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대둔도의 여름 ④

▲ 후두두두 급하게 옮기는 발걸음에 신명이 실린다. 낚아올린 농어를 함께 들고 나르는 중인 아들 남양재씨와 이두열 할매.

그 바다가 기르고 단련시킨 맛
대둔어보

“옛날에 밥이 귀한 시상에는 이것을 잡아다 삶아서 까서 묵어. 어떤 사람이 딸네집 가서 이 고둥을 까서 묵고는 간질하니 짜서 물이 묵고 싶은께는 물을 묵음서 ‘딸네 물은 달기도 달다’ 그랬디야.”

오리 마을의 ‘장금이’ 최철심(73) 할매가 꺼내놓은 가시리고둥 이야기. 섬 둘레둘레 갯바위마다 갯것들이 풍요롭고, 그 갯것들이 낳은 이야기도 걸다.

수리 선창, 후두두두 급하게 옮기는 발걸음에 신명이 실린다. 아들 남양재씨가 낚아올린 농어 바구리를 함께 나르느라 이두열 할매도 가세했다.

“와따 크구만.” 동네 사람들이 던지는 덕담도 그 발걸음에 흥을 실어준다.

어물 흔한 섬마을이지만 가장 뜨거운 관심사 역시 늘 그것.

“우리 성제가 낙수질해서 퍼덕퍼덕한 놈을 갖다 줬어.”

 

▲ 대둔도의 대표 어종 우럭.
▲ “포리 엉그는 것 시른께.” 놀래미를 일일이 망으로 싸서 빨랫줄에 널어 말린다. 임한덕 할매네.

 

놀래미 몇 마리를 일일이 망으로 싸서 빨랫줄에 널어 말리는 중인 임한덕(71·수리) 할매.

“포리 엉거 있는 것 보기 시른께, 내 성격이 그래.”

어느 집 빨랫줄이든 꾸덕꾸덕 말라가는 고기 몇 마리쯤은 빨래처럼 매달고 있는 것이 섬 풍경. 고샅에 널어둔 미역도 대둔도의 여름 풍경을 이룬다.

 

▲ 외모는 좀 숭악하지만 짭쪼롬하고 야들야들 달달한 맛이 일품인 거북손(보찰). ‘1급청정 지표생물’로 바위 틈에 떼지어 군락을 이룬 모양새가 꽃이라도 핀 듯하다.
▲ 단단한 껍질이 없고 몸이 불룩하고 물렁물렁해서 ‘바다의 달팽이’로 불리는 군소. 온통 물살이라 삶으면 몸 속의 물이 싹 빠지면서 팍 쪼그라든다. 섬에 살지 않으면 먹기 힘든 군소는 쫄깃하며 쌉쓰름한 맛.
▲ 갑옷을 입은 듯 8개의 딱딱한 딱지로 몸을 보호하는 군부. 깨끗한 바다에서 자라는 군부는 도시에서 맛 보기 어려운 해산물 중 하나.
▲ “시커먼 밤송이같애. 미역국에 여서 묵으문 맛나제.” 성게.

 

미역, 가사리, 톳이 나는 갱번은 공동작업구역. 여느 섬마을처럼 공동채취와 공동분배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 왔지만 가끔 예외도 있다.

“메느리나 딸이 애기 났을 때 산고 미역은 쪼까썩 캘 수 있제.”

“같은 섬에서도 미역 질이 제제금 달라. 남쪽 미역이 서쪽 미역보다 좋제. 남쪽은 파도가 쎄서 단련이 된께 단단하고 야물아. 가새미역이여.” 문광근(63․수리)씨의 말씀.

그처럼 파도가 단련시킨맛, 파도가 단련시킨 삶들이 그 바다를 지켜오고 있다.

 

 

▲ 도마 위엔 오로지 우럭 두 마리에 어슷 썬 청고추 홍고추뿐.

 

▲ 부재료나 각종 소스로 가리지 않고 가장 단순한 조리법으로 가장 깊은 바다의 맛을 담아내는 간국.

문 닫기 전에 가야 할
오리 민박 최철심의 밥상

“밥은 어디서 묵고 있는가.”

선창에서 고샅에서 만난 대둔도 어르신들이 그리 물어 왔을 때 ‘오리 가게집’이라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한결같았다.

“잉 잘했네. 잘했그만” 하는 황공한 칭찬에 이어지는 말씀은 “그 아짐이 밥을 묵게끔 허셔.”

‘묵게끔(먹을 만하게)’ 차려내는 오리 가게집 최철심(73) 할매의 요리 비법은 식재료를 획득한 지점과 오리 가게집 마루에 놓인 밥상 사이의 거리였다.

이를테면 박용순 할아버지가 도목리 앞바다에서 방금 투망으로 건져 올린 우럭, 수리 앞바다에서 아는 사람이 잡아 올린 장어, 박원단 아짐이 물때에 물쓴 바위에 나가 따온 거북손이나 미역 그런 식재료들은 자동차나 선박이나 항공기 같은 운송시스템에 의존하여 장거리 이동할 필요 없이 오로지 짧은 발걸음으로 검정 비닐봉다리에 달랑달랑 들려 할매의 부엌에 입성한 것들이었다.

“여그것 아닌 것은 소금배끼 없어.”

밥상 앞에서 내놓는 할매의 단언. 소금은 비금, 도초도 것을 주로 쓴다.

“여그것이 뭐이든 좋아. 먼 바다라 오염이 없어.”

