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생각> 류승연

‘김영란법’이 시행된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 반응은 “췟!”이었다. 그래그래. 다 옳고 좋은 법인데 그래도 어차피 청탁할 놈들은 다 하고 부정부패는 더 은밀하게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질걸. 괜히 우리 같은 개미들만 피해(?) 보게 생겼네.

내 입이 뾰죽 튀어나온 건 영화 전문 기자인 남편 덕에 우리 부부도 법 적용 대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언론인이지 쥐꼬리만한 월급과 과다 업무에 시달리는 샐러리맨. 그나마 ‘기자’라는 명찰 하나 달고 있어서 소소하게 누린 재미들이 사라지게 되어서 내 입이 튀어나오게 된 것이었다.

 


최대 4표까지 예매를 할 수 있었기에 애들 방학이면 함께 극장에 가서 애니메이션을 보곤 했다. 표 값이 비싸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동안은 공짜로 봤던 영화들을 이젠 내 돈 주고 보게 됐다는 게 아쉬웠다.영화 기자인 남편은 극장 프레스카드가 있었다. 언론 시사회를 통해 미리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지만 일정 상 시사회에 참석을 못한 영화들은 나중에 극장에서 관람을 하고 기사를 썼다.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뮤지컬을 마음 놓고 관람했다. 기자들에게 주어진 초대권 덕분이었다.

더 이상 명절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게 된 것도 아쉽다. 설날과 추석을 2주 정도 앞두면 나는 언제나 냉장고 정리를 시작했다. 오래된 것들을 버리고 정리해서 냉동실과 냉장실에 빈 공간을 만들어 놨다.

부정청탁을 들어주려고 선물을 받았을까? 자신 있게 말하건대 NO! 명절 선물은 ‘청탁’이 아닌 ‘인사’같은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같은 의미. 그래. 누구나가 알고 있듯 관행.

그리고 명절 선물은 기자로서 지금 내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모든 기자들에게 다 선물을 주는 곳에서 받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몇 명씩 기자들을 가려서 선물을 보내는 곳. 그런 곳에서 선물이 들어오면 ‘그래, 지금 잘하고 있어’라는 의미였다. 혹은 그런 곳에서 다른 기자는 받았는데 나는 못 받았으면 그건 더 분발해야 한다는 신호였다.

어쨌든 그건 기자인 당사자들의 얘기고, 언론인의 배우자인 나에게는 명절이 빈 곳간을 채우는 중요한 시기였다. 언제나 호주산 소고기만 먹던 우리 아이들이 모처럼 한우로 배를 채울 수 있는 때이기도 했고, 고등어나 삼치만 굽던 내가 굴비를 구워 저녁밥상에 올리는 때이기도 했다. 생계형 언론인인 우리 가정에 명절에 들어오는 많은 먹거리들은 하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그동안 내 입을 신명나게 해줬던 수많은 디저트들이여, 이젠 안녕~. 나는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디저트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로지 술, 술, 술….

남편이 일하는 문화계는 분위기가 달랐다. 예술계 종사자들이라 그런가. 퇴근하는 남편의 손엔 청담동의 유명한 케이크, 압구정동의 맛있는 파이, 삼청동의 수제 빵 등이 수시로 들려 있었다.

서울 변두리에 살면서 아이들 픽업하러 동네만 오고가는 내가, 언제 시내 중심가에서 가장 핫(hot)하다는 디저트를 먹어보겠는가! 남편이 기자인 덕분에 누린 소소한 재미들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말이 좋아 기자고 언론인이지 실상은 박봉과 과다업무에 시달리는 샐러리맨이다. 여타의 기업이나 공무원들처럼 정기적인 보너스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기에 남편이 구해오는 식량(?)들은 생활비 절감에 소소한 기여를 했다.

부정청탁을 근절하고 클린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행된 김영란법. 그 좋은 법 때문에 당장 식량조달이 뚝 끊기자 내 입이 툭 튀어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래, 안다. 나는 ‘재미’라고 표현을 했지만 실은 이조차도 ‘특권’이었다는 것을. 나부터 특권을 내려놓아야 사회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하지만 말이다. 나는 김영란법이 개미들만 잡는 개미핥기가 될 것만 같은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 특권층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보아온 특권층은 그랬다. 특권층은, 권력층은 부정청탁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언제나. 그리고 그들에게 청탁은 숨기고 싶은 부정한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을 증명하는 증명서 같은 것이었다.

