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역사문제연구소 이이화 이사-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 역사문제연구소 이이화 이사

 

- 제헌헌법상 3.1운동은 민주 국민으로서 일본에 항거한 자주적 저항운동이었다는 말이 된다.

▲ 맞다. 우리가 알듯이 국가가 성립되려면 영토와 주권, 인민(국민)이 있어야 한다. 이건 민주주의 근본기초다. 1919년에 분명히 상해임시정부가 존립했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 민족은 민주국가로서의 국민인 것이다. 그런데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국가를 강탈당했지만, 국제법상 위법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보면 식민국가가 아닌 것이다. 3.1 운동은 불법침입자인 일본제국에 대항해 강렬하게 저항을 한 것이다. 일본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저항운동이었다. 대한 인민은 강압적으로 일본인 국적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일본제국의 식민이 아닐 뿐만 아니라, 만천하에 주권국가임을 알렸던 것이다.

 

 

- 친일파 세력들이 주로 ‘반공(反共)’을 부르짖는 이유는.

▲ 해방 직후 미군정 체제가 남한에 들어서자 북한에는 김일성의 공산당 체제가 들어섰다. 그때 북한에서 남하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주로 공산사회주의를 증오하는 기독교인이었거나 대지주들이었다. 남한에 온 서북청년단과 보수 기독교인들은 지금도 극렬하게 반공주의를 표방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북한 김일성 정권이 친일파를 100% 청산했기 때문에 북한정권을 매우 싫어한다. 당시 북한은 대지주의 토지를 몰수해 토지개혁을 대대적으로 단행했는데, 그것은 사회주의 이념상 그렇게 한 것이다. 남쪽의 이승만 정권도 1948~1949년에 토지개혁을 단행했는데 반민주주의적이라는 여론이 많았다. 문제는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친일파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승만 정권이 공산주의자를 잡는 ‘반공’을 기치로 내세웠고, 일본제국시대에 친일파였던 경찰관과 군인, 교육계, 법조계 사람들을 관료로 재임용 해버렸다. 미군정 시대에도 친일파들이 득세했다. 당시 미군정 책임자들은 한국의 친일파나 민족주의, 통일세력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미군정은 친일파들이 영어에 능숙하고 행정업무를 잘했기 때문에 이들을 그대로 쓴 것이다. 반면 독립운동가와 그 자제들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독립운동하면서 언제 공부를 했겠는가. 이승만은 친일파세력을 이용해 반공을 앞세워 독재를 했다. 친일파들은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반공을 토대로 기초를 다졌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곧 ‘친일파=반공’이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승만이 주창한 반공은 매우 극단적이고 잔인했다. 당시의 반공은 보도연맹 사건에서 보듯이, 배우지 못한 농민이나 노동자들이 내용을 잘 모르고 남로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인명을 살해한 폭압적인 반공이었다.

 

 

- 북한은 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 북한은 친일파 척결과 함께 관직에 쓰지도 않았고, 토지도 완전히 무상몰수를 했다. 이것은 북한만 한 것이 아니라 모든 공산국가들은 다 하는 거다. 그래서 남쪽으로 도망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김일성이가 완벽하게 친일파 청산을 하고, 토지도 무상분배를 하니까 남한 내 민족주의 세력들이 굉장한 호감을 갖게 되면서 남로당 가입자가 급속히 늘어났다. 남한 민중들도 북한처럼 개혁을 바라고 있었는데, 이승만 정권이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일부는 유상몰수를 인정해서 토지분배를 했지만 그래도 민중들은 환호했다. 그때는 미군정도 토지개혁을 하지 않았다. 예부터 소작인들은 엄청난 소작료를 물어야 했다. 쌀 열섬을 생산하면 무려 일곱 섬을 갖다 바쳤다. 한마디로 수탈이었다. 불만이 극에 달한 소작인들은 일본제국시대에도 5할을 주장했지만 불발됐다. 나중에 미군정이 5할로 하겠다고 시늉을 했지만, 믿을 수 없어 남로당으로 대거가입을 했다. 이들 소작농들은 배우지 못해 자기 이름도 못 쓰는 사람이 태반이고, 이념이나 사상에 대해 잘 모른다. 힘겹게 살아온 수많은 소작인들을 반공이라는 이름하에 잔혹하게 학살한 인물이 이승만이다. 그게 그의 반공사상이다. 제주도 4.3사건에서 5만 명이 학살당했다. 그는 민족통일세력들이 자신의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모두 빨갱이로 몰아 죽였다. 학살당한 민간인 숫자만 약 100만 명이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 현대사로 넘어가보자. 1987년 6월 항쟁의 역사적 의미는.