 

▲ 주인공이라 할 우럭부터 상에 오른 찬은 모두 이른바 ‘로컬 푸드’.

 

우럭 놀래미 장어 문어 멸치 전복 소라 거북손 홍합 배말 고둥 미역 등 바닷것과 깻잎 부추 가지 등 밭엣것이 총망라된 밥상.

“고동은 어제그제 사리 때 물 빠질 때 잡아다가 물속에 살려놨어. 물속에 가꾸(틀) 속에 들었어. 모래 뱉아내라고. 그냥 까문 모래가 지근지근 씹히제.”

양념을 어찌 하는가보다 재료를 어찌 다스리는가를 먼저 말씀하시는 요리의 달인이다.

흑산도 본섬 신리에 살던 처자가 스물 셋에 혼인을 해서 대둔도에 들어왔다.

“결혼 막 해서부터 이 손으로 돈 엄청 쥐었어. 해녀 한 달 하고 돈을 찾으문 돈을 다발로 찾아. 사리에 물질 안허고 쉬는 그 동안에는 밭농사도 하고 돈벌이 있으문 별것을 다 했어. 해녀질을 헌께 돈을 안 기렸제(아쉽지 않았지).”

아이들이 아직 크고 있는데 47세에 남편을 떠나보냈다.

“여싸여싸 노저은 배로 노저어 나가서 전복 먹이 주고, 해녀해서 오만 것을 바다에서 잡아오고. 위험한 물속을 전딤서 이 시상 안해본 것 없이 하고 살았어. 3남2녀를 그렇게 키왔어.”

뇌경색으로 두 번 쓰러졌고 그 중 한번은 헬기에 실려서 목포병원으로 갔는데 다행히 ‘밥할 정도는 되게’ 회복이 됐다. 아직 이 아까운 손을 쓰라는 뜻일 것이다.

“옹고슈퍼 밥이 맛나다고 했어. 우리 아들 별호가 옹고여. 지그 할머니가 고집 씨다고 옹고야 옹고야 해서.” 고집으로 치자면 옹고 어매인 최철심 할매도 한 가지.

“음식은 첫째 재료가 싱싱해야제. 이런 디는 그래서 맛나. 마트에서 안 사고 바다에서 막 건져오잖애. 음식은 냉장고 안 들어가야 맛있어. 그 밥상에서 싹 치우고 끄니끄니 새로 장만해야 새맛으로 먹제.”

 

▲ 재료의 원형에서 멀어지지 않고 본디 맛을 살려내는 음식들. 고둥무침, 거북손찜, 미역회, 전복볶음(왼쪽부터).

 

끼니마다 이어지는 우럭찜 우럭찌개 우럭구이에 “우럭은 언제 맛있는가요?” 여쭈었더니, “고기 귀할 때제”라고 현답(賢答).

설거지 하려는 사람을 말리는 사양의 말씀은 “손님 부려먹으문 가난해진단디.”

성찬의 릴레이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마지막날 점심의 우럭간국. 냉동실에 넣어둔 파싹 팔린 우럭이 주재료다.

“시방 당장 누가 와도 밥상을 차려내게 항시 준비가 돼 있어.”

할매네에 고기를 대는 이는 사촌동생인 도목리 어촌계장 황대수씨.

“지그 누나네보다 더 생각해. 나도 그만치 생각허고. 그 동생이 항시 준께 생전 고기가 안 기려(그리워).”

이제 간국이란 것을 요리할 참인데 장금이 할매 도마 위엔 오로지 우럭 두 마리에 어슷 썬 청고추 홍고추뿐.

“양님 안해도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어. 배를 갈라서 내장을 따고 깨끗하게 시쳐서 볕 좋은 날 아침에 널었다가 저녁에 거두문 파싹 몰라.”

 

▲ “음식은 냉장고 안 들어가야 맛있어. 끄니끄니 새로 장만해야 새맛으로 먹제.” 최철심 할매.
▲ “여그것이 뭐이든 좋아. 먼 바다라 오염이 없어.” 우럭 장어 문어 전복 소라 갑오징어 멸치 홍합 미역… 대둔도 바다가 통째로 밥상 위로 올라앉았다.

 

간국용 고기는 피득허니 마른 것보다 파싹 마른 것이라야 국물이 더욱 구수하다.

“싱싱고에 내놨다가 물에 흔틀흔틀 시쳐서 썰어 여코 무 쪼각 몇 개 넣고 마늘만 여코 포옥 끼리문 뿌한 쌀뜨물같이 지 몸에서 우러나. 소금으로 간해서 말린 것이라 마치맞게 간이 맞아. 우럭 볼락 조기 그런 것으로 다 간국을 낄여.”

간국의 핵심은 간. 간질이 비법이라면 비법.

“짜도 않고 기심심허도 않고 간이 딱 맞아야지. 우리는 항시 해봐서 알아.”

부재료나 각종 소스로 가리지 않고 가장 단순한 조리법으로 가장 깊은 바다의 맛을 담아내는 간국. 대둔도 장금이 할매의 밥상에서 식재료의 본래 모습에서 멀어진 것은 없었다.

“잘 묵었단 말이 좋제. 근디 자식네들이 지그 잘 키와줘서 고맙다고 먹고살만헌께 그만 허라고 해. 자식네들한테는 안헌다 허고 허제.”

최철심 할매는 딱 80세까지만 손님 밥상을 차릴 생각이시라니, 문 닫기 전에 가야 할 식당의 목록에 대둔도 오리 가게집을 올려놓으시라.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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