고백성사를 하자면 우리 아빠부터가 그랬다. 정년퇴직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어도 회사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아빠의 직장생활엔 부정청탁이 늘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접대를 받는 입장인 아빠. 집에는 고급 선물이 줄을 이었고, 주말마다 골프에 해외여행에…. 반면 아빠 역시 자신이 받은 청탁을 들어주기 위해 더 높은 권력에 있는 국회의원과 장관, 도지사 등을 만나고 다녔다.

내가 정치부 기자로 재직하던 당시 한 의원과의 술자리에서 우연히 아빠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의원과 우리 아빠가 학교 선후배. 더군다나 의원이 우리 아빠를 잘 알기까지. 국회의원이 우리 아빠를 만날 일은 뻔했다. 아빠가 청탁을 하려 그를 만났고, 아마도 그는 학교 선배인 아빠의 청탁을 들어줬을 것이다. 나는 우리 아빠 이름을 반갑게 부르는 그 의원 앞에서 얼굴이 화르륵 붉어져 참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권력이 있다는 건 그런 거다. 내 말 한 마디가 어디까지 통하나 알아보는 것. 내가 원하는 일이 ‘인맥의 힘’으로 어디까지 성사되나 확인하는 것. 그런 게 특권층의 부정청탁이고 내가 보기에 특권층은 그런 특권을 놓을 생각도 버릴 생각도 없다.

지금은 새누리당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된 모 의원. 꽤 친하게 지내서 자주 어울렸는데 한번은 자동차 접촉사고를 당한 뒤 상대를 “너 내가 누군 줄 알아?”라는 말 한 마디로 제압한 사실을 얘기하며 낄낄거린다. “너 내 말 한 마디면 직장에서 모가지를 따버릴 수 있어”라고 하자 상대가 태도를 싹 바꾸더라며 박장대소를 했다.

이런 게 권력을 가진 자들의 속성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됐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을까? 자신이 가진 ‘힘’을 ‘클린 사회’라는 명분을 위해 아무 주저 없이 버릴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아니다. 다만 더 은밀해질 뿐이다.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청탁의 대가로 금품이 오가던 게 예전의 사회였다면 지금부터의 사회는 더 많은 인맥들이 중간에 얽히면서 계약, 인사 등 무형의 것들로 서로 간 청탁의 대가를 지불하겠지. 그리고 카드사용을 할 수 없으니 아마도 5만원 지폐는 더더더 시장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겠지.

아는 기자와 얘기를 나눴다. 기자의 업무란 건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게 반, 나머지 반은 취재원들과의 술자리를 통해 보다 더 세밀한 현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취합하는 게 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에는 취재원들이 밥값과 술값을 내던 관행, 앞으론 어떻게들 하려나?

“안 그래도 이제부턴 밖에서 만나지 말자고 하더라. 회 떠놓고 오피스텔로 부르겠대.” 이런 것이다, 변하지 않는 속성이라는 건. 다만 더 은밀해질 뿐이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서. 어쨌든 김영란법 때문에 우리 가정은 당장 매달의 지출 금액이 늘어나게 되었다. 남편이 점심은 얻어먹고 다녔는데 앞으로는 더치페이. 남편의 용돈도 올려줘야 할뿐더러 틈틈이 구해오던 식량 조달이 뚝 끊기면서 아이들 간식비도 늘어나게 됐다.

원칙적으로 이게 당연한 일이고 옳은 일.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법 적용의 직접적인 대상자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법 시행에 적극 동참할 것이다. 물론 웃으며 환영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지킨다.

다만 우리 같은 생계형 개미들한테만 호된 법 적용이 되지 않도록, 진짜로 칼을 들이대야 할 저 위에 계신 분들에게도 직접적인 법 적용이 될 수 있도록 무언가 전문적이고 뾰족한 묘수가 나와주길 바란다. 김영란법이 개미핥기법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