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멍청한 것과 너무 똑똑한 것 사이
너무 멍청한 것과 너무 똑똑한 것 사이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6.10.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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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토론에 대한 단상

얼마 전 첫 미국 대선토론이 방영된 이후, 대선의 갈래는 크게 두 극단으로 잡히고 말았다. 너무 멍청한 것, 그리고 너무 똑똑한 것. 어느 측이 멍청하고 똑똑한 지 쉽게 판가름할 수는 없다. ‘똑똑’한 만큼 세금 망에서 잘 피해 다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멍청’하게 이메일로 기밀을 주고받는 사람도 있다.

트럼프와 클린턴의 경쟁은 정책적인 라이벌로서 발전하지 못했음을 토론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경쟁은 도덕의 유무를 따지는 것으로서의 정치, 더 쉽게 말하자면 생활양식에서 이른바 정치적인 인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할 법한 것에 불과했다.

 

▲ 트럼프와 클린턴 대선토론 장면

 

굳이 이 지면에 그들이 얼마나 선천적으로 똑똑하고 멍청한지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으려고 한다. 미 대선을 지켜보는 미국 시민들과 또 그 추이를 기대하는 세계 시민들은 후보자로 나선 두 명이 얼마나 똑똑해왔고 똑똑했는지, 또는 그 정반대인지에 너무 무게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미 두 얼간이의 싸움이 되어버린 장에서 굳이 그런 것을 가리기에는 이번 대선이 너무 지저분한 것도 사실이다.

대선을 지켜보는 이들이 가장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후보자들이 제시하는 정책이다. 그러한 정책들이 오고가는 토론 속에서 그들이 ‘최소한’ 얼마나 지도자다웠는지가 대선에서, 대선 토론에서 보여져야할 ‘최소한’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트럼프가 지도자로서의 낙제점을 받았다는 미 언론들의 냉혹한 평가에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 탈세를 얼마만큼 했든, 미스 유니버시아드에게 성희롱적인 발언을 했든 간에 지도자로서 더 낙제인 부분은 그가 준비 없이 토론에 임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들은 근거가 미흡하거나 철저한 자료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사회자 레스터 홀트로부터 방송 중에 이 점을 지적받기까지 했다. 이것은 자신이 도전하고 있는 자리가 지도자로서의 자리라는 것을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이 나서는 토론의 장이 구체적인 정책 제시와 이에 대한 근거로 꾸며져야 한다는 것을 차치한 채, 오직 토크쇼에서 가십 거리를 다루기 위해 그는 양복을 꺼내 입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멍청한 것이다. 타국의 대선 토론을 보면서 굳이 그 후보의 가십 거리나 도덕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그토록 멍청해서 도저히 배워가서는 안될 점인지를 분명히 느껴야 한다. 정치에 있어서, 결단에 무능한 선천적 멍청이보다도 무서운 것이 오직 자신의 신념이, 그 어떤 근거나 반박을 배제하고서라도, 옳다는 종교적 메커니즘에 빠져있는 교조적 인물이라는 것을 트럼프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멍청함은 정말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마는데, 공동체를 거대한 전체주의의 늪에 빠뜨리고 그 길이 옳다고 강요함으로써 수많은 희생을 낳아버렸던 역사가 버젓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무지막지한 정치적 종교가 등장하고 트럼프라는 교주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진정 역사의 신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보수이든 진보이든, 정치적으로 어떤 ‘정파’에 속하는 신념이든 간에 그 안에 합리적인 주장과 근거가 전무하고 이데올로기로 무장되어 있다면 애초에 토론의 장이 형성된 의미조차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들의 토론은 당연히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고 과시하기 위한 자리로밖에 활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트럼프뿐 아니라 클린턴 역시 결코 토론에 훌륭히 임했다고 할 수 없다. 트럼프라는 극단적인 비교 상대가 있었기에 그녀가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대선 토론을 시청한 누구라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일종의 코미디를 보는 것에 불과했다. 두 후보 모두 철저한 자료 조사로 상대를 논박하거나 정책적 허점을 제시하려는 노력보다는, 어떻게 하면 상대의 표를 깎아낼 수 있을까, 에만 집중했던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클린턴의 주장 역시도 애매모호하고 크기만 한 비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고 구체적인 실태 조사가 그녀를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클린턴의 더 큰 문제점은 ‘너무 똑똑한 것’에 있다. 그녀가 정말로 똑똑한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녀가 계속 똑똑한 이미지를 대중에게 보여주려고 한다는 점은 토론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의 이미지가 자신감 있고 지적이게 보이려고 해왔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그런 전략의 효용을 잘 봐왔고 그런 이미지가 그녀에게도 굳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의 이미지가 오히려 그녀를 집어 삼키고 있다. 그녀 자체를 대중과도 먼 인물로 만들고 있는 것도 결국은 그녀의 이미지다.

대선 토론에서도 클린턴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트럼프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자신감이 그녀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는 것처럼 비쳐져 일종의 반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녀가 쌓아온 이미지는 꼭 그녀 스스로가 이른바 ‘엘리트 계급’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처럼 그녀의 반대자들에게 느껴지고 있다. 이는 그녀가 대중을 이해하는 위치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가 일반 대중의 영역에서 생활한다고 더 이상 여겨지지 않기에 그녀의 강점으로서 작용했던 이미지가 반작용을 일으키고 그녀에게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다.

일부러 멍청해보이라는 것이 아니다. 대중은 결코 멍청하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 너무 똑똑하게끔 구는 것은 분명 그 스스로 교조를 쌓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근거를 토대로 하던 주장과 철학에 기반하는 어떤 신념들이 거대한 이데올로기로 탈바꿈하고 일종의 신앙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똑똑하고 맞으니 따라오라는 식으로 결정을 강요하게 된다. 엘리트를 위시하는 정치인들의 가장 큰 문제도 이런 점에서 결국 독선과 교조적인 태도다. 너무 멍청한 것과 너무 똑똑한 것은 궁극적으로 동일한 출구로 나아가는 것이다.

지난 7월에 TED에서 알렉산더 베트 옥스포드대 교수가 브렉시트에 대해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의 내용은 브렉시트가 보여주는 의미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겠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강연은 여러 반발에 부딪혔다. 그 이유는 클린턴과 동일하다, 너무 똑똑한 것. 베트 교수는 브렉시트에 대한 자신의 신념과 그 신념을 위해 해야 할 것들만 나열했지, 브렉시트가 일어난 배경이나 일으키는 현상의 구체적인 사안들을 설명하거나 이를 근거로 영국이 어떤 방향으로서 자리매김 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로까지 강연을 이어가지 않았다. 베트 교수나 클린턴이나, 그들은 너무 똑똑해서 자신들의 신념을 ‘주장’할 줄만 안다. 그러나 민주사회는 타협과 합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클린턴이 적어도 민주사회의 지도자가 되려는 욕심이 있다면, 그 사회의 대중을 잘 알고 그들을 이해하며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너무 멍청한 것과 너무 똑똑한 것 사이를 찾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참 드문 일인 것 같다. 미국이 대선의 와중에서 흑백선전과 비방으로 얼룩지는 만큼, 한국 역시 앞으로 닥칠 대선에서 그럴 것이며 여태 그래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이고 개인적인, 업적과 만행을 다 내려놓은 평가 아닌 평가를 던져 보자면, 벌써 오바마가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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