▲ 우리 역사에는 항상 세 가지 세력들이 있다. 민족운동세력과 민주운동세력, 통일운동세력이다. 먼저 1894년 동학혁명은 당시 왕조의 부정부패와 일본의 침략을 앞둔 시국에서 전봉준 장군이 주도한 민족운동이었고, 일제 강제합병 후 일어난 1919년 3.1운동도 빼앗긴 나라를 되찾자는 민족운동이다. 1948년 해방 이후 외세에 의한 남한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김구와 여운형 등이 주도한 통일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4.19는 독재에 대항한 민주운동이었고, 이런 것들이 우리 근대사에서 특별한 민족운동사이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 박정희 유신체제가 무너지면서 집권한 전두환 독재정권에 항거한 6월 항쟁과 5.18 민주화운동도 과거 동학운동과 독립운동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자주운동이었다. 87년 6월 항쟁은 연세대 이한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과 맞물려 시청 앞 일대 골목까지 분노한 일반시민과 넥타이부대, 택시기사까지 합세해 약 100만 명이 운집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해서 민중의 힘으로 민주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MB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역사의 강물은 거꾸로 흘렀다. 전대미문의 4대강 토목사업을 강행하고, 부패한 기득권층과 친일파세력, 유신잔당들이 곳곳의 자리를 꿰찼다. 그런 현상이 현재 정권까지 이어지고 9년 가까이 흘러온 지금, 오히려 친일파 후손들이 대거 등장해 국가와 사회는 더 부패해지고 청년과 노동자, 노인들은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 한국사회는 현재 일제시대 청산과 전쟁·대학살·역사실종 등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심각하다.

▲ 무엇보다 수십 년간 권력과 부를 독점한 친일기득권세력 처단과 올바른 역사정립이 필요하다. 또한 빈부격차를 줄이고 공평한 복지정책을 펼쳐야 이런 현상이 줄어든다. 과거 이명박 정권이 펼친 ‘기업프렌들리’ 재벌에 대한 감세정책으로 부의 편중을 심화시켜 지금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켰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유럽과 버금가는 복지정책을 펴야한다.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음에도 국가는 이런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이건 헌법에 보장된 것이고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다. 국가는 가진 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 복지로 분배를 해야 한다. 부자들로부터 강제로 빼앗으라는 말이 아니다. 복지를 돈만 잡아먹는 하찮은 정책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복지를 살리면 경제성장도 함께 이뤄진다. 올 여름 얼마나 더웠나. 쪽방에 살면서 전기요금 무서워서 선풍기조차 켜지도 못하는 가난한 국민을 정부는 마치 남의 나라 일처럼 대한다. 대형건물을 짓고 도로 만드는 게 복지가 아니다. 인간의 삶에 맞춘 복지여야 하지만, 정부는 퍼주기 식 복지라는 논리로 거부하고 있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을 보라. 독일의 경우 부자들은 복지를 위해 당연히 세금을 많이 내고 있다. 왜냐하면 국가가 자신의 노후에 복지혜택을 해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 안보문제로 가보자. 국민들은 친미 일변도 외교정책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있다.

▲ 해방 이후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당시 친일파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우리를 해방시키고 가난한 나라에 식량 원조를 해준 은혜의 나라라는 이유로 미국에 유학을 가고, 미국 경제와 문화를 받아들이며 친미적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주국가라면 전시작전권만큼은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6.25전쟁 와중에 이승만 정권이 맥아더에게 내준 전시작전권을 아직까지도 이양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영구적으로 넘길 태세다. 한때 미국이 반환하려 했지만 받지 않겠다고 발뺌을 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사드도 그렇다.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균형외교로 가야한다. 조선과 고려시대 때도 중국과의 관계에서 균형외교를 했다. 또 광해군도 명나라와 청나라 간의 외교에서 그랬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G2로 급부상한 중국은 우리와의 무역관계면에서 1위국이다. 현 정권의 사드대책 대안은 무조건 철폐하는 것이 맞다. 사드로는 핵을 막지 못한다. 지금 구한말과 같은 긴장관계가 극대화되고 있는데 6자 회담을 잘 이용해야 한다. 사드와 북핵문제는 대화로 풀고, 어떻게 하든 북한과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는 게 내 입장이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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