17.4%’

통계청의 ‘2015년 가구주 종사상 지위별 가계 재무건전성’에 따르면 가구주가 자영업자인 가구의 부채는 상용근로자 등과 비교할 때 가장 많은 가구당 9392만 원으로 집계됐다. 자산 대비 부채비율과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비율도 19.5%, 151.4%로 가장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영업자의 생존율이 10명 중 2명도 안 된다는 충격적인 상황이 확인됐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개인 사업자 신규․폐업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총 창업은 967만 5760개였고 폐업은 799만 309개로 나타났다.

창업과 폐업을 단순 비교한 자영업 생존율은 불과 17.4%에 머물렀다. 자영업자들의 사업 환경도 점차 악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555만 명의 자영업자 중 고용원이 있는 경우는 1년 전보다 1000명 감소한 159만 5000명에 불과했다.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자영업자 대출 문제가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차가워지는 밤바람과 함께 자영업자들의 어깨는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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