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태국에서 살아보기, 사랑하기-3회

떠돈다는 것은 그렇다

어딜 가는지, 가야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떠돈다는 것은 그렇다. 어딘가에 머물 곳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온전히 의지의 문제인데,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떠도는 것은 그러기 위한 의지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유는 없더라도 그것에는 의지가 있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태국에는 떠돌이 개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머물고 있는 마을에도 당연히 많은 떠돌이 개들이 있다. 정돈되지 않아 부스스한 털과 마을 곳곳에 찍어놓는 지저분한 발자국. 자신들이 인간이라도 된 마냥 어슬렁어슬렁 마을을 돌아다닌다. 누군가 무엇을 먹고 있으면 근처로 소리 없이 나타나 짖지도 않고 가만히 먹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다. 개들의 눈은 깊고 맑아서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떠돌이 생활을 해왔는지 얼핏 알 수 있다. 남루한 생활의 시작이야 각자의 사연이 있었겠지만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지 않으려는 의지가 그들을 떠돌게끔 했을 것이다.

떠돌아다니는 개가 많은 이유는 이 땅의 오랜 관습 때문이다. 이곳의 종교는 떠돌이 개에게조차 음식을 나누어주는 관습을 만들었다. 그래서 갈 곳을 잃은 개들은 자유로이 떠돌아다닐 수 있다. 이런 자유는 이 땅에서만 허락된 것이다. 누군가의 강압이나 유기, 또는 삶의 위협에서 도피하여 개들은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나누는 음식을 먹고 떠돌아다닐 수 있다. 머물 곳이 없어졌지만, 곧 그것은 개들의 의지가 된다. 그들은 머물 곳이 없어진 것을 넘어서 머물 곳을 스스로 두지 않는 떠돌이가 된다. 그들은 사람보다도 많은 것을 느끼고 알아버렸다. 의지는 그런 수많은 세월의 산물이 되어 그들의 몸에 굳어진다.

 

 

이곳, 이 땅, 그리고 이 떠돌이 개들에게는 왜 이런 여유가 허용되는가. 내가 머물던 땅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던 여유와 시간들이다. 떠돌아다니는 개가 지저분하다고 얼굴을 찌푸리고 성질을 부리는 사람은 이 땅에서 오직 이방인일 뿐이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 떠돌이 개, 날아다니는 새들과 수많은 벌레들도 결코 누군가를 증오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증오하지 않을 여유. 이방인이 이 땅에서 낯설지 않을 수 있는 여유.

개들은 아침에 입을 맞춘다. 아침 일찍 커피 한 잔 마시고 집 뒷문으로 산책을 나가자 떠돌이 개 두 마리가 슬쩍 내 뒤꽁무니를 쫓아온다. 둘이서 서로의 냄새를 맡더니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부빈다. 아침부터 그들은 입을 맞춘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아침, 떠돌이 개들은 사람보다도 정겹게 서로를 사랑한다. 서로를 아끼고 서로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따뜻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사람은 몰라도 개들은 알고 있다. 평생 떠돌아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을 떠돌이 개들이 알고 우짖는다. 시간이 떠돌아다닌다. 가끔은 떠돌아다니는 시간도 아름다울 수 있다.

 

 

굿모닝, 브라스밴드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 발을 처음 딛었을 때, 나를 반겨주는 것은 음악이었다. 이곳 학교의 아이들은 브라스밴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매일 아침 조회시간마다 음악실에서 운동장까지 퍼레이드를 한다. 굿모닝.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면 아이들은 음악으로 화답한다. 키가 조그마한 꼬마들이 신나서 퍼레이드를 하는 밴드 뒤를 쫓아다니고 밴드의 선두에선 댄스팀이 봉을 들고 퍼레이드를 지휘한다. 굿모닝. 그들이 아침에 인사를 건네는 방법.

작은 체구에도 드럼과 큰북을 낑낑거리면서 지고 아이들은 길을 당차게 걸어간다. 태국의 아침은 이 아이들이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 아이들의 모습은 그렇게 싱그럽고 당차다. 카메라를 들고 퍼레이드 사진을 찍고 있으니 한 아이가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인다. 부끄러운 듯이. 아니, 또는 자랑스러운 듯이. 아이들에게 그들이 하는 음악은 하나의 자랑거리였다.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이곳 학교에서 할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지 못했지만, 그것에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행복했다. 아이들이 아침에 노래와 연주를 할 수 있어서, 나는 행복했다.

 

 

브라스밴드가 걸어 지나간 길은 반짝거린다. 아침부터 아이들은 눈이 부시다. 악기를 살 돈도 없고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들도 자신들의 것이 될 수 없었지만 악기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 눈이 부시다. 악기가 비록 낡고 녹슬었으며 연주할 때마다 탁한 쇳소리가 귓등을 두들기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눈이 부시다. 아침이 되어도 별은 뜬다. 별은 언제나 반짝거리고 있다. 햇빛이 아무리 밝아도 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반짝거린다. 아이들은 아직 볼 수 없는 별빛이었고 그 아이들은 포근한 밤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밤의 시간. 빗물이 가득 고인 구름이 아이들을 감싸 안는다.

가난해서 음악을 할 수 없는 것만큼 비참하고 마음 아픈 일이 어디 있을까. 음악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포기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음악은 어느 곳에서나 머물러야 한다. 그것이 악기의 형태이든 노래의 형태이든, 아이들이 가난하다고 해서 음악으로부터 멀어져야 할 필요는 없다. 삶의 퍽퍽함과 지독한 현실이라는 어슴푸레한 말들로 아이들의 눈과 귀를 가려서는 안 된다. 이곳 아이들은 누구보다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고 있다. 아이들은 음악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알고 환영할 줄 알며, 모두와 즐길 줄 안다.

 

 

행복하다는 것은 사실 그 무엇보다도 소박한 것이다. 우리는 행복이 어떤 풍요와 배부름 위에서 우리를 반길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빨리 언덕과 산을 넘어야 하고 누군가에 앞서서 깃발을 꽂아야 한다고 스스로 강요한다. 그러나 근처에 산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어딜 가나 드넓은 들판과 지평선만이 보이는 이 땅에서 행복을 위해 넘어가야 할 것은 없다. 지금 그들에게 주어진 음악을 하고 춤을 추는 것이 그들의 행복에 있어서 더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가난하다는 것은 아이들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맞이하는 것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누구를 돕기 위해 이곳에 왔다면 그 누구보다도 이 땅에 선 이방인의 잘못이다. 이 땅은 이 땅만의 문화와 관습, 그리고 그들의 행복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대상으로 가르치고 또는 무엇을 알려주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 브라스밴드가 연주한다. 굿모닝, 브라스밴드. 인사를 건네면 아이들의 북과 트럼펫은 내게 고개를 숙이